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79화 (79/361)

79화 성공 수당

“이참에 노래 한 곡 어떻습니까?”

“노래! 노래!”

“항해사님 한번 완창해 주시죠!”

“나?”

“이번 조업의 일등 공신이니 주인공이 하셔야죠!”

짐짓 사양했지만, 강태준은 막무가내로 등을 떠미는 사람들

마지못해 갑판 위로 나온 강태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지?’

여기서 고향 노래를 불렀다간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다.

옛날 함부르크 항구에 들렀을 때 귀 따갑게 들었던 노래를 생각해 냈다.

“그럼 저는 독일 지방 노래로 하겠습니다. De Hamborger Veermaster. 함부르크 선원의 노래입니다.”

“오 독일 노래라니 외국어에 자신은 있나?”

“좀 하는 편이죠. 혹시 이 노래를 아신다면 반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나를 뭘로 보고? 거, 물론이지.”

슬쩍 기타 음을 퉁기자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운율에 맞춰 목소리를 가다듬은 강태준이 수저를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불렀다.

“Ick heff mol een Hamborger Veermaster sehn, To my hoo day, hoo day, ho - ho - ho - ho! De Masten so scheef as den Schipper sien Been, To my hoo day, hoo day, ho - ho - ho - ho (나는 4명의 함부르크 선원을 봤지. 호 호, 그의 마스트는 선장의 다리처럼 비뚤어졌지! 호,호)”

힘 있는 목소리가 허공으로 울려 퍼지자, 흥 오른 사람들이 추임새를 넣었다.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던 사람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자 선원들도 발로 갑판을 두들기며 박자를 맞췄다. 강태준이 소리를 질렀다.

“자 다 같이!”

“To my hoo day, hoo day, ho - ho - ho - ho!”

함께 일어난 선원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시끄러운 날이 저물어 갔다.

* * *

왁자지껄한 선상 연회를 마친 다음 날, 양 선장은 즉시 통신장에게 고국에다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무전을 타전하도록 했다.

-본선 인도양 차고스 제도에서 실시한 시험조업 결과 도합 8톤의 어획을 기록하였음. 앞으로도 심기일전하여 좋은 결과를 거양토록 하겠음.

지평호는 그로부터 8월의 마지막 날인 31일까지 꼬박 보름 동안 조업을 계속했다. 어획량은 평균 5~6톤이 기본, 때로는 10여 톤이 넘을 정도.

생각보다 조업 결과가 좋게 나오자 조업 일정도 자연히 연장되었다. 출항할 때 계획대로라면 그 시각에서는 모항인 부산항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 답이었지만 지평호 선원들로서는 욕심이 생길 법도 한 것. 몇 마리의 고기라도 더 잡아, 보란 듯이 귀국길에 오를 결심이 든 것이다.

하늘도 선원들을 돕는 것인지 날씨도 기가 막혔다. 코발트빛으로 변한 하늘 아래, 보름간 순풍이 계속 이어졌다. 하늘이 도와준다고 할까. 심기일전한 선원들은 밤잠도 아껴 가며 조업에만 열을 올렸다. 그렇게 낚시에 맛 들인 며칠 후, 요리사가 식당에서 곤란한 얼굴로 물었다.

“식수가 떨어져 갑니다. 좀 지나면 밥 지을 물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아니, 벌써?”

소식을 들은 갑판장이 아쉬운 소리를 했다.

“흠. 지금 귀환하기엔 너무 아쉬운데요.”

“조업을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빗물이라도 받아서 조업을 연장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 말을 지껄이는 선원들은 얼굴부터 모두 까맣게 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심사숙고하던 선장이 이번엔 강태준에게 답을 물었다.

“흠…… 초사 생각은?”

“동쪽에서 고기압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선 초여름과 늦가을 사이 다이폴이 발생한다고 하더군요. 남동 무역풍이 강해지면 하강 기류가 발생해 대기가 불안정해지겠죠. 곧 집중 호우가 내릴 텐데, 귀환을 늦추는 건 무리라고 보입니다.”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이 정도면 이제 충분하네. 자 귀환하자고!”

