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진짜가 나타났다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행동반경이 한정된 선상에서 물고기가 펄떡이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었던 탓일까. 게다가 생각지도 않은 간식이 부수적으로 딸려 나오기도 하는 만큼 고양이에겐 매번 설레는 시간이기도 했다. 과연 갑판 위에서는 선원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먼젓번보다는 어장 상태가 나은 듯싶은데, 이번에는 상어 놈들이 많군요.”
“그러게. 징글징글하게 득시글하구먼 아주.”
고양이 호야는 꽤 영리했다. 조업이 시작되면 선원들이 신경이 곤두선다는 것을 아는지, 장화에 차이지 않도록 어창 위에서 식빵자세를 한 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녀석, 혼자서 아주 일등석이구먼.”
“자자 조심해! 잘못하면 뼈도 못 추린다고.”
과연 갑판의 선원들은 심심찮게 걸려 오는 상어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산 채로 갑판에 올려지는 상어들은 배를 바닥에 깔고 트위스트를 추었다. 머리부터 꼬리부터 왼쪽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상어는 눈깔을 댕그랗게 뜨고 눈꺼풀까지 껌뻑이며 그 선원을 올려다보는 것이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듯하다.
이 망할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것이!
“어이쿠야, 이노마는 배때지에 뭘 그렇게 처박았나?”
“아직 힘이 넘치는구먼? 저기 물 것 좀 하나 줘 봐.”
강태준은 긴 손잡이의 금속 막대를 받아 녀석 앞에 던졌다. 입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물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는 녀석답게 녀석은 좋다꾸나 하며 작살 꽁다리를 물었다. 물론 터업 하며 아가리가 닫히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바스러진 이빨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먹이인 줄로 알고 씹어 발긴 서슬에 제 이빨이 아작 난 것이다.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아가리를 앙다문 채 놓지 않는 상어의 모습에 강태준과 일행이 입 위로 올가미를 씌웠다.
“거참, 아프지도 않나? 지랄도 한철이구먼요.”
“고기한테 뭘 바래. 빨리 보내 주라고.”
유감은 없지만 고기를 탐낸 대가는 치러야 한다.
발버둥 치는 고기를 제압한 강태준이 손칼로 샥스핀을 능숙하게 잘라 내었다.
지느러미를 잘라 내자 이동 수단이 사라진 샤크는 볼썽사나운 민둥이로 변했다.
바닥에 축 늘어진 채 아가미를 뻐금거리는 녀석의 행동에 김요한이 중얼거렸다.
“거참, 이렇게 보니까 좀 불쌍하네요.”
“원래 세상은 약육강식이지. 자,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입니다. 죠스 군.”
선원들이 녀석을 함께 집어 들어 바다에 다시 던졌다.
지느러미가 잘린 놈의 운명은 뻔하다. 동족의 피를 맡은 고기들이 살아 있는 고기에게 달려들자 상황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렇게 조업이 계속될수록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해역이 더워지면서 죠스는 물론 샤치들이 계속해서 몰려와 훼방을 놓았다. 날이 뜨거워지자 땀이 비 오듯이 흘렀고, 무더위에 푹푹 찌는 염천만큼 성질나는 일도 없었다.
반면에 대기는 청명한 것이 하늘에 대고 팔매질을 하면 깨어질 것 같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피할 곳도 없이 빛이 내리쬐고 있다.
해면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그 흔한 미풍 하나 불지 않는 것이 사람을 더 열받게 했다.
“거, 환장하겄네. 더워 뒈지겄다. 이럴 때는 태풍이라도 불면 좋겠어.”
“거, 재수 없는 소리 마. 이번 항차만 끝이면 귀국인데 말이야.”
“찝찝한데 멱이라도 감고 싶구먼. 시원한 막걸리라도 한잔 주던지.”
“상어가 우글거리는 해역에서 젓갈이 되고 싶다면야 해 보시던지 나는 사양이다.”
조업이 끝난 직후 불판에 엎드린 고기처럼 축 늘어진 선원들에 강태준이 지평선을 살폈다. 저 멀리 은빛의 비늘을 뽐내는 날치들이 물결을 박차고 제비처럼 물 위를 쏘다니고 있었다.
그날의 조업은 평소보다 힘들었다. 잡어가 한발 가득 올라온 뒤에 간간이 올라오는 참치마다 하나같이 씹히고 먹힌 자국이 가득한 탓이었다. 참빗처럼 빨간 아가미를 드러내 보이며 경련하던 참치들은 산 채로 뜯겨 나간 채로 처참한 상태였다.
그날도 상어에게 방금 먹힌 고기가 동체를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젠장! 벌써 먹혔어?”
