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50화 (150/361)

150화 소탕 작전

“일단 저항이 줄어들면 안정성은 좀 떨어지겠지만, 속도는 확실히 올라갈 겁니다.”

강태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 여겼는지 박진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편이 연료 효율성 측면에서도 더 나을 거 같군. 사실 이런 비싼 엔진을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아까우니 말이야. 대신 그러려면 품이 무쟈게 들 거 같은데.”

“그러니까 전문가 손길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고생스러워도 수고 부탁드립니다. 형님밖에 없습니다.”

“허, 말로만? 도박 빚 한 번 갚아 줬다고 겁나게 부려 먹는구만.”

“에이, 형님도 서운하게. 제가 언제 공짜로 해 달라는 거 봤습니까. 출장비는 두둑이 챙겨 드리겠습니다.”

“흠흠, 그거 약속한 걸세. 암튼 시간이 촉박하니 빨리 작업부터 시작하자고.”

대충 견적을 끝낸 박진환과 수리소 멤버들이 서둘러 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처음 강태준이 타던 무안호가 첫 개조의 대상이 되었다.

우선 고속형 컨테이너선에 적합한 모양이었던 배의 구상선수를 통째로 깎아 낸 뒤 원래 위치보다 낮은 쪽에 좀 더 날씬한 모양으로 붙여 넣은 것.

개조에는 소요된 기간은 꼬박 2주.

위장막도 달고 뱃머리를 강철로 덧씌워 놓고 나니 꽤 그럴싸한 모습이 되었다.

“이거 완전히 환골탈탠디. 철갑선여 철갑선.”

“확실히 예전과는 천지 차이인데요. 아주 못 알아보겠습니다.”

마치 해상 탱크처럼 변모한 배는 딱 보기에도 튼튼해 보였다.

얼굴에 기름기가 묻은 박진환이 으스대듯 말했다.

“이 정도 출력이면 웬만한 밀수선은 다 잡을걸. 탑재 전 실린더 내부도 청소해서 재조립했네. 아마 어지간한 특공선에 비교해도 기본 속력이 10노트 이상 빠를 거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무식하게 막 박으면 안 돼. 생각보다 가벼우니, 속도에 치중해서 탄 사람이 그대로 튕겨 나갈 수도 있으니 말이야.”

작업을 마친 강태준이 이마에 송송 난 땀을 훔쳤다. 고속정으로 재탄생한 배를 보니 몇 날 며칠 잠도 자지 못하고 고생한 보람이 느껴져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그렇게 바닷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을 때, 치익 소리와 함께 잠복근무를 하던 춘삼이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울렸다.

“사장님, 신호입니다.”

드디어 이즈하라항에서 밀수선이 출항한다는 첩보가 날아든 것이다.

“사흘 내로, 이즈하라항에서 밀수선이 출발한답니다.”

“분선 위치는?”

“동국이 말로는 욕지도가 유력하다네요.”

강태준은 밀수 총지휘자인 이정길의 행동반경을 추적하기 위해 정군용 통신장비를 휴대한 정보원들을 이즈하라항에 잠입시켜 두었다. 거기에 세관 임시직원으로 채용한다는 조건하에 포섭된 최동국은 밀수꾼들의 동향을 보고하며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점이 잡힌 만큼 최동국은 적극적이었다.

“욕지도 근방이라. 정확한 위치는?”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놈도 운반책이 아니라 정확히는 모른다는군요. 놈들 말로는 개구멍받이니 뭐니 운운한다던데요.”

“개구멍받이라고?”

“네. 무슨 지명 이름 같은데. 그 이상은 못 알아냈습니다.”

강태준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위도, 경도만으로 지역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당시엔 항법 장비의 미비로 정확한 거리 측정이 어렵고, 오차를 보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위치를 설명할 때 육지의 특정 지역으로부터 몇 킬로 떨어진 곳이라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그걸로는 좀 부족한데. 추가적인 힌트는 없었나?”

“흠…… 딱히 들어 봐도 별다른 특이점은 없더이다. 아, 뭐냐. 요새 밀수 시장이 커지면서 지원자가 넘쳐나서 선장들 간에도 실적을 두고 경쟁이 엄청난가 봅니다. 파벌 간에 알력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고. 그래선가. 배 한 번 타는데도 뒷돈이며 무척 경쟁이 심하다는군요.

