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어업 지도관
그 말에 강태준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거야 그건 너무 낙관적인 전망 아닙니까? 경험 있는 어부들이야 모르지만, 저희는 한 번도 어장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초짜들인데요. 게다가 수지를 맞추려면 인도양보다는 처음부터 태평양 쪽으로 침로를 잡는 게 맞지 않습니까. 굳이 사모아가 아니더라도, 그쪽이 어황이 더 좋다지 않습니까?”
미크로네시아 섬들이 즐비한 서부 태평양은 매년 수십 척의 대형 선망선들이 매해 수십만 톤의 어획량을 올릴 만큼 세계적인 황금 어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 지적에 일리가 있는지 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동감하네만 침로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야. 어업 지도관의 지시를 어길 수야 없지 않은가. 사실 참치조업을 한 사람은 그 사람뿐이니 믿어 보는 수밖에.
지나치게 낙관주의적인 선원들의 태도에 불안을 느꼈지만 방도는 없었다.
그렇게 배는 느릿느릿 사모아 섬으로 향했다. 그렇게 7월 20일, 지평호는 드디어 가오슝항에서 불과 하루 거리인 남중국해 어귀에 도착했다.
“오늘 저녁에 니우에 섬 동쪽을 통과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슬슬 조업 준비를 해야겠구먼.”
조업 작업은 전적으로 모건 고문의 지휘하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지평호 출항 후 비행기로 이동해 대만 기륭항에서 합류한 모건 씨는 지휘봉을 잡기 위해 합류했다.
배에 오른 모건 씨는 마치 바이킹의 후예처럼 신이 났다.
“자 하드 스타포드! 알피엠 올려!”
척하면 척이라고. 좌로 우로 배를 몰아 대는 것이 똥개훈련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강태준으로서는 영 못 미더운 점이 많았다.
‘조타 지휘가 영 시원찮은데 이거…….’
업력 있는 선장이 보기에는 실전을 오래 놓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선상에서 위계란 지엄하니만큼 지시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강태준이 열심히 키를 돌려 대는 동안, 3등 항해사인 오재갑도 엔진 텔레그라프를 부지런히 젖혀 대었다.
“우현정횡!”
“2백 70도로 적수하라!”
거친 파도가 일렁이고 칼날 같은 바람이 마스트 꼭대기를 울린다. 한참을 갔을까. 정오시 북위 15도를 넘은 배가 조업 장소를 모색했다.
물결을 신중히 살피던 모건 고문이 대뜸 한 곳을 가리켰다.
“바람 상태는 좀 어떤가?”
“무역풍 권내를 벗어났습니다. 남풍이 불어 주니 양승하기는 좋은 시간입니다.”
득의양양한 모건 고문이 만족스러운 듯이 다시 명을 내렸다.
“흐음. 좋아. 여기에 투승하면 될 것 같네. 양 선장!”
“좋습니다. 투승 준비! 전원 집합하라!”
“라저! 키 중앙 엔진 정지!”
양재문의 명이 떨어지자 선원들은 부산히 움직였다.
하지만 강태준은 이마에 주름이 지었다. 어업으로 밥을 먹고 살던 강태준은 인도양 해도 정도는 머리에 욱여넣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따위 주먹구구식 위치 선정이라니. 비록 50년이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는 어군이 집결할 만한 장소가 아님이 분명해 보였다.
선원들이 갑판 위로 모이기 직전, 참다못한 강태준이 조심스럽게 모건에게 물었다.
“저, 기술 고문님 이곳에 투승하는 근거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 일본인 어부들에게 듣기로 이곳은 튜나가 한 번씩 회유해 오는 지역으로 알고 있네. 고급 어종들이 주로 출몰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북미에서도 이런 장소에서 고기가 많이 잡혔거든.”
그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강태준은 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렇다면 이건 순전히 감으로만 던진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 말에 강태준이 작심하고 말했다.
“여긴 북미와 어로 환경이 상이한 곳이라 세부적인 조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지?”
