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20화 (120/361)

120화 박정명과의 면담

그러나 운도 실력이라는 것처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하던가.

어찌 되었든 대세는 넘어갔고, 박정명은 정권을 장악했다. 생도 대장 강철완을 위시한 사관생도들의 지지 선언도 큰 힘이 되었다. 트럭을 탄 채 시내 중심가에서 국회 앞을 지나는 차량 시가행진을 하자 사람들은 이제 이번 쿠데타가 전군이 중지를 모은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더불어 민심의 호응을 얻기 위한 드라마틱한 장면까지 연출되었다.

-나는 깡패입니다. 지금껏 죄를 뉘우치고 국민의 심판을 달게 받겠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젊은 몸과 마음을 국가에 헌신하겠습니다.

플래카드를 든 깡패들이 덕수궁을 출발해 시내 중심가를 도는 퍼포먼스였다. 깡패들의 목에는 쌍칼, 개작두 같은 이름표를 달고 있었는데 다들 한따까리하는 이름 높은 정치 깡패들이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한 장면에 관심이 몰린 것은 당연했다.

“아니, 저거 이한재 아닌가?”

“저기 임수환이랑, 백건훈도 있네. 세상에 주먹깨나 쓴다는 유명인들은 다 납셨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뭐긴 뭐야. 이번에 군부가 정권을 휘어잡지 않았나. 이참에 정치 깡패 새끼들을 다 때려잡았다더군.”

“자식들 꼴 좋군. 나쁜 짓만 골라서 하더니, 벌 받는 거지.”

가두 행진에 참여한 인원 중에는 이름만 대면 다 알 법한 유명한 깡패 두목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평소 정치 깡패에 맺힌 게 많았던 시민들은 통쾌한 얼굴로 손가락질이나 욕을 했고 일부는 침을 뱉거나 돌을 던졌다. 나라가 혼란할 땐 정권과 결탁해 부화뇌동하던 자들이었으나, 결국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는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쇼맨십 좋구먼요. 언제 이런 걸 준비했대?”

“김필중 중령님께서 기획하신 거겠지.”

강태준은 덤덤했다. 정권의 지지도를 올릴 화끈한 이벤트를 고민하다 깡패들의 거리 행진이란 안건이 채택된 것이다.

22일 전국 경찰이 단속한 범법자만 2만 7천여 명, 그 가운데 4천 200명이 깡패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국에서 지지 성명이 이어지자 전 정권의 부역자에서 혁명의 전도사로 변신한 장신영 총장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지 시위는 감사하지만, 혼란 방지를 위해 당분간 계엄령은 지속될 예정입니다. 애국 시민들께서는 안심하시고 생업에만 종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함께 코리안 리퍼블릭지에는 이와 같은 사설이 기재되었다.

[군사혁명은 필수불가결한 흐름으로, 현 정권이 붕괴한 것은 부정과 무능 탓 혁명은 과거의 방종, 무질서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민족적 활로를 개척할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서…….]

[제3 공화국의 성립은 민족적 의거!]

[장석운 정권의 추악한 민낯! 청산되지 못한 부패세력들]

[친일파에서 민주화로. 표리부동한 변신. 북괴의 선동에 매몰된 학생들]

박정명은 방첩대를 투입해 그간의 정부와 군부에 대한 굳히기에 들어갔다. 특수 범죄 처벌법, 정치 활동 정화법 등 법적 조치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정치적 반대 세력과 군부 내의 반대파까지 제거한 것이다. 부패와 혼란에 염증을 느끼던 국민은 이 같은 조치를 도리어 지지하였다.

그렇게 5월의 광풍이 가라앉을 무렵, 기다리던 호출이 왔다.

“강 사장. 부의장께서 강 사장을 보고 싶어 하시네.”

김필중으로부터 온 연락에 군대 지프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세종로에 있는 구 참의원 의사당 앞. 그 앞에는「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응접실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자니 비서 하나가 나타났다. 안내를 따라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전투복 차림의 박정명 장군이 창가 옆에 서 있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밖을 주시하던 박정명이 강태준을 보고 악수를 청했다.

“임자가 강 사장인가. 이렇게 만나 봐서 기껍구만.”

“아닙니다, 저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영광은 무슨, 경황이 없어 연락이 늦었군. 그보다 임자가 이번 일로 큰 공을 세웠다지?”

