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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48화 (148/361)

148화 밀수 조직

강태준이 아는 낌새를 보이자, 최동국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네네. 알 사람은 다 알죠. 지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겁니다. 창고에 넣은 물건은 죄다 일본에서 동남아 수출용으로 만든 물건 중 결함품으로 판정된 물건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불량품이죠.”

“임마 수출 쿼터 맞추려고 편법 쓴 거지 누구한테 구라를. 니 사정은 별로 안 궁금하니, 계속해 봐. 조직원이 누구누구 있는데.”

자포자기한 최동국은 여수의 밀수 조직 계보에 대해 죄다 실토했다. 여수항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밀수를 해온 것이 5~6개 파. 총원은 약 100여 명 정도로 분산되어 있다고

속칭 도요파 두목 박화진, 북해공사 대표 변인원, 석창호 선주 강윤동, 우기명 등등

모르는 인물들이 속속 등장하자, 듣고 있던 강태준이 말을 잘랐다.

“자잘한 놈들은 재끼고 몸통부터 말하자고. 그중 최고 거물이 누군데?”

“여수에서 제일 세력이 큰 건, 허용봉입니다. 거물급 자금 조달책이죠.”

생각보다 익숙한 이름에 깜짝 놀란 신명부가 되물었다.

“허용봉이라면 설마, 세형물산 사주 말인가?”

“네네. 그 사람 맞습니다. 전직 형사 이제준이 오른팔인데 덕분에 정보에 밝거든요. 허용봉이는 밑으로 두목급을 8명이나 데리고 있습죠. 운반 담당 16명에 외항선을 상대로 한 브로커도 10명 정도 있는데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취급하는 규모가 큽니다. 그래서 그쪽에서 보통 물건이 들어오면 한 번에 십만 달러 단위 정도는 거뜬하지요.”

“십만 달러? 그걸 세관이 못 잡나?”

“아이구야, 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화물선이 일본을 떠나는 순간부터 일본 해상보안청의 협조를 받지요. 수하물 목록을 전달받고 나면 그때부터 항로도 출항지에서 입항지로 직행하도록 규제하니 중간에 비집고 들어올 틈이 적지 않습니까?”

일단 외교적 마찰 때문에 행동이 제한되니 수색 과정이 훨씬 힘들어지는 것이다.

세관도 머리가 있으니 밀수출품 또는 외화를 소지하지 않은 공선 입항은 전면 불허하는 쪽으로 대응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었다. 빈약한 해양경찰 장비로 그 넓은 해역을 전부 감시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밤에는 감시가 줄어들기 마련. 그래서 밀수꾼들은 일몰 후에 야간을 이용하여 남해안 쪽 도서 지역이나 해안에 양륙하거나 해상서 어선을 이용해 물건을 이적한다고 했다. 상황을 짐작한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해 분선을 한다는 소리군. 근데 그렇게 하면 아다리가 맞아야 하지 않나. 해상운반책이랑 양륙책. 육상 운송, 판매책까지 다 따로 필요할 텐데. 그럼 대체 엮인 인원이 꽤 많겠군.”

“애초에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솔직히 저희도 대충 짐작만 하는 거지 정확한 규모는 모릅니다.”

“철두철미하구먼. 근데 일 회에 십만 달러라니 거 양심에 털도 안 난 놈들일세.”

“에이 저희도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거죠. 수요가 없으면 왜 이런 위험천만한 짓을 하겠습니까? 저도 원래는 평범한 소형 어선 선원이었습니다요.”

예전에 그믐밤을 노려 일본에서 싣고 온 밀수품을 인도하려 하다 육상 접선책이 보이지 않아 우왕자왕 하던 가운데 암초에 걸린 것을 우연히 도와준 것이 시작이었다고.

“5년 전 야밤에 고기 잡으러 나갔다 암초에 걸린 선박을 발견했는데 그게 마침 밀수선이더군요. 엉겁결에 분선을 도와주게 되었는데 그걸 좋게 보았는지 조직에 들어오는 게 어떠냐고 떠보더라고요. 물건을 구해 오고 선금을 챙기던지 운반책에 끼어 공동 분배를 가던지 택일하라고. 저는 이것저것 위험부담 지는 게 싫어서 보관책을 골랐습니다…….”

“아니, 그걸 고민도 없이 덥석 받아먹어?”

“솔직히 말이 바른 말이지. 어선 끌고 근해에서 고기 잡아 봐야 선원들 급여랑 어구비, 연료비 부담하면 손에 남는 돈도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기상악화로 조업 못 나가면 손가락만 빨아야 되잖습니까…… 재수 없게 태풍이라도 불면 굶어 뒤져야 됩니다. 사채 이율 생각하면 어휴. 그에 비하면 밀수는 양반이죠. 창고 열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도 따박따박 목돈이 보장된다는데 안 할 사람이 어딨습니까.”

