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80화 (80/361)

80화 경무대 초청

이 대통령은 지평호가 한국 최초로 참치를 잡아 왔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만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런 대단한 성과를 내다니!”

“그깟 고기 몇 마리 잡는 것에 호들갑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변대영 장관의 행동에 표정이 바뀐 이만승이 호통을 쳤다.

“허허, 뭘 모르는 소리. 튜나조업은 한국 수산업의 미래가 달린 중차대한 일이야. 게다가 미국의 모건 지도관이 공백인 채로 홀로 해낸 일이 아닌가. 이거야말로 우리 국민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릴 수 있는 사건이지.”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원양어업이 성공했으니 앞으로 미국과의 선적 도입에도 유리한 고지를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이렇게 가만있을 수야 없지. 선원들을 전부 경무대에 초대하도록 하고. 아, 미 대사도 함께 말일세. 이번에 우리 지평호가 만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표정이 볼 만하겠어.”

미 대사와 조업 승패를 걸고 개인적인 내기까지 했던 터라, 기쁨은 더했다. 미국의 콧대를 꺾었다는 사실에 급 기분이 좋아진 이만승은 비서관에게 관계자들을 경무대로 초청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대통령의 오더는 상공부 수산 국장을 거쳐 선주에게로 전해졌다. 심 사장은 지평호가 잡아 온 참치 가운데 가장 큰놈을 한 마리 갖고 들어가기로 작정하고는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양 선장, 튜나 중에 씨알 굵고, 실한 놈으로 하나만 골라 주게.”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대통령께 진상할 물건이야. 코쟁이 놈들도 같이 온다고 하니 제일 튼실한 녀석으로 고르게나. 아 가능하면 횟감 잘 다루는 요리사도 섭외해 오게나.”

“알겠습니다. 제일 먹음직스러운 놈으로 엄선해 보지요.”

그렇게 참치가 실린 냉동차가 경무대로 들어간 것은 지평호가 귀국한 사흘 뒤.

10월 8일 오후. 함께 초청된 선원들도 간만에 양복을 쫙 빼입었다.

대통령을 접견한다고 생각에 몹시 긴장한 일동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이마를 훔치기 바빴다. 헷또인 윤기진이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우물거렸다.

“세상에 제가 경무대를 가다니. 이거 먹지 않아도 체할 것 같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 괜히 쫄지 말어.”

“그렇겠죠? 근데 형님, 그 넥타이 삐뚤어졌는데요.”

“아 그래? 이런 젠장 할. 쪽팔리게 시리.”

서둘러 옷매무새를 고치는 것이 양 선장도 몹시 어색해 보이기는 마찬가지.

평소와 달리 온몸에 힘을 준 것이 다들 긴장의 연속이었다.

반대로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강태준.

그게 되려 신기해 보였던지 갑판장인 염일우가 물었다.

“근데 태준이 자넨 태연하구만. 긴장도 안 되나?”

“긴장될 게 무어 있습니까. 상 받으러 가는 마당에. 설사 거기서 실수 좀 한다고 대놓고 타박이라도 하겠습니까?”

“거, 완전 강철 멘탈이구먼.”

“그 마인드 저도 배우고 싶네요.”

오재갑도 부러운 듯 덧붙이는 모습에 강태준이 슬쩍 어깨를 두드렸다.

“어깨 펴. 자신감 있게 행동해야지. 수산업계를 대표해 가는 거니 당당해야 하지 않겠어. 어로학과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쫄면 안 되지 않나.”

“그래, 자네 말이 맞아. 내 너무 긴장했나 보이.”

다들 기운을 차렸는지 긴장이 풀린 기색.

대통령이 특별히 보내 준 캐딜락 자동차를 타고 북악산 아래로 향했다.

응접실 안으로 들어가자 화가 김인승 씨가 그린 초상화 한 점이 방문객을 반기고 있었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근엄하게 선 이만승이 위엄 있게 서 있다.

목례를 취한 수행원이 양해를 구했다.

“각하께서는 일정이 있으셔서.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면 됩니다.”

비서 한 명만 놔둔 수행원이 돌아가자 슬그머니 일어난 사람들이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경무대인가 생각보다 별로 크진 않구먼.”

