152화 잠복 수사
서남현이 강태준을 보며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알고 보니 그때까지 밀수선을 잡는다는 건 진짜 가물에 콩 나듯 있는 일이었지요. 세관에서 그럴 역량도 의지도 없었으니. 다들 수입품이나 수출품 면장 확인하고, 통관 도장 찍고 나면, 할 일 없이 빈둥대거나, 화투나 치고 앉아서 시간을 죽이는데, 근무 사정을 들으니 어이가 없더군. 덕분에 밀항 작전은 대폭 수정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그냥 계속 다니기로 하신 겁니까?”
“뭐 딱히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니 호구지책이 필요하기도 했지요. 근데 몇 달을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디서 소문이 들리더군요. 밀수꾼을 잡으면 포상금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포상금 때문에 밀수 사범 검거 실적이 많이 올라갔겠군요?”
“사실, 하도 검거 실적이 저조하니 잡을 유인을 만들자는 안건이 올라온 겁니다. 한 달에 한 놈씩만 잡는다 생각하고 어림해 보니 대충 2년쯤 잡다 보면 구화로 500만 환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감시과에 지원하게 되었지요.”
“그렇다 해도 밀수꾼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노하우를 갖게 되었습니까?”
“일단 무턱대고 들이받았죠. 첨엔 하나도 몰랐는데, 업무를 주의 깊게 보다 보니 뭔가 돌아가는 사정이 보이더이다.
“흠. 쉬운 길이 아닌데. 막말로 돈만 생각했다면 차라리 밀수꾼 놈들과 결탁하는 쪽이 더 손쉬운 길 아니겠습니까?”
“글쎄 내가 좀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 그런가 그런 건 고깝더군요. 게다가 이것도 결국은 층층 구조나 다름없어서 아래서 몇 푼 챙겨 봐야 위로 상납하고 나면 푼돈밖에 안 남더이다. 무엇보다 그땐 정말 순진했거든요. 그래서 일단 밀수증거만 확보되면 아무리 뒷배가 있어도 어찌 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서남현은 계속 밀수꾼을 잡을 방법을 고민했지만, 문제는 커넥션이었다. 밀수 세력과 결탁한 세관원들이 알게 모르게 뒷배를 봐주고 있다 보니 정보가 자꾸 새어 나갔던 것이다.
몇 번 허탕 끝에 그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해상에서는 잡기 힘들다 해도, 결국 밀수품은 뭍으로 들어와야 하지 않은가. 결국 고민 끝에 서남현은 밀수 루트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개인 장구와 배를 따로 빌려 단독 작전을 기획하기로 했다.
“그때 특작부대에서 배운 기술들이 빛을 발했지요. 배수구로 들어가서 폭발물을 설치하던가, 스크루에 줄을 감아 잡는다던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던 광필이가 감탄하듯 말했다.
“오, 과연, 개똥도 약에 쓸데가 있긴 하군요”
“그러게요. 처음엔 진짜 무식하게 들이댔죠. 경험이 없으니 자꾸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놓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그러던 중에 잭팟이 터졌습니다.”
그렇게 간간이 피래미들만 잡다가 처음으로 대어를 하나 문 것이다.
“나는 몰랐는데 최은해라고 유명한 업자가 있더라고요. 신출귀몰하기가 홍길동 뺨치는 녀석인데 부산, 마산, 인천 안 다닌 항구가 없을 만큼. 업계에서는 이름깨나 날리던 놈이었던 거지요. 그놈을 몇 달에 걸쳐 추적했는데 과정이 참 아찔했습니다. 칼도 몇 번 맞을 뻔했고, 막판에는 차단기가 내려진 철길 건널목을 지나치다 기차와 정면충돌할 뻔했거든요. 암튼 어찌어찌해서 놈을 잡으니 다들 놀라더군요.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신문에도 나고 꽤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거물을 잡았으니 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겠네요. 그래서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셨습니까?”
그러자 서남현이 쓰게 웃었다.
“그럴 리가요. 이게 웬걸. 목숨 걸고 잡아서 검찰에 넘겼더니 증거 부족으로 며칠 후에 풀어 준다더군요. 그러고는 날 따로 불러서 업무 태도가 불량하다며 조인트를 까더라고요.”
“아니, 어디 그런 개같은 잡놈들이. 포상을 못 줄망정. 그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뭐 뻔하지 않습니까. 전부 그 나물에 그 밥이니. 난 그것도 모르고 삽질한 거고. 덕분에 위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혔지요. 그렇게 되니 상관들조차 날 노골적으로 견제하며 업무배제를 하더라고요. 그러다 승진도 몇 번이나 누락되고 한직으로 밀려 이렇게 낙동강 오리 알이 된 거지요.”
“허어…….”
.제 일처럼 분기를 터트리는 일행에 강태준이 재차 위로를 건넸다.