“어장에 도착한 이래 계속 날이 흐려 천측을 못 했으니 해류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확인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게다가 이곳의 해류는 대체로 서류인데 바람으로 파류가 변하니 어군 추적이 어렵지 않을까 해서요. 주변에 갈매기 떼도 없고, 백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네 말은 어군이 없을 거다. 이 말인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어제까지 보이던 부유 생물들도 없이 물색도 다릅니다. 좀 더 좋은 장소를 찾아보는 것이.”
“어허, 자네가 아직 뭘 모르구먼, 일단 결과부터 보자고 잔말 말고 내 말대로 하게!”
대답이 궁색해진 모건이 윽박지르자, 강태준이 구원을 청하듯 옆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선장인 양재문의 대답은 기대를 배반했다.
“모건 씨는 전문가니 무슨 생각이 있겠지. 그냥 지시하는 대로 따르게.”
“하지만 선장님! 이건…….”
“나도 의문이 없는 것은 아냐, 하지만 이번엔 잠자코 따라 주시게나.”
선장이 그렇게 나오니 강태준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모건의 말은 사실 어떤 근거도 갖지 못한, 그저 기대에만 부푼 엉터리 예측이었다.
사실 모건 선장은 미국 동부 해안의 대서양 어장에서 꼬마 선망선을 운용한 한 경험밖에 없는 일천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지금 지평호가 하는 연승식 어법으로 생판 환경이 다른 남중국해에서의 조업은 그게 처음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날의 조업은 완전한 실패로 귀결되었다. 지평호는 애초 보유하고 있던 총 400바스켓 가운데 절반을 사용했다. 한 바스켓에는 3~40미터 간격으로 여섯 개의 낚시가 매달리니 약 1,200개 정도를 던진 셈.
하지만 조업 성과는 형편없었다. 대략 9~10마일 거리에 걸쳐 길게 깔아 두었으나 정작 양승해 보니 튜나는커녕 상어 새끼 한 마리조차 올라오지 않았다.
양승기가 온종일 멈추지 않고 돌았으나, 각 낚싯줄을 연결한 원줄에서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Move away. I'll do it!"
갑판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모건도 황혼이 비출 때까지 전혀 낌새가 엿보이지 않자, 복장이 터졌는지 급기야는 자기가 갑판장을 밀어내고 양승기 레버를 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큰 실수.
현역에서 멀어진 지 오래된 벌써 몇 년이나 된 모건은 자기의 몸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련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몸은 이미 근육보다는 두꺼운 지방질로 덮인 상태였던 것. 근육이 풀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른 기계도 아닌 양승기 레버를 겁 없이 잡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물속 1백 길로 잠긴 주낙을 끌어올리려면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데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양승기의 운전은 전적으로 숙련된 젊은 선원들의 몫이다.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갑판을 뒤돌아보며 작업을 독려하던 모건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맹렬히 원을 그리며 올라오는 낚시에 손바닥을 꿰이고 말았다.
“양승기 멈춰! 당장!”
“God damn it! fXXk!”
“뭘 구경하고 있나? 바늘부터 빼내야 해! 뺀찌 가져와!!”
3.4인치의 굵은 바늘이 관통한 손등은 목불인견이 따로 없는 수준이었다. 강태준이 서둘러 돌팔이로 나서 조심조심 오른쪽 전완골 아래쪽을 밀자 모건이 눈을 까뒤집었다. 활처럼 휘어진 손이 힘없이 쳐지자 거품을 문 모건이 발버둥을 쳤다.
“발광하지 못하게 붙잡아!”
“히익!! 내 손! 내 손!!”
“컴 다운! 진정하세요. 미스터 모건, 일단 바늘부터 빼내야 합니다. 한 번만 따끔하고 끝날 거니 이 악물고 참으십시오.”