선장들 간에 유능한 선원들을 빼 와서 쌈 붙는 경우도 많고 신삥의 경우에는 거의 뽑지를 않아서 선장에 웃돈을 얹어 주고, 타는 경우도 있다 했다. 그러다 보니 칼부림이 나는 경우도 적잖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그쪽도 나름 지들 나름대로 고충이 있구만.”

“어차피 가는 날이 장날이니, 큰 배를 타야 많이 남지 않겠습니까. 부익부 빈익빈이죠. 이왕 고생할 거면 뱀 머리보다 용 꼬리 되는 편이 낫다 그런 소리를 하더이다.”

그 외에는 딱히 특기할 만한 사항이 없었다. 답답한 신명부가 떠들었다.

“아니, 그게 알아낸 전부면 곤란한데, 누가 밀수꾼의 애환 따위가 궁금하다던가? 제대로 정보를 가져와야 할 거 아냐.”

“죄송합니다만 이게 한계였습니다. 워낙 은어를 많이 사용해서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죠. 지게니 208이니 뭐니 지껄이는데 처음 듣는 용어가 많아 해석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흐음. 그만해도 수고한 거지. 어디서 얻은 정보인가 건가?”

“이즈라하항 쪽에 한국 선원들 상대로 영업하는 이자카야가 하나 있답니다. 거기서 근무하는 새끼 마담 하나가 동국이 그놈이랑 죽고 못 사는 사이랍니다.”

해당 이자카야는 대략 80여 평가량의 2층짜리 목재구조 된 곳으로 특히 밀수선 선원들이 자주 방문하는 장소다. 간부급 선원들은 흑단목 재질의 도코바시라가 둘러싸인 귀빈용 밀실에 주로 드나드는데 개중 밀수선 선장이나 그와 친분이 있는 지역 유지들이 자주 출입한다고 했다.

“암튼 이번에 출발하는 밀수선 갑판장이 그 집 단골이라는군요. 입이 싼 놈이라 가끔 자랑스럽게 정보를 떠벌리는데 예전에도 그런 식으로 뒷 정보를 얻어 재미 본 적이 있답니다. 동국이 자기가 보관책이 된 것도 그때 한탕 거들어서라고. 교차 검증한 내용이니 아주 신빙성이 없지는 않을 거라네요.”

“흠. 그럼 뭔가 은어 같은 걸 섞어 쓰는 것일 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다만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잠겼다. 확실히 그런 이유에서라면 뭔가 힌트를 줄 법도 한 것이다. 먼저 광필이가 말했다.

“흐음. 그럼 난 언급한 명칭 중에 용 꼬리라는 말이 좀 걸리는데. 거기 지명을 은유해서 말한 거 같지 않습니까. 그쪽은 고래바위니, 호랑바위니, 동물에서 딴 지명이 많지 않습니까?”

광필이의 추측에 서남현도 뭔가 생각난 듯 말을 보탰다.

“아, 그러게. 생각해 보니 연화도 쪽에 용머리 바위가 있지 않나. 예전에 밀수선 추적할 때 한 번 가 본 적이 있네.”

“아, 그렇게 생각하니 말 되네요. 근데 용 꼬리라면 위치가 어떻게 되지? 연화도는 꼬리가 없는데.”

“꼬리 부근을 말하는 거겠죠. 그럼 밀수 강정 쪽이 아닐까요? 아님 촛대바위 쪽이거나.”

“그건 너무 나간 거 같은데, 그렇게까지 돌려 말할 리가 있나?”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태준이 퍼뜩 깨달은 듯 손뼉을 쳤다.

“그러면 실제 접선지는 구멍섬일 가능성이 크겠군.”

“예? 구멍섬? 그쪽 지형에 그런 지명이 있습니까?”

“그래, 우도 북부에 몽돌해변 주변 지명이야. 사리 때 만조가 되면 작은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있거든. 연화도 쪽 끝 용머리랑은 정확히 대칭 방향이지. 게다가 그 근처 지명으로 구멍게라는 곳도 있어.”

“아! 그 게가 그 개가 아니구먼요.”

“애초에 몽돌해변 주위는 해안가라 얕기도 하고, 바다도 상대적으로 잔잔한 편이지. 경관이 좋아서 여름이면 관광객들이 꽤 오거든. 지금 같은 가을엔 주로 낚싯배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니 어선과 접촉하기도 자연스럽지.”

“그렇게 따지면 아구가 맞네요. 그럼 대충 목적지가 정해진 거 같은데 이제는 어떡합니까?”