“쓰레기장에서도 꽃이 피는 법이라지만 너무 하네요. 외롭게 고군분투하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뭐, 세상이 썩은 걸 어쩌겠습니까. 다들 제 공무보다 밥통에만 관심이 많으니 뭐.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그쪽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고. 하지만 세상에 저같이 미련한 인간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담담하게 풀어 놓는 말이었지만 이권과 영합하지 않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유혹이 앞을 가릴 때 묵묵히 자신에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과연 훗날 호랑이 세관장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답다고 할까. 사람들의 감탄도 잠시 문득 궁금증이 든 김광필이 슬쩍 물었다.
“근데 밀수조직들이 수입이 대체 얼마나 되길래 밀수에 그리도 혈안이 되어 있는 겁니까?”
“국제시장이나, 남대문 블랙마켓에서 거래되는 냉장고 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대충 수입을 알 수 있지요. 예컨대 200리터짜리 미제 냉장고의 경우 PX 가격이 1백 50달러고 가전상가에는 30만 원 정도. 소비자가격은 거기에 20프로 정도가 더 붙습니다. 니콘카메라나 오디오도 마찬가지죠. PX 가격이 2백 달러 정도라면 판매상에게는 35만 원, 소비자에게는 60만 원에 거래되는 실정입니다.”
“엄청나네요. 그럼 밀수를 적발하면 포상금 계산은 어떻게 합니까?”
“뭐. 몰수한 물품가 액에 부과되는 벌금과 과징금을 합친 다음 반띵하지요.”
보상 규정에 따르면 자동차나 양주 같은 물품의 경우 원가를 100%에 관세율 150%를 더하고 거기에 1.1을 곱한 다음, 다시 내국세율 최고치 150%를 곱한다.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액수에 깜짝 놀란 신명부가 되물었다.
“헉, 그럼 엄청난 금액 아니요? 양주는 내국세가 400프로가 넘으니 단순 추산해도 물품가 액의 3배가 넘는다는 소리 아닌가? 보상금이 그 정도라면 충분히 동기부여가 될 법한데?”
“정확히 말하면 양주 같은 경우엔 시가의 거의 330%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죠.”
“아니 왜요? 시행령이나 내부 규칙에 기술되었다 해도, 실제 실무선에선 충분히…….”
“규정대로 제대로 집행되었다면 굳이 세관원들이 밀수꾼에 협조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포상금 지불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어요. 게다가 규정상 적발한 밀수품을 공매해서 그 판매액이 국고에 납입되어야만 지급되니 공매가 안 되면 말짱 꽝이라 이 말입니다.”
말은 거창했지만 결국 공매 진행 여부가 핵심이었다. 아무리 밀수를 적발하였다 하되 그 물품 대금이 국고에 납입되지 않으면 5할은 고사하고 단돈 한 푼도 지급받지 못하니 무늬만 좋은 개살구라는 이야기. 신명부가 김샜다는 표정으로 툴툴대었다.
“에이, 그럼 좋다 말았구먼. 난 또. 혹시나 했네.”
“그래도 이번엔 다르지 않겠습니까? 강 사장 같은 분이 나서 준다면 이번 일이 그냥 묻히지는 않을 거 같은데…….”
“오. 생각해 보니 그러네. 우리 강 사장 영향력이면 밀수품 공매까지 정도야 껌 아닌가?”
은근 기대하는 눈빛으로 곁눈질을 하는 신명부에 강태준도 끄덕였다.
“정 안되면 제가 사비로라도 보상해 드릴 테니 걱정 마십쇼. 어차피 저는 포상금 따위엔 관심 없으니까요. 이번에 적발 대가로 포상금이 나오면 그쪽이 다 가져가세요.”
“아니 진짜? 그 말 믿어도 되겠소?”
“하하. 아무렴요. 제가 허튼소릴 하겠습니까? 일단 밀수범이나 제대로 잡기만 하십쇼. 잿밥이야 제가 어떻게든 만들어 드릴 테니 말입니다.”
“이거 없던 의욕도 생기겠는데?”
뭣도 모르는 신명부는 금세 희희낙락했다. 사실 강태준은 포상금 따윈 미련 없었다. 천하의 오성물산과 한판 승부를 앞둔 마당에 돈 몇 푼이 문제겠는가. 애초에 이번 작전을 성공시켜도 표면에 드러나서는 좋을 것이 없다.
사실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았으면 둘 다 평정심을 유지하진 못했을 테니.
‘이번 일에 엮인 건 사실, 오성 혼자만이 아니겠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충 어렴풋이는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의 진짜 뒷배는 현 정권의 몇몇 실세라는 걸.
* * *
우우우웅~~
밀수품을 가득 실은 뱃머리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동안 하얀 물거품처럼 작고 날카로운 파도를 일으키는 북동풍이 불어온다.
