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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30화 (130/361)

130화 기만 전략

빠른 속력으로 달리는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거래를 유지한 채 끈질기게 쫓아오는 모습에 오재갑이 다급히 말했다.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아직 덜 지쳐서 그렇지. 기관 회전수를 가능한 더 올리라고 하게.”

강태준의 명에 1등 항해사인 오재갑이 전성관을 통해 기관장을 불렀다.

“알피엠 최대로!”

“지금보다 더요?”

“최대로 올려!”

쿵쿵 엔진 돌아가는 소리. 엔진이 과열되자 기관이 터질 듯 팽창했고, 배가 속도를 높이는 사이 범고래 일행도 속도를 높여 따라붙었다.

“선장님. 이거 오히려 놈들을 자극하는 거 같은데요.”

“무시하고 계속 달린다. 아무리 수중에 특화된 상대라지만 피륙으로 만든 생물인 이상 지치기 마련이니 일단은 힘부터 빼놓는다.”

중고선이라면 어딘가 탈이 나도 벌써 났겠지만, 다행히 제2 지평호는 거의 신규 선박이 아닌가. 어창이 반도 채워지지 않은 탓에 속도를 올려도 엔진에 부담이 적은 만큼 속력을 올린 배는 힘차게 바다를 갈랐다.

그렇게 몇 시간. 계속된 추격전에 범고래들의 역시 약간은 둔해진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집요하게 쫓아오고 있었지만, 수면 위의 움직임에서 지친 기색이 눈에 뜨인 것이다.

하지만 전속 질주를 계속하기엔 배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 다급히 기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엔진이 너무 과열되었습니다. 선장님. 이러다 잘못하면 터지겠습니다!”

“조금만 더, 일단 식히면서 달리면 되잖나! 좀만 더 달리면 돼.”

뒤로 희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배의 엔진도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잠시 후 배가 둔중해지는 느낌이 들자 강태준은 선수를 회전하라는 명을 내렸다.

“선수 회전이 끝나는 대로 선내 스위치를 전부 끄도록!”

회두 타력을 얻은 선체는 왼쪽으로 기울며 크게 경사해 돌아갔다. 갑작스런 회전에 놀란 듯 좌우로 피하는 범고래들. 곧 캄캄한 바다 안으로 휘황하던 불빛이 스러지자 배는 찰흙 속에 형체를 묻었다.

전속으로 내달리던 범고래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주춤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강태준은 등을 길게 뻗고 담배를 물었다.

“과연 그놈들이 포기할까요?”

“글쎄, 기다려 봐야지.”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타오른 연기가 허공으로 올라간다. 선원들은 숨을 죽이는 사이 범고래들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높고 낮은 소리로 자기들만의 신호를 주고받았다.

조업선이 아닌가?

어쩌지?

무려 만 하루 동안 의미 없는 행동에 끌려다닌 셈이니 맥이 빠질 법도 하다. 잠시 후 높게 끼룩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두머리인 아쿠가 꼬리를 첨벙였다.

신경질적으로 몸을 비튼 돌고래들이 서서히 반대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박상구가 흥분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가는데요? 놈들을 드디어 떨군 거 같습니다.”

“블러핑일 수 있어. 그 정도 지능은 있는 놈들이니 경거망동하지 말게.”

여느 때 같았음 투승 조업이 끝날 시각이었지만 강태준은 계속 배를 표박시킨 채 시간을 끌었다. 남태평양에서 스웰이 너울거리는 모습에도 강태준은 꼼짝 않고 사방을 주시했다. 오재갑이 걱정스런 어조로 말했다.

“전부 간 걸까요?”

“아직은 멀지 않은 곳에서 관망 중이겠지. 아마 아침까지 머무르면 중간에 포기할 거야.”

“그러면요?”

“놈들이 떠나는 걸 확인하면 반대로 한 시간가량 전속으로 달려서 다시 250도로 번침하고, 두 시간 정도 달린 다음 새로 투승 작업을 계속한다.”

그에 오재갑이 물었다.

