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니찌레이
헤어질 때쯤 대통령이 말했다.
“아무쪼록 애국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조업에 힘써 주게나. 자네들이야말로 투사야 투사!”
“명심하겠습니다.”
경무대를 나온 후 심 사장이 웃는 낯으로 강태준에게 언질을 주었다.
“각하께서 자넬 좋게 보신 모양이야. 자네한테 혹 공직 쪽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시더구먼. 책상물림 말고 자네 같은 진또배기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은 우리 핵심 인재라 빼 가면 안 된다고 사정했다네. 혹 뜻이 있었다면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게나.”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저 같은 사람은 공직보다는 바다가 더 어울리죠. 각하에게 잘 말씀드리셨습니다.”
“아무튼, 이제 사모아로 가서 도장 찍을 일만 남았군. 사실 어제 엘링턴 씨한테 연락이 왔는데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된다더라고. 도착한 참치의 품질이 아주 좋다고 말이야.”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일단 지평호가 첫 조업에 다랑어를 성공적으로 잡았고 앞으로 잡을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당초의 약속대로 지원하겠다더군. 확답이 거의 가시권인 모양일세. 자네들 공이 커. 이번 일은 내 절대 잊지 않겠네.”
심 사장은 내심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지난 수년 동안 고생이 물거품이 되지 않아서일까 긴장이 풀렸던 것.
그간의 고난과 마음고생을 아는 강태준도 내심 흐뭇했다.
하지만 그런 훈훈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안 비서? 혹시 엘린턴 사장한테서 온 연락인가?”
“네…… 그게 사장님 크게 문제가 터졌습니다.”
“무슨 문제?”
“일본 주간지에 벌써 지평호 소문이 퍼진 것 같습니다.”
아사히 신문 1면에 지평호의 귀향과 함께 대대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지평호 인도양 조업 성공, 한국 사모아 진출 가시권.]
[조선의 습격. 위기의 사모아 어장.]
밴 캠프사에서 한국 원양어선의 입어를 적극 검토 중이라는 말이 전해지면서 사모아 교민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니찌레이 농림수산성 수산청 차장도 일본 교민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이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격양된 반응이라고 전했다.
사모아 진출 1세대이자 UNEC 조정관 출신인 야마다 씨는 “일본의 혼이 무너졌다”라고 한탄했다.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조선 수산 개발사(朝鮮水産開發史)’를 집필한 요시다 게이치 박사 역시 이렇게 성토했다.
“일본 어선의 사모아 어장 진출은 전후 태평양 전쟁 초기, 당시 폴리네시아에 속한 남태평양 사모아 인근 해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참치 어장 개발로 얻은 귀중한 달러는 황폐화된 일본의 부흥 자금으로 쓰였고요. 관과 민이 합쳐 사모아 현지에 기지를 설치하고 통역사까지 상주시키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저희는 지금의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헌데 우리가 피와 땀으로 일궈 낸 어장을 아무 대가 없이 조선인들과 공유하라니 이게 대체 말이 되는 말입니까?”
도쿄도 다랑어 중도매인 협회장인 마사아키 회장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선박의 입어 허가는 일본 어선으로서는 대형 악재입니다. 수산 자원이란 한정적이고 우선 두 나라 배가 경쟁적으로 조업을 하게 되면 틀림없이 어자원 고갈 문제가 야기될 게 뻔하니까요.”
“사모아 어민들은 이번 하국의 조업 허가로 인해 양륙 물량이 급증하여 안정세를 유지해 오던 어가의 수급 균형이 깨진다면 공급 과잉으로 인한 어가 하락을 불러올 것입니다.”
어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해결책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의 현명한 해법이 기다려지는 상황이다.
이렇듯 요미우리를 필두로 한 일본 보수 언론과 마이니치와 닛케이 역시 한국 때리기에 편승했다.