“느긋하게 밀수선이 들어올 때를 기다릴 순 없으니. 일단 출동하자고. 시간상 변동사항이 생기면 대응할 수 없으니 말이야.”

수사관이 항구에 앉아 밀수선 들어오기만을 기다린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배가 들어오는 일정은 날씨에 따라 변동성이 심하니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급선무였다.

여수에서 출발해 첫 번째 경유지인 연화도를 지난 강태준 일행은 어느덧 용 머리에 당도했다. 옹기종기 모인 섬 끝자락에 놓인 선착장에 도착하니 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동서로 3.5km, 남북으로 1.5km 정도의 작은 섬인 연화도는 풍광이 무척이나 수려했고, 후박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섬 주변으로 바글바글하게 모인 어선들이 파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야. 낚싯배들이 꽤 되네요. 원래 이렇게 배들이 많습니까?”

“지금이 고등어 철이라 그래. 요즘 수입이 꽤 쏠쏠하지.”

70년대 이후에는 좀 쇠락하게 되지만 이때의 욕지도는 어업 전진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풍어를 맞은 연화도 일대는 크고 작은 어선들로 복작거리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푸지게 잡은 고등어들 때문인지 표정이 밝았다. 덕분에 선착장은 푸른 무늬의 카펫을 깔아 놓은 듯 고등어로 가득했고 경매 참가자들의 손은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미역과 톳이 여기저기서 건조되는 모습이 겹쳐 활기가 넘쳤다. 배에서 내린 강태준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따로 나누는 게 좋겠네. 이쪽 일대 지형도 확인해 봐야 하고 복만이랑 황 서방은 이쪽 일대에서 다른 선박도 빌릴 수 있는지 알아봐.”

“추가로 배를 말입니까?”

“그래. 배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나. 진로를 막으려면 큼직한 걸로 하나 있으면 좋겠지. 길게는 필요 없고 2주간만 빌릴 수 있는 게 있나. 수소문해 봐. 밤낚시 할 겸, 출조용으로 구한다고 하면 별로 의심하지 않을 걸세.”

“네. 알겠습니다.”

대충 말을 맞춘 강태준과 일행이 짐을 들고 내렸다. 연화항에 도착하니 4시 30분, 좀 애매한 시간. 서둘러 연화도 남쪽에 자리한 동두항에 배를 맡기고 출렁다리를 지나 구멍섬으로 향했다.

우도 북쪽 끝 언덕에 도착하니 몽돌해변 근처 구멍섬이 멀리 눈에 들어온다.

해안가로 내려가는 길은 섬들이 의례 그렇듯이 경사가 급하고 험했다.

해안가에 내려가 조금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야 구멍이 제대로 보일 거 같았다.

나중에야 이름난 명승지로 사시사철 관광객이 드나드는 지역이지만 당시로는 계단도 없고 접근하기 어려운 시절이라 인적이 드문 곳. 험한 지형에 힘에 부치는지 광필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헉헉, 육안으로 보기엔 가까웠는데 왜케 멀죠? 배를 가져올 것 그랬습니다.”

“좀만 참아. 거의 다 왔어.”

“근데 길이 어디 있습니까”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다리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강태준이 말했다.

“저기로군. 저기 목섬 쪽으로 건너가면 되네.”

“네? 저기를 바로 걸어서 건넌다고요?”

“기다려 봐. 물이 빠질 시간이니 말이야.”

사람들의 의구심에도 불구, 강태준이 태연하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과연 능선에서 내려올 무렵 썰물로 지대가 높은 부분이 드러나면서 길쭉한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진짜 길이 생겼네요.”

물이 빠진 상태에서는 발아래로 드넓은 갯벌이 보인다. 갯벌 위엔 작은 게들이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모습, 눈이 커진 서남현 일행에 광필이가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다.

“오오! 모세의 기적!”

“임마, 제부도에서 많이 봤잖아? 호들갑 떨지 말고. 장화부터 갈아 신어.”

“무드 없게. 뭐. 기분도 못 냅니까 참.”

홍해가 갈리듯 열린 길을 따라 강태준이 앞장섰다. 장화를 신고도 푹푹 빠지면서 건너는 뻘길이었다.

목섬으로 가니 반대편 쪽으로 구멍섬이 보인다. 말은 섬이라지만 실상은 ‘뚫린 동굴이 다름없는 구멍섬은 크기도 몹시 작았다.

하롱베이의 관통 동굴처럼 중간이 뻥 뚫린 작은 섬이 물 위에서 관문처럼 우뚝 서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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