기관장이 큼직한 뺀치를 가져오자 그러잖아도 흰 모건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강태준이 뺀치로 바늘 끝을 물려 반대 방향으로 빼내자,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서둘러 응급처치를 마친 후, 모건의 머리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기운이 빠져 기절한 모건 씨를 둘러업은 갑판장이 선실로 그를 옮겼다. 양재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까 보니, 장난 아니던데 손은 괜찮은 건가?”
“전완골이 골절된 것 같은데 일단 응급처치는 마쳤습니다. 뼈가 튀어나오진 않은 걸로 보아 다행히 전위 골절은 아닌 거 같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군.”
“부목을 대어 단단히 고정시켰지만 상처가 좀 깊어 일단 추이를 봐야 할 듯싶습니다.”
강태준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는지 모건은 제 침실로 들어가서 끙끙 앓으며 며칠간 두문불출했다.
계속 방을 왔다 갔다 하며 상태를 살피던 오재갑에게 선장이 다급히 물었다.
“모건 씨는 좀 어떤가? 어제보다 좀 나아졌나?”
“그게, 상태가 안 좋습니다. 당최 일어나지 못하는데요? 팔 정도면 괜찮아지고 있는데, 문제는 다른 곳도 삐끗한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쓰러지면서 허리를 삐끗했는지 자꾸 척추 쪽에 아픔을 호소하네요. 운신하기도 어려울 만큼 고통이 대단한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들은 양 선장이 황당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아니, 무슨 무리를 했다고 허리를 다쳐? 출항 때 박스 하나 든 적 없는 사람이.”
“그게 예전에 허리 수술을 했다는군요. 양승기를 돌릴 때 힘을 주면서 삐끗했던 곳이 덧난 것 같습니다.”
“젠장 가지가지 하는구먼. 왜 하필 이런 때에…….”
허리 디스크가 재발이라니. 양재문 선장은 눈앞이 캄캄하기 그지없었다.
이 배에서 참치양승을 경험한 사람은 오직 모건뿐.
헌데 유일한 조업 경험자가 드러눕는 형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뒤이은 시험 조업 결과는 처참할 수밖에 없었다. 낚시에는 물론 단 한 마리의 고기도 걸려 있지 않았고, 양승 작업을 마친 어부들은 브리지 눈치만 살폈다. 배를 띄워 놓은 채 브리지에서는 이주혁 지도관과 양재문 선장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에 숙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모건 씨는 상태가 좀 어떻소?”
“아무래도 상태가 위중해서, 일어나기 틀린 것 같습니다.”
“조업에 실패해서 쪽팔리니 저러는 거 아닌가?”
“꾀병 같지는 않아요. 식은땀까지 뻘뻘 흘리는데 게다가 전위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허, 그 사람 참.”
식음까지 전폐한 모건은 그대로 앓아누웠다.
혼자 화장실을 가기도 어려울 만큼 상태가 악화된 것이다.
밤이 되니 바람은 서풍으로 돌고 약간 약해졌으나 횡파가 심한 롤링이 지속되면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거센 동중국해의 파도에 선체가 까불어대기 시작하자 조업을 멈춘 배는 며칠째 개점휴업 상태였다.
1등 항해사인 김정욱이 반송장이 된 모건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습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 저러다 사람 죽겠습니다.”
“허어. 하필 모건 씨가 다치다니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모건 씨가 빠지면 참치조업은 어찌 되는 건가요?”
“이대로 귀향할 수는 없으니, 우리끼리라도 조업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어장 데이터도 없이 말인가? 우리끼리.”
“그렇다고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소?”
갑판장 말에 호응하듯 강태준이 고개를 단호하게 말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죠. 이대론 시간만 버릴 따름이니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모건 씨는 지금 환자입니다. 저 상태라면 생명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니 빨리 치료부터 받아야지요.”
“그럼 어쩌라는 건가?”
“일단 환자부터 병원에 내리는 게 급선무입니다. 이 근처에는 제대로 야전병원이 없으니 가오슝항으로 복귀해야죠.”
결국 내린 결론은 우선 중태에 빠진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는 쪽으로 결정 났다.
곧 선수를 돌린 지평호는 가오슝 항으로 돌렸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