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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26화 (126/361)

126화 히치하이커

특히 동쪽 해역의 경우 실적은 처참했다. 한 달간 옐로우핀 5마리, 마일린 20마리를 포함해 34마리가 전부라니. 총 실적을 보아하니 차라리 이쪽이 덜 처참해 보일 정도였다.

“다들 사정이 안 좋은 거 같긴 하지만 예상보다 좀 많이 심한데?”

“네, 아무래도 일부러 떠보는 기색이 역력해서, 저희도 대충 비슷하게 축소 보고했습니다. 혹 일본 놈들이 블러핑을 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잘했네. 굳이 정보를 전부 공유할 필요가 없지. 조업 사정도 안 좋은데 경쟁자까지 끌어들일 이유야 없으니 말이야.”

그 말에 김요한이 떨떠름한 어조로 물었다.

“뭐, 그래도 됩니까?”

“애초에 놈들도 우리랑은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지들끼리 별도로 교류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업 정보는 선장에게 있어 밥줄이나 다름없는 만큼 누구도 제가 움켜쥐고 있는 어장에 대한 정보를 전부 공개하지도 않으며 일방적으로 거짓으로만 일관하지도 않는다.

경솔하게 좋은 어장이라 떠벌리다가는 남 좋은 일만 할 수도 있는 만큼 꽤 조심하는 것이다. 어떨 때는 어황이 쓸 만하다 하여 기세 좋게 따라갔다 헛물만 켜고 싸우는 경우도 다반사. 다년간의 경험으로 몇 번이나 물먹은 적 있는 강태준으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 저쪽도 알아서 해석하겠지. 일단 어창은 얼마나 남았지?”

“이제 22톤 정도 찼으니 50톤은 안 되게 남았습니다.”

“그래도 반 정도는 채웠군. 도모장한테 부식 남기지 말고 팍팍 쓰라고 해. 아침은 든든하게 주고. 남은 술도 배분하고.”

“아니,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힘내야지. 두 달 남짓이면 이 짓도 끝인데 아껴서 뭘 하겠어? 힘이 있어야 조업을 잘할 것이 아닌가? 이봐, 조리장. 오늘 준비된 거 있지? 그거 가져오게.”

그날 해군 병조장 출신인 털보가 가져온 요리를 본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저번에 내버렸던 놈 아닙니까?”

“그래, 빅아이야. 그냥 내버리기엔 실한 놈인 거 같아서 따로 냉동 보관했다가 조리했네. 기관실 퍼널 배기가스 열로 익힌 거야.”

퍼널이란 기관실에서 뽑아 올린 큰 굴뚝에서 배기가스가 배출되는 통로를 말하는데, 참치 대가리를 하룻밤 내내 넣어 두어 폐열로 익히면 그야말로 별미.

자기들이 잡아 놓고도 차마 생고기를 못 먹는 어부들을 위한 특식에 최영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걸 저희가 먹어도 될까요?”

“어차피 우리가 잡은 물고기 아닌가?”

“팔 수도 없는 물건인데 누군가 먹어 치우는 게 낫지.”

“양은 푸짐하니 양껏 먹게나.”

어체가 워낙 크다 보니 고기가 포식하고 남은 볼때기만도 한 근을 족히 넘을 만큼 푸짐하다. 한입 잘 익은 고기를 베어 물자 고소하면서도 코끝으로 올라오는 풍미가 그만이었다.

“이게 맛이 어떤가?”

“입에서 녹습니다, 아주 녹아요.”

“역시 샤치 놈들이 미식가군요. 이건 소고기보다 낫네요.”

“자자 맥주도 한 캔씩 하면 더 좋을 거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선도가 최고인 녀석인 만큼 맛도 식감도 최상급이었다. 퍼널의 뜨거운 열기에 익혀진 고기가 기름기와 융화되면서 퍽퍽함 없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부드러운 참치의 육즙과 알싸한 맥아의 향이 어우러지자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풀렸다. 발라낸 고기는 금세 너덜너덜해지며 동이 났다.

뼈만 남은 고기의 모습에 강태준이 조리장에게 말했다.

“남은 걸로 네기토로 어떤가? 다져서 군함말이 해 먹으면 끝내줄 거 같은데.”

“오, 좋은 생각이군요. 그럼 김이랑 밥 좀 가져오겠습니다.”

