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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31화 (131/361)

131화 투승 경쟁

그러나 투승은 쉽지 않았다. 투승을 계속하는 동안 해역은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요동을 쳤고, 용트림할 때마다 거세게 배가 흔들거렸다. 오재갑이 말했다.

“바람이 좀 많이 부는데요.”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오히려 먹이로 꿰려면 파도가 있는 편이 조업상 유리해.”

“그렇긴 하지만, 샤치 놈들이 과연 속을까요? 만약 놈들이 배의 기관음을 듣고 뒤따라왔다면 완전히 허탕 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 하늘이 도와주길 기도할 수밖에.”

생각해 보면 버려진 주낙이 맴돌고 있을 지역과 이곳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범고래가 상황을 깨닫고 전속으로 내달으면 불과 30분 안에도 주파 가능한 거리.

‘어쨌든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속아 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투승 작업이 끝난 것은 오전 11시가 지나서였다.

정오에 가까워진 적도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불덩이처럼 이글거리자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수고들 했네, 일단 갑판원들을 잠시 쉬게 하도록.”

강태준은 항해사에게 초기가 있는 방향으로 배를 몰고 나갔다.

뜨거운 기운에 열이 오른 바다는 은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았다.

되돔 항행을 하는 동안 항해사 둘은 번갈아 가며 쌍안경으로 바다를 견시했다.

파도는 평소보다 높았고, 날씨는 쾌청한 수준. 그때 뭔가 이상한 게 흘러들었다.

“어, 샤치인가?”

“미친 새끼가. 간 떨어질 뻔했네. 그냥 목재잖아.”

성질 급한 선원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다행히 그건 흘러드는 유목이었다. 가끔 바다를 떠다니기도 하는 유목은 마치 머리 감다 만 여자처럼 미역을 한껏 뒤집어쓰고 있었다.

둥둥 떠서 사라지는 나뭇가지 위에 갈매기 하나가 쉬어 가는 모습이 앙증맞다. 하지만 초기를 확인한 강태준이 배의 속력을 낮출 무렵, 한바탕 스콜이 불어닥쳤다.

물방울이 떨어지자 뱃전으로 빗물이 튀었다. 유공에서 흘러내리는 듯한. 빗물로 깔끔히 씻겨 나간 마스트를 보며 오재갑이 말했다.

“이거 하늘에 품삯이라도 줘야겠는데요.”

“그래. 아주 좋은 징조야.”

상갑판이 깨끗이 씻겨 나간 모습에 마음이 가벼워진 강태준. 아무리 영악한 범고래라 해도 빗물이 가득히 받은 바다 위에서는 시야가 차단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초기가 걸린 쪽으로 되돌아온 배는 곧바로 양승 작업을 서둘렀다.

“자, 빨리빨리. 다들 힘내자고!”

갑판장의 독려와 함께 양승기의 링이 회전하기 시작하자 물속 깊이 꽃인 메인 라인이 빨래 감기듯 올라왔다. 선수로부터 불어오는 북동풍은 태양의 열기를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선원들의 작업복 자락에 허연 소금 얼룩이 지는 사이, 키를 잡고 있는 강태준의 손도 긴장으로 땀이 찼다. 밤새도록 잠을 설치며 싸우던 결과가 곧 눈앞에 실적으로 드러날 예정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낚싯줄이 가지처럼 갈라져 올라왔지만 연이어 헛방이었다. Y자로 된 낚시 끝에 미끼로 꿴 꽁치가 그대로 끼워져 있자, 기대에 부풀었던 선원들의 안면에 실망감이 솟구쳤다.

“이거 완전 허탕이군요. 너무 기대했나?”

“기다려 보자고. 아직 실망하긴 일러.”

적어도 2천 개 이상의 낚시가 물 위에 드리워져 있는 만큼 강태준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과연 두 번째 바스켓까지는 허탕이었지만 세 번째 바스켓은 달랐다. 세 번째부터 물 밑으로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던 것 낚싯줄에서 느껴지는 육중한 무게감에 사람들은 흥분했다.

“설마 상어는 아니겠죠?”

“재수 없는 소리를.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학깃대를 움켜쥔 보조들이 보초를 섰다. 뿌듯한 중량감에 모두가 긴장했다. 박상구가 물고기를 잡아당기는 순간 물방울이 튀기며 아름다운 노랑 빛깔의 지느러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옐로우핀이다!!”

“용왕님께서 물어 주셨구만.”

