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45화 (145/361)

145화 칼잡이 영입

‘요것들 봐라?’

이래서 자기를 불렀나. 하지만 신명부도 부서 내 정치질을 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인 만큼 쉬이 얼굴에 답을 주지 않았다.

“허허 높이 평가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저는 개털입니다. 오지로 내려오면서 손발은 다 잘린 상황입니다. 수사관도 뭣도 없고, 팔다리가 잘린 마당이니 뭘 어쩌겠습니까? 게다가 오성을 건들다니 제 역량으로는 무리군요.”

“그건 저희가 전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영감님처럼 같은 유능한 분이 깡촌에서 천년만년 머물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한 번 도와주신다면 제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습니다. 검사님께서도 중앙 무대에 가서 날아오르셔야죠.”

“그렇습니다. 검사님, 검사님께서도 한번 왕별 달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타 검사 신명부. 캬, 이게 얼마나 멋집니까. 이번에 전국구 돼서 뱃지 한번 다셔야죠.”

광필이가 추임새를 넣자 취기가 오른 신명부는 은근히 솔깃했다. 확실히 사안의 파급력을 감안하면 이런 큰 사건을 해결할 경우. 그간의 실적 부진을 단번에 만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한 리스크가 있는 것도 당연한 법.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척지는 일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신명부는 술로 정신이 흐려진 와중에도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대사를 결정하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죄송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로서는 단번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군요.”

“물론이죠. 이게 보통 큰일입니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드릴 테니 차근차근 고민해 보십쇼.”

그렇게 몇 시간, 이어진 접대에 술에 취해 비척거리던 신명부를 돌려보낸 김광필이 웃음기를 지웠다.

아까의 훈훈함은 어디 가고 시니컬해진 표정. 김광필이 못 미더운 듯 툴툴거렸다.

“하, 쫌생이 신 영감 발뺌하는 걸 보니 쉽지 않겠는데요, 다 떠먹여 준다는데도 쉽게 넘어오지 않는군요.”

“뭐 새삼스럽게. 서울 동부지검서 팽 당하고 지도 한번 잔머리 굴려 보는 거겠지.”

“그게 맘에 안 든다 이겁니다. 무슨 박쥐도 아니고. 저런 보신주의자가 과연 저희에 협조해 줄지 모르겠네요.”

그 말에 춘삼이도 걱정스러운 듯 지껄였다.

“혹 오성 가서 혹 꼰지르면 어쩌지요? 괜스레 긁어 부스럼 만든 게 아닐까 걱정됩니다.”

“허허. 걱정 붙들어 매. 애초에 그럴 깜냥은 안되는 사람이니 적당히 소시민적인 마인드가 쓸 만하니 그러니까 우리가 써먹자는 게 아닌가.”

“그래도 시간 좀 걸리겠는데요. 저렇게 몸을 사려서야…….”

“저놈이 수사하나 어차피 얼굴마담 역할이나 할 테니 나중에 합류해도 그만이야. 일단 바로 노 라고 하지 않고 시간 좀 달라고 한 건 반쯤 넘어왔다는 거지. 그보다, 서남현 수사관은 우리 쪽에 확실히 협조한다고 했지?”

“예. 밀수 사건 조사라고 하니 반기더군요. 협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그간 맺힌 게 많은지 생각보다 싱거웠네요. 이번 주부터 바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좋아. 서 수사관이 들어오면 대충 라인업은 짜진 셈이군. 일단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어차피 신 검사가 들어오건 말건 밀수 수사와 관련된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애초에 끈 떨어진 놈에게 마땅한 대안이 있겠는가.

강태준은 속으로 확신했다.

오래지 않아 제 발로 다시 찾아올 거라고는 걸.

* * *

며칠 후, 순천검찰청 여수지검 사무실.

아침 일찍 출근한 신명부는 간만에 책상머리에 앉아, 오늘도 꽃잎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다, 안 한다. 한다, 안 한다.’

젠장! 며칠 전 나눈 이야기가 남아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새 고민하던 신명부. 애초에 우유부단한 그였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속 갈등이 심해진 것이다.

‘오성그룹을 건드린다라. 과연 뒷감당이 가능할까?’

등골이 간질거리는 게 확실히 촉이 온다. 이런 큰 사건을 터트리게 되면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재수 옴 붙으면 영영 옷을 벗을지도. 아니 옷 벗는 수준으로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나가는 스폰이 뒷배를 봐준다면? 그사이 강태준의 뒷조사를 해 본 신명부로서는 생각 이상으로 꽤 해 볼 만한 게임이란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그냥 눈 딱 감고 한번 해 봐? 못 먹어도 고?”

