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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10화 (110/361)

110화 이억수의 초대

인기척이 느껴지자 광필이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짜증을 부렸다.

“아 또, 더는 할 말 없다지 않나? 도대체 몇 번째야!”

“나 왔다. 임마, 뭘 그렇게 신경질이야.”

강태준의 등장에 불쑥 고개를 든 광필이가 곧바로 화색을 띠었다.

“아 형님! 오셨습니까?”

“그래. 임마 사고를 아주 거하게 쳤더구먼…….”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하긴, 고생 많다. 어이쿠야. 그보다 면상이 무슨. 왜케 흉이 많나.”

안면을 보니 크고 작은 멍에 자질한 상처투성이. 며칠째 수염을 깎지 못해서인가.

험악한 면상이 산적처럼 보이는 녀석이었다. 혀를 끌끌 차는 강태준이 타박했다.

“이왕 싸울 거면 잘 좀 하지. 쌈질 잘한다더니 흠씬 처맞고 왔구먼.”

“아이구야. 형님. 다구리엔 못 이기죠. 여기저기 긁힌 것뿐입니다. 형님. 저쪽은 병원에 실려 간 놈만 셋이라니까요.”

“으이구 자랑이다. 자자, 이리 와 봐라. 약 좀 바르게.”

“어이쿠 약도 갖고 왔소이까? 준비성 좋네.”

강태준이 가방에서 상비약으로 가져온 아까징끼를 덕지덕지 발랐다.

까슬해진 피부에 빨간약이 닿자, 광필이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아아. 따가워, 아픕니다. 아파요!”

“엄살은. 임마.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어휴, 상처 좀 봐. 이거 흉지겠네요.”

설유하가 걱정된다는 듯이 면봉에 약을 묻혀 발라 주자 녀석이 호기롭게 말했다.

“이정도야 훈장이죠 뭐. 사나이가 이 정도야, 아 따가!”

“으이구, 이렇게 대형 사고를 치고 나서 후련하냐? 상황이 어떻게 된 거야? 짧게 설명해 봐.”

“뭐, 혹여 도망가기 전에 현장을 덮쳤는데 하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겸연쩍은 얼굴로 헤헤거리는 녀석이 털어놓은 이야기에 강태준은 한심한 표정을 금할 수 없었다. 숫제 바보도 아니고. 대충 어떻게 흘러갔나 짐작하긴 했지만 이건 완전 무데뽀가 아닌가.

“이런 무식한 놈을 봤나. 그렇다고 남의 사무실 한가운데로 혼자 쳐들어가? 매를 벌어요 아주.”

“뭐, 저라고 첨부터 이억기 그놈부터 만날 줄 알았습니까. 사무실 안에 들어가 보니 있던 거지. 그놈 면상을 보니 갑자기 뭔가 치밀어오르는 게 자제가 안 되던데예. 욱하고 정신 차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임마, 그래도 적당히 치고 빠졌어야지. 경찰이 올 때까지 계속 뒤집어 놓으면 어째?”

“먼저 시비 턴 건 그놈들 아입니까? 뭐 박살 난 꼬라질 보니 속은 시원하더군요. 설비고 뭐고 아주 난장판이 돼 버렸으니 아마 더는 헛짓거리 못 할 겁니다.”

“그럼 니는 어쩌고?”

“뭐 각오하고 있습니다. 뭣하면 콩밥밖에 더 먹겠습니까? 몇 달 쉬고 나오면 되지요.”

의연하게 씨부리는 꼬라지가 실로 얄밉기 짝이 없다.

실실대는 꼴에 보다 못한 붕대를 감아 주던 강태준이 상처에 소독약을 확 들이부었다.

“으아악! 형님 살살하시라고요. 저 환잡니다.”

“으이구 화상아. 벌써부터 빵 갈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해. 일단 변호사 선임계 냈으니 재수 없는 소리 마라.”

“오, 그럼 빵 안 가도 되는 겁니까? 그래도 형이 있으니 든든하구만.”

“지금 여러 군데 힘을 쓰는 중이니. 좀만 기다려 봐. 내가 어떻게든 빼 줄 테니. 그때까진 입도 뻥긋하지 마. 사고 칠까 무섭다.”

“옹야. 성님만 믿겠슴다. 아 글고, 이번에 같이 잡혀 온 애들도 좀 뒤 좀 봐 주십쇼. 제 말대로만 한 건데 이렇게 피 봐서야 되겠슴까.”

“임마 니 걱정이나 해라. 네놈이 지금 남 걱정할 때냐?”