잡힌 물고기는 큼직한 황다랑어였다. 노란 빛깔의 뒷지느러미를 지닌 녀석은 활기차게 펄떡이고 있었다. 선원들은 펄떡이는 녀석의 아가미 사이를 뾰족한 쇠망치로 찔러 넣었다. 선홍빛의 피가 빠지며 꿈틀거림이 잦아들자 갑판원 김호남이 고기를 뒤집어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거, 요놈 오동통하게 살찐 거 보게.”

“적어도 80킬로는 넘겠는걸. 덩치도 그렇고 실하네. 어이, 호야 이 녀석이. 저리 가지 못해!”

후다닥 달아나는 고양이의 모습에 크게 웃는 선원들. 마수걸이로 잡은 황다랑어 덕분일까, 운수가 꽤 좋은 날이었다. 그 뒤에도 크고 실한 물고기들이 연이어 걸려 올라오며 순식간에 갑판 위는 어획물로 가득 찼다. 어종은 황다랑어와 엘버코가 주류였고, 빅아이와 마일린이 간간이 섞여 있었다.

밝아진 선원들의 표정에 강태준도 속으로 흐뭇했다. 무엇보다 그 망할 놈의 해적 놈들을 뿌리쳐 낸 점이 고무할 일이었다. 순조롭게 계속된 조업은 그간의 부진을 단번에 만회할 만큼 대단했다. 양승 작업를 시작한 지 고작 한 시간 만에 무려 3톤의 어획고를 기록한 것이다.

어느덧 태양이 중천에 뜬 바다는 금빛으로 빛났고, 갑판에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어획물이 작은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도 기관장까지 나와서 갑판에서 작업에 힘을 보탰다. 갑판을 달구는 열기에 얼굴이 벌게졌지만, 간만의 대어에 아무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김요한이 흥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거 완전 대박인데요. 오늘 반나절 간 잡은 고기가 그간 며칠 동안 잡은 고기보다 많습니다.”

“그게 말입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어장을 찾아내신 겁니까?”

“저번 밤에 산호의 산란이 있지 않았나? 조초 산호들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해류 흐름을 계산해 보았네. 다른 산호들도 비슷한 시기에 산란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먹잇감이 될 알들이 흘러갈 곳에 고기가 모이지 않겠나. 그래서 대륙붕과 가까운 이쪽이 답이라고 생각했네.”

“아! 그 생각을 못 했군요.”

유생들이 흘러가는 방향에서 바뀐 해류의 흐름을 찾고, 그로부터 어군의 위치를 예측한 것이다. 듣기엔 쉬운 일이지만 이 정도 정보 수준으로 어군의 경로를 역추적한다는 것은 실로 눈 감고 코끼리 만지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제껏 쌓아 온 경력과 조업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다.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잡담하고 있을 시간 없네. 서둘러. 분명 포식자 중에 피 냄새를 맡은 놈들이 있을 테니. 한 마리라도 더 잡아서 어창을 채워 넣어야지.”

태연한 척하는 강태준이었지만 속으로 조마조마한 상황이었다. 언제 어떻게 저 범고래라는 해적들이 출몰할지 모르는 일. 강태준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양승기는 쉬지 않고 돌아갔다. 마치 잘 익은 과일처럼 실한 생선이 낚시에 매달려 올라오는 모습이 얼마 만이던가. 선원들 역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손발이 착착 맞았다.

어창으로 넘겨진 생선들 덕분에 묵직해진 선창.

오후 다섯 시 넘게까지 계속되는 조업에. 배의 흘수가 눈에 띄게 커졌다.

어느덧 저녁놀이 타오르고 저물기 전, 해가 내리쬐자 흰 페인트가 붉게 타올랐다.

그렇게 낚싯줄을 당기고 있던 선원들에게 갑자기 묵직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팽팽해진 주낙이 흔들리며 팽이처럼 도는 모습에 안간힘을 썼다.

“뭐지?”

“젠장 가오리라도 걸린 건가?”

허공에 뜬 종이연처럼 생긴 가오리는 물의 저항을 배 쪽으로 많이 받기 때문에 건져 올릴 때 여느 고기보다 배는 힘이 든다. 잘못 실이 묶인 연처럼 물속에서 크게 뺑뺑이를 치며 저항하기 때문이다.

“이거 힘 좋은데? 거물인 거 같아.”

“어이. 욕심부리지 말고. 일단 줄부터 늦춰!”

갑판장의 일갈에 최영호가 얼른 낚싯줄을 두어 발 풀어 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급작스럽게 줄이 느슨해지면서 저만치 뱃전까지 나란히 붙은 낚싯줄이 물 위로 떠올랐다.

그 뒤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상어들이었다.

“스벌! 이게 뭐야?”