“놈들이 곧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아니, 놈들도 머리가 있어. 지능이 높은 녀석들인 만큼 배가 움직이지 않으면 주낙이 있는 자리로 배가 또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걸 역이용하는 거다.”

“아 그렇다면 저번에 회수하지 못한 주낙은 놈들을 묶는 계류 부표로 삼는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그 주낙은 미끼지. 놈들의 행동반경만 벗어나면 돼. 버리는 주낙이 아깝긴 하지만 놈들을 떨궈 낼 수만 있다면 싸게 먹히는 거야.”

아무런 자극이 없다면 주낙의 부근만 빙빙 도는 것이 범고래의 습성인 만큼 여기서 놈들을 떨구고 어장은 좀 더 북쪽을 노리는 편이 낫다는 소리다. 그 말에 오재갑이 다시 물었다.

“샤치 떼를 피해서 도망가더라도 어디가 어장인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일단 포식자와 떨어지는 것이 중요하니 일단 거리부터 벌리고 생각하자고. 항해하다 섬이 나타나면 정서 방향으로 변침한다. 그때까지 전속 항진한다.”

밤새 고민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강태준은 최대한 대륙붕 사이를 노리고 투승할 참이었다. 거리가 멀어지는 와중에도 범고래 떼를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사실 저놈들도 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짓이지.’

인간이나 동물이나. 사실 애초에 누가 먼저였냐를 치면 여기는 고래 놈들 나와바리가 아닌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고래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강거두고래라는 고래는 좁은 수로를 따라 돌고래가 물고기 떼를 몰아오고, 그 지역의 어부들이 대기하고 있는 얕은 곳까지 물고기 떼를 몰아 준 뒤 점프로 신호를 보내는데 이럴 때 어부들이 그물을 던져 물고기 떼들을 잡기도 했다.

어부들이 그물을 던졌을 때 빠져나와 돌고래가 기다리고 있는 깊은 쪽으로 도망가는 물고기들은 돌고래의 먹이가 된다. 하지만 범고래와의 공존이라면?

포식자를 개처럼 길들이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잠시 감상에 젖었던 강태준을 향해 고양이가 머리를 부볐다.

야옹~

“그래.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지.”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자 호야도 기분이 좋은지 갸르릉 거리며 울었다. 그때 상체가 크게 기울이며 덜컥거렸다. 삐걱거리던 움직임은 곧 제자리를 찾았지만 갑작스러운 스웰에 깜짝 놀란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항해사가 번침을 한 것이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벌써 정각 7시.

선수는 2백 80도 정침을 가리키고 있다.

강태준은 머릿속으로 침로를 상상했다. 한 시간 더 항주하고 투승 작업을 개시하면 첫 위치는 북서쪽 방면으로 20마일 정도 떨어지니 침로는 어제의 위치랑은 완전히 반대편이 된다. 그렇게 강태준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김요한이 걱정스러운 듯 말을 꺼냈다.

“저, 캡틴, 이 해역은 회유 경로에서 너무 떨어진 것 같습니다.”

“회유 경로라. 이번 달에 전체적인 어획량이 어떻지?”

“어획량이 아직 절반도 안 되어 영 신통치 않지요.”

“그럼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머뭇거리던 김요한이 잠시 우물거리다 대답했다.

“그건…… 실제로 참치 개체 수가 줄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어업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참치 떼가 하늘로 증발하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게다가 일본 조업선도 숙련된 어부들인데 이 해역에서 30년 이상 고기를 잡아 온 놈들인데 일본 놈들이 과연 바보라서 고기를 잡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그래서 추론을 해 보자고. 참치 개체 수가 드라마틱하게 줄지 않았다면 답은 하나지. 그럼 다시 말해 참치 회유 경로가 변했다는 소리가 아닐까?”

“회유 경로가 변한다고요?”

“일반적으로 참치란 놈들도 관성으로 움직이지. 근래 이상기온으로 해류 온도가 변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잖은가? 추가로 외부의 위험까지 더해지니 경로를 이탈하게 된 것이고.”

