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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46화 (146/361)

146화 밀수 특별반 가동

하지만 며칠간 씻지도 못한 채 잠복을 하는 건 실로 고역인 만큼 며칠 새 안색이 초췌해진 신명부가 의문 쩍은 어조로 답했다.

“진짜 이렇게 죽치고 기다리면 효과가 있나?”

“정보에 따르면 이 지역이 바로 대마도를 경유하다 온 밀수선들이나 소형 어선들이 부두에 뿌려 놓은 밀수품을 숨기는 장소로 애용되는 곳입니다. 저기 쌓은 나뭇단은 그런 밀수품을 가리기 위한 위장막의 일종일 확률이 높지요.”

“그래도 벌써 사흘째인데…….”

말끝을 흐리는 것이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사무실에서 편하게 기다릴 걸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인내심의 한계가 온 듯 표정이 좋지 않은 그에 강태준이 그를 다독였다.

“좀만 참으십시오.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니.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크지요. 그렇지 않고 땔감으로 저렇게 담을 두를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쓸데없이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근데 생각해 보니 어차피 차로 나를 것이 뻔한데, 중간에 차가 빠져나오면 시내에서 검문하면 되지 않소?”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 신명부의 푸념에 김광필이 핀잔을 주었다.

“거, 속 편한 소리를 하십니다. 밀수꾼들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요…… 애초에 항구 근처로 돌아다니는 차량이 몇 댄데, 일일이 검문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경찰이나 밀수범들이 다들 그 동네 사람들인데 검문해서 걸려도 빠져나올 거구, 애초에 동원할 인력이 어디 있습니까? 같이 해 먹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네. 광필이 말대롭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잘해 봐야 운반책 몇 명 꼬리만 잡히고 말겠죠. 그 뒤엔 접선 장소를 바꿀 확률이 높고요.”

도마뱀 꼬리 자르듯 튀면 그때엔 더 잡기 힘들어진다. 당시 밀수는 지역 경제와 밀접하여 지역민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 일개 잡역부에서 시장에 이르기까지, 거미줄처럼 엮인 연결망을 쫓아가려면 이렇게 직접 발로 뛰지 않고서는 안 된다. 그 말에 동감한 듯 서남현도 한마디 했다.

“하부 조직원 몇 명 잡아봐야 소용없고, 최소한 물류 창고까지는 털어야죠. 접선책까지는 올라가야 뭔가 쓸 만한 정보가 나올 테니, 좀만 기다려 보시죠.”

“나 참.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지 않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

그러자 광필이가 대신 답했다.

“그거야 며느리도 모르지요. 저희가 밀수꾼도 아닌데 어찌 압니까?”

“그럼 설마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아이구야. 그 정도 수고도 없이 어떻게 범인을 잡습니까? 그렇게 쉽게 잡을 거 같았음 벌써 색출하고도 남았죠. 투덜대지 말고 진득하게 기다려 보십쇼. 아니, 또 왜 일어나십니까?”

“야, 광필이, 소피 좀 누려고. 왜 오줌도 못 싸나?”

“사람이 무슨 참을성이 그리 없습니까? 지금 차 들어올 시간대입니다. 좀 있다 싸요!”

“아니, 그럼 어쩌라고? 생리현상인데 빨리 해결할게.”

주섬주섬 바지를 내리려는 신 검사에 김광필이 바지춤을 올려 잡자 신명부가 엉거주춤했다.

“야. 임마 지금 나올 거 같다니까!”

“좀만 참으십쇼. 정 못 참겠으면 바지에 조금씩 싸서 말리시던가.”

“뭐? 지금 이 손 안 놔? 엉?”

“다들 조용히! 쉿 지금 저기 옵니다!”

서남현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자 실랑이를 벌이던 둘이 곧바로 잠잠해졌다. 쌍안경을 든 강태준이 슬쩍 저쪽을 살피니 엔진음과 함께 차량 몇 대가 들어오는 모습이 똑똑히 보인다.

지프와 달구지가 주위로 모여드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숨을 죽이는 사람들. 그러나 잠시 후, 욕지기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놔, 저건 한 대가 아니잖아…….”

“이건 계산이랑 다른데요. 캡틴?”

속속들이 도착한 차량만 무려 12대. 지프와 용달차가 일렬로 선 모습에 당황한 일행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차량 숫자에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아니, 밀수품이 저렇게 많을 리가 없는데?”