선원과 선주의 이해관계가 거기서 일치했다. 선주로서는 고가의 물품을 밀수하도록 종용하여 그 차액의 일부를 급여 명목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고, 덕분에 엮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신명부가 궁금한 듯 슬쩍 물었다.

“그래서 니는 얼마나 받는데?

“그때그때 다릅니다. 일반적 배 1척을 상륙시키면 수속비로 일화로 2만 엔씩을 받고, 납품 대리를 하게 되면 총 수익의 1할을 남기죠. 밀수선 1척당 보통은 5천 불에서 1만 불어치의 물건을 사 오니 5천 불이면 약 500~600불 정도 떨어지는 셈이죠.”

신명부의 입이, 입이 벌어졌다. 각종 뇌물이나 나가는 비용을 제해도 한탕에 월급쟁이 어지간한 연봉은 싸다구 치고도 남는 금액이니 눈이 벌게질 법도 한 것이다.

취조를 마치고 옥상으로 나온 신명부가 허탈감이 들었는지 연초를 꺼내 물었다.

“젠장, 인생 헛살았군. 저런 밀수꾼 자식이 나보다 봉급이 몇 배는 많다니. 김 부장 그 양반이 뒤에서 그 지랄한 이유를 알겠구먼. 지금껏 나만 쏙 빼놓고 재미 보는 중이었다 이건가?”

짙은 연기에 허탈감이 밴 느낌 속내를 눈치챈 강태준이 맞장구를 쳤다.

“애초에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겠습니까? 입막음을 하려면 세관원이나 형사들에게도 따로 나눠 줄 액수도 빼 둬야 하니 생각만큼 먹지는 못하겠지요.”

“뭐. 그 정도면 걸릴 때 위험부담을 고려해도 해 볼 만하죠. 제가 못 배운 놈이었다면 혹했을 거 같아서요.”

강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신명부가 표정을 고치며 재를 털었다

“근데 강 사장도 대단하십니다. 혁명 때 공을 세웠다고는 들었다만 그 정도 신임을 얻고 있는 줄은. 언제 그런 신임장까지 받으셨습니까. 미리 말해 줬음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아 그거요? 당연히 구라죠. 필적 위조야 할 줄 아는 놈이 한둘입니까? 대충 얼버무린 거지요.”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천연덕스러운 강태준의 태도에 대경한 신명부가 더듬거렸다.

누가 돌아볼까 목소리가 작아진 신명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아니, 최고 권력자를 사칭하다니. 목숨이 두 개라도 됩니까? 잘못되면 크게 경을 치는 수가 있어요?”

“그거야 본청에서 확인하지 않음 누가 압니까. 수사 목적상 사칭했다고 해도, 안 걸리면 그만입니다. 이번 일 해결 못 하면 경치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런 약삭빠른 놈을 쁘락치로 이용해 먹으려면 이 정도 겁은 줘야 먹히겠죠.”

“그래도 이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벌써부터 후회된다는 표정의 신명부에 강태준이 대못을 박았다.

“나중 일은 나중에 걱정하지 마십쇼. 어차피 이번에 실적 못 올리면 신 영감님도 인생 갑갑해지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대어를 잡으려면 미끼부터 던져야죠. 변 선장 쪽 조사는 문제없겠죠?”

“뭐 그 부분은 별 탈 없을 겁니다. 오 검사한테 사건 인계한 뒤니 자기가 알아서 풀어 주겠죠.”

“차라리 잘 되었군요.”

“그래두 담부턴 대충이라도 상의하고 진행하십시다. 진행 속도가 이렇게 빨라서야 쫓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쪽 속도 맞추다간 가슴이 벌렁거려서 제 수명대로 못 살겠어요.”

“그 점 명심하지요.”

대답은 곧이곧대로 하는 강태준이었지만 사실 공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신명부 같은 보신주의자를 끌고 일을 도모하려면 멱살이라도 끌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며칠 후, 해상 충돌 사고로 경찰서에 구류되었던 변 선장이 풀려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오 검사에게 사건이 인계되고 난 지 사흘도 안 되어 무혐의로 풀려난 것이다.

경찰서 앞에서 담배를 문 변 선장이 성가시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제기랄! 맛 더럽게 없구먼. 아니 공무원이란 놈들이 뭐 이딴 걸 피나?”

“빈속에 돛대 피면 속 버려요. 밥부터 드셔야지.”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어깨가 넓고 듬직한 녀석이 싱글거리고 있다. 칼자국이 희미하게 보이는 뺨이 좋게 말해도 좋은 인상이라 보긴 어려웠지만, 상대를 확인한 변 선장이 격하게 반가워했다.

“이거 누구야? 설마 봉팔이?”