대략적인 정황 파악을 끝낸 강태준이 변호사와 다시 사안을 깊이 논의했다.

“듣자 하니 사건이 꽤 커진 거 같군요. 이거 법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일단 우발적으로 일어난 싸움인 데다 정황을 보면 정당방위의 소지가 큽니다. 일단 저쪽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 확실하고, 유령회사 경비를 서던 놈들은 대부분 전과자들이 천지더군요. 아무래도 판결까지 갈 경우 저희 쪽이 유리할 겁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일을 해결하는 건 별로 좋은 선택지는 아닐 거 같군요. 사건을 키우지 않는 선에서 봉합하는 편이 좋겠지요.”

사건을 키워서 좋을 것이 없는 만큼 적당히 넘어가는 게 좋다는 취지였다.

설인모 역시 이번 일에 물밑에서 힘을 써 주었다.

최근 예편한 군인 수십 명과 현역 서너 명이나 단체로 연루된 만큼 군부 입장에서도 그냥 좌시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니지 않은가. 가뜩이나 숙군 과정에서 보여 준 비리 사건 덕에 군부에 대한 여론이 그렇게 좋지 않은 상황이니만큼 군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억수도 역시 거기까지 손대기는 불안했는지 이번 사건에 가담한 군인들 역시 대부분 훈방조치로 풀려났다. 하지만 광필이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들리지 않았던 것.

풀려나기로 한 날짜가 지나자 초조해진 강태준이었다.

“광필이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안 나오나?”

“글쎄요?”

“혹시 이 자식 거기서 또 시비 붙어서 사고 친 거 아냐?”

“설마요. 광필 형님이 그 정도까지 하겠습니까?”

“그놈 성정 모르냐. 스팀 오르면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받는 거. 빨리 확인해 봐.”

강태준의 재촉에 오재갑이 다시 연락을 넣으려던 찰나, 헐레벌떡 달려온 방국진이 비보를 전했다.

“큰일 났습니다. 김 국장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되었다고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상부에서 압력을 넣은 것 같습니다. 특수 폭행에 명예훼손에 기물 파손까지 있는 대로 다 걸었네요. 아무래도 광필 형님을 특수 폭행 주모자로 몰아가는 거 같습니다.”

“형사로 엮어 넣겠다니 이거 약속과 다르잖아. 그럼 대놓고 조지겠다는 건가?”

“아무래도 전략을 바꾼 모양입니다. 일단 종범은 풀어 주되 주모자만 잡아서 엄벌하겠다는 것 같은데 의도가 노골적입니다.”

잔챙이들은 그냥 놔두겠다는 뜻은 설마 강태준까지 타겟으로 넣겠다는 뜻인가.

경우의 수를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뒤숭숭한 것은 사람들도 마찬가지.

춘삼이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떡합니까. 사장님 이대로 광필 형님 콩밥 먹는 거 아닙니까?”

“일단 검찰 조사 단계부터 쫄 필요 없지. 일단 홍 변호사님은 이억수 측과 접촉해 보십쇼. 저쪽이 원하는 게 있겠지요.”

“예. 알겠습니다.”

과연 이억수는 아예 협상의 여지까지 없앤 건 아닌 듯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양측 간에 약속이 잡혔다. 이억수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종로의 홍가본점이라는 음식점이었다.

앞으로 도착하자 터번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은 비서 하나가 문 앞에 대기 중이었다.

강태준을 힐끗 본 녀석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여기로 오시죠.”

피해자라 일부러 시위라도 하는 건가. 고민도 잠시, 안내를 따라 실내로 들어가니 일본식 다다미방 하나가 나타났다. 천장에는 벚꽃이 장식되어 있었고, 방안에는 채광이 좋게 둥근 창이 나 있었다. 일본식 료칸을 연상시키듯 고색창연한 분위기가 났다.

“오랜만이군요. 이 사장님.”

“자, 강 사장 어서 오시오. 여기 좌정하시게.”

살갑게 손님을 맞는 모습이 험악한 기색은 온데간데없다. 염색을 했는지 새까매진 머리카락이었지만, 이마의 주름은 숨길 수 없었다. 놀랍게도 이억수가 준비한 것은 참치회로 뽈살과 뱃살, 배꼽살 등등 색감과 부위별로 나누어진 참치 한 상이었다.

등뼈 위쪽 부분인 등살, 새빨갛게 익은 아카미, 세도로, 그리고 오른쪽 좀 더 하얀 빛깔을 띤 주도로, 그리고 짙게 마블이 진 오도로까지.

컬러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일까, 흰색의 황새치 살도 준비되어 있었다.