“젠장, 성가시게 되었어. 눈가림용 차량이 붙었군…….”

똑같이 생긴 것이 육안으로는 구분되기 힘든 수준. 특히 이렇게 날이 저문 시간대에는 더더욱. 나뭇단을 서둘러 싣고 있는 잡역부들을 서둘러 살펴보는 강태준이었지만 날도 어둑한 데다 거리도 상당해 멀리서는 당최 어떤 차가 밀수품을 싣는 차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쌍안경으로 봐도 두툼한 나뭇단을 덮은 커버와 부산하리만치 빠른 잡역부들의 행동에 도리어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었다. 난감해진 광필이가 도움을 청했다.

“뭐라도 알 거 같습니까? 서 수사관님?”

“이건 저도 좀. 저도 솔직히 뭐가 진짜 어떤 게 밀수 차량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럼 어떡합니까?”

“자자. 일단 추적부터 하자고. 바로 갈라서진 않을 테니.”

강태준이 서둘러 손짓하자 궁시렁대던 일행이 미리 숨겨 두었던 차량에 탑승했다. 다행히 물건을 나르는 데만 급급해서인지 딱히 들키지는 않았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행하다 보니 차량이 일렬로 대로변에 들어선 차량이 검문소를 통과하고 있었다. 사거리를 앞에 두고 운전대를 잡은 춘삼이가 도움을 청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사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일이 전부 쫓아갈 수는 없는데.”

“이거 난감하군.”

나뭇단을 싣는 모습까지는 확인했지만, 도저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12대의 차량을 하나하나 다 추적할 수야 없지 않나.

난감해진 상황이었지만 강태준은 치열하게 머리를 굴렸다. 실마리를 고민하던 그때 퍼뜩 카발수리소에 근무했을 무렵, 박진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택시 기사들의 경우 기계식 미터계를 더 돌리기 위해 차량 뒷바퀴의 바람을 빼거나 작은 사이즈의 타이어로 교체하는 편법을 부리곤 한다는 말.

“밀수품 무게가 얼만지는 모르지만,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차들을 재차 유심히 확인해 보니 과연 여러 차량 가운데 쇼바와 바퀴가 약간 주저앉은 차량이 눈에 띄었다.

“저거. 화물차 밑에 쇼바랑 바퀴가 좀 마이 주저앉은 거.”

“저거요?”

“그래. 저걸 쫓아가. 매연이 더 세게 나오는 걸로 봐서 의심이 가.”

눈썰미가 어지간히 좋지 않고서는 알아보기 힘든 차이였지만, 자동차 수리를 해 본 입장에서는 충분히 식별 가능한 차이였다. 더욱이 과중한 적재로 엔진에 부담이 가면 매연이 많이 나온다.

타겟이 된 차량을 따라 재래시장 뒷골목을 들어가자 과연 꾸역꾸역 앞서가던 차가 골목길 안으로 빠지더니 어느 순간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자, 저기일세.”

서 수사관의 손길을 따라 차량이 멈춘 곳은 약 500미터 떨어진 근방.

화물 차량이 멈춘 장소에 허름하게 생긴 창고가 하나 보인다.

가건물로 이루어진 창고는 꽤 큰 규모로 낮은 철문에 둘러싸인 창고 위로 함석으로 된 2층 지붕이 있고 별도로 옥상에는 물탱크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철문 안쪽으로는 언뜻 땔감 같은 것들이 높이 쌓여 있었다.

화물차에서 내린 우람한 청년들이 아까 가져온 나뭇단을 내리는 모습에 춘삼이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떡할까요. 사장님? 바로 들이칠까요?”

“아니, 아직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야. 물건이 도망가지는 않을 테니, 추가 인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 통금 시작되면, 바로 진입한다.”

짧게 지원을 알리는 무전을 친 강태준이 등을 기댄 채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한 삼십여 분쯤 지났을까.

으슥하게 그늘이 진 현장 근처, 군용 트럭 한 대가 들어서는 모양이 보였다.

야밤을 틈타, 예전부터 광필이와 함께 합을 맞추었던 방첩대 요원들이 도착한 것.

십여 명은 족히 되는 인력은 죄다 검은색 위장복을 입은 채였다.

