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포장마차
무슨 마술사도 아니고 그냥 뚝딱 만들어 달라니. 누런 광목으로 손수레 윗부분만 겨우 가려 운영하던 시절이니만큼 그런 요구사항이 난감할 법도 하다.
“요구사항이 까다롭군요. 안전 문제도 있고 술 취한 고객이 테이블을 심하게 흔들면 뒤집힐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고민일세. 인력거처럼 끌기 편하면서 수납도 쉬워야 한다니. 돈 주면 나도 잘 만들어 보지. 그러나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그래?”
“그래도 말씀하시는 걸 보면 용케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신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은가. 꿈보다 해몽이 먼저니 대충 끼워 맞춰서 구현해 봤네.”
최달건이 가져온 물건을 보니 뭔가 낯익은 느낌이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일본 야시장에서 봤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오? 이건 야타이 아닙니까?”
“야타이라고?”
“네 일본식 포장마차 말입니다. 시모노세키항에 기항했을 때 봤던 건데 타코야끼 파는 노점상이 꼭 이렇게 생겼죠. 자네도 기억하지? 재갑이?”
오재갑도 익숙한지 아는 척을 했다.
“예. 가라토시장에서 봤던 거군요. 복어 모양 풍등을 달고 영업하는데 다 똑같은 규격이더군요. 꽤 인상 깊어서 기억합니다.”
“오, 그래? 그럼 구체적으로 알려 줄 수 있나?”
“아, 대충 이렇게 생긴 겁니다.”
기억을 더듬은 오재갑이 연필을 들더니 슥슥 그림을 그려 주었다. 평소 해도 작성을 하거나 생선들을 취미로 스케치하던 실력이 어디 가지 않아서인지 그림 실력이 상당했다.
잠시 후 지붕이 달린 포장마차에 그림이 완성되자 최달건이 신기한 듯 도면을 살폈다.
“오, 이건가? 제법 잘 그리는데 옆에 있는 물건은 풍등인가?”
“예. 일단 테이블은 전후좌우로 대충 6인 이상 앉을 정도의 크기 움직일 때 반으로 접히도록 만들었더라고요.”
“이런 구조라, 대충 감이 오는군. 근데 그 정도 크기면 사람 두 명은 눕힐 너비 아닌가. 테이블 가격이 만만찮겠는디.”
까칠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최달건의 모습에 강태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뭘 걱정하고 그러십니까. 가격이 부담된다면 통짜 원목 판재 대신 집성목으로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단가 걱정은 없을 거 같은데?”
“흠, 집성목이라 그거 괜찮구먼. 강 사장이 구해 준다면 만들어 보지. 그보다, 아래 수납장은 미닫이 구조로군.”
“네. 그때 언뜻 본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하부 수납장은 대부분 레일 형태로 쉽게 열리도록 하여 확실히 쓰기에 편리하더군요.”
“흠. 그렇게 하면 공간 활용이 되겠는데? 먼지도 덜 먹고 편리하겠어.”
“네. 일단 박스랑 선반도 따로 달아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식기류 놓을 수납공간이 필요하잖습니까?”
최달건의 눈이 도면 아래쪽을 살폈다.
“바퀴는 어떻게 할까?
“그건 오토바이나 차량 바퀴를 그대로 달아 주면 될 거 같습니다. 마침 카발수리소 쪽에서 오토바이용 폐타이어들이 꽤 남아 있다고 하니 제가 구해 오지요.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환기입니다.”
“환기라고?”
“카바이드 등을 쓰면 냄새가 지독할 테니 함석으로 환기통을 만들어서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먹는 장사하는 데 냄새가 나면 좀 그렇잖습니까?”
“아 그렇구만. 그 부분 참고하지. 그럼 일단 하부 뼈대부터 잡아 주는 게 좋겠군. 바로 시작하겠네. 그럼.”
여러 의견을 종합해 스케치를 수정한 최달건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큼직한 오토바이 바퀴에 쇠 파이프로 축을 만들어 장착하고 진열장과 테이블을 만들어 구겨 넣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함석으로 덮어씌운 환기구를 달자 제법 그럴싸한 물건이 완성되었다.
“다 끝난 겁니까?”