좀 아쉬운 감은 있지만, 일행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싱가포르에서 식수와 연료유를 보충한 지평호는 드디어 귀환길에 올랐다.

중도에 엔진이 말썽을 부렸지만 다행히 지평호의 귀국길은 상대적으로 순탄했다.

부산항 제1 부두에 닻을 내린 것은 원래 계획에서 한 달도 더 지난 10월.

부산항. 그간의 호우가 걷혀서인지 모처럼 쾌청하기 짝이 없다.

쉴 새 없이 부두 앞을 기웃거리는 심 사장에 정신없어하는 양복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수십 번이나 반복하던 심 사장이 불안한 듯 이를 딱딱거렸다.

“저, 대체 지평호에선 왜 아무 소식이 없는 건가?”

“지금 항해 중이라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왜 연락이 안 되나!”

“중간에 통신 장비가 고장 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죠. 전파 장애로 전문이 중간에 도착하지 않을 경우도 종종 있고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재깍 답을 해 줘야지. 사람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걸 모르나?”

“그럼 다시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래. 다시 보내 봐!”

채근하는 심 사장에 부리나케 통신소로 향하는 비서들.

이미 부두 앞은 새벽녘부터 몰려든 선원 가족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지평호가 출항하고, 무려 90일. 열두 번째로 맞은 광복절에 드디어 고대하던 희소식이 날아들었으니 태동산업 쪽은 실로 감격의 도가니가 아닐 수 없었다.

혹여 설레발이 될까 싶어 자제해 왔지만, 귀환 일이 되자 도저히 부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기를 몇 시간 째. 드디어 신호가 잡혔다.

“저기, 저기 옵니다!”

“지평호다!”

옅게 낀 안개를 헤치며 달려오는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근 삼 개월 만의 귀환에 설렘을 느끼는 가족들. 부산에 도착한 배가 닻을 내리자, 맨 먼저 뭍에 발을 디딘 양 선장이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올렸다.

“사장님!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이 사람, 정말 수고들 했소. 정말 고마우이.”

강태준이 앞으로 나서 고개를 숙였다.

“아,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사장님. 참치는 다 가져오기에는 너무 양이 많아 어획물 중 60톤은 항공편으로 보냈습니다. 여기 확인서입니다.”

“응, 벌써 말인가?”

깜짝 놀란 사장이 확인서를 들여다보니, 과연 항공편으로 참치가 송부되었다는 증서가 적혀 있었다. 사장으로서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처리했나?”

“오는 길에 실습선으로 온 명왕호를 만나 도움을 받았습니다. 기륭항에서 노스웨스턴 항공편으로 직송했고요. 아무래도 신선 식품은 선도가 중요하니 빨리 심사를 넣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주제넘게 나섰다면 제 불찰입니다.”

“잘못은 무슨. 잘했네. 잘했어. 못난 조카 덕분에 자네가 수고했다지? 정말 고생했네.”

심익태 사장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굳은살이 박인 손등을 어루만졌다. 난생처음 원양조업에 나선 지평호가 이런 엄청난 성과를 이루기까지 그 노고를 알고도 남았음이랴.

단 한 사람의 인명 손실도 없이 전원 무사 귀국한 게 너무도 고마웠던 것.

딱 보기에도 고생한 얼굴들에 꽃다발로 격려를 건네는 사람들.

상봉을 마친 가족들과 노고를 풀었다.

집으로 돌아간 강태준은 간만에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거 돌아 누우소! 내 군에서 배운 가닥 한번 보여 줄 테니. 내 손이 약손이랑께.”

광필이가 군에서 배운 기술을 보여 주겠다며 마사지를 자처했다.

억센 손바닥 힘으로 온몸에 뭉친 혈을 풀어 주자 몸통 여기저기서 소리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이쿠야 그만! 그만 그 정도면 되었다.”

“형님, 좀 괜찮으십니까?”