‘애애앵’ 열두 시. 자정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강태준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못 보던 차량이 헤드라이트를 켠 채 다가오자 경비로 보이는 남자가 차를 멈춰 세웠다.

“워워, 정지. 무슨 일이십니까?”

“세관에서 밀수 제보가 있어 조사차 나왔습니다. 잠시 조사가 있을 예정이니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에서 내리며 신분증을 들이미는 서남현 수사관에 화들짝 놀란 청년이 어버버거렸다.

“네? 검문이라니요? 오늘 오신다는 말씀은 못 들었는데?”

“허, 이게 무슨 가정 방문인 줄 아십니까. 예고하고 오게? 자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하지만 여기는 사유지라서.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허락 없이 함부로 안에 들어오시는 건…….”

“자. 여기 영장 있습니다. 좋은 말 할 때 협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서남현이 슬쩍 서류를 흔들자 일순간 굳어 버리는 상대방. 남자가 아차 하는 사이, 서남현을 따라온 인원들이 우르르 차량에서 내렸다. 십수 명이 되는 장정들이 문을 비집고 들어오자, 잡일을 하던 청년이 당황한 듯 빗자루질을 멈추었다. 그 행동에 뒤늦게 뒷짐을 지고 온 광필이가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여, 늦게까지 고생이시네. 하던 일 계속하십쇼.”

느닷없이 불청객을 맞은 얼굴에서부터 심상찮은 기류가 흐른다. 애초에 덩치깨나 있어 뵈는 떡대들이 들어왔는데 평정을 유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잠시 후, 창고 안에서 얍삽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불쑥 나오더니 서남현을 향해 굽실거렸다.

“아이쿠야, 형사님들이, 갑자기 야심한 시각엔 어인 일로…….”

“뭐 늘 하던 대로 단속차 나왔지. 자네가 여기 책임자인가?”

“예에. 그렇습죠. 근데 이런 누추한 곳에는 연락도 없이 갑자기 방문하시다니, 제가 별도로 상부로부터 연락받은 바가 없어서요.”

비굴하게 웃으며 손을 비비는 것이 영락없는 아첨꾼이었지만 강태준의 주의는 딴 곳에 쏠려 있었다.

“누추하기는 이거 가건물 치곤 아주 육중하구먼. 대들보랑 기둥은 철골구조로 시공한 거 같은데. 맞나?”

“예? 그렇습니다요.”

“이야, 철골 두 개를 절묘하게 이어 붙여 놨군. 이렇게 지으려면 애로사항이 많았을 텐데, 이 창고 건물 무허가 건물 아냐? 시에서 준공 허가는 받았고?”

마치 형사인 척 자연스러운 말투에 상대방이 쩔쩔맸다.

“허이구야. 무슨 말씀을, 당연히 사용 승인받았죠. 자 이쪽으로 오시죠. 천천히 대화부터 하는 것이…‥.”

“나도 공무를 집행하는 중이라 그럴 여유가 없소이다.”

“에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편의 좀 봐주십시오.”

비굴하게 헤헤거리던 남자가 두툼한 봉투를 슬쩍 들이밀었지만, 강태준이 한 수 위였다. 자연스럽게 봉투를 챙긴 강태준이 대꾸했다.

“뭐. 성의는 거절할 수 없지. 이건 야근 수당으로 칠 테니 자 빨랑 끝내자고!”

벙찐 책임자가 뭐라 하기도 전에 창고를 연 대원들. 창고 문을 덜컥 열기 무섭게 확 하고 강한 솔향이 풍겨 나왔다. 약간 박하 향이 섞인 듯한 오묘하고 시원한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는 사람들. 송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목재 더미를 손끝으로 쓸어 본 김광필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이건 뭐꼬? 설마 생나무도 파나?”

“화목용 통나무를 건조하는 중입니다. 한 몇 달 말려서 바싹 마르면 장작으로 쓰기 그만이거든요. 이 동네 음식점에도 공급하는 중이죠.”

“오 그래요? 바싹 마른 걸 보니 아주 잘 타겠네.”

무늬로만 장사하는 게 아닌지 비치된 물건이 꽤 그럴듯하다. 직원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일렬로 도열한 채로 바싹 얼어 있다. 이 자리가 불편한지 발을 꼼지락대는 녀석들. 거기서 강태준이 주목한 것은 신발 밑창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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