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24화 (124/361)

124화 조업 계약

뱃일이라는 것은 애초에 숙련되어도 괴롭기는 마찬가지. 수면 부족에 과로, 거기에 수개월이 넘는 선상생활까지. 거대한 감옥이나 비슷한 공간에서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원으로 영어 무식자에 시골 출신을 선호하는 것도 도망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빠른 은퇴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겠나.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김요한이 슬쩍 강태준에게 물었다.

“선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식 투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시고 판단은 제 몫이지. 다만 투기를 할 건지 투자를 할지는 잘 생각해 봐야지 않겠어? 기업의 원래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었다 생각한다면 투자할 가치가 있겠지만 인위적인 손이 개입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인위적인 손이요?”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정권이 바뀌었으면 논공행상이 필요한 게 당연하지. 그러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고 나올 구석은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야.”

그러자 오재갑이 덧붙였다.

“탈이 덜 날 만한 곳이겠죠. 이왕이면 눈먼 돈이면 더 좋고.”

“그래 어디 망해도 하소연하기 어렵다면 더 좋겠지. 돈 버는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는 잃는 사람이 있지 않겠나?”

김요한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듣자 하니 뭔가 의미심장합니다요.”

“하하, 세상 돌아가는 원리가 그래. 세상이 이유 없는 돈은 없어. 뭐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뛰어들어도 좋고.”

“그건 하지 말란 소리 아닙니까?”

“뺄 타이밍을 모른다면 주식 투자는 리스크 있지. 개미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작전세력의 먹잇감밖에 더 되겠나. 차라리 그럴 바엔 돈으로 서울 외곽에 땅이나 사는 게 낫지.”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정치 자금이 필요하기 마련. 실제로 군부에서는 돈을 쓸 데가 많은데 국고금으로 정치 자금을 쓰기에는 눈치가 보이니 증권시장에서 조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정보기관들이 부족한 공작비를 보충한 것과 비슷한 방식. 정보력에 자신이 없다면 훨씬 안전한 자산에 투자하는 쪽이 몇 배는 괜찮은 선택이다.

그러나 김요한 입장에서는 아리송한 이야기였다.

“지역이 뭐 한둘입니까. 땅이라면 어디 말입니까?”

“서울 쪽에 노는 땅이 좀 많나. 한강 이남에 널린 게 땅인데. 평당 500환도 안 하는 돈이니 잊어먹은 셈 치고 묵혀 두면 혹시 알아? 대충 십 년쯤 지나면 금싸라기가 될지.”

“십 년이라구요? 까마득하구먼.”

“그러게요. 지금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말이오. 투자도 있는 놈이나 하는 거지, 빚이 얼만데 말입니까.”

“이번 조업이 끝나면 적어도 집 한 채 값은 들어오지 않겠나? 터미널 근처나 목 좋은 곳 위주로 물색해 봐. 자투리 돈이라도 알박하면 꽤 목돈이 될 수 있으니 말이야.”

오재갑을 비롯한 몇몇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진 사람들을 옆에 두고 강태준도 출어 직전에 회사와 체결하였던 계약 내용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보았다.

계약기간은 출어일부터 12개월, 항차 수는 7항차. 보합 비율은 6대4.

이번 조업은 특이하게도 순이익이 아니라 매출 기준으로 무려 4할을 가져가는 파격적인 조건이 특징이었다.

배의 총 톤수가 1백 20톤이니. 만선 적재량은 오 분의 삼 정도 되는 72톤 정도.

7항차 간의 어획고 총액을 500톤이라 어림잡을 경우, 참치 판매가는 톤당 280~320달러 수준이니 이걸 평균치로만 환산해도 최소 15만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앨버코처럼 몸값이 비싼 생선을 상처 없이 잡은 경우 단가가 두 배 넘게도 상승한다.

최신 선박인 제1 지평호를 ECA 자금으로 인수할 때 들인 금액이 32만 6천 달러 수준이니, 15만 달러라면 중고선 한 척을 너끈히 살 수 있는 금액인 것이다.

하지만 그만한 조건에 옵션이 안 붙을 리가 없었다. 한 항차에 72 메트릭 톤, 7항차를 모두 만선해야 한다는 전제였다.

총 수익 30만 불 이상, 모든 항차를 만선할 때에만 제대로 된 보합비를 배분받는다.