김요한이 참치의 뼈와 뼈 사이 살을 숟가락으로 긁어내었다. 근데 이게 웬일.

기세 좋게 선미의 부식실로 내려갔던 조리사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악!”

놀란 사람들이 뛰쳐나가자 사색이 된 조리장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저…… 저, 부식 창고에서 산만 한 쥐새끼가 나왔습니다!”

“쥐라고? 정말?”

부들부들 떠는 털보의 행동에 선원들의 급변했다. 원래 배가 세월이 가면서 쥐새끼 소굴로 변하는 거야 예삿일이지만, 이 배는 고작 건조가 끝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배가 아닌가.

강태준의 표정이 심각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정기 출항 전 분명히 유황 소독하지 않았나?”

“분명히 그랬습니다만 어디 숨어들었나 봅니다.”

강태준은 두통이 일었다. 항해사로 있을 때 선미 부식 창고나 기관 부속 창고에 쏘다니는 쥐새끼들 때문에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가. 그 바쁜 와중에 선실을 하루 동안 폐쇄하고 반드시 소독 절차를 밟은 것이 무용지물이라니. 그러자 오재갑이 추측하듯 말했다.

“저번에 출항이 지연되는 와중에 뭔가 잡것들이 탄 모양입니다.”

“그런 거 같군. 그럼 지금 당장 수색하도록.”

“지금 말입니까?”

“보이는 거야 고작 한 마리뿐이지만 그건 보이는 숫자 아닌가. 침실마다 찍찍 소리가 들리고 바퀴벌레까지 새카맣게 기어 다니는 꼴을 생각해 봐…… 쥐 빠진 미역국으로 식사를 할 생각은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싫으면 빨리 움직여.”

서슬 퍼런 명령에 때아닌 대소동이 벌어졌다. 음식 창고와 부품실이 아지트일 확률이 높은 만큼 선원들은 각자 무기를 하나씩 쥔 채 일대를 주의 깊게 수색했다.

찌그러진 스테인리스 식기 하나까지 기억하고 있는 조리장 역시 엉거주춤하게 학깃대를 들고 선실 안을 뒤졌다.

그렇게 수색을 시작한 지 삼십 분 후. 무언가 꿈틀대는 털 뭉치가 서랍장 아래 숨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모서리에 등을 돌린 채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보였다.

“어? 쥐가 아니라 이건 괭이 새끼 아닌가.”

“그러게. 너무 작아서 쥐인 줄 알았는데.”

소란의 범인은 새끼 고양이였다. 큰 쥐라고 오인할 만큼 덩치가 작고 가냘픈 것이 빼빼 말았다. 목덜미를 붙잡힌 녀석은 저항할 힘도 없는지 갸르릉 소리를 내었다.

“망할 고양이가. 이게 어떻게 들어왔지?”

“부두 야적장에 있다가 우연히 들어온 모양입니다.”

자세히 보니 샛노란 색깔이 짬타이거의 후예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고양이는 야윌 대로 야위어서 비쩍 말라 있었다. 생전 태어나고서 배불리 먹어 본 일이 없는 듯 녀석은 오들오들 떨면서도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강태준이 슬쩍 주위를 돌아보았다.

“뭐 먹을 거 없나? 우유 같은 건 없는데.”

“뭐, 그거 있잖은가. 분유에 물이나 타서 가져와.”

곧바로 오트밀 죽에 선원들 기력 보충용으로 가져온 분유를 타 주자, 잠시 고민하던 고양이가 그릇으로 다가가 고개를 처박고 혀를 날름거렸다. 작디작은 새끼 고양이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선원들은 넋을 잃고 그 모양을 지켜보았다.

“천천히 먹어라. 체한다.”

“귀엽네 이거. 근데 이걸 어떻게 할까요. 근데?”

“보아하니 젖 뗀 지 얼마 안 된 새끼 같은데, 어미는 없나?

“전혀 안 보입니다. 죽었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겠지요.”

젖니가 겨우 난 것으로 보아 태어난 지 서너 달도 채 되지 않은 녀석이다.

여윈 모습에 측은함이 들었는지 김요한이 강태준에게 말했다.

“주인 없는 놈이라면 그냥 저희가 키우는 게 어떻겠습니까?”

“장난하나? 여긴 선실일세. 지금이야 귀엽지만, 나중에 크면 통제가 쉽지 않아. 그땐 누가 책임지나?”

