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90화 (90/361)

90화 군납 계약

“끝내주네요.”

“이 건물터 매입하느라, 고생 좀 했겠구만?

“땅 주인께서 끝까지 안 판다고 하여 웃돈 주고 상당히 노력 좀 했지요. 그럼 자, 식사는 뭘로 하실까요?”

메뉴판을 보던 김필중이 옆으로 바턴을 넘겼다.

“메뉴 종류가 많아서 고르기가 쉽지 않구먼. 강 선장이 추천하는 걸로 하지.”

“어디 보자, 마침 이번에 잡은 다금바리가 있는데 그걸로 하시겠습니까?”

“다금바리? 그게 뭔가?”

“자바리랑 비슷한 놈인데 흰살생선 중에서 으뜸으로 치죠. 제주도에서 이번에 실한 놈을 낚았거든요. 귀한 녀석입니다.”

“오 그래? 함 시식해 볼까?”

창가 쪽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안쪽에서는 조리 준비에 들어갔다. 갓 잡아 올린 생선을 바로 썰어 낸 안연복이 곧바로 상을 올렸다.

“오오…… 이게 뭔가?”

“오른쪽에 놓은 것은 껍질이고 그 옆은 간입니다. 오톨도톨한 식감이고요. 간도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껍질이 꼭 광어 같구만. 그럼 먹어 보겠네.”

젓가락으로 들추어 보니 투명한 살이 탱글탱글하다.

연분홍빛의 살점을 입에 넣자 두툼한 식감과 함께 다금바리 특유의 향이 가득 퍼진다.

소스 없이도 은은하게 느껴지는 감칠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눈을 감은 채 생선회를 음미하던 김필중이 맛을 품평했다.

“굉장히 깔끔 담백하군.”

“살점이 쫄깃한 게 맛이 달군요. 비린내도 전혀 없고. 이거 소주가 땡기는데요?”

“이런 자리에 술이 없을 수가 없지. 어이, 강 사장 여기 술 없나?”

“물론 있지요. 여기 쓸개주 대령입니다.”

“오오. 센스 좀 보시게.”

소주와 함께 회를 먹고 있노라니 스끼다시가 연달아 나온다.

통째로 한 마리 구운 도미구이에 지글지글 철판에 익은 대합, 그리고 갓 따서 올린 생굴까지.

바다향을 머금은 굴을 쪼로록 빨고 나니, 고춧가루를 넣어 칼칼하게 끓인 매운탕이 나왔다. 생선 머리가 들어간 탕은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

국물 맛을 본 설인모가 감탄을 연발했다.

“이야, 맛이 기가 막히는구만. 맵지 않고 매콤한 게 딱 내 취향이야.”

“그러게. 확실히 군에서 먹는 음식이랑은 질적으로 다르구만. 김치 맛도 일품이고. 이런 양품을 어디서 구했나.”

“고춧가루가 좋아서 그렇죠. 무안에서 외가에서 농사를 짓거든요. 거기서 10~12일간 말린 태양초 중에서 품질이 제일 좋은 걸로 엄선해 온 물건입니다. 와송에 홍미를 섞어서 단맛을 올렸습니다.”

“그래, 이런 게 진짜 음식이지. 왜 우리 부대 고춧가루는 그리 밍밍한지 모르겠어.”

“그거야 군납업자 새끼들이 중간에 후려쳐서 그렇죠. 저번에 25사단 쪽에서 크게 일 한 번 터지지 않았습니까?”

설인모의 말에 채인철 소령이 기억난다는 듯 마주 받았다.

“아. 그때 난리도 아니었죠. 사단장 불려 가고 장난 아니지 않았습니까. 위에서 찍어 누르려다 일이 커지는 바람에 몇 사람 골로 갈 뻔했습니다.”

“크크 그거. 박남준 중령님께서 한 성깔 하시는 분인데. 그걸 모르고, 다들 잘못 건드렸지 그래.”