가령 예를 들어 단 한 번의 만선으로 판매고가 30만 불을 넘었다고 해도 7항차 중 단 1항차 한 번이라도 만선에 실패한다면 계약의 완전 이행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사모아 근해가 황금어장이라 해도 이런 조건은 사실 터무니없기 짝없는 계약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선장이라고 해도,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나가리가 될 계약에 쉽게 사인할 수야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하지만 출어일로부터 10개월 차가 된 강태준은 그 어려운 것을 실제로 해내고 있었다.

어획물의 판매고는 이미 30만 불을 족히 넘었고 나가는 족족 만선을 기록해 한 항차마다 5만 불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장장 6회차에 걸친 쾌거는 전적으로 강태준의 풍부한 어장 경험과 본능에 가까운 감각에 의존한 것이다. 수익성이 높은 알바코 어장만 노린 탓에 매출액이 높았던 것. 이번 마지막 항차만 만선으로 무사히 귀환하면 강태준으로서는 할당액을 제하고도 보너스 포함 7만 불이 넘는 목돈을 손에 쥐게 된다.

‘그 돈이면 백화점 개조에 필요한 비용이나 멸치어장용 배도 몇 대 구할 수 있을 테니 숨통이 트일 테지.’

지체할 시간 없이 기름을 다시 채운 배는 점점 속도를 올렸다. 배는 8.5노트의 속력으로 계속 남으로 달렸다. 자이로 컴퍼스를 따라 관측한 오후 6시 10분의 천측 위치는 남위 17도 30분, 서경 169도.

섬에서 멀어짐과 따라 수온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저녁이면 니우에를 통과할 거 같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로군.”

볼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에 강태준은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이 섬을 지나면 어장까지 섬 하나 없는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곳. 가까운 육지래야 서남쪽으로 천여 마일을 떨어져서 뉴질랜드만 있을 뿐이다.

갑판장인 박상구가 보따리를 풀어놓는 동안, 밤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지며 선수 쪽으로는 남십자성이 보였다. 잔잔한 밤의 항해는 서경 167도에서 남회귀선을 넘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가파른 파곡을 넘을 때마다 갸우뚱대는 배에 멀미가 날 정도였지만, 여러 번의 항차에서 황파에 단련된 선원들은 꽤 잘 버텼다.

“파도 한번 심하구먼. 무슨 날씨가 이러나?”

“아서게. 해외에서는 돈 주고. 이런 놀이기구를 탄다던디.”

“그런 게 있나?”

“롤러코스터라고 부르던데 디즈니랜드인가 애들 노는 데가 있는데 아들이 그렇게 환장한다는군. 우리 아들도 한번 가 보고 싶다 노래를 부르더구만.”

“놀이기구 탈 시간에 진짜 배 한 번 태우면 그게 싸게 먹히지 않겠나.”

“말은 못 해. 그럼 다시는 안 탄다고 할걸.”

험한 파도에도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선원들은 여유가 넘쳤다. 지금까지의 조업이 모두 만선이었던 데다 딱히 큰 사고가 없었던 터라 한껏 긴장이 해이해져 있었다. 귀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긴장이 풀어진 이유였지만 세상 태평한 선원들과 달리 선장인 강태준과 항해사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기 바빴다.

“남위로 더 내려갈까 했는데 안 되겠지?”

“예. 아무래도 부근에 냉수 용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재갑의 지적에 강태준이 말했다.

“좋아. 일단 스테디하게 선수를 유지한다. 남위 27도에 도착하면 조업 시작하는 걸로. 해수 온도는?”

“좀 낮은 편입니다. 섭씨 22도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렇다면 축률을 0.5 정도로 조정하는 게 낫겠군.”

항적을 그리며 움직이는 배는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강태준은 해수 상태에 맞게 주낙줄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바람 상태가 잦아들자, 새벽 5시경부터 조업이 시작되었다. 갑판장의 지도하에 전속으로 달리던 배는 약 1,200여 개의 낚시를 던졌고 배에서 널린 낚시는 포물선처럼 바다 아래로 침강했다.

투승 완료 후 4시간이 지난 오후 1시쯤 강태준은 양승 작업을 지시했다. 양승기가 돌고 익숙한 동작이 반복되자 물고기가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쿵쿵 소리와 함께 올라온 고기들이 퍼덕거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작스런 수압 변화에 부레가 입 밖으로 털려 나온 녀석들. 펄떡이는 고기의 모습에 견습 선원이 허둥대자 강태준이 나섰다.