“어, 아주 개운하네. 등 뭉친 게 한결 풀린 것 같아.”

“자 너도 누워라 재갑아.”

호언장담한 실력이 뻘 소리가 아닌지 결린 어깨가 풀린 느낌이다

시원한 듯 관절을 돌리는 강태준에 오재갑도 옆에 드러누웠다.

광필이의 손끝에 힘이 다시 들어가자,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흐…… 네 거기! 거깁니다.”

“녀석 젊은 놈이 왤케 굳었어. 임마, 니 스트레칭 좀 하라 했지.”

“그게 말처럼 됩니까. 아그그극! 아픕니다. 아프다고요!”

“임마! 다 큰 놈이 엄살은. 긴장 풀으라고. 원래 아픈 거야!”

자지러지는 오재갑의 행동이 우스꽝스러운지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동안 어머니가 음료수를 들고 왔다.

“아이고 수고스럽게, 이게 뭡니까?”

“자자. 시원한 식혜다. 쭉 들이켜거라.”

“감사합니다.”

잘 삭은 식혜를 들이켜자 삭은 밥알과 엿기름이 어우러져 시원한 맛이 났다.

간만에 다리를 쭉 편 강태준이 기지개를 켰다.

“크, 역시 집이 좋네요. 이렇게 다리 뻗고 있기도 오랜만입니다.”

“고생 많았다. 이러다가 진짜 골병들겠구나. 좀 쉬엄쉬엄하려무나.”

“정말 수고하셨어요. 근데 언론들도 참. 출항 시엔 그리 법석을 떨더니, 왜 귀환할 땐 아무 소리도 없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러게…… 그거 좀 이상한데 그래?”

당시 국내 신문들은 지평호의 출어 소식을 대부분 사진과 함께 4∼5단 크기로 비중 있게 다루었지만 돌아올 때는 아무도 보도를 하지 않았다.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지만 강태준이 빙그레 웃었다.

“아, 그건 오히려 우리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보도가 안 되는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이란 말이에요?”

“그래 그건 엠바고를 때려서 그래.”

“엠바고요? 그게 뭐예요?”

“예. 정부 시책에 대해 일정 기간은 보도를 유보해 달라고 언론에 요청하는 거지. 거 우리가 튜너를 낚은 걸 알면 왜놈들이 괜히 해코지할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보도를 자제하는 거야.”

“아니 어째서? 그쪽이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요?”

영문을 몰라 하는 춘삼이의 태도에 강태준이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했다.

“사실 사모아엔 일본 업체들이 먼저 진출한 상황이거든. 그쪽 입장에서는 자기네들이 독점하던 어장에 불청객이 날아드는 셈이니 좋아할 리 없지. 밴 캠프사와 협상 중이니 협상 끝날 때까지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다 이거야.”

“아, 그런 깊은 뜻이. 어른들의 세상은 참 복잡하네요.”

“허허, 그게 정치란 거란다. 녀석 너도 크면 다 배우게 돼.”

강태준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헝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구나. 국가적인 사업이라 잔뜩 띄워 주고는 아무 치하도 없다니. 목숨 걸고 조업에 성공한 사람들한테 최소한 격려 정도는 있어야지.”

“걱정 마세요. 돈 벌러 간 건데 수익만 잘 나오면 끝이지 그깟 공치사가 무어 중요하겠습니까. 어차피 며칠 내 경무대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강태준의 태연한 말에 화들짝 놀란 춘삼이가 되물었다.

“경무대에서요?”

“당연하지. 정부 주도 시범사업이니까. 아마 상공부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을 거야.”

예상대로 지평호의 귀향은 이미 경무대에도 신속하게 전달되었다. 경무대가 정보를 입수한 경위는 싱가포르에서 발간되는 더 스트레이트 타임즈(The Straits Times)의 보도에 의해서였다. 식수와 연료를 보충할 목적으로 기항한 지평호의 시험조업 성과를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보도하였고, 그 신문을 대통령이 직접 읽었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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