선글라스를 벗자 서글서글한 눈매에 눈빛이 형형하고 맑았다.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서 뿜어지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제가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이지요.”

“허허, 겸양할 필요까지야. 김 부장에게 다 들었네. 자네가 없었다면 포고문 배포가 늦어져서 여론 장악에 차질을 빚었을 거라고. 그보다 정말로 젊구먼, 나이가?”

“이제 스물여덟입니다.”

“사업한 지 고작 7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 들었는데 실적이 대단하더군. 헌데 출판업은 대체 왜 시작하게 된 건가? 원래 하던 사업들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말이야.”

매의 눈으로 살피는 것이 은근히 떠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박정명의 태도에도 불구, 강태준이 침착하게 답했다.

“예. 처음부터 출판 사업을 하기보다 인쇄비를 아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광고 전단지랑 포장비를 절감할 목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규모가 커진 거지요.”

“듣자 하니 이것저것 벌였더군. 학습지도 만들고, 애들 동화책도 만든다던데? 나도 신문에서 보았네. 허허.”

“우연히 학부형 자격으로 학교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애들을 위한 참고서나 읽을 만한 책이 없지 뭐겠습니까? 그래서 거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아니, 벌써 애가 있었나? 아직 미혼인 줄로 아는데 말이야.”

“사람의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해서요. 개인적으로 거두게 된 아이들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오오. 그런가. 신기한 일이군.”

“개중 덕배라는 아이가 참 공부를 잘합니다. 학교에서 1등을 한 번도 놓쳐 본 적이 없다더군요. 장래가 기대되는 녀석이지요.”

강태준의 말에 박정명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냉막했던 인상이 조금 풀어지자 딱딱했던 대화에도 훈풍이 돌았다.

“대단하구먼.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에 혈연도 아닌 아이들을 손수 거두다니. 장한 일이야.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군. 나도 젊었을 때 문경에서 국민학교 교사 노릇을 했었네.”

“오, 각하께서 말씀이십니까? 그거 상상이 되지 않는데요?”

“하하. 그런가? 그래도 나름 좋은 시절이었어. 내 제자 중에 벌써 애까지 낳은 애들도 있네.”

뒤에 이어진 이야기는 제법 소소했다. 교사 때 추억을 떠올려서일까, 아까보다 한결 날 선 기질이 가신 박정명이 평소 생각했던 바를 풀어놓았다.

“학교란 곳은 사실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지. 그래서 중요한 것이 심판 아니겠나. 선생이 제 역할을 못 하면 질서가 붕괴하고, 질서가 없는 곳은 정글이 되는 법. 나라도 마찬가질세. 국가를 영도해야 할 정치 지도자가 제구실을 못 하니, 시국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아닌가.”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국민의 입장에서 가장 다급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바른 말이네. 국민 절반이 보릿고개에 피죽도 못 먹어 등가죽이 달라붙는 판에 이념이고 파벌이고 무슨 소용이 있나.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등 따시고 배부른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네 같은 사업가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생각하네.”

갑자기 띄워 주는 말이었지만, 강태준은 들뜨기보다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건 과찬이십니다. 저 같은 상인 나부랭이가 뭘 잘 알겠습니까? 그저 먹고 사는 데만 관심이 있지요.”

“허허. 그렇게 말할 필요 없네. 우리 같은 군인들이야 사람 죽이는 기술밖에 모르지만, 경제인은 사람을 먹여 살리지 않나.”

“군인이야말로 나라의 근간 아니겠습니까. 6.25 때 나라를 지키고 순국하신 애국지사들이 없었다면 경제활동은커녕 배급에 기대는 신세가 되었거나 국가 없는 난민이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국체를 보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지요.”

강태준의 말에 급 기분이 좋아진 박정명이 낮게 웃었다.

“허허. 혀 굴리는 솜씨를 보니 천생 기업가는 맞구먼. 그래, 이왕 말 나왔으니 좀 궁금한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기업가의 생각으로 볼 때 앞으로 이 나라가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사업을 경영해 봤으니 평소 아쉽게 생각하거나 미비하다고 느낀 점이 많을 것 같은데.”

