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불즈 아이
“놈들이 접근합니다!”
“더 접근하면 사정없이 찍어 버려. 이제 당겨!”
갑판장의 외침에 따라 학깃대를 든 선원들이 자세를 잡자, 남은 선원들이 영차 소리를 내며 로프에 매달렸다. 항진 타력 덕분에 선원들이 로프를 당겼음에도 오히려 끌려갈 만큼 저항이 거셌다. 선원들은 갑판에 미끄러지지 않게 기를 쓰며 버텼다.
“속력이 너무 빠릅니다.”
“놓지 마! 여기서 놓으면 주낙이 꼬인다!”
손아귀가 찢어지는 고통에도 선원들은 버텼다. 양승기가 돌아가고 부웅 소리를 내는 사이드롤러에서는 소나기처럼 물이 튀겼다.
이어 송아지만 한 고기가 펄떡이며 올라왔다.
“고기다!!”
“또 대어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주낙을 걷는 대로 딸려 오는 고기들에 선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포식자에 쫓겨 도망쳐 오다가도 사슴이 나무순을 따 먹듯 먹잇감을 놓지 못하는 것이 어류의 본성
갑판 위에서 용트림하듯 우람하게 동체를 휘둘러 대는 고기들. 그사이 눈에 띄게 가까워진 범고래들의 모습에 강태준이 말했다.
“몇 바스켓 걷었나.”
“33바스켓입니다.”
“어구는 나중에 정리하게. 일단 최대한 빨리 끌어올려!”
갑판장이 고함을 치며 독려하는 사이, 강태준은 배를 지그재그로 몰았다. 멀리서 보면 술 취한 사람이 모는 것처럼 이리저리 비틀대는 모습이랄까. 그러나 노력은 헛된 것이었다.
“선장님 샤치 놈들이 따라붙었습니다!”
“벌써?”
“젠장, 당했습니다.”
다시 올라오는 낚싯줄 끝에는 반만큼 남은 큰 고기의 토막이 끓는 와류를 일으키며 낚싯줄 끝에 매달려 있었다.
물어뜯긴 고기에서 흘러나온 피는 마치 빨간 물감처럼 계속 퍼져 나간다.
잘려 나간 동체는 아직 신경이 남은 듯 꿈틀거리는 것이 징그럽기 짝이 없을 지경.
대담하게도 메인 라인에 감겨든 고기를 공격해 무려 반 이상이나 뜯어 먹어 버린 것이다.
“이 시키들, 무슨 먹는 데 환장했나, 완전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네.”
“어제 삽질하느라 반은 굶었을 테니, 배고플 법도 하죠.”
만찬을 즐기는 놈들은 그야말로 집요했다. 300미터 간격으로 올라오는 고기를 계속해 뜯어 먹고는 앞 놈이 배를 채우면 바로 뒷 놈이 교대하는 방식.
주낙에 걸려 올라온 고기는 놈들 앞으로 밥상을 들어 바치는 셈. 어느새 갑판에는 쉰 마리가 더 되는 고기의 잔해들로 가득했다. 그 양만 어림잡아 2톤. 어느 날 하루 내내 잡아올려도 잡기 어려운 어획량이 모두 허공으로 비산해 버린 것이다.
탑브리지에서 망을 보던 2등 항사 김요한이 재차 고함을 질렀다.
“전방 3시, 샤치 놈들이 저쪽에 남겨 둔 주낙에 또 접근하는 중입니다.”
“뭐라고? 또 무리가 있어?”
과연 망원경으로 보니 또렷이 저쪽 주낙 부근에도 흰 물거품이 일고 있다.
흩어진 주낙을 찾아낸 녀석들이 이제는 마구 노략질을 시작한 것이다.
“퉷! 이런 망할 놈들!”
강태준은 이를 갈았다. 기껏 잡은 황금 같은 기회가 수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낙은 얼마나 남았나?”
“천오백 개는 넘게 남아서 아직 반도 다 못 걷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완전 나가리 아닌가.
크륵크륵~!
깡패들의 대장인 아쿠는 그 큼직한 몸집을 그대로 수면 위로 드러낸 채 여봐란듯이 큼직한 황다랑어의 머리를 포식하는 중이었다. 검은 몸뚱어리를 흔들며 뽐내는 모습이 마치 비웃는 투라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었다.
이제 한 시간만 더 걷어 내면 끝나는 판에 이렇게까지 방해 공작이라니. 강태준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기서 놈들을 영구히 퇴치해 버리지 못하는 한,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반복되리라는 것을.
‘방법이 없나 방법이?‘
총이라도 있으면 한 방 쏴 줬을 거라는 생각에 저번에 죽었던 일본인 선장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때마침 강태준의 머릿속에 언뜻 엉뚱한 발상이 떠올랐다.
‘신호탄을 공격용으로 쓸까?’
허무맹랑한 생각 같지만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 놈과의 거리를 생각하면 그것도 충분히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나. 강태준이 오재갑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 항사, 신호탄 가지고 오게.”