사정없이 뜯긴 빅아이는 벌써 제 빛깔을 잃고 바래고 있었다. 오동통한 육신은 저 흑돌고래의 시큼한 위액에 녹아든 지 오래였던 것이다. 낄낄대는 샤치 떼들이 다시 물장구를 치는 모습에 김요한이 기다란 작살을 들고 왔다.
“야야, 뭐 하려고?”
“이걸로 저 자식들을 콱 찍어 버릴랍니다.”
콧김을 내뿜는 것이 아주 꼭지가 돈 모양에 강태준은 그를 말렸다.
“야야, 뭐 하는 거야? 그런 걸로 안 죽어. 임마. 괜히 열 내지 말고.”
갑판원인 김호남 역시 서둘러 그를 만류했다. 체장 3미터도 넘는 큰 고기가 새끼손가락만 한 작살에 죽을 리 만무하지 않나.
“말리지 마소. 내 당장에 요절을 내버릴랑께.”
말릴 새도 없이, 팔을 뿌리친 김요한이 선수 마침 아래 풀쩍 뛰는 놈에게 그대로 내리꽂았다. 헌데 이게 웬걸. 기세 좋게 날아간 그대로 놈에게 적중하는 것이 아닌가.
출렁!
“맞았다. 진짜로 맞았어!”
날아간 작살이 꽂히자, 불의의 타격을 받은 돌고래가 꿈틀거리며 괴로워했다. 상처에서 울컥하며 붉은 피가 흘러나오자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의기양양하던 얼굴은 금세 사색으로 변했다. 작살에서 풀려나온 줄이 다리를 감싸고 엉켜 버린 것이다.
“어어어어! 끌려들어 간다!”
“잡아! 빨리!”
철푸덕 쓰러진 김요한이 그대로 엎어지자 다리를 감아 든 줄이 그를 옥죄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엉겁결에 그를 끌어안고는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누구 도와주쇼!”
“칼! 칼을 가져와!
상어 떼가 가득한 바다. 떨어지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선원들은 필사적이었다. 조업도 내팽개친 사람들이 부랴부랴 몰려들어 녀석을 붙잡기 위해 달려갔다. 서둘러 달려든 강태준이 손칼로 새끼줄을 그대로 쳐 냈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퉁겨 나간 줄에 장화를 벗겨 내자, 발등의 껍질이 벗겨져 피가 질질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음 순간, 줄이 헐거워지더니 남산만큼이나 큰 물거품이 이는 모습이 보였다.
때마침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범고래였다. 흰 반점이 인상적인 녀석은 돌고래를 붙잡더니 공놀이를 하듯 이빨로 물어 던졌다.
쏴아아아아~~
흑범고래 떼들은 방향을 틀면서 도망쳤지만, 범고래들은 양쪽에서 몰아가며 추격을 계속했다. 쫓기던 흑범고래가 도움을 청하려는지 선박 쪽으로 다가왔지만, 범고래가 길을 막았다.
그러고는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범고래 한 마리가 고래의 등지느러미 뒤에서 올라타 흑범고래를 뜯어먹었다. 흑범고래도 나름 한 덩치 하는 동물이었지만 상대는 바다 최강의 포식자. 범고래 셋이 흑범고래의 옆구리와 머리를 물어뜯자 속수무책이었다. 바다에 피가 번졌고 새들이 몰려들었다.
물속에서는 다른 범고래가 남은 고래를 익사시키려는 듯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죽음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범고래 떼들은 닥치는 대로 물어 죽였다.
피바다로 번진 바다는 금세 붉은색으로 가득 찼다. 요트 주변을 헤엄치던 범고래 9마리가 배를 주변을 격렬하게 돌며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장엄하면서도 잔인한 광경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스벌, 무슨 재수가 이렇게. 무슨 범고래까지 오나.”
“젠장, 이거 뒈질 뻔했구먼.”
일본 배들이 죽을 쑨 것은 저놈들 때문인가.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범고래 떼들이 재미가 들린 것인지 집요하게 쫓아왔던 것이다. 미끼를 걸고 던져 놓았다 걷어 올려 보면 참치 몸통 아래는 감꼭지 따듯 죄다 뜯어먹고 참치 대가리만 낚싯줄에 걸려 올라오는 수준이었으니 조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걷어 내는 바스켓마다 텅텅 비어 있으니 보다 못한 박상구가 투덜거렸다.
“젠장, 이제는 잡어 한 마리 안 걸립니다.”
“미치겠구먼. 이러다가 진짜로 빈손으로 돌아가겠는데.”