“대충은. 일단 인력거처럼 끌 수 있게 만들긴 했는데 어떻게 유용할지는 모르겠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달건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둥글게 군용텐트를 씌운 천장 아래로 카바이드 등이 환하게 빛을 내뿜자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밝은 빛과 함께 추운 날 더운 입김처럼 뿜어진 연기가 위로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지붕이 달려서 뭔가 아늑해 보이긴 하군요. 근데 수납장 문이 너무 작아 보이는데. 한쪽만 열게 되어있어서인지 좀 답답할 거 같은데요?”
“걱정 말게. 이렇게 들어 올린 다음 앞으로 잡아당기면 문이 통째로 빠지는 구조지. 문을 빼면 큰 물건을 넣을 수 있게 만들었지.”
“오. 꽤 유용하군요.”
ㄱ자로 된 접이식 식탁 다리 역시 꽤 튼튼했다. 강태준 일행이 묵직한 상판을 두드려 보거나 시험 삼아 몇 명이 올라가 봐도 끄떡없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술꾼이 깽판 치고 드러누워도 문제없겠습니다.”
“누가 만들었는데? 거 햄머로 두들겨 때려도 쉽게 안 부서질 걸세.”
“에이 구라는. 형님. 그건 좀 아니죠.”
“머, 여하튼 무쟈게 튼튼하다 이거야.”
“그보다 이왕 만든 거 마크도 달아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문양이 없으니 좀 밋밋해 보이는군요.”
“마크라? 어떤 게 좋겠나?”
“어묵 파는 포차니 고래 문양은 어떻습니까? 좀 더 있어 보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회사 어묵도 백경어묵 아닙니까. 아무래도 자주 보면 사람들한테 각인돼서 좋을 거 같아요.”
“뭐, 그 정도야 껌이지. 바로 반영하겠네.”
홀연 등장한 접이식 포장마차는 생각 이상으로 큰 반향을 얻었다. 손수레를 개조한 조악한 물건에서 음식을 팔던 사람들은, 깡통 간드레를 달고 지붕까지 있는 포장마차는 눈길을 끌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수익률을 올리려면 숯도 아무래도 자체 공급하는 게 더 좋겠네.’
포장마차에서 모티브를 얻은, 강태준은 숯도 자체 제작하기로 했다. 숯이랑 조리용 화덕은 제주의 옹기 장인인 반삼평 노인에 의뢰했다. 마침 옹기 제조를 늘려 나가는 터라, 조리용 화덕 제작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쓰다 버려지는 2등급 숯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만큼 별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강태준은 포차로 나갈 요리 재료까지 따로 엄선했다. 오징어튀김용으로 나갈 반건조 오징어, 참새구이, 간 천엽에, 소금 뿌린 꽁치, 양념 꽁치에 닭발까지. 판자촌이 무너져 일자리를 잃은 시장 상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싼값에 영양과 맛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에 포차는 이재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 갔다. 이어 강태준은 최창렬 사장과 뜻을 모아, 재해 구호 협회를 창설하고 부산 지역 유지들과 기업가들을 찾아다니며 수재 지원 동참을 호소했다.
“복구 작업을 위해서는 지금 이 상태로는 불가능하고 거국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재 지원에 나서 주셨으면 합니다.”
“뭐, 우들이 뭐 도울 수 있는 게 있나?”
“우리도 피해가 커서 쉬이 움직이기 어렵군.
성금 모금 주도를 위해 모인 자리였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최창렬의 이름값 덕분에 초대에 응하기는 했지만, 지금같이 피해를 본 상황에 지원금을 쾌척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던 것이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최창렬이 난감해하는 모습에 마침내 강태준이 앞으로 나섰다.
“자자, 여러분. 사실 이번 일은 단순히 저희 부산 상인들에게 희생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경기가 빨리 회복되면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저희가 아닙니까. 무엇보다 미군부대 쪽에서 얼핏 들은 이야기로는 수재 복구가 늦어지면 인천항 쪽으로 ECA 물자 입항이 추진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뭐라?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인천항 쪽 항만 시설이 다시 복구되었으니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애초에 저희 부산이 이렇게 발전한 것도 사실은 전시 특수로 인한 반사이익 덕이니까요.”
미군정 철수 직후 전쟁으로 항만을 비롯한 주요 시설이 4할 가까이 파괴된 인천은 전시 기간 제1 항구로서 지위를 박탈당했다. 전란으로 인하여 중앙정부가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모든 ECA 외자선과 우방국 원조가 부산항에 집중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전쟁 발발 겨우 일주일 전에 인천항 자유 노조의 노력으로 ECA 물자 입하가 인천 쪽으로 결정되었다가 전쟁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서울이 수도로서 기능을 회복하면서 수출입 물동량을 다시 가져오기 위한 인천시의 분투는 실로 눈물겨운 수준이었지만 반대로 부산 상인들이 심각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거 확실한가?”