평화선 구축으로 인해 고기잡이에 나섰다가 물경 수십 척이나 되는 배가 나포되는 등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일본인들로서는 자신들이 미리 선점한 사모아 어장으로 한국 어선이 들어오는 일이 달가울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사모아에는 약 50척에 이르는 참치 연승 어선을 출어시키고 있던 니찌레이와 미쓰비시사는 이 부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밴 캠프사가 한국 어선을 입어시킬 경우, 자기네들의 독점적 지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니찌레이 측은 초강경 자세로 나왔다.
급히 대책 회의를 소집한 가운데 니찌레이 사 대표로 나온 마쓰자키 부사장이 책상에 주먹을 강하게 치며 언성을 높였다.
“이건 조선인들이 우리 나와바리에 무혈입성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소. 이게 말이나 되는가?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폭거요.”
“미국인들도 너무한 건 마찬가집니다. 이건 완전히 상도덕에 반하는 행동 아닙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공급이나 품질 문제를 야기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지금껏 성실하게 조업해 온 우리들의 노고는 뭐가 되는 겁니까? 이건 우리를 견제하려는 비열한 수작입니다.”
“귀축영미라는 말을 벌써 잊었소? 미제 양키 놈들한테 무슨 예의를 바랍니까? 이건 우리 일본인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건 사모아의 경제적 가치 때문이었다. 당시의 사모아는 물 반 고기 반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앨버코 한 종만 낚아도 한 달이면 만선이 가능할 만큼 어획량이 풍부했다. 사모아에 거점을 둔 일본에서는 이런 황금어장에 터를 잡고 참치를 톤당 400달러가 넘는 가격에 납품하며 십수 년간 수익을 독식하고 있었다.
불과 1년 남짓 조업을 하면 일체의 경비를 제하고도 척당 3만 달러 이상씩 남았으니 노다지가 따로 없다. 그런 황금 어장을 타국과 나눠 먹을 생각일랑 조금도 없었던 니찌레이 측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우리가 개척한 어장을 나눠 먹으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어업 기지부터 지금까지 투자한 돈이 얼만데.”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맞불을 놓읍시다.”
“어떻게 말입니까?”
“한국이 사모아에 들어온다면 모든 선박을 철수시키겠노라고 통고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하, 하지만…… 단순 위협용치고는 과잉 대응 아니겠습니까. 그러잖아도 우리가 사모아 어장을 독식한다고 불편하게 생각하던 중인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미쓰비시의 대주주 가문이기도 한 이와사키 측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식품 전문 기업인 니찌레이사와 달리 미쓰비시는 조선, 자동차, 엔진, 전기등 사업이 여러 분야로 다각화된 상황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전범 기업으로서 해체 수순까지 밟았다 가까스로 통합한 것이 오래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미국을 상대로 강수를 두는 행동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만일 강짜를 놓았다가 덜컥 납품 계약이 파기되기라도 하면 아직 입지가 불안한 자기 입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지만 이와사키 히로야의 소극적인 태도에 니찌레이는 더욱 흥분했다.
“속 편한 소리를 하시는군. 그래서 미쓰비시는 보조를 맞출 수 없겠다는 소립니까?”
“유도리 있게 접근하자는 거지요. 당장 한국 어선 한두 척이 입어한다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저희 일본국이 자본력이나 질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인데요.”
“당장이 아니라 앞으로가 문제라는 거지요. 지금이야 고작 한 척이지만 앞으로 열 척, 백 척이 될지 누가 아오? 그놈의 불령선인 놈들이 얼마나 교활한 놈들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닙니다.”
그 말에 미쓰비시의 사의 대표인 이와사키 히로야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지금 입어를 아예 막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현실적으로 사모아령은 미국령이고, 우리는 입어에 반대할 권한은 전혀 없어요.”
“방도가 왜 없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불쾌하다는 것은 알려야지요. 포문을 연 것은 애초에 저쪽이니 이쯤에서 우리 일본의 곤조를 보여 줘야 합니다. 그래야 함부로 얕잡아보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족 자원은 소모성입니다. 우리가 물량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 정도지 앞으로 한국 놈들이 마구잡이로 조업을 시작하면 자원 고갈이 가속화될 겁니다.”
