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입어 허가
마침내 밴 캠프사에서 한국의 사모아 입어 허가서를 발주했다.
심 사장은 하네다 공항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엘링턴 부사장의 손을 마주 잡고는 고마움을 표했다.
“그간 노고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나 말고 강 항해사에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아, 좋은 소식을 알려 드리자면 계좌로 30만 달러 입금했소. 톤당 500달러씩 산정했고, 나머진 어구값과 약속한 투자금을 포함한 금액이오.”
통장에 찍힌 액수를 받아든 심상준은 희열에 찼다. 이번 한 번의 출항으로 단번에 지금까지의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은 금액을 번 것이다. 해외 출장에서 복귀한 강태준 일행은 곧장 영도에 자리 잡은 대한 조선 공사로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했다.
사모아 출어를 앞둔 지평호가 MRO(수리 보수) 작업을 하며 한창 열기를 내뿜는 사이, 양 선장이 꽹과리를 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목소리가 부둣가에 울려 퍼졌다.
“자자. 참치조업 수당이랑 보합금 지급한다고 하네, 빨랑들 경리과로 가 보이소.”
“조업 수당이랑 보합금이 벌써 나온다고……!!!”
“그래 얼렁얼렁 들어오라고. 늦으면 국물도 없으니!”
28명의 선원은 직급과 고과에 따라 적게는 600달러, 많게는 3,000달러 정도까지 조업 수당과 보합금을 수령했다. 거의 마지막이 된 강태준 차례 강태준에게 나온 조업 수당과 보합금은 무려 오천 달러가 넘었다. 깜짝 놀란 강태준이 심 사장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좀 많군요. 계산 착오신 것 같은데요?”
“착오가 아닐세. 김정욱이 몫까지 포함이야. 양 선장이 말하길 이번 일은 자네 공이 크니 특별히 추가 포상금을 주는 게 어떤가 하더군. 다른 선원들도 동의했으니 이건 전적으로 자네 몫일세.”
양 선장의 대답에 선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강태준이 멱살 잡고 하드캐리한 상황이 아닌가.
갑판장인 염일우가 추임새를 넣었다.
“뭐 강 항사가 이번에 고생이 많았지 그래…….”
“그려, 이번 캠프사와의 협상도 초사공이 크지 않소? 겸양할 필요는 없소.”
선원들의 대꾸에 강태준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양 선장이 익살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능력자는 예우하는 게 원칙이지 대신 다른 데 스카웃되서 갑자기 도망가지 말라고.”
“에이. 무슨 소리. 가는 건 좋은데 나도 좀 데려가쇼. 그때는 내 강 항사 밑에서 꿀 좀 빨게.”
“형님. 형님 선장 되면 전 무조건 합류 1순윕니다. 제 자리부터 챙겨 주시는 거 아시죠?”
농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히히덕거리자 양 선장이 서운한 척을 했다.
“아니, 이 녀석들이, 벌써부터 줄서기야? 나는? 나는 보이지도 않나?”
“허허, 선장님 원래 인생은 냉정한 법 아니겠습니까?”
“저야 형님 편이죠. 당연히. 다만 우리 태준이랑 선택하라면 그건 좀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농을 하는 것이 훈훈하기 짝이 없다. 양 선장이 악수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선장님.”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일등 항해사.”
* * *
1959년 5월. 대양은 특유한 청록색으로 뒤덮였다.
바다의 물결은 동부 앞바다에서 0.5m 정도. 파고가 낮고 잔잔한 하루.
고기압의 영향으로 쾌청한 날씨에 하늘은 수채화로 채색한 듯 맑은 가운데, 차양을 설치한 선원들이 갑판 위에서 한가롭게 장기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정식으로 일등 항해사가 된 강태준의 촉감은 오로지 바람에 가 있었다. 무슨 바람이 초속 몇 미터로 부는가, 방향이 어떤가.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바다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항해사의 일과. 너울과 습기가 밀려가고 떠오른 태양빛이 온 하늘과 바다를 물들일 즈음, 지평선 너머로 익숙한 등대가 어슴푸레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캡틴 이제 곧 부산이 코앞입니다.”
“벌써 인가? 근 10개월 만이로군. 감개무량하이.”