대경한 선원이 저도 모르게 줄을 놓자 학깃대를 든 동료가 옆에서 놈을 쑤셨다. 장대에 찔린 상어는 용트림하듯 몸을 뒤틀더니 유유히 물 아래로 하강했다. 철퍽이는 소리와 함께 물 위로 무언가 떠오르자 둥글게 휘어진 갈고리 끝에 아까 물린 고기의 아가미 껍질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었다.

“젠장, 야단났구먼. 이거.”

“처먹고 나갈 거면 곱게 갈 것이지, 요란하게 광고를 다 해 주시는군.”

함께 건져 나온 것은 살점이 너덜너덜한 아가미 껍데기 속으로 갈가리 찢긴 육질은 피가 뚝뚝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붉게 번지는 핏물에 떼로 몰려드는 상어들. 위기감을 느낀 선원들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쳤다.

“밖으로 피가 번지고 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무시하고 조업부터 끝내자고. 상품성 없는 놈은 차라리 그냥 던져 줘.”

조업에 속도를 낸 선원들이 힘을 내자 고기들이 떼로 올라왔다. 물려서 상품성이 사라진 녀석은 곧바로 먹잇감으로 던져 주었던 선원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굴이 새파래진 갑판장이 선수 방향을 손가락질했다. 강태준이 쌍안경을 통해 보자 저 멀리서부터 흰 물보라가 일고 있었다.

“범고래 떼입니다. 아무래도 눈치를 깐 모양인데요.”

“이런 젠장!”

선미 방향으로 수십 마리의 범고래 떼들이 배를 향해 무섭게 내달려 오고 있었다. 멀리서 검고 흰 반점이 온 바다에 새카맣게 떠 있는 것이 어뢰처럼 배를 향해 똑바로 돌진하는 것이 보일 정도. 환 증후군에 걸린 사람처럼 질린 김요한이 신음을 흘렸다.

“젠장, 여기까지 쫓아올 줄이야.”

“아까 까고 남은 주낙이 얼마나 남았지?”

“약 이천 개가량입니다.”

강태준은 속으로 갈등했다. 이마에 훈장이 달린 아쿠가 선두에서 무섭게 들이치는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여기서 샤치 떼에게 어획물을 내줄 수야 없지 않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지!”

저번 블러핑 용으로 예비분도 다 사용했으니 주낙을 저번처럼 내버릴 수도 없는 노릇. 어떻게든 여기서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것이었다.

따르르르릉!

마침 기관 텔레그라프가 귀 따갑게 울자. 배는 다시 선체를 떨며 뒤로 물을 뿜어내었다.

“알피엠을 더 올려!”

고기 몇 마리라도 더 건지려면 어떻게든 놈들을 앞질러 조업을 끝내야 한다. 배가 속력을 내며 진저리를 치자 현측으로 물살이 세차게 퍼져 나갔다. 오늘의 작업 성패가 이 순간에 있는 만큼 사람들도 비장했다. 이것은 샤치 떼와 진검승부 아니겠나. 이 어장을 버리고 내버리고 옮겨 나갈 다른 곳도 없는 만큼 고기 걷는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빨리빨리 못 하나! 거, 다 니들 돈이야 돈! 최대한 다마질을 많이 해야 돈을 벌지.”

“양승 속도가 너무 빨라서 줄이 꼬입니다.”

“참나, 시간도 없는데. 너무 꼬였으면 그냥 버려!”

선원들은 낚시 중 엉킨 줄에 걸리는 것은 그대로 잘라 냈다. 입안에 단내가 날 정도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이 선수 갑판 위에 고기들이 수북이 쌓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코앞까지 달려온 범고래 떼가 거리를 좁혔다.

“선두 사치 다섯 바스켓 거리!”

탑 브리지에서 망원경으로 조업 상황을 살피던 김요한이 보고를 올렸다.

“선두 샤치, 세바스켓 거리 안입니다!”

“젠장 많이도 몰려왔군.”

키를 수동으로 바꾼 강태준이 물 위로 솟아오르는 놈들을 향해 선수를 회두시켰다.

그러나 배는 애초에 자동차 핸들처럼 그렇게 손쉽게 돌아가는 설비가 아니다. 선수가 급선회하자 놈은 머리를 숙여 물속으로 잠수했다.

“저 아쿠를 잘 봐. 저놈이 대장이니 어이, 선미는 어떤가?”

“계속 따라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먹이가 올라오는 타이밍을 노리는 듯합니다.”

강태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양승 준비! 김 항해사 그 앞에 가까운 부이를 잡아!”

강태준이 명령했다. 기관 텔레그라프가 울리자 기차처럼 엔진이 돌며 흰 부챗살 같은 거품이 퍼졌다. 요란한 증기를 뿜는 배는 속력을 내며 물 위로 미끄러져 나갔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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