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78화 (78/361)

78화 노다지

강태준의 의견에 따라 양 선장이 곧장 선원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들었지. 여기서부터는 진검승부다. 예서 하나도 못 낚으면 이제 변명의 여지가 없어. 지금까지 빈손으로 돌아가면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거야.”

“옳소! 칼을 뽑았음 무라도 썰어야지. 찌를 던졌으면 잡어라도 낚아야 할 것 아뇨!”

“죽든 살든 해 봅시다!”

일반적으로 바다가 거칠수록 낚시의 상하 운동 덕에 어획이 양호하다.

태풍과 조우하는 동안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했던 선원들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아직 형형했다. 투지를 불태우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독기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투승 시작할 시간이군. 항해사 준비되었나?”

“예! 침로, 25도로!”

투승 지시가 내려지기 무섭게 강태준이 침로를 조율했다. 파도가 치는 날 선박이 안전하게 운행하려면 선수부 좌우 15도 각도로 파도로 갈라치는 게 중요하다. 더욱이 바람을 등져야 주낙을 거둬들였을 때 앞바람을 받게 되면 갑판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는 만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작업. 비바람을 맞으며 뱃전을 살펴보던 오재갑의 얼굴에 결기가 어렸다.

“이거 긴장되는군요.”

“당연히 긴장해야지. 오늘 못 낚으면 뒤진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자고.”

어부들의 각오도 평소보다 훨씬 대단했다. 이번에 지금껏 저조했던 기록을 만회하려는 듯 처음으로 400바스켓(낚시 2,400개)을 길게 깔기로 했다.

낚시 끝엔 얼얼한 손을 불어 가며 꿴 냉동 고등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투승 작업이 끝나자, 대나무 꼭대기에 매단 빨간 깃발이 파도 속에서 너울거렸다.

정오 무렵 본격적인 양승 작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50바스켓가량 감아올렸는데도 주낙은 가볍기만 했다. 빈 낚시만 올라오는 통에 어획은 신통치 않았다. 간간이 끊어진 낚시가 사기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항장력이 강한 줄을 썼음에도 파도로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 인력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상갑판에서 조업을 지켜보던 간부들은 실망감과 피로에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처음 인도양 어장을 제의한 강태준만 포기하지 않고 길게 뻗은 부이를 따라 키를 잡는 중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도 튜나가 올라오지 않자 양 선장은 이제 자포자기한 듯 중얼거렸다.

“허허, 여기서 빈손으로 돌아가면 바로 사표 내는 일만 남았군.”

“그 전에 회사가 망할 테니, 의미 없겠죠. 장인어른께 호언장담했는데 집값 마련은커녕 쫓겨나게 생겼군요. 이제 평생 노총각으로 늙을 일만 남았습니다.”

양 선장이 중얼거렸다.

“뒷일은 텄고 우리 같이 국밥집이나 차릴까, 갑판장? 내 굴국밥 하나는 자신 있는데?”

“허어, 국밥집은 아무나 합니까? 재료 수급은 어떻게 하고, 조리 과정은? 제대로 맛이나 낼 수 있겠습니까?”

“그까이 거. 널린 게 재룐데 몸만 좀 고달프면 되지. 국밥 정도야 풍미나 이빠이 넣고 대충 슥슥 만들면 그만 아닌가.”

“하이구야. 음식점도 아무나 하나. 그따위로 하다간 몇 달 내 길거리에 나앉고 말 겁니다.”

선장의 우스갯소리에 갑판장인 염일우가 계속 맞장구를 쳤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의도였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선원들은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점심도 건너뛴 채.

뱃가죽이 달라붙어 계속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릴 법도 했지만, 도무지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그렇게 조업을 열중하던 오후 두 시경.

연속적인 출렁임에 갑판은 물기로 질펀하게 젖었고 조타실 유리창에는 허연 소금기가 말라붙었다. 축축해진 옷에 브랜치라인을 확인하던 강태준이 물기를 털며 말했다.

“자 3항사, 잠시만 줄 좀 건네받아 주게.”

“아. 예.”

멋모르고 브랜치라인(Branch Line: 낚시가 매달린 가짓줄)을 넘겨받은 오재갑의 표정이 달라졌다. 빈 낚시만 흐느적거리던 실이 갑자기 팽팽해지면서 힘 있게 당겨진 것이다.

“으이크, 이거 뭐가 걸린 것 같은데요.”

“진짜? 야, 조심해!”

“어엇! 이게 뭐지요?”