부산을 떠난 이래 꼭 10개월 현해탄을 건너온 지평호는 동해 어귀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모아에서 조업을 마감하고 귀국길에 오른 지평호가 당초의 조업 기간을 단축해 조기 귀국을 결정한 것은 전적으로 선박 기관 고장으로 사정이 좋지 않았던 까닭.
하지만 양 선장의 얼굴은 그런 사정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밝아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심 사장님께서 많이 아쉬워하겠는데요?”
“우리는 할 만큼은 했지. 여기서 더 공을 바라면 그건 양심이 없는 것이 아니겠나.”
“크으. 선장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항상 노력만 강조하시던 분 아니셨습니까?”
갑판장인 염일우의 말에 양 선장이 허허 웃었다.
“그거야, 서로 좋자고 하는 이야기지. 일을 빡세게 해야 돈을 벌 게 아닌가. 바다는 일한 만큼 돌려주는 곳이지. 바다는 게으른 사람에겐 공평하게 불친절한 법일세.”
“크으 명언이군요. 그건 꼭 적어서 나중에 아들한테 말해 줘야겠습니다. 그보다 이제 마누라 얼굴이 보고 싶네요.”
시험조업 성공 직후 갑판장 염일우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예식을 마쳤다.
출항한 첫 달. 덜컥 전문으로 임신 소식이 전해진 다음부터 그는 완연한 공처가가 다 되어 있었다. 항상 싱글벙글한 모습에 양 선장이 그를 놀렸다.
“어디 노총각들 앞에서 신혼 얘길 꺼내나? 거 눈꼴사나워서 못 보겠군.”
“임마. 좋을 때도 한순간이다. 거 몇 년만 더 지나 보시구려.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질 테니.”
“허허. 부러우면 부럽다 하시죠. 괜한 심술부리지 마시고요.”
“심술은 무슨. 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나오는 조언이지.”
다들 한마디씩 떠드는 것이 활기가 넘친다. 사모아에서 돌아오는 지평호 선원들은 흥분된 마음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계약 기간을 생각하면 복귀가 빨랐지만, 선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정이 고조되어 있었다.
조기 귀국에도 선원들의 마음이 가벼운 것은 성과를 기록한 덕택이었다.
사모아에서 꼬박 열 달간 지평호는 만선만 무려 6번, 총 600여 톤을 낚아 올렸다.
밴 캠프사에서 구매에 난색을 표하는 어종 일부가 섞여 있기는 했지만, 초행길에 배 한 척으로 그렇게 엄청난 어획고를 기록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런 괄목할 성과를 거둔 것은 강태준의 탁월한 혜안 덕이 컸다.
- 고기잡이는 운이 아니라 과학이다.
뭘 모르는 사람은 수덕이 좋았다 폄하하지만, 풍어는 단순히 운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강태준의 신념이었다. 조업의 성공은 운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법. 출항 전 해도를 면밀히 검토한 강태준이 조업지로 점찍은 장소는 쿡 제도 옆에 있는 미국령 사모아였다.
물론 처음에 그 말을 들은 양재문은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서경 130도? 거긴 기존의 어장보다 한참 동쪽 아닌가?”
“예. 현재 일본 어선들의 주 어장은 미크로네시아 일대지요. 하지만 우리는 다른 어장을 택해야 합니다.”
“아니, 멀쩡한 어장을 두고 어째서 다른 지역을 택하라는 건가? 어황이 좋은 곳을 놔두고 무리를 할 이유가 없지.”
“아무리 좋은 어장이라도 70여 척이나 되는 배가 한꺼번에 조업한다면 박 터질 노릇이죠. 초행길인 지평호는 눈칫밥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혼자고 저쪽은 집단입니다. 뭣보다 일본 놈들이 어황 정보를 제때 줄까 의문이고요.”
하루 3번씩 정기적으로 어황 교신이 있지만, 그건 식사를 마친 육식동물이 남은 고기를 양보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강태준의 보고가 못 미더운 듯 양 선장이 곧바로 반박했다.