“인천항 자유 노조 쪽에서 엄청나게 공을 들인다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복구가 늦어져서 이대로 저쪽에 빌미를 준다면 어떤 꼬투리를 잡힐지 모르지요. 설마 그걸 바라시는 건 아니겠죠?”
“허튼소리. 절대로 그렇게는 둘 수 없지.
“하모. 도울 게 있으면 도와야지 우들 모두 부산이 터전 아닌가?”
손바닥처럼 태도를 바꾸는 상인들의 행동에 어이없어하는 최창렬. 하지만 강태준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다시 말했다.
“이렇게까지 헌신적인 분들이 많을 줄은 몰랐군요. 그럼 자자 우리 재량껏 필요한 물품을 각출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참에 구체적인 기부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그걸 굳이 리스트까지 마련하는 건 좀.”
“그라지. 그건 아무래도 그건 좀 부담스럽지 않겠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지 않나?”
“투명성을 재고하기 위해서라도 구호품 리스트는 마련해 두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시민들도 누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알아야지요. 이번에 모은 수재 의연금은 시청과 협의해서 부산 관구 사령부 쪽으로 기탁할 예정입니다.”
“뭐? 그 무슨 소리야?”
“우리 동의도 없이 기탁이라니.”
“워워. 흥분하지 마십시오. 기부는 어디까지나 자율입니다. 중간에 빠지시겠다면 좀 유감이겠지만요.”
쐐기를 박는 말에 표정이 구겨진 상인들. 서로 돌아보는 상인들이었지만 눈치만 볼 뿐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문민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나 전후 군부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한 수준.
이쯤에서 혼자 빠진다고 하는 건 안 좋은 인상 정도가 아니라 향후의 사업 진행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컸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심익태와 이원석과 같은 이름난 지역 유지들 역시 수해 복구를 위해 사재를 기꺼이 내놓았다.
신안의 이중혁도 엄청난 양의 구호 물자를 보냈다. 그렇게 각지에서 성금이 모여들면서 복구 작업은 빠르게 진전되었다.
* * *
비슷한 시각, 춘천의 어느 한 군용 천막 안. 6관구 사령관인 박정명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부산 군수 기지 사령부로 발령받기 직전 인수인계 과정에 있었던 중에 수해가 터진 것이다.
사흘 밤낮으로 수해 피해 현장을 점검하고 복구 작업을 직접 진두지휘한 터.
회의를 주재하는 박정명이 퀭한 눈으로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경남지역 수재민 복구 작업 진행 상황은 어떤가?”
“붕괴된 지역이 너무 광범위합니다. 일단 주요 도로와 공공시설물은 긴급 복구 중이지만, 전기와 통신 시설은 아직 두절된 곳이 많습니다. 현재 전력 3사와 협력업체 직원 3천여 명이 투입돼 긴급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만 주요 라인이 얼추 복구되려면 최소 보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관인 정오근의 말에 박정명이 마땅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최소 이주라니, 그건 너무 늦지 않나?”
“부산과 경남지역을 관통하는 송전 철탑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진 관계로 복구 과정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붕괴는 국지적인 수준이라 복구가 가능하지만 정상화까진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최대한 앞당기게. 추가로 마산 쪽에 기동 복구반을 보내. 붕괴된 철탑부터 손을 봐야지. 지금 우선순위가 뭔지 모르나.”
“예? 인력이랑 중장비가 부족합니다. 이미 3개 연대가 재해 복구에 투입된 상황입니다…….”
“이 사람 보게. 복구 작업을 군인만 하나? 일전 경찰청장과 행정 관서 쪽에 협조공문을 보내면 되잖은가? 지역민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지. 부족한 부분은 철거업자들 불러 외주라도 주게나. 비용은 일단 외상으로 하고.”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듣기로 혹여 케이블을 절단해 팔아먹거나 전기 훔치는 놈들이 있다더군.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단단히 일러두라고. 누구라도 그런 놈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
“예. 감시를 철저히 하도록 명해 두겠습니다.”
그렇게 민관이 합쳐 복구 진행에 애를 쓰는 동안에도 잡음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나라 살림이 어려운 와중에도 생필품을 사재기하거나 가격을 올려 이권을 챙기려는 자들이 득실거렸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