“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변 선장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남자에 변 선장이 살갑게 인사를 받았다.

“나야말로 반갑다. 여기는 웬일이야. 수배 땜시 대마도에만 짱박혀 있는 줄 알았는데”

“형님 사고 났단 소식 듣고 걱정돼서 나왔죠. 수배도 풀린 김에 인사도 드릴 겸. 술값 한번 비싸게 치르셨다던데 뭐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멀쩡하이. 대신 합의금조로 돈만 오지게 깨졌지.”

사건은 어떻게든 무마했지만, 합의금으로 쓴 돈만 무려 수십만 원.

예상을 초과한 비용으로 속 쓰려 하는 변 선장에 봉팔이가 그를 달랬다.

“아이쿠야, 그래도 몸이 안 상했으니 다행이죠. 돈이야 또 벌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이왕 나온 거 뜨끈한 해물탕이나 조지러 가죠.”

“이번에 탈탈 털려서 돈 없다. 니가 사는 거면 가고. 아님 말고.”

“그거야 당연히 제가 대접해야죠. 배고프니 빨리 갑시다.”

남자 둘이 찾아간 곳은 해안가 근처의 한 해물탕집이었다. 주문을 시킨 지 십 분이 지나자. 돌문어가 한 마리 찰지게 들어 있는 해물탕 안에는 꽃게와 바지락 홍합, 왕새우 등 제철 해물이 차곡차곡 쌓여 나왔다.

보글보글 끓는 국물을 한 숟갈 뜬 선장이 기미 보듯 맛을 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입김을 불어가며 식사에 열중하는 모습에 흐뭇하게 보던 김봉팔이 실실 웃었다.

“거, 역시 잘 드시네. 간만에 뜨끈한 게 들어가니 속이 좀 풀리죠?”

“컬컬한 게 시원하긴 하구만. 근디 여긴 뭐 뜯어 먹을 게 있다고 왔나? 가정도 생겨서 험한 일은 이제 안 한다더니?”

대답 대신 소주잔을 깐 김봉팔이 스스로 잔을 채웠다. 자작으로 술을 들이켠 그가 젓가락을 뒤적이며 중얼거렸다.

“뭐, 가족들 먹여 살리려면 돈 벌어야죠. 마누라가 이번에 쌍둥이를 배어서요.”

“아이구야. 또야? 이번이 일곱째인가?”

“여덟째입니다. 축하할 일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애 낳는 게 벼슬이랍시고 히스테리만 늘어서는 맨날 이래라저래라 부리는데 솔직히 죽갔슴다. 인간이 소도 아니고 뭘 그렇게 순풍순풍 싸 재끼는지 원.”

“거, 싸가지 보게. 여자가 무슨 성모 마리아여? 혼자서 애 만들게. 지가 싸질러 놓고는. 다 니 업보요.”

“그건 글치만 어지간해야죠. 무슨 사람이 애 낳는 기계도 아니고.”

“맞추는 족족 명중인 건 네 탓이지. 그럼 아주 묶던가.”

“저도 이유 없이 투정하고 싶진 않습니까. 집에 들어가면 소처럼 퍼져서는 인사도 안 하는 게 버릇이 돼서요. 제일 어린놈은 아비 얼굴도 못 알아봐서는. 제가 봉투 갖다주는 기계인지. 사람인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그러게 누누이 말했잖어.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특히 우리 같은 뱃놈들한테는 말이야.”

“그러게요. 그때 형님 말씀 들을 걸 그랬습니다. 요새 심심해서 책 하나 읽고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라는 인간이 이렇게 써 놨더군요. 아등바등 살라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니까 좋아 보이면 멋대로 살면 될 일이라고요. 감당이 안 될 만큼 멋대로 일을 만들면 괴롭다던데 그게 딱 제 이야기하는 거 같더란 말이죠.”

그러자 담담히 듣고 있던 변 선장이 소주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아놔. 밥맛 떨어지게 뭔 소린감. 소새끼인지 소시키인지 지금 가방끈 길다고 나한테 시위하는겨?”

“아이구. 설마 그런 뜻이겠습니까. 그냥 푸념으로 해 본 소립니다.”

“거, 궁상떨지 말고, 밥이나 드셔. 아 새끼들 키우려면 잘 먹어야지. 애들 대학까지 보낼 생각이라며 그럼 지금보다 뼈 빠지게 벌어야지.”

해물탕을 안주 삼아 대화를 즐기는 동안, 옆자리에서 똑같은 탕을 시킨 손님이 벙거지를 눌러쓴 채 식사에 열중해 있다.

식사를 마친 변 선장 일행이 자리를 뜨자, 뒤따라 나간 두 명이 양 갈래로 갈라지더니, 한쪽은 변 선장을, 따라 남은 하나는 이내 인적이 드문 포구로 향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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