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영해의 침입자
걱정스러운 듯 다시 김정욱이 말했다.
“우린 여기서 퇴거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바보 같으니. 적함이 아국 영해를 침탈했는데, 무슨 소리야? 당신이 그러고도 한국인인가?”
“그렇다고 무장선과 싸울 수도 없지 않습니까?”
꺼림칙해 하는 1등 항해사의 말에 동요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강태준이 선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굳이 싸울 필요는 없지요. 시간만 끌면 됩니다. 미리 다른 해경 선박이 일본 순시선의 존재를 알려 줘야 추적하기가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런 경솔한 소릴 그러다 잘못되면 어쩌고?”
“일단은 버텨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적함이 국내 영해를 침범했는데 보고 가만히 있는 건 좀 아니죠. 더욱이 이 배는 최신예 건조선이 아닙니까. 뭣하면 따돌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맞소이다! 일본 놈들한테 굽힐 수야 없지.”
“저 짝이 우리가 도망가는 걸 보면, 얼마나 우습게 보겠소?”
오재갑도 찬성하자 다른 선원들 역시 굳은 표정으로 동의했다.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한국은 일본과의 감정의 골이 깊은 상황이었던 만큼 모두 일본 놈들을 상대로 물러선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선원들의 결연한 의지에 자신감을 얻은 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다수결에 따르도록 하지. 강 항해사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나?”
“일단 한국 순라반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하니 일단 해무청 소속인 척 위장하는 어떻겠습니까?”
“흠. 저것들이 과연 속겠나?”
“일단 저희 같은 신조선은 처음 보는 경우일 겁니다. 저쪽 배가 다행히 저희보다 체급이 작으니 그렇게 쉬이 덤벼들지는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상대의 체급은 150톤 정도. 반면 지평호는 덩치만도 두 배 이상 크다.
초기 대응방침을 정한 지평호는 서서히 움직이자. 상대를 알아차린 듯 일본 순시선 역시 10마일 거리를 두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거리를 벌렸다. 순시선이 가까이 오자 지평호 역시 천천히 움직이면서 서로 마주 보는 형국이 되었다.
지평호와 일본 국적의 순시선은 독도를 사이에 두고 밀어내기 자세로 계속 대치했다. 순시선은 독도에서 27km 정도 떨어진 곳을 원을 그리며 도는 사이, 지평호도 역시 마찬가지로 원을 그렸다.
파도를 두고 마주 보는 형세가 되었지만 지평호가 물러서지 않았다.
이쪽의 그런 행동이 거슬렸는지 약 7마일 거리에서 탐색을 계속하던 일본 배가 신호를 보냈다.
“한국 어선. 본관은 제8 광구 해상 보안 본부’의 순시선 노시로이다. 해당 선박은 신속하게 당해 해역에서 신속히 퇴거하라.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로 경계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쪽은 한국 해무청 소속 시험조사선 지평호다. 무슨 이유로 아국 영해를 침범하는가? 여기는 우리 한국 해역이 분명하니 일본 선박은 리라인(평화선) 밖으로 퇴거하라.”
“재차 경고한다. 퇴거하지 않으면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독도 영유권은 한국에서 전면 행사하고 있다. 규제 수역에 대한 통제 역시 마찬가지인 만큼 해양 조사는 한국의 고유 권한이다.”
“다케시마 수역에서 아국의 동의 없이 해양 조사를 함은 국제법상 위법사항이다. 속히 퇴거를 권고하는 바이다.”
교관 통역의 말에 강태준이 목소리를 높여 즉시 반박했다.
“국제법 위반이라. 그게 일본국의 공식 입장인가? 그렇다면 일단 울릉도까지 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가?”
“그게 무슨 의미인가?”
“뭐 대화 겸 울릉도에서 실무를 논해 보자는 것이다. 그쪽이 영해에 드나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이렇게 대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물러설 수 없다.”
통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른 배였다면 공무 수행을 하는 것으로 뻥을 친다고 통할 가능성이 없었겠지만 애초에 지평호는 시험 조업선이기 이전에 최신예 선박 중 하나.
저쪽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선박인 만큼 당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은 것. 그래서인지 계속 표박 중이던 순시선은 뱃머리를 돌리지 않은 채 둥둥 떠 있었다.
“저놈들 엄청 꾸물대는군요. 이유가 궁색하면 닥치고 꺼질 것이지.”
“아마 속으로 어떻게 할지 계산 중이겠죠.”
그렇게 지리한 대치가 이어지던 중, 재갑이로부터 급작스럽게 신호가 들렸다.
“09시 00분 왼쪽으로 보고 1주함. 10시 25분경 정체불명의 선박 발견!”
“뭐라고? 대체 어디서?”
“서도 그늘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거 같습니다! 일본 국적입니다. 300톤급이 조금 넘어 보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방위 345도, 거리 4.3 마일! 침로는 160도, 속력 12노트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새로이 나타난 불청객은 일본 순시선인 헤쿠라 호였다. 중형급 순시선의 갑작스런 등장에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덩치 큰 동료가 나타나자 자신감을 얻은 일본놈들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어 어깃장을 놓았다.