미쓰비시 쪽 임원진도 동조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다시 이와사키 측에서 말했다.
“하지만 그러다 공급 계약이 어그러져 버리면?”
“걱정 마십시오. 밴 캠프사는 지금 우리 말고, 내세울 대안이 없습니다. 남태평양에서 우리가 연간 공급하는 양륙 물량은 연간 5만여 톤이나 되지요. 만약 우리 일본 회사 배들이 일시에 철수하게 되면 통조림 공장도 올스톱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보이콧을 하면 제아무리 벤 캠프라도 정상 가동이 불가능합니다.”
“그거야 당분간은 현실적으로 어렵긴 하겠지만…… 나쁜 선례가 될 겁니다. 전가의 보도는 꺼내지 않을 때 빛을 발하는 법이죠.”
“쓸 수 있는 패가 있으면 써야지요. 저쪽도 우리에게 마땅히 양보하라고 강요하기만 하는데 그럼 우리 권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조센징 놈들이랑 같은 해역에서 조업한다니 이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게다가 사모아는 우리가 개척한 곳이 아닌가? 고생은 우리 보고 하라 하고 이제는 나눠 먹으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요.”
다들 격양된 분위기. 흥분한 표정들을 보니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기색이다.
‘이거 장광설에 완전히 넘어가 버렸군.’
이와사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일이 이렇게까지 비화된 것은 사실 이성 보다는 감성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일본인에게 있어 과거의 식민지인 조선인과 경쟁을 하게 된 상황 자체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 이대로 계속 반대하다간 자기 역시 조선인을 옹호한다는 둥, 경영을 맡기에는 소극적이라는 둥, 어떤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
이제 더는 설득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든 이와사키가 이내 체념하듯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이까?”
“서로 입을 맞추어야 합니다. 밴 캠프사에 대해 ‘만약 한국 어선이 입어하게 되면 우리는 한 척도 남기지 않고 모두 철수하겠다.’라고 통보하는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다만 협상 권한은 위임하데, 이번 사안에 대해서 우리 미쓰비시는 의견을 내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대승적 차원에서 귀사의 의견을 존중한 것뿐이니까요.”
“뭐 알겠소이다. 굳이 그렇게 하는 게 편하다면야. 이번 일은 저희가 주관한 것으로 하지요.”
니찌레이가 공식 항의서를 내는데 총대를 매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담합을 마친 일본 업체들은 연대 형식으로 밴 캠프사에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한국 어선의 사모아 진출은 본사의 채산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음. 한국의 사모아 출항을 재고해 주기 바람]
일본 업체들의 거센 반발에 태동산업의 조업 승인을 코앞에 두고 있던 밴 캠프사는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어선들이 그들의 말대로 지금 당장 철수해 버린다면 당장 내일부터 공장 가동이 멈추어질 것이 분명하니 밴 캠프사로서는 그 타격은 실로 막대한 수준이었던 것.
자연히 밴 캠프사의 내부 중역 회의에서 한국 어선 입어 문제를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태동산업 사무실에 내방한 강태준도 같은 보고를 받았다.
“입어 보류라고요? 그게 참말입니까?”
“그래. 덕분에 엘링턴 부회장이 아주 곤란한 모양이야. 저쪽에서 초강수를 두는 바람에. 아무래도 설득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군. 이건 빼박 정보가 어디서 샌 것이 틀림없어.”
그에 양 선장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버럭 소리쳤다.
“이건 분명 김신제 그놈이 엠바고를 무시하고 아사히 쪽에 기사를 누설한 것이 분명합니다.”
“나도 심증은 그렇네. 미쓰비시나 니찌레이가 싱가폴 쪽에 주재원을 두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물증이 없군요.”
1950년대의 싱가포르는 미래의 융성한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먼 낙후지다. 사업성 없는 곳에 한가하게 주재원 따윌 파견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