“뭘 그렇게 꾸물대나? 지금이 몇 회차인데.”

“그게 고기가 너무 꿈틀대서.”

“이렇게, 바로 찔러서 제압해야지. 놔두면 골치 아프니 이렇게 단매에 쳐 죽이는 게 나아.”

강태준이 올라오는 아가미 사이를 찔러 단숨에 절명시키는 시범을 보였다. 강태준의 행동에 요령을 파악한 선원들도 속도가 빨라졌다.

양승이 끝나고 다시 투승이 지속되었다.

선원을 두 조로 나누어 교대로 투승을 반복했다.

연승이라는 것은 단조로우면서도 빈틈없어야 한다. 희뿌연 안개 사이로 탐조등이 비추는 동안, 조업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 사이 조타륜을 잡은 강태준이 주변을 끊임없이 살폈다.

그사이 견습생 들이 밀대와 기름걸레로 갑판 위를 부지런히 닦기 바빴다. 파도가 뱃전을 훑자, 조파음에 맞춰 간간이 이름도 모르는 새 울음소리가 운율처럼 들렸다. 그새 항해사들은 수온 측정기 바늘을 읽고 수치를 항해 일지를 기록했다.

강태준이 본 수온은…… 수온은 28.3도, 한 시간 전보다는 0.5도 떨어졌고 눈금은 아침 해뜨기 전까지 계속 떨어질 것이다. 선미 갑판으로 나간 강태준이 바스켓으로 묶인 어구를 물 위로 밀어내는 선원들에게 물었다.

“지금 몇 빠찌 나갔나?”

“240 바스킷이요.”

“무난하군. 해류 상태는 좀 어때?”

“북쪽으로 향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쪽은 돈 될 고기가 별로 없는지 잡어가 많이 걸리네요.”

“공감이군. 일단은 던진 주낙은 마저 걷고 고수부를 찾아 다시 투승하는 게 좋겠지.”

밤이라 그런지 제법 쌀쌀했으므로 사람들은 내의를 꺼내 입고 있었다. 밤에 야광충이 많고 수온의 변화가 변화무쌍해서인지 잡히는 고기들도 뒤죽박죽. 특히 마일린이 많이 잡히긴 했지만 알바코에 비해 훨씬 헐값으로 팔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위턱이 창처럼 삐죽한 마일린은 주낙을 몹시 헝클어 놓은 데다 자력으로 낚싯바늘을 뱉어 내기도 한다. 게다가 날카로운 창처럼 생긴 주둥이를 가진 탓에 데커로 올릴 때 뿔을 잡고 머리를 깨서 죽인 뒤 올려야 하는 만큼 위험성도 높고 힘도 들어 선원들이 기피하는 기종.

하지만 조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배 밑에 무슨 생선이 웅크리고 있는지 추측만 할 뿐 정확히 알 도리는 없다. 두 개의 작업등에서 나온 불빛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갑판을 비추는 동안 다른 선원이 대나무를 채운 부이를 한 바스켓씩 풀어질 때마다 내던졌다.

“워워!!”

“어이 거기, 엉키지 않게 조심하라고.”

허공에서 어구가 공중에 붕 뜨더니, 저만치 바닷물로 떨어졌다. 물방울을 튕겨 올린 기관음에 텀벙거리는 소리가 났고, 시속 10마일의 속도로 항진하는 배에 맞추어 메인라인이 풀려나가자 거기에 맞추어 하나하나 바스켓이 던져졌다.

갑판에 모인 열댓 명의 선원들은 묵묵히 제 할 일에 집중했다.

낚싯줄에 미끼를 꿰는 자, 메인라인을 푸는 자, 미끼를 녹이는 자, 바스켓을 연결하는 사람, 부이를 채워 던지는 자, 어구창에서 바스켓을 밀어내는 자. 그리고 기관실 당직과 브리지 당직을 포함해 8명이 작업에 임하고 있다.

오래 손을 맞춘 사람처럼 꾸물대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일은 순조로웠다. 재차 선원들 상태를 체크한 강태준은 다시 조타실로 돌아와 한쪽에 걸린 흑판에 기록을 남겼다.

04:00 - 240 bastket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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