잘 씻은 무순은 물론 참치 죽과 미소 된장, 양념이 잘 밴 참치 무조림에 구운 꽁치 등을 비롯한 스끼다시가 준비되어 있었다 윤기 나는 갈비살 위에는 금가루가 뿌려져 있었는데, 갈비살을 숟가락으로 긁어 낸 다음 데코를 한 것이다.

‘완전히 돈지랄이로군.’

한 끼 먹기도 힘든 시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호사라니.

강태준이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이억수는 자랑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기는 내가 운영하는 곳일세. 일단 식사부터 하자고 불렀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데 밥도 먹지 않고 이야기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뭐. 대접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자, 들게.”

호화의 극치인 상차림을 보아하니 무슨 의도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처음부터 기선제압을 하려는 목적인가. 빨강 근육이 달린 배꼽살을 생와사비를 살짝 묻힌 다음 간장에 찍어 입 안에 넣자, 하얀 지방이 입안에서 눈꽃처럼 녹아내렸다.

육회 같은 향에 쫄깃한 식감이 어우러진 감칠맛.

충분히 숙성된 찰지고 부드러운 살과 근육의 쫄깃한 부위는 오감을 충족시키기 그만이었다. 마구로는 간장에 살짝 찍어서 먹자 짙은 풍미가 느껴졌다.

‘다시 물을 섞었군. 파와 양파를 구워 간장에 담갔나?’

구운 채소로 훈연향을 더했다고 할까. 은은한 레몬 향이 섞인 간장에 파의 그윽한 풍미가 섞이자 참치와 궁합이 잘 맞는다. 하지만 입안을 감도는 감칠맛보다 강태준이 놀라게 한 것은 냉동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참치가 얼지 않았다고?’

이 계절에 생참치라니. 살얼음이 낀, 약간 해동이 덜된 참치회를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에 강태준을 지켜보던 이억수가 반응을 짐작했다는 듯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자넬 위해서 특별히 준비했네. 생참치 맛이 어떤가?”

“먹을 만하군요. 약간 좀 비리지만.”

“배송 문제는 없었을 텐데, 요리사한테 한마디 해야겠군.”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혹시 김이 있습니까?”

“김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네. 여기 싸 먹으면 비린내가 좀 가시거든요. 여기 김 하나 주십쇼.”

종업원들은 곧 따끈따끈하게 구운 김을 대령했다. 김에 싼 참치를 기름장에 찍어 입 안에 넣자 부드럽게 뱃살이 녹아내렸다. 혹자는 참치 본연의 맛을 헤친다고 싫어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역시 참치는 김에 싸 먹는 것이 정답이지.’

간장에 찍은 회에 무순을 얹고 삼합처럼 말아 먹자. 비린내가 싹 가신다.

생선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하는 모습에 이억수가 해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 특이하게도 먹는구먼. 초밥도 아니고 그게 그렇게 맛있나?”

“꽤 맛있습니다. 한번 드셔 보겠습니까?”

“됐네. 나는 이걸로 족해.”

이억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는 젓가락으로 뱃살을 콕 집었다.

촘촘하게 마블링이 진 뱃살을 눈높이에 올린 채로 빙글 돌리던 녀석이 입에 뱃살을 넣고는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만족스러운 듯 뱃살을 삼킨 이억수가 냅킨으로 우아한 척 입술을 닦았다.

“근데 이런 걸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뭐, 후발 주자이기는 하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네. 이건 일본 신리쿠 해역 쪽에서 잡은 참치일세. 거기 막역한 지인이 있거든. 덕분에 수산업체를 차리는 데 득 좀 봤지.”

“그쪽은 외국인 어획 쿼터가 거의 없는 걸로 아는데. 수완이 나름 좋으시군요.”

배꼽살을 입에 넣은 강태준이 칭찬하자 이억수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허허, 세상에 불가능은 없지 않나. 강 사장도 사업 수완이 좋더군. 요새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더군.”

“운이 따른 거지요.”

“운도 실력일세. 다만. 이번 일은 좀 유감스러웠어. 회사 기물을 파괴하고 폭력을 사주하다니. 아무리 사업이라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겠나?.”

“시작을 먼저 한 게 누군데요. 밥줄을 건드는데 가만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죄다 때려 부수라고 시켰나?”

강태준이 약간 숨을 고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리 있나요. 우리 백경출판 김 국장이 충성심이 과해서 벌어진 일일 뿐 우발적인 사고입니다. 그쪽도 설마 천하의 이 사장님께서 추잡하게 아동도서를 짝퉁으로 만들어서 팔라 명하시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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