나침반 위를 선회하던 빛이 조타실의 어둠을 가르자 소금기가 섞인 짭짤한 바람이 조타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현해탄을 건너 욕지도로 나아가는 배의 속도는 순양함의 평균 시속인 시속 13노트. 어지간한 화물선이라면 빠르다 할 속도였지만 갑판장은 속력이 맘에 들지 않는지 연신 투덜대었다.
“선장님, 이것보단 속도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굼벵이도 아니고. 원.”
“애초에 화물을 너무 많이 실었다니까. 선창 바닥까지 뜯어서 물건을 싣느라 무거워서 그렇지. 비상용 엔진에 쓸 연료 탱크도 2/3밖에 못 채웠다고.”
“이러다간 약속에 한참 늦습니다. 저번에도 배송 늦었다고 한 소리 들었잖습니까?”
“그 개자식들은 지들이 현장을 알아? 진득하게 좀 기다리지. 대충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주제에 뭘.”
“의뢰인이 무려 오성물산이니 제 놈들도 호가호위하는 거죠. 우짜겠습니까? 놈들한테 밉보이면 우리도 영 재미없어요.”
“젠장 할. 층층이로 상전 노릇이네. 이젠 운반책 자식들 눈치까지 보나.”
말은 그렇게 해 놓고도 찔리는지 키를 놓은 선장은 중간 속도로 맞춘 원동기 유압모터의 연료 레버를 다시 움켜쥐었다. 레버를 최대로 올리자 속도 초과를 울리는 벨 소리와 함께 칙칙폭폭 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성이같이 억센 털이 숭숭 난 손이 다시 둥그런 키로 되돌아오자. 커다란 진동과 함께 잠자던 모터가 포효했다.
잠시 후, 파도가 배 좌측 돛 아래 귀퉁이를 두드리자 불쑥 바닷물이 솟구쳐 올랐다. 거세진 바람에 철썩대는 파도가 배의 좌현 돛 아래 밧줄을 맞고 튕겨 물방울이 번졌다.
갑판 위로 기어 올라온 파도가 조타실 유리를 희부옇게 만들었다.
“임마, 자 됐냐? 됐어?”
“하실 수 있으면서. 선장님도 괜히 그러신다니까.”
갑판장은 한결 얼굴이 편해졌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물 먹은 갑판이 올라간 속도를 견디다 못해 삐걱거리자, 두 개의 모터가 패커드 엔진의 속력에 맞추려는 듯 부르르 진동하며 털털 소리를 냈던 것이다.
마치 나무가 비명을 내지르는 듯한 소리에 터보 차저 (Turbo Charger)의 RPM이 올라가자 연료 게이지를 유심히 보던 선장이 낮게 욕설을 했다.
“시불, 겁나게 요란하구먼. 두 번 나눠 실을 걸 단번에 실어 대니 이 모양이지. 30년 된 낡은 배에 무슨 신종 고문인가. 이러다가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배 망가지겠어.”
“하이구야. 어차피 형님 배도 아니신데 무슨 걱정입니까? 적당히 시키는 대로 하시면 되지. 그렇게 투덜거려 봐야 바뀌는 건 없지 않겠습니까.“
“쫌생이 자식들, 내가 말해서 무슨 개선이 있겠나. 이러다 큰일 터지기 전에 손절해야지. 이러다간 내 제 명에 못 산다.”
“퍽이나. 그런 말 듣는 것도 벌써 세 번째 아닙니까. 형님.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잘만 굴려 놓고. 기관장이 들으면 서운하겠습니다.”
“임마. 사고가 터지고 나면 그땐 늦는 거야. 정비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 막 굴리는데 탈이 안 날 수가 있나. 공해에서 엔진이 퍼지기라도 해 봐. 그럼 우짤래?”
“걱정도 사서 하십니다요. 한두 번 거래한 것도 아니고, 그때엔 세관원에 몇 푼 쥐여 주면 그만 아닙니까. 애초에 세관 놈들도 대충 다들 한통속인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지.”
“그래, 속 편해서 좋겠다 야.”
“에이. 걱정도 팔자네. 그땐 그때 가서 생각하십쇼. 이런 호시절도 한때입니까. 벌 때 바싹 벌어들여야죠.”
“그러게, 세상 빌어먹기 쉽지 않아.“
기지개를 켜는 갑판장의 말에 전낙근이 투덜대었다. 밀수 환경이 악화된 것은 최근 경쟁이 심해지면서 밀수꾼들은 행동은 점차 대담해졌기 때문이다.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밀수에 대한 엄벌을 천명했지만, 목소리만 크지 실적은 없었기 때문. 덕분에 간덩이가 부은 밀수꾼들 사이 점차 물건을 과량 적재하는 풍조가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