“신호탄이요? 갑자기 왜?”
“할 게 있어서 그러니, 어서 빨리!”
오재갑이 신호탄을 가져오자 수납통을 연 강태준이 한 발을 장전하고는 범고래를 조준했다…… 마음껏 포식할 생각인지 크게 흥분한 범고래들은 그런 상황을 모르고는 대망의 만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강태준은 발사대를 잡고 한 발을 조심스럽게 장전했다. 해양용 신호탄은 일반적인 탄두가 아니다. 고공 먼 곳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3백 피트까지 상승해 5만 촉광의 빛을 내는 물건 아닌가. 그만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예전에 소말리아 해적을 상대로도 배를 침몰시킨 전적이 있을 정도다.
‘걸레짝으로 만들어 주지.’
강태준은 속으로 벼르는 생각을 하며 가만히 우두머리를 겨냥했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동체의 삼분지 일 이상이 수면 위로 노출된 아크는 충분히 표적으로서는 가시권에 있었다. 물 위에 머리를 순간을 포착해 쏘아 버릴 참으로 신중하게 상대를 노려보는 강태준.
그러나, 막상 흔들리는 배 위에서 영점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놈들이 물속으로 들어가서 유영부를 바꾸어 버릴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조명탄이란 것이 누굴 맞추려고 만든 물건이 아닌 만큼 애초에 겨냥하기가 아주 어렵게 생겨 먹었다.
그럼에도 결심을 굳힌 강태준이 고함을 질렀다.
“오 항사! 배를 놈들 쪽으로 몰아가게!”
“예에!”
강태준이 뭘 하려는 것인지 깨달은 선원들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바주카포같이 신호탄을 들쳐 멘 강태준은 아쿠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감각에 아쿠의 눈이 이쪽을 향하는 순간, 강태준이 격발사를 잡아챘다.
슈웅!!
요란한 소리와 날아간 신호탄은 허공을 가르자 폭죽처럼 붉은 연기 꼬리를 남기며 기세 좋게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폭죽 소리에 깜짝 놀란 범고래들이 물속으로 숨었다.
“저런!”
선원들의 탄식대로 조준은 나름 정밀했지만 영점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삼 인치 이상 빗겨 날아간 신호탄은 곧 힘을 잃고 물수제비같이 튕기더니 이내 물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성능 좋은 총이라면 이미 명중하고도 남았겠지만 그건 희망 사항일 뿐.
다시 고개를 수면 위로 들춘 놈들은 엉뚱한 곳에 떨어진 신호탄에 잠시 놀란 듯 어리둥절했지만, 피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금세 다시 여유를 찾았다.
녀석들은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같은 곳으로 돌아가 유유하게 고기를 뜯어 먹었다.
“하나 더!”
아쿠가 고개를 들지 않자, 강태준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갱단원 하나를 조준했다.
다시금 쏘아 올린 신호탄은 아까보다는 명백히 가까운 곳에 떨어졌지만 여전히 거리감이 있었다. 원통형의 신호탄은 해면을 닿자마자 직진하지 못하고 푸쉬쉭 소리를 내며 물속에 가라앉았다.
“다시!”
세 번째 것은 불량이었다. 슈웅 하고 기세 좋게 날아가긴 했지만, 폭약이 적은지 그대로 사그라들었다. 다음은 격발음이 더 오래 지속되는 듯했지만, 표적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딱총 소리를 내더니 이내 홍염을 풀면서 산화했다.
‘거리감은 대충 알 거 같은데…….’
말없이 내미는 손에 대기하고 있던 오재갑이 신호탄을 건넸다. 아까와 다르게 때깔부터 다른 것이 꽤 묵직한 느낌이 드는 조명탄이었다.
“이건?”
“양 선장께서 주고 가신 물건입니다. 혹시 몰라 두고 가셨습니다. 그게 마지막입니다.”
미국 시험 조사선으로 쓰일 때 남긴 잔여물이랄까. 지평호에서 비치해 뒀던 군용 신호탄이었다. 홀로 해역에 남게 될 것을 대비해 남기고 간 것이다.
선원들의 얼굴은 이제 될 대로 되라는 듯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연이은 실패에 안심한 듯 아쿠를 비롯한 녀석들은 한가롭게 살아 있는 참치의 머리를 뜯어 먹고 있다.
마치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그렇게 약을 올리는 것이다.
강태준은 마지막 물건을 집어 들었다. 손에 쥔 신호탄의 무게감이 상당한 것이 폭약이 가득 들어 있는 것 같다.
이것마저 써 버린다면야 사고가 나도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없겠지.
하지만 이쯤 돼서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그래. 저 망할 놈의 대가리에 한 방 먹이고 싶을 뿐.
탄착점을 어림한 다음 곧바로 격발을 당겼다.
슈우우우우웅~~!
붉은 홍염과 함께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불꽃이 휘몰아쳤다. 근거리에서 터진 폭발음에 귀가 먹먹해진 선원들이 무의식중에 고개를 숙였다.