“그러게 상당히 검소한데.”

응접실 안은 대통령의 취향을 반영하듯 곳곳에 도자기로 장식되어 있었다.

기다리기 무료한지 응접실을 둘러보며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

주위를 서성이던 그때, 강태준의 시선을 사로잡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응 저건?’

학과 구름이 새겨진 매병이다.

아가리는 좁고 어깨는 넓은 모양새가 왜인지 모르게 익숙하다.

낯익은 문양에 가까이 다가가자 뒤에 시립했던 비서관이 서둘러 주의를 주었다.

“아, 조심하십시오. 그건 정말 귀한 겁니다. 무려 국보급 도자기니까요.”

“아 그래요?”

“예. 각하께서 어느 호사가한테서 선물 받은 건데 진품이랍니다. 각하께서 애지중지하시는 물건입니다.”

국보급이라는 소리에 다른 데를 둘러보던 사람들도 이내 관심을 보였다.

“오…… 이게 국보급 문화재라굽쇼?”

“그게 뭔가 있어 보이긴 하네. 비취색이나 그림이 보통이 아닌데?”

“고려청잔가? 비싸게 생겼어.”

“맞습니다. 고려 상감기법의 정수지요. 이만한 귀물은 세계적으로도 몇 없습니다.”

자랑스레 떠벌리는 비서관이었지만 혼란에 빠진 강태준은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이건 자기가 신안에서 건져 올린 그 매병 아닌가.

어째서 이 물건이 청와대까지 와 있지?

의문도 잠시.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모두 자리를 바로 했다. 인기척을 확인한 수행원이 서둘러 주의를 주었다.

“각하께서 들어오십니다. 모두 예를 갖추십시오.”

선원들이 의복을 정제하기 무섭게 뚜벅뚜벅 소리가 들리고, 백발이 성성한 대통령이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맞이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하하. 다들 예의는 그만 차리시게. 오늘의 영웅들이 무슨. 다들 편하게 있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모두 바짝 얼어붙은 것이 보일 정도.

대통령 이만승.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외교의 달인.

얼떨결에 인사를 올리는 선원들 앞으로 심 사장이 먼저 인사를 올렸다.

“간만에 뵙습니다. 각하.”

“오, 오랜만에 보는군. 심 사장. 이거 몇 년 만인가?”

살가운 듯 인사를 하는 폼이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 심 사장의 눈가가 휘어졌다.

“근 3년 만이지요. 피난 때 뵙고 처음이니까요.”

“그래, 그땐 꽤 마른 인상으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그때 자네가 보내 준 간장새우는 잘 먹었어. 우리 내자가 아주 극찬하더군. 그게 아마 7월 중이었나?”

나이가 여든이 다 된 이만승이었지만 여전히 정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상한 기억력을 뽐내는 이만승에 심 사장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걸 다 기억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어디서 회춘 약이라도 드신 것 아닙니까?”

“예끼, 이 사람. 늙은이를 놀리면 못쓰이. 내 그것도 못 기억하면 치매 아닌가.”

“에이, 전 하루 이틀 전 일도 기억 못 하고 깜빡깜빡하는데요. 그건 대단하신 겁니다.”

“대단하긴, 사람 만나는 게 일인데. 너무 기름칠하지 않아도 되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입꼬리가 들썩이는 것이 내심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빈말을 하겠습니까.”

“허허, 아첨 고만하게. 귀가 간지러워질 것 같으니. 일단 뒤뜰로 가지. 튜나부터 보고 싶네.”

“예. 각하.”

경무대 앞뜰로 나와 보니 전리품으로 잡은 참치가 전시하듯 걸려 있었다.

냉동고에서 막 꺼냈는지 냉기가 풍기는 녀석.

대통령은 큼직한 물고기를 직접 손으로 만져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거 정말 대단하구먼. 이렇게 큰 물고기는 처음 보네. 그래, 심 사장. 이 튜나를 자네가 잡았단 말이지?”

“저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지요. 고생은 여기 있는 선원들이 다 했습니다. 특히 양 선장이 고생이 많았죠.”

“허허. 그런가? 양 선장 고생이 많았네.”