실이 핑 소리를 내며 끌려드는 모습에 오재갑이 멈칫하자 강태준이 날쌔게 그 줄을 다시 넘겨받았다.

실 끝이 파르르 떨리며 손바닥을 조이는 것이 힘이 좋은 놈이다. 묵직한 손맛에 강태준이 줄을 힘껏 끌어당기자 저만치 바닷물을 박찬 녀석이 쓕! 하고 솟아올랐다.

파르르르!

“물고기다!” 하고 누군가가 소리치는 순간 갑판장과 노가리를 까던 선장이 용수철처럼 뛰쳐나왔다. 누가 먼저랄 거 없이 갑판 위로 달려간 두 명. 선장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고조되고 있었다.

“뭔가 잡혔다고?”

“예. 제법 큰 놈인 거 같습니다! 윽, 힘이 장산데요. 이거!”

“어, 이럴 데가 아니지! 양승기 돌려! 양승기!”

“이보게들 다들 뭐 하나, 돕지 않고! 어이, 중간에 놓치지 않게 조심해!”

흥분한 갑판장이 소리를 지르자 좌우의 선원들이 힘을 합쳐 투승줄을 끌어올렸다.

얼마나 줄다리기를 했을까.

마침내 펄떡거리는 녀석이 정체를 드러냈다. 매끈하고 은백색으로 빛나는 단단한 몸통. 암청색의 등에 동그란 몸통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가운데 잠자리처럼 긴 가슴지느러미가 펄럭인다. 사방에서 환성이 터졌다.

‘튜나다!!”

날아오른 은백색의 향연을 보는 순간 선원들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게 바로 그들이 염원하던 그놈이라는 사실을.

“월척이다!!! 거물이군.”

“이거 아주 싱싱한 놈인데!”

평소 감정 기복이 드문 오재갑조차 놀란 듯 달아오른 어조로 물었다.

“와, 이기 우리가 잡으러 온 튜나가 맞나요?”

“맞아, 이게 알바코란 놈이지.”

“지느러미가 긴 게 이쁘장하게 생겼네요.”

제 췌장만 한 길이의 지느러미를 찰랑거리는 것이 아직 버둥거릴 힘이 남아 있는 듯. 숨이 넘어갈 듯 꼴딱거리는 녀석에 강태준도 힘을 주며 대꾸했다.

“어떻게 알았나? 스페인에서 예쁘다는 뜻으로 보니또라고 부르기도 해.”

“이쁜이란 말이죠? 어이쿠, 임마 좀 살살 좀 해라. 우리 이쁜이 힘 좋네.”

비싼 물고기인 만큼 조심조심 내려놓는 사람들. 선원들 역시 참치를 보는 건 처음이다.

날개다랑어라 불리는 녀석의 중량은 100kg쯤. 어린아이 키는 넘어 보이는 큰 녀석.

아가미를 뻐끔거리고 있는 녀석을 조심스레 갑판 위에 내려놓자, 튜나를 자세히 보려 몰려드는 선원들. 녀석이 마지막 저항을 하듯 꼬리로 갑판 위를 북처럼 두들겨 대자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

날뛰는 고기의 광란에 엉거주춤한 윤기진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거 어떻게 합니까?”

“망치 가져와! 그대로 두면 육질이 상하니까.”

“아니, 지금 해체하시려고요?”

“아니, 숨통을 끊어 놔야지. 어차피 놔둬 봐야 괴로워질 뿐이야.”

참치는 아가미 근육이 발달해 있지 않은 만큼 숨을 쉬려면 끊임없이 헤엄치며 입속에 물이 잘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아마도 녀석은 지금쯤 질식 직전에 숨통이 조여들고 있을 것인 만큼 차라리 이편이 편하게 해 주는 것이다.

펄떡거리는 녀석이 버둥대는 광경을 주시하던 강태준이 쇠못 달린 망치 받기 무섭게 정수리를 힘껏 후려갈겼다. 일격에 급소를 맞은 고기가 파르르 떨더니 움직임을 멈추자 잠시 후 선홍빛의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애도의 묵념을 하는 강태준.

눈을 부릅뜬 고기의 장렬한 최후에 햇또인 윤기진이 혀를 내둘렀다

“와우, 한 방에 골로 가 버렸군요. 우리 1항사님과 척지면 안 되겠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건 냉동고에 넣고, 빨리 조업이나 계속해. 이제 곧 놈들이 몰려올 거야.”