귀가 먹먹해지는 순간,
유성처럼 지그재그로 날아간 조명탄이 그대로 놈의 머리통을 향해 돌진했다.
조명탄이 거의 다다른 순간 놈의 눈동자와 강태준의 시선이 마주쳤다.
명중이다!
고래에게 표정이 있다면 분명 얼빠진 얼굴이었을 것이다.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서서히 갸우뚱하는 동체는 마치 정지화면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 오르는 피륙.
아직 화염의 힘이 잦아들지 않았는지 대가리에 구멍이 뚫린 녀석의 몸이 화염에 뒤덮였다.
“저저!!! 죽은 건가?”
“선장님이 진짜 대가리를 날려 버렸어!”
후두둑 하고 붉은 육질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광경을 본 선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에 나동그라지는 녀석. 푸른 남빛의 바다 위로 뿌려진 선지피가 마치 끓는 기름처럼 부글부글 거품을 냈다. 무너지는 동체에 붉은 피로 물든 바다 아래로 빛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끼끼끼끼~~~
구슬프게 울음을 짓는 샤치 놈들은 반 패닉 상태였다.
믿음직한 우두머리가 단번에 육고기가 되어 버렸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둥둥 뜬 사체 위로 번지는 물결에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몰려들자 강태준이 소리를 질렀다.
“뭣들 하나, 빨리 조업줄부터 거둬들이지 않고?”
“아. 예!”
선원들이 다시 조업에 들어간 사이 해역은 아비규환이었다 도저히 대장의 죽음이 믿기지 않은 듯 시신이라도 수습하려 했지만, 상어 떼는 달랐다.
곧이어 사방에서 큼직한 상어들이 몰려들자 해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평소라면 곧바로 반격을 가할 범고래 떼들이었지만 대장을 잃은 충격이 큰 녀석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범고래들은 죽은 대장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중과부적.
혼란을 파악한 강태준이 명했다.
“갑판을 두드려. 어서!”
쿵쿵쿵!
사방에서 둥둥거리며 뱃전을 치는 소리에 위협을 느낀 범고래들. 강태준이 텅 빈 발사기를 다시 조준하는 척하자, 화들짝 놀란 범고래들은 더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줄행랑을 쳤다.
공격조가 내빼자 뒤는 더 볼 것이 없었다. 붕괴한 진영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사방으로 도망치는 무리. 패잔병과 같이 뿔뿔이 흩어져 버린 무리는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다.
그날의 조업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조업을 끝낸 제2 지평호가 다시 아쿠가 죽은 장소로 돌아갔을 때는 찢어발겨진 아쿠의 시신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 모습에 뭔가 아쉬운 듯 김요한이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히 흔적도 없이 뒈져 버렸구먼요.”
“왜 아쉽나?”
“뭐, 그렇잖습니까. 뼈대라도 남았음 우리 집 가보로 삼을까 했는데 말입니다.”
“뼈다귀 따위가 어떻다고. 강아지 간식으로 주게?”
“뭐, 그것도 좋지만 저런 물건에 환장한 사람들도 있잖습니까? 전리품 겸 전시해 놓으면 좋죠. 희소성도 있고요.”
“하이구야. 그게 쉬울까? 통관 전에 검사부터 받지 않겠나? 귀찮은 짓은 안 하는 게 좋아.”
“허허,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근데 신호탄을 써 버려서 어떡하지요?”
그제야 그 생각이 미친 모양이다. 김요한이 묻자 강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조난당하지 말아야지. 어차피 이 해역에서 남은 배는 우리뿐 아닌가?”
“크크. 뭐 지금 조난이 문제입니까. 빨리 고기부터 잡아야지. 귀향 전에 배 터지게 잡고 갑시다.”
제일 큰 방해자가 사라지자 조업은 순조로웠다. 양승기 소리에 주낙을 끌어올릴 때마다 황다랑어와 엘버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몇 달간의 시달림으로 피로에 찌든 선원들의 얼굴에도 마침내 웃음꽃이 피었다.
“휘유! 이거 범고래가 사라지니 이거 노다지네요, 노다지.”
“좋아. 물 들어온 김에 노 저어야지. 조업 끝나고 산호도에서 상륙 파티나 해 보자! 귀국 전에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고!”
“오 그거 약속하신 겁니다.”
강태준의 약속에 흥분한 선원들은 으쌰으쌰 힘을 냈다. 고기의 하중에 무거워진 배가 육중한 몸을 움직이자 바닷물이 이리저리로 밀려들어 왔다. 정신없는 하루였지만 보람찬 시간이었다.
투승을 마친 배가 다음 장소로 움직이는 사이, 수평선 위로 푸르른 창공을 선회하는 은빛 갈매기가 끼룩거렸다. 저 멀리 작은 무인도에는 신기루처럼 야자수의 수관이 보이는 듯하다. 바람이 거의 없는 잔잔한 바다, 물 위로 그려지는 항적이 비행운처럼 아득히 뻗어 가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