“조업 상 불리한 점이 있다는 건 이해하네. 하지만 우리 배의 성능은 절대적으로 우수하네. 일본 놈들 배야 노후한 목선이 대부분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일본 어부놈들에겐 저희가 없는 장점이 있죠. 벌써 한 지역에서 10년도 넘는 조업 경험을 가진 베테랑들이라는 거요. 똥개도 제집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는데 무려 10년입니다. 아무리 배 성능이 딸려도 짬빱은 무시 못 합니다. 게다가 저쪽에서 불청객을 반갑게 환영할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확실히 그렇긴 하지.”
“예. 왜놈들 꽁무니만 쫓아다녀 본들 성과가 날 리 만무합니다. 먹다 남긴 뼈다귀나 주워 먹느니 차라리 경쟁자가 없는 곳을 택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이왕 조업을 하려면 일본놈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줍시다.”
강태준은 그동안 측정한 해수 온도며 그간의 조업 실적을 근거로 들어가며 집요하게 양 선장을 설득했다.
강태준의 논리에 압도당한 양 선장은 결국 일본 어선들이 운집한 어장을 버리고 동쪽 어장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한국 어선이 조업하러 온다는 말에 초긴장했던 일본 배들이었지만 며칠이 지나도 한국의 조업선이 예정지에 나타나지 않자 내심 안도하면서 흉을 보기 바빴다.
“그 한국 놈들은 대체 어디로 샜나?”
“듣자 하니 여기가 아니라 새로운 어장을 찾아본다나 봐.”
“정말인가? 해역 지리도 제대로 모르는 녀석들이 패기 하나는 좋구먼.”
“그러게 말일세. 누군 바보라서 여기서 노는 줄 아나. 콱 박지 않으면 다행이지.”
“냅 둬, 거 경쟁자 한 명 제꼈군.”
하지만 그런 비웃음이 무색하게 강태준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하필 그 시기의 남태평양 일대는 엘리뇨의 여파인지 난데없는 수온 변화로 인해 조업 불균형을 맞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부랄, 요즘 새끼참치 한 마리 제대로 구경할 수 없으니 도대체 어찌 된 거야?”
“거기, 타이케 요코하마호. 거 참치 떼 구경 좀 했나.”
“그럴 리가. 요사이 매번 물방이라 근 한 달째 죽치고 있소이다.”
어황이 갑작스레 불안정해지자 일본 조업선들은 뜀박질만 하며 여기저기 몰려다니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배가 잡는다는 눈치만 보이면 우르르 몰려가 매번 어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 것.
나눠 먹을 것이 많을 때는 대충 배려 흉내라도 내던 선장들이었지만 조업 경쟁이 과열되니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일본선들은 지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경쟁자가 아무도 없는 동쪽 어장으로 향한 지평호는 물고기를 독식하며 유유히 만선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한 달 후 지평호는 처음으로 만선을 기록했고, 이후에도 순조롭게 만선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애써 우연으로 치부하는 일본인들이었지만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
몇 달 후엔 업자들 사이에서도 지평호의 실적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정도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일본 배들이 아집을 버리고 부랴부랴 동쪽 어장으로 향했지만, 그때는 어기가 지날 만큼 지난 뒤. 그사이 조업을 끝낸 지평호는 유유히 귀환길에 오른 것이다.
[축! 지평호의 귀환을 환영하며]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들이여. 복귀를 환영합니다!]
- 사모아를 정복한 우리 선원들이 지금 막 귀환하고 있습니다.
귀국을 앞둔 입항 부두는 환영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와오, 환영하러 나온 인사가 이렇게 많다니.”
“뭘 대단한 걸 찍는다고. 저거 방송국이랑 언론사에서 취재까지 나왔네요.”
“뭘 그렇게 놀라. 요란 뻑적지근하게 귀환 환영식도 준비했다고 하니. 이 정도로 놀랄 일인가?”
“진짭니까?”
“그럼, 내가 그짓말을 하나. 돈 잘 벌어 주는 놈이 갑이지. 허허.”
그도 그럴 것이 지평호가 올린 성과는 엄청난 듣는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조업량은 600톤. 어획량으로 20만 달러 이상의 어획고를 달성했으니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노릇. 게다가 12개월의 출어 동안 사고 하나 없었으니 그야말로 모범적인 성공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업 매출액을 생각하면 세인의 이목이 쏠리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