“하긴 뭘 해요?”

“깜짝이야!!”

어느새 들어온 수사관이 빼꼼히 내려다보는 모습에 제풀에 놀란 신명부가 엉겁결에 물러섰다. 얼른 구겨진 꽃을 내던진 수사관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자식이. 깜빡이 켜고 들어와라. 사람 심장 내려앉는 줄 알았다.”

“거 아까부터 무슨 영화 찍습니까? 보는 사람 다 심란하게.”

“아,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긴. 솔직히 털어놔 봐요. 마빡에 고민이라고 쓰여 있구먼. 혹시 마누라한테 비자금 목록 털렸습니까? 아니면 도박이라도 했어요?”

“염병. 그럴 돈이라도 있음 다행이지. 근데 왜 불렀어?”

“고민은 나중에 하시고 지금 가 보셔야겠습니다. 부장님께서 부르십니다.”

“부장님께서? 또”

갑자기 무슨 일로? 하도 나쁜 일만 생기다 보니 이제 부장실 하면 겁부터 난다. 아니나 다를까.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다짜고짜 인상을 팍 쓴 김 부장이 서류를 읽고 있다. 냉랭한 분위기에 뭔가 나쁜 일이 터졌음을 직감한 신명부가 쥐죽은 듯 고개를 수그렸다. 인기척에 안경을 고쳐 쓴 김 부장이 신명부를 보더니 날 선 목소리로 꾸짖었다.

“야, 신 검사! 니 일 이따구로 할 거야?”

“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두툼한 서류 더미를 던진 김 부장이 화가 단단히 난 듯 쏘아붙였다.

“임마, 어제 변 선장 기소했다며? 사실관계 확인했어?”

“예. 그랬지요.”

“기소 사유가 뭔데?”

신명부가 떠듬떠듬 대답했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이 타당성이 있다 생각했습니다. 만취 상태에서 충돌사고를 내고 도주했으니, 기물 손괴로 인한 책임이 확실하고, 선장 본인 역시 뉘우침이나, 개선의 의지가 없는 만큼 기소가 불가피하다고…….”

“야 이 빠가 새꺄. 경찰 말만 믿고 무고한 사람을 막 기소하면 어떻게 해? 피고인 말로는 사고 당일 바람이 너무 불어서 충돌 위험을 줄이려 배를 옮기다 사고가 났다던데, 거 새끼 제대로 검토하고 떠드는 거야?”

“그건 진술 조서랑은 전혀 다릅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면…….”

“수사 한두 번 해 봐? 경찰 놈들이 윽박지르니 강요로 진술한 게 아니고 뭐겠어? 사정을 감안하면 긴급피난으로 볼 여지가 높지 않나? 출항일이 이주 뒤였다는데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해야지.”

“부장님, 그건 선장 놈들이 단골로 뱉는 레파토리 아닙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반박하는 신명부에 김 부장이 버럭 윽박질렀다.

“신 검사! 자넨 상관 말이 개똥으로 들리나? 서울 물 먹었다고 내가 핫바지로 보여? 일머리가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나랑 일하기 싫어? 응?”

“아, 아닙니다.”

급 뻣뻣하게 굳은 신명부에 김 부장이 타이르듯 낮게 읊조렸다.

“변 선장은 내가 잘 알아. 지금껏 20년 이상 무사고로 운전한 사람이 설마 고의로 그랬겠나? 엄한 소리 하지 말고 풀어 줘.”

“아니 그건 절차상으로도 좀 곤란한…….”

“절차는 무슨. 유도리 있게 처리하는 거지. 그리고 선양호 충돌사고는 그냥 보험사 의견대로 해. 자연재해라고 한 줄 의견 넣고, 도장만 찍어 주면 간단하잖나. 선주라는 놈이 욕심도 유분수지, 낡은 배로 대체 얼마나 챙기려고 그 수작을 부리는 건지. 심보가 괘씸하지 않나?”

“하지만 부장님! 추후에 문제 되는 부분을 줄이려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에 어느 쪽 과실인지 좀 더 확인해 보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쓰읍, 야! 말 못 알아먹어? 니는 내가 지금 설득하는 거로 보이냐? 내 가오 구겨서 땅바닥에 처박아야겠나? 응?”