“감…… 감사합니다. 각하.”

얼굴이 빨개진 양 선장이 어쩔 줄을 몰랐다. 긴장에 아무 말도 못 하는 양 선장이 어버버하자 눈치 빠른 심 사장이 자연스럽게 강태준을 소개했다.

“이번 일의 일등 공신은 여기 이 사람입니다. 침로는 모두 강 항해사가 전담했지요.”

“오 그래?”

“강태준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직 앳된 기가 남아 있는 강태준에 이만승도 이채를 띄었다.

“일등 항해사치곤 나이가 무척 젊군.”

“한국 수산대 4학년 졸업반입니다. 학업 성적은 물론 실무 능력도 극히 우수하지요. 나이는 어려도 베테랑 못지않습니다. 영어에도 아주 능한 친구죠.”

“그래? 그럼 영어 실력 좀 볼까? How good is your English?”

“not so good. I don't think these words really go together. but compare with non-native speakers, above average.”

프린스턴 박사 출신의 이만승은 꼬치꼬치 캐물었다. 꽤 까다로운 어휘도 있었지만, 강태준이 당황 없이 답변을 받아 내었다. 강태준 역시 선장으로 활동한 기간이 상당한 만큼 어지간한 회화는 충분했던 것이다. 강태준의 말에 이만승의 눈빛이 달라졌다.

“You never cease to amaze me! 허어. 영어가 꽤 능숙하군. 원어민 수준인데?”

“아무래도 외국 선박을 타려면 기본은 해야 할 거 같아서. 미리미리 예습해 뒀습니다.”

“호오 그런가. 한국에 이런 인재가 있다니. 수산업의 미래가 무척 밝구먼. 허허.”

“과찬이십니다.”

“허허. 뭘 그리 부끄러워하나. 한국인들은 너무 겸손해서 탈이라니까. 공을 세웠으면 좀 더 우쭐해도 좋다네.”

“감사합니다. 각하.”

고개를 돌린 이만승의 시선이 다시 심 사장을 향했다.

“아무튼 심 사장, 이번에 잡은 물고기를 모두 미국에 수출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밴 캠프사 쪽과 구체적인 수출 조건을 협의 중입니다.”

“지극히 감격스럽구먼. 망망대해에서 우리 손으로 대양에 있는 물고기를 잡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수출하는 건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자네들이야말로 진정 애국자야.”

이 대통령은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으면서 독립을 하자마자 6. 25전쟁이 터져 산업시설의 80프로 이상이 박살 나는 비운을 맞았다. 인적 피해만 300만 이상에 물적 인프라까지 초토화되면서 사실상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해 버린 상태.

단 한 푼이라도 외화를 벌어들이는 일이 시급한 시점에서 외화 가득률이 높은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실로 반가운 소식이 아니겠는가.

거듭 칭찬을 아끼지 않던 대통령이 퍼뜩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듣기로는 일본 놈들도 일찍부터 사모아 근해로부터 튜나를 잡아 왔다지? 왜놈들은 본래 속이 밴댕이처럼 좁은 녀석들이니 우리가 튜나조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하면 틀림없이 방해 공작을 펼칠 것이 틀림없지 않나. 그러니 밴 캠프사와의 협상이 다 끝날 때까진 외부에 알리지 않는 편이 낫겠어.”

“각하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 마십시오. 지평호의 귀국 동정이 보도되지 않도록 미리 언론 쪽에 손을 써 두었으니까요.”

호언장담하는 심 사장의 말에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의주도하구먼. 그래도 심 사장, 그래도 파티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우리 정부 각료나 지인들에게 이번에 잡은 튜나를 홍보하고 싶은데. 혹 튜나를 우리 정부에 팔 수는 없나? 이 물고기가 우리 어부들 손으로 잡은 튜나라고 자랑하고 싶어서 말일세.”

“아이구, 각하. 애초부터 이건 각하께 맛보시라고 특별히 챙겨 온 겁니다.”

“그래? 허허, 배려심이 좋구먼. 정말 고마우이.”

기분이 좋아진 대통령은 싱글벙글했다. 배석한 각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뒤 덕담이 이어졌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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