“남획이 원인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남획도 일정 부분 기여했겠지만, 그건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야. 애초에 놈들도 적응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반복되는 경로가 수정될 리가 없지. 그렇다면 결국 원인은 포식자일 확률이 높아.”

그 말에 오재갑도 흥미를 보였다.

“어류들이 포식자를 피해서 도망친다.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만.”

“원래 생물이란 포식자들로부터 멀어지려는 습성이 있지. 피 냄새를 맡으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지 않을까. 생존 본능이 경로를 지키려는 습성보다 우선하는 거지.”

“하지만 고기들이 어디로 갈지 알아낼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어림짐작은 가능하지. 고기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먹이가 풍부한 지역을 선호하겠지. 그래서 산호 해역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거야.”

“그럴듯하긴 하지만 입증된 건 없잖습니까.”

“어차피 정상적인 방법으로 기간 내 목표 어획량을 채우기란 글렀네. 뭐 그래도 이쯤에서 뭐라도 해 보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어차피 이대로는 답이 없으니 도박이라도 해 보는 것도 낫겠죠.”

수긍하는 사람들에 강태준이 다시 지시했다.

“그럼 김 항해사, 지금부터 10분 뒤 4시부터 방향으로 투승 시작하도록. 침로는 2백 30도!”

“옛썰!”

참치 떼가 나타나면 일반적으로 그 위에는 갈매기 떼가 보이기 마련. 물론 새 떼들이 있는 곳이라 해서 꼭 참치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생각을 잘해야 한다.

항해사들이 쌍안경을 견시하는 동안 강태준은 X밴더 레이더와 S밴드 레이더를 번갈아 살피며 항로를 조정하고 있었다.

‘새들이 120도 방향에 서쪽에 모여 있군.’

X밴드와 S밴드 레이더는 각각 마린레이더와 버드레이더라 불린다. 한쪽은 새가 찍히지 않고 한쪽은 새가 찍히는 만큼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지만 당시의 최첨단 장비치고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점의 이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흑백화면과 도트의 향연이랄까. 없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런 화면을 비교해 조업 위치를 찾아내는 것은 전적으로 선장의 감과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침 바다는 온통 코발트 빛이었다. 미풍이 부는 바다 위. 선원들은 항해사와 갑판부원 1~2명이 올라가 망원경으로 끊임없이 견시했다. 레이더상 새들이 6~7마일 정도로 가까워졌을 무렵 가장 먼저 특이사항을 발견한 것은 오재갑이었다.

“백파입니다! 규모가 최소 30빠찌 정도는 돼 보이는데요?”

“꽤 상당한 규모로군.”

강태준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스웰의 규모나 움직임으로 보아 인위적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던 것. 참치는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는 동물인 관계로 간간이 수면 위로 올라와 등을 댑히는데 이렇게 먹잇감이 몰려 수면 위로 올라오면 하얀 물거품과 물보라가 섞여 하얗게 벌어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어떡할까요? 캡틴?”

“직진해야지. 90도 정침 투승 개시!”

강태준은 확신에 가득 찬 얼굴로 명령했다. 백파가 생길 정도로 참치 떼가 모여 있는 것은 보기 드문 기회다. 과연 선수 방향의 수평선을 따라 광원이 비치자 포말이 일어나며 바다가 퍼덕였다. 투승을 절반 정도 진행된 시점, 방향을 가늠한 강태준이 키를 꺾도록 지시했다.

“당장 배를 정남으로 번침하게.”

“옙!”

직선주로와 비교해 ㄱ자형으로 가는 쪽이 빗변의 길이가 훨씬 짧다는 상식에 연유한 것이다. 새로운 주낙은 어제 하루 종일 샤치 떼가 분탕질을 한 그 해역에서 약 60마일 정도 떨어진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투승 작업을 계속하는 동안 강태준은 초기가 뜬 곳은 주시했다.

시작과 동시에 투승을 개시한 포인트.

큰 대나무 꼭대기로 페인트칠을 한 깃발이 나부끼는 게 바람이 꽤 강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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