25사단 참모장이었던 박남준 중령의 이야기였다. 전쟁이 끝나고 전후 혼란기에 박남준은 25사단 71연대장으로 부임했다. 훈련 성적이 꼴찌였던 25사단은 1군 단 산하의 골칫거리였기에 박 중령에게 해결사 역할을 맡긴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렇게 박 중령님 부임 후 첫 임무가 월동 준비였는데, 다들 훈련 후에 식사에서 김치를 남긴 거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이상함을 감지한 박남준이 현장에 나가 보니 산처럼 쌓인 고춧가루 포대에서 전혀 매운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 양동이에 포대를 넣어 확인해 보니 충격적인 진상이 드러났다. 멀쩡하던 맹물이 시뻘겋게 변해 버린 것이다. 놀란 박남준이 양동이에 팔을 넣어 보자 고춧가루 대신 톱밥이 잡혔다. 노발대발한 박남준이 책임자를 꾸짖었다.

“이런 걸 병사들에게 먹여? 대체 책임자 누구야?”

“저…… 접니다만…….”

“아니, 이 새끼야. 병참 장교라는 놈이 군수품이 멀쩡한지 확인도 안 해? 이걸 누구 아가리에 처넣으려고?”

화난 박남준은 곧장 병참 장교를 해임하고, 직후 사건의 진상을 사단장에게 즉시 보고했다. 하지만 상부의 반응은 걸쩍지근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군납 비리입니다. 군납 비리. 장병들 전투력 재고를 위해서라도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봐,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지. 납품업자가 문제 있는 건 맞지만 지금같이 민감한 시기에 사건을 키워서 득 될 것이 없어.”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고춧가루를 제대로 납품하겠다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마무리하자고.”

그러나 그건 박남준을 너무 무시한 처사였다. 김필중이 박 중령의 행동을 흉내 내며 말했다.

“선배님도 대단하지. 그래서 다음날 군수업자가 찾아왔더니 군수업자 면전에서 권총을 겨누면서 그랬다지 뭔가. 이 민족의 반역자 새끼! 그 더러운 돈 가지고 꺼져!”

“캬, 대단하구먼요. 그거야말로 군인 정신의 표본 아닙니까.”

“그래, 그게 참군인이지. 전략의 힘은 자원의 보급과 배치에서 나오는 법. 밥부터 잘 먹여야 잘 싸울 것 아닌가. 그 덕인가 다음 해 25사단은 역대 최고 점수를 맞았다는군. 그런데 박 중령께서 나설 때까지 윗선들은 뭐 했나? 일선 군인들 고춧가루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해 준 게 있는가? 시대착오적인 정신론이나 씨부리고 말이지.”

술로 기분이 고조되었는지 울분을 성토하는 김필중에 정보과 채 소령이 담담히 말을 받았다.

“다 한 통 속이었으니까 그렇죠. 설마 군납업자 혼자 먹었겠습니까?”

“그러니깐요. 다들 정치질하느라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모양이니, 이러다 나라가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군내 부패 문제는 하루 이틀 반복된 문제가 아니다. 변재영 장관을 비롯해 윗선의 묵인하에 장성들과 고위급 장교들은 원조한 무기와 군수품을 팔아 부정 축재를 하는 반면, 권력에서 거리가 먼, 하급 장교나 군속은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근근하게 살아가기만도 바빴다.

전쟁으로 군부 쪽이 국가 예산의 40프로를 차지하고 있는 마당이니만큼 부패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다. 이야기가 민감한 쪽으로 흘러가자 눈치 빠른 강태준이 술잔을 돌리며 슬쩍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래도 요샌 눈치를 보는 편이라던데요. 아무래도 대선이 임박한 마당이니, 정부로서도 책잡히기 그렇겠죠.”

하지만 코끝이 빨개진 김필중은 여전히 시니컬한 어조였다.

“허허, 갸들이 국민 눈치 보는 놈들이었으면 애초에 아무 문제도 없었어.”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죠. 듣자 하니 이번에 박정명 소장께서 부산 군수 기지사령관으로 부임하신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 박남준 중령님께서도 2군수 기지 인사 과장으로 오실 예정인가 보더군요. 그럼 좀 부패도 개선되지 않겠습니까?”

이어지는 설인모의 말에 소주를 말던 채 소령이 다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박정명 소장님이요? 이번에 육군 제6 관구 사령관으로 보임하신 지 얼마 안 되셨잖습니까?”

“이 사람 보게. 소식이 왜 그리 늦나. 최근에 제2군 사령부를 완전히 개편하면서 군수물자를 총괄하는 제2 군수 기지 사령부를 새로이 창설한다는 말. 못 들었나?”