범고래란 놈들은 참치가 걸린 연승을 만나면 낚시가 거두어 올라가는 어선 옆 물속으로 달려가 자리 잡고 기다리다가 끌려오는 참치를 빨랫줄을 대신 걷듯 턱턱 받아먹었다. 그 교활함에 치가 떨릴 정도였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렇다 해서 범고래를 잡으면 되지 않겠느냐 하지만 맛이 없을뿐더러 상업적으로도 아무 쓸모없다. 잡히기라도 하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이놈들의 지능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고기를 토했다가 그걸 미끼로 날아가는 새를 잡을 정도니 말 다 한 것이다.
때마침 무슨 액이 끼었는지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았다. 초속 18미터가 넘는 거센 바람에 휩쓸려 해상은 노도의 포효 쏙에 휩쓸렸다. 열대성 저기압으로 인한 악천후.
하지만 선원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어부들이었다. 파도가 거센 와중에도 갑판 위에서 어구 손질 작업을 꿋꿋이 계속하기 바빴다. 밤이 되자 바람은 조금 서풍이 불었지만, 여전히 파도는 심했다. 먹장구름이 사라진 이른 아침, 브리지로 올라가 조업 상태를 점검한 강태준. 안개는 사라졌지만 바람은 아직 잦아들지 않았다.
“바람이 예사롭지 않군. 야간 조업은 좀 어때?”
“그닥 신통찮습니다. 저기압이라서 그런지 고기 떼가 영 가뭄이네요. 기지국에서 발생하는 신호도 일정하지 않고 말입니다.”
기상도를 보니 저기압이 뱀처럼 똬리를 튼 채 북동진하고 있었다.
아네로이드 기압계의 수치는 0.960 정도.
저기압의 꼬리 부분를 살피던 중 파도에 치인 배가 다시 덜커덕거렸다.
“피항이라도 할까요?”
“아니,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아무래도 며칠은 죽어나겠구먼.”
섬과 멀리 떨어진 어장이다 보니 비바람과 피항할 곳이 마땅찮다는 것도 문제. 요동이 너무 심하다 보니 선원들도 뱃멀미할 정도까지 변했다. 휘청이는 배의 난간을 붙잡으며 겨우 조타실로 가 보니. 타륜을 잡은 김요한의 팔에 굵은 힘줄이 돋아나며 쩔쩔매는 녀석의 모습에 강태준이 혀를 차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롤링이 너무 심하군. 좀 안정적으로 몰지 못하겠나?”
“파도가 생각보다 엄청 셉니다! 이거 조타키를 제대로 돌릴 수 없을 정도로 파도가 세서, 정말 장난이 아니네요.”
“거참, 용만 쓰지 말고 나한테 줘 봐.”
타륜을 쥔 채로 용을 쓰는 김요한의 모습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강태준이 타륜을 인계받았다.
과연 타륜을 잡자 묵직한 감각과 함께 파도가 쏜살같이 몰려들었다.
휘날리는 실타래처럼 터져 나간 빗방울들이 군무를 추듯 빗발친다. 바람을 뚫고 터져 나가는 빗소리 뻣뻣하게 세운 파도가 혼신에 힘을 향해 쳐드는 중이었지만 강태준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정면을 주시했다. 손가락을 미는 감각에 슬쩍 타륜을 푼 강태준이 서서히 핸들을 움켜쥐자, 은은한 저항감이 느껴진다.
서수로 짓쳐 오는 해일이 아가리를 벌리자 강태준은 타륜을 슬쩍 움직이며 힘을 슬쩍 뺐다. 파도가 몰려오는 선수를 피해 왼쪽 측면을 가져다 댄 것.
계산대로 순식간에 옆구리를 스쳐 지나간 파도가 선박의 우현을 타고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오른쪽, 왼쪽…….
스노보드를 타듯 능숙하게 파도를 타는 기술에 요동치던 배의 흔들림이 눈에 띄게 잦아들자 김요한이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어떻게 한 겁니까?”
“타이밍을 재는 거지. 파도에 맞서려고 하지 말고 살짝 빗겨 친다고 생각해.”
“그게 말처럼 아닌 거 같은데요?”
“영화 같은 데 보면 폭행 씬이 있잖나. 실제로 때리기보다 때리는 척 공격하는 씬을 찍기 전에 타이밍을 맞추는 걸 봐. 그렇게 뺨을 스쳐 맞춘다고 생각하면 돼.”
실제로 실전으로 배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른 배움의 길. 강태준이 항해법을 전수하는 동안, 한껏 성이 났던 파도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너울의 연속이 짧아지고, 앙칼지던 바람 소리가 목쉰 소리같이 작아졌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