신명부가 항의하려 했지만 김 부장이 버럭 인상을 쓰는 모습에 꼬리를 내렸다. 김 부장이 못 미덥다는 듯 혀를 차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다. 오 검사한테 사건 넘겨. 니는 아무래도 이 사건에서 손 떼고, 잠시 한 달 정도는 어디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게 좋겠어.”

“부장님? 그게 뭔 소립니까. 그럼 제 업무는?”

“야, 니가 언제부터 그런데 신경 썼다고 그래? 그냥 잠잠해질 때까지 쉬다 와. 어디 물 좋은 데서 낚시라도 하면서 머리나 식히던가.”

“부장님, 그건!”

“왜? 그럼 이참에 시말서나 한번 제대로 쓰게 해 줄까? 엉?”

신명부는 찍소리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한바탕 핀잔만 듣고 물러나고 나니 자괴감이 드는 그.

사무실로 돌아오긴 했지만, 욕만 오지게 먹자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기분이 저조해진 신명부가 한숨만 푹푹 쉬자, 어느새 다가온 오 검사가 슬쩍 음료수 하나를 건넸다.

“야, 안 어울리게. 이건 또 뭐냐?”

“윗선에 한 소리 들으셨군요. 선배님. 적당히 눈치껏 하시지. 세상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면서 무슨 짓을 한다고. 변 선장 집안이 이쪽서 잘나가는 유지 아닙니까. 우리 김 부장님이랑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던데.”

“뭐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들어보니 선양호와 사고를 낸 세형물산 사주가 광주 고검장과 고등학교 동창이란다.

뒤늦게야 모든 것이 이해되는 신명부가 망연자실했다.

“아, 그래서…….”

“뭐. 이쪽 일은 제가 잘 처리해 놓을 테니, 휴가 잘 다녀오십쇼. 암튼 부럽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만사 제쳐 놓고 여유롭게 살고 싶은데 말입니다.”

“뭐, 이 새꺄?”

“워워 흥분은 건강에 안 좋습니다. 선배님. 그럼 수고하십쇼. 인수인계는 내일까집니다.”

얄미운 표정으로 손 인사를 건넨 오 검사가 자리를 떠났다.

발걸음이 가벼운 것이 경쾌하다.

무려 5년이나 아래인 후배가 깐죽대는 꼴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신명부였지만 여기서 화를 내 봐야 꼴이 우스워질 뿐.

열이 뻗친 신명부가 옥상으로 가 담배를 태웠다.

“아놔, 내 참 더러워서 시팔!”

이렇게 남 뒤치다꺼리나 하려 검사가 된 건 아니지 않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신명부의 가슴 속에 숨겨 왔던 오기가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그래 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윗선으로부터 연락이 끊긴 지도 벌써 세 달.

이미 김 부장 눈밖에는 난 건 확실하니, 끈 떨어진 신세.

지금 와서 시다짓이나 해 봐야 나올 것도 없다.

그렇다면 새 줄로 갈아타는 게 합리적인 선택 아니겠나.

담배를 비벼끈 신명부가 구둣발로 불씨를 짓밟았다. 결심을 굳힌 신명부가 곧장 공중전화 부스로 향했다.

“강 사장님! 저도 그쪽에 합류하겠습니다.”

* * *

끼룩끼룩…….

사흘 뒤, 세관이 멀리 보이는 여수 바닷가. 둥글둥글한 곱등 자갈이 발을 옮길 때마다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곳. 파도가 밀려왔다 쓸려 나갈 때는 자갈들이 소리를 내서 우는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 근방 근해 생선들이 모인 재래시장 하나가 있었다.

그 한구석 장작으로 쓰던 땔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땔감들이 수북이 쌓인 것치고 이상하게도 물건을 사가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 사실 이곳은 밀수가 자행되는 곳이다. 물론 거기 숨어 있는 것은 한 무더기로 된 땔감만이 아니다. 더미 안에서 새우 자세로 몸을 웅크리던 신명부에게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끄응.”

“거, 정신 사납게 꼼지락거리지 말고. 조용히 좀 합시다.”

마지못해 입을 여는 서남현에 김광필도 핀잔을 주었다.

“검사님. 아까부터 신음 소리가 좀 많이 거시기한데 자제 좀 부탁드리겠습니까. 무슨 남자가 그리 인내심이 없습니까?”

“거 미안하이. 한참을 쪼그려 있다 보니 다리가 저려서……,”

얼굴이 벌게진 신명부가 마비된 팔다리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그렇다. 여기 숨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강태준 일행이었다. 신명부와 함께 밀수 용의자들의 동선을 추적하기 위해 밀수 지역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 본격적인 잠복에 들어간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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