“그래도 무려 고양이 아닙니까. 나중에 크면 충분히 쓸모 있지 않겠습니다, 명색이 고양이니 쥐 천적 아닙니까? 선실에 숨어든 쥐도 잡을 수 있고요.”

갑판장인 박상구도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퍽 이나, 똥오줌 못 가리는 녀석을 키워다가 어따 써먹자고?”

“몇 달만 참으면 성묘 아닙니까. 뭐 고양이가 쥐잡이 하는 거야 본능의 영역이니 딱히 가르칠 것도 없겠고, 하루 두 끼 밥만 제대로 주면 최소한의 밥값은 하지 않겠습니까?”

“그 밥값은 누가 대지? 니가?”

“에이. 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십쇼. 불쌍하잖습니까. 선원증 없이 탔다고 바다로 확 던져 버릴 수야 없지 않습니까?”

일제히 선장에게 향하는 눈동자들.

강태준이 침묵하자 오재갑도 난감한 듯이 말했다.

“선장님. 당분간은 맡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죽일 수야 없잖습니까?”

“하아. 팔자에도 없는 집사 놀음을 하게 생겼군.”

그걸 허락으로 받아들인 김요한이 자그마한 고양이를 소중하게 안아 들었다.

“그럼 이 녀석 이름은 어떻게 할까요?”

“망할 괭이 새끼니까 줄여서 망고라고 붙이는 게 어떻겠나?”

“냥!!”

“허, 이 자식이 알아듣나? 그건 아니라는데요.”

“이 쥐방울만 한 게. 참.”

갑판장의 말에 도리질을 치는 녀석이 이빨을 드러내며 냐옹거렸다. 고양이답게 고씨로 하자, 노랭이라고 하자 등등 여러 가지 제안이 많이 나왔지만 괴랄적인 작명 센스에 모두 기각되었고, 결국 녀석의 이름은 호야로 낙착되었다. 황갈색 빛깔의 등 뒤에 약간 짙은 색의 털이 올라온 것이 공교롭게도 한글인 ‘호’자와 비슷했던 것이다. 녀석을 안아 든 강태준이 다짐하듯 말했다.

“네 이름은 호야다. 선원명부에 이름을 올린 이상, 내리고 싶다고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야. 알겠느냐, 호야?”

“야옹~!”

좋다꾸나 품 안에 부비적거리는 녀석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리광을 부렸다. 부푼 배를 살살 문질러 주자 꺼억 트림을 뱉은 녀석 상자 안으로 들어가더니 식빵 자세로 잠이 들었다.

지루한 선상 생활에 고양이 한 마리가 추가되니 선내엔 간만에 활기가 돌았다. 별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동물 한 마리가 꽤 위로되었달까. 조리장인 털보가 주는 풍족한 식단에 곧 건강을 회복한 녀석은 곧 선내를 제집처럼 돌아다니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같이 놀아 주는 선원들에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

살이 보송하게 오른 녀석이 재롱을 부리는 것에 강태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건 뭐, 괭이라기보다 강아지가 따로 없군. 저래서야 쥐새끼는 잘 잡겠나? 버릇이나 잘못 들지도 모르겠군.”

“차차 교육시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어리잖습니까?”

“상전 모시는 셈이구만.”

역시 고양이는 털빨이라고 할까,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것이 버틸 수가 없다.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슬그머니 다가온 녀석이 머리를 부벼 왔다. 목덜미를 만져 주자 골골 끓는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울던 녀석이 폴짝 무릎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털을 결대로 쓰다듬어 주자 웃는 표정으로 골골거리는 녀석이 쌔근쌔근 잠에 들었다.

“세상 행복해 보이는구먼. 근심 걱정 없어 좋겠다. 야.”

“근데 이 녀석, 품종이 뭔가요? 이런 무늬는 처음 보는데.”

“뭐긴 뭐야 잡종이지. 어디서 아바스 종이랑 섞인 거겠지.”

글씨 모양의 무늬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졌다. 호안석 같은 색의 눈동자부터가 특이한 것이 분명 여러 품종이 섞였을 것이다.

그때 귀를 쫑긋 세운 호야가 품 안에서 뛰어내렸다.

“녀석 또 뭔가 궁금한 게 생겼나 봅니다.”

“그렇겠지. 브리지에서 일이 있나 보군.”

끼니때만 사람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호야는 신기하게도 조업이 시작되기 무섭게 갑판 위로 향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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