낚시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는지 다음 바스켓부터는 고기가 드문드문 딸려 올라왔다. 자리가 좋아서일까. 제법 어황이 상당했다. 30~50kg은 기본이요. 120kg이 넘는 것도 심심찮게 잡혔다. 투실투실하게 살찐 참치들을 건질 때마다 선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엄메, 묵직한 게 크기가 다들 장난이 아니구먼.”

“그러게. 이게 다 돈덩이요. 돈덩이!”

“자자! 노가리는 고만 떨고. 해 지기 전에 빨랑빨랑 걷자고!”

선장의 호통에 선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런 물건으로 열댓 마리만 해도 1톤이 되고 톤당 어가만 500달러나 하니 가히 수지맞는 장사 아닌가. 파도는 여전히 기승을 부려 댔지만 사람들은 힘들 줄은 몰랐다.

조업을 마친 뒤 선원들은 그날의 결산을 종합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양 선장이 강태준에게 물었다.

“오늘 총 얼마나 잡았나?”

“7~8톤은 족히 잡은 것 같습니다.”

“그거 나쁘지 않군.”

한 번에 수십여 톤을 낚는 선망선에는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잡어가 거의 안 낀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좋은 성적. 흥분한 갑판장이 선장에게 제안을 올렸다.

“자자! 첫 조업에 성공했으니 선원들에게 기념으로 술 한 잔씩 나누어 주는 게 어떻습니까?”

“네? 술 말입니까?”

“그래, 적수 중이기도 하고, 바쁘다고 적도제도 생략하지 않았습니까. 뭐 이 정도면 성공한 셈이니. 이주혁 지도관님! 잠시 쉬었다 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나야, 좋지! 어떤가 강 항해사. 자네 생각은?”

강태준의 입을 보는 선원들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깃들었다. 황금어장으로 인도하는 동시에 조업을 성공시킨 일등 공신인 만큼 강태준의 선내 입지는 그만큼 넓어져 있었다.

은근한 압박이 섞인 눈빛에 강태준이 웃으며 말했다.

“흠. 어차피 어구도 풀어 줘야 하니 잠시간 쉬어 줘야죠. 그간 대양에서 고생했으니 잠시 재충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역시 시원시원해서 좋구먼. 조리사에게 지시하여 안주도 만들라고 그러겠네.”

“알겠습니다! 요리사 어여 준비해!”

표정이 환해진 갑판장은 단숨에 경례라도 부칠 기세.

사실 갑판장 역시 김정욱 못지않은 술고래였지만, 일등 항해사가 나가리 된 정황도 있고 해서 자제하는 중이었던 만큼 그처럼 반가운 일이 없었다.

그렇게 지평호 선원들은 모처럼 선상에서 한바탕 자축 파티를 열기로 해다. 그간 고이 아껴 두었던 막소주를 몇 병을 딴 다음 안주로는 어획물 가운데 섞여 올라온 달고기를 두어 마리를 정성껏 다듬어 올렸다.

먼바다로 떠나는 선원들의 건강을 염려해 회사에서 챙겨 준 통돼지도 밥상 위에 올랐다.

의욕이 넘친 선원들은 부득불 주갑판 위에 천막까지 쳐 가며 분위기를 냈다.

몸통 중앙에 커다랗게 문신처럼 찍힌 반점, 툭 튀어나온 주둥이, 반짝이는 은빛 비늘까지.

갑판을 식탁 삼아 통째로 저민 회와 통돼지 구이를 놓고 막소주를 한 사발 가득 따르자 제법 잔치 분위기가 났다.

양 선장이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자, 안전 항해와 만선을 위하여!”

“위하여!”

선상의 율법에 따라 가져온 잔은 양은 식기들.

단숨에 술잔을 비운 선원들은 속에서 올라오는 알코올에 가쁜 숨을 토했다.

“여 술맛 좋은데…….!”

“자 한 잔씩들 더!”

술은 역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왁자해진 분위기에 선원들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출항 이후로 이렇게 마음이 편한 적이 얼마던가.

분위기가 조금씩 달아오르자, 사람들은 간만에 풀어진 채 서로 잔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술에 취한 갑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좋은 분위기에 음악이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듣자 하니 우리 선장님께서 음악에 조예가 있는 걸로 아는데 말입죠.”

“그러잖아도 내 애마를 가져왔다네.”

선장이 기다렸다는 듯 검은 천을 걷자 멋들어지게 생긴 통기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기타 아닙니까?”

“선장님 나이스!”

잔뜩 거드름을 빼며 선장이 기타 줄을 퉁기자 흥분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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