“에?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전쟁도 끝났으니 그간 미뤄 왔던 군축을 단행하겠다 소리겠지. 군수물자와 관련해서도 대대적인 수술이 있을 테고…….”

“오, 그럼 김 중령님께서도 참모부 쪽으로 가시겠네요.”

“아마도 십중팔구 그렇게 되겠지.”

박 소장의 조카사위인 입장에서 당연히 따라가는 게 인지상정.

어쩌면 박 소장 입장에서 보면 가장 믿을 만한 패가 아니겠는가.

인사와 관계된 소식에 군인들의 귀가 쫑긋하자 설인모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호오. 그럼 우리 김 중령님께도 힘이 실리겠군요. 이거 잘 보여야 하나?”

“그럼 저도 같이 가면 안 됩니까? 중령님.”

“인철이 넌 또 왜? 그쪽 보직이 적성이라며?”

“아이구, 다 아시면서. 제가 우리 중령님 오른팔 아닙니까.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꽈배기처럼 몸을 꼬는 채 소령에 눈을 흘긴 김필중이 정수리에 꿀밤을 먹였다.

“생각하는 게 고작 그 정도냐…… 벌써부터 인사 청탁이냐. 싹수가 노래가지고.”

“아니 왜 그러십니까? 섭섭하게.”

“시끄럽다, 뒤에서 짬 처리하는 곳인데 편하겠나. 얼마나 지랄들일지. 앞으로 시달릴 거 생각하니 벌써부터 잠이 안 와.”

억울한 얼굴의 채 소령이 머리를 딱밤을 맞은 곳을 문지르자 설인모가 잔을 들며 말했다.

“하하. 큰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죠. 아 생각해 보니 마침 군납업자랑 계약 기간도 끝나가지 않습니까. 이참에 군납 업체 몇 곳도 갈아 치우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 솔직히 올해 먹어 본 김치 중에 여기게 제일 맛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사실 군용 김치는 좀 꺼림칙했거든요.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해져서 말입니다.”

“그 말이 맞지 말입니다. 먹다 보면 병날 거 같아서 저도 피하는 편입니다.”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의 동조에 술잔을 기울이던 김필중도 고개를 끄덕였다.

“먹는 걸로 투정하는 건 사치겠지만, 그건 나도 동감하는 바일세. 군 장병들의 전투력 재고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식사가 있어야 하지 않나. 강 사장, 내친김에 물어보지. 군납 쪽에 생각 있나?”

“기회만 주신다면 감사한 일이죠. 다만 저희가 쓰는 업소용은 단가도 비싸고, 생산 물량도 적어서…… 대량 공급은 좀. 그것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도 괜찮겠습니까?”

“어느 정도인데?”

“최상급은 아니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물건과 비교하면 중등품 이상은 됩니다.”

강태준의 솔직한 대답에 김필중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 나는 강 사장을 믿네. 설마 자네가 날 속이겠나. 우리가 보통 사이도 아니고. 무려 함께 싸운 전우 아이가.”

“그렇죠. 축구 잘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지요.”

“아니, 그건 처음 듣는 말인데, 어디서 나온 소립니까?”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뭘 그렇게 따지고 그래. 자 술이나 더 마시게”

왁자지껄하게 마신 장교들을 보내고 난 지 얼마 후, 강태준은 예정대로 군납용 고춧가루를 대령하기로 했다.

품질을 확인한 김필중이 기존 업자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자, 뒤늦게 거래처가 변경된 것을 안 기본 납품업자들이 격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김필중이라는 사람은 그리 만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군 정보장교 출신인 김필중은 그간 군납업자들이 저지른 비리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횡령으로 줄줄이 구속된 업자들이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되자 토를 다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납품하게 된 고춧가루 물량은 1차가 무려 3,000인분. 대략 2톤 정도.

무안에 있던 고추 농가들을 대표해 강태준의 외삼촌이 정기 납품 계약을 맺었다.

군에서는 농가와 계약 재배 방식으로 좋은 품질의 고추를 안정적으로 수매할 수 있고, 농민들 쪽에서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제공받을 수 있으니 서로 윈윈(Win-win)이었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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