“민과 관의 영역은 규율하는 부분이 엄연히 다르니 생각에 온도 차가 있을 수 있지요. 저 같은 기업가가 함부로 국가 현안에 대해 말할 주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말할 자격이 있지. 톡 까놓고 말해 우리 같은 군인들은 사실 경제문제에 대해 밝지 못해. 애초에 생산활동에 종사한 적이 없으니 말일세. 모두가 의욕은 넘쳐도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뭣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니 자네 같은 전문가의 고견이 필요한 걸세.”

박정명의 진심 어린 돌직구에 강태준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던 강태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우선순위로 따진다면 도로나, 항만 같은 인프라 확충이 우선이지요. 경제가 발전하려면 마중물이 있어야 하고 국내의 민간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인프라 확충이라 나라의 곳간이 비었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일단은 UNKRA 원조 등 미국의 원조자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경제 발전의 수순이지요. 물론 그전에 흐트러진 경제 질서를 바로잡는 게 우선입니다.”

“질서를 바로잡는다?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일단은 가장 큰 문제는 부패 청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정 축재자 처벌과 친일파 청산 문제가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 자금확보 측면에서도 명분이 서는 일이고, 두 번째로 정경유착이 일상화된 사회 분위기부터 환기해야 현재의 체제를 넘어 개혁을 시도할 수 있을 테니까요.”

“흐음.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긴 하네만. 자네도 그 명단에 올라간 것으로 아는데?”

강태준이 당당하게 답했다.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아마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부정 축재 문제에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사실 현재의 제도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부분과 괴리가 너무 커 실제로 원칙을 지키다 보면 사업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돕니다.”

“흐음…….”

박정명이 불편한 듯 앓는 소리를 내었지만, 일단 작심한 강태준은 멈추지 않았다.

“각하,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깁니다. 예컨대 우직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불가피하게 제도적 미비성 때문에 부득이하게 편법을 사용한 사람과 처음부터 작정하고 원조 달러로 특혜를 받거나 은행 융자로 거액의 재원을 착복해 고리대로 사리사욕을 채운 사람을 동일 선상해서 취급한다면 심히 불합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자네는 후자와 결이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먼지 털어서 아무것도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다만, 전 양심적으로 사업을 영위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특혜를 입고자 했다면 무엇보다 먼저 부친께서 징발당한 재산부터 돌려받을 궁리를 했을 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이만승이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반은 원조 물자와 귀속 재산을 독점하고 수입 대체 산업화 과정에 개입해 독점 지대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6.25 전후 복구과정에서 이만승은 원조물자 배급을 통제하고, 고정 환율제 등 제도적인 뒷받침을 통해 입맛에 맞게 기업을 유지하고 당을 유지함으로써 정치적인 영향력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자본가 계급은 철저하게 정치권에 기생한 정치적 자본가들이 대다수였던 것. 강태준이 말하는 것은 이 기형적인 부패의 고리를 타파하고 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회복하는 일이다.

묵묵히 이야기를 경청하던 박정명을 향해 강태준이 역설했다.

“상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근래 이 땅의 기업가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세태에 영합해 이득을 누렸고, 그 과정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사회 구성원의 재산 소유와 생산활동 보호 장려함으로써 발전국가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시대적인 흐름입니다.”

“그 첫 단계가 과거 청산이다, 이 말인가?”

“예.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 창출이란 장려되어야 할 일이지 폄하되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문제는 공정성이지요. 원조 물자에 독점과 정치적 공물로 연결된 고객과 후원자 같은 관계를 깨고, 정경유착으로 하향식 부패가 일상화된 구조를 정부가 앞장서서 개선해야 합니다. 원칙을 지키는 자가 바보가 되고 룰을 깨는 자가 이득을 보는 구조라면 그 누가 정책을 신뢰하겠습니까?”

“자네의 말이 틀리지 않네. 하지만 그 많은 부정 축재자를 죄다 때려잡는다는 건 현실성이 없지 않겠나?”

심정적으로는 동조하는 점이 없잖아 있었지만, 실상 박정명의 입장에서 이런 정책을 강행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쿠데타가 성공하긴 했어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집권한 이상 박정명에게는 대외적인 지지가 필수였고, 여기서 미국의 태도는 신 정권에게 있어 초미의 관심사였다.

박정명의 남로당 전력을 알고 있는 미국은 비록 쿠데타를 방조하긴 했어도 여전히 박정명에 대한 색안경을 거두지 않았고, 이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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