“최종 경고다.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다. 본선은 초계를 속행할 것이니 귀선은 즉시 퇴거하라.”
하지만 양재문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까지 버틴 이상 오기로라도 나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퇴거는 불가능하다. 영해를 침범하는 쪽은 그쪽이다. 우리는 정당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니 그쪽이 밖으로 나가라.”
“불가! 그쪽에서 끝까지 물러나지 않으면 귀선을 영해 침범 혐의로 나포하겠다.”
“할 수 있다면 해 보시던지.”
양 배가 팽팽히 대치하고 있던 그때 저쪽에서 공포탄을 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선미 좌측으로 큰 물보라가 일자 깜짝 놀란 선원들이 물결이 솟은 곳을 돌아보았다.
“이런 미친 새끼들 진짜 쐈어!”
“일본 순시선 접근합니다!”
전원 전투태세를 취한 순시선에서 M1 소총으로 공포 세 발을 다시 갈겼다.
기동하는 순시선에 더 이상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양재문이 서둘러 명을 내렸다.
“키 왼편 15도, 양현 하나 올려!!”
“이봐, 서치 뭐 해! 선수 하란 말이야 선수!”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는 선원들을 향해 강태준이 서둘러 고함을 쳤다.
다시 포격이 이어지자, 왼쪽 뱃전 근처의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흩어졌다.
위협 사격에 불과했지만, 포탄이 날아오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자 갑판장으로부터 긴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캡틴, 적함이 순시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를 나포하려는 거 같습니다!”
쌍안경으로 보니 정말이었다. 저 멀리서 다가오던 헤쿠라 호에서 스케이트 보트처럼 생긴 배를 내리고 있었다. 배 위로 완전무장을 한 해경들이 줄지어 탑승하는 모습에 선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제기랄! 저 자식들 진심이구만.”
“전속 기동, 해당 해역에서 멀어져라!”
분하지만 전략상 후퇴할 시간이다. 선장의 명이 끝나기 무섭게 준비 중이던 강태준이 재빨리 타륜을 움직였다.
지평호가 일본 순시선인 노시로도 속도를 올렸다. 두 배가 나란히 속도를 내며 해역을 달렸다. 파도 위를 달리며 부서지는 물살이 배를 휘감고 하얗게 달아오른 파도는 성난 이리 떼처럼 바다를 살벌하게 만들었다.
파도타기 경주라도 하듯 파도를 따라 달리는 배들. 하지만 아까 잡은 어획물을 가득 실어서인지 지평호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둔했다. 어창이 터질 만큼 과량으로 탑재한 탓에 속력을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저쪽의 순시선은 최고 시속 40노트(74km)에 달하는 쾌속정인 데다 아무런 짐을 싣고 있지 않았다. 마치 성능을 자랑이라도 하듯 순시선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안 되겠다고 생각한 선장인 양재문이 명령을 내렸다.
“소화포 요원 배치, 소화포 요원 배치!”
선원들이 소화 호스를 해수에 연결하는 사이, 먼저 접근한 순시선 노시로에서 파고 확성기를 통해 경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선하라! 잠시 검문검색을 실시하도록 하겠다!]
“닥쳐, 이런 개졸렬한 자식들. 둘이니 이제 좀 해 볼 만하다 이거냐?”
“디질려고, 다 덤벼! 대가리 깨 놓을 테니!”
“키 오른편 20도로 좌향, 일본 함정 최단!”
성질을 내는 선원들이었지만 곧바로 신속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자칫 선박과 선박이 충돌할 수도 있는 상황. 좁은 수역에서 소화포를 가동하기가 쉽지 않다. 거리를 좁히는 모습에 강태준이 소리를 질렀다.
“예비 그물을 풀어!”
적함의 등선을 방해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단정 스쿠루가 어망에 감기기 때문에 선미로 접근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쿵 소리와 함께 예비 그물이 풀려 나가자 위기를 감지한 순시정이 급선회했다. 간신히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그것으로 위기기 끝이 아니었다. 순시선 헤쿠라가 다가오고 있었다.
“적함 우현 접근!”
“키 바로, 우현 일본 순시선 접근 중! 우현 일본 순시선 접근 중!”
“발포하라!!”
거리를 좁힌 노시로에서 물대포가 뿜어져 나오며 조타실을 집중 타격했다.
최대 수압 10bar의 물대포가 사선으로 뻗어나는 순간 드르륵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10bar의 수압은 1㎠당 10kg의 힘이 가해지는 높은 압력으로 40~50m 거리 정도면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압력. 이쪽도 지지 않고 마주 물대포를 뿜자 엄청난 수압의 물이 안개처럼 앞을 가리자 창문이 격하게 흐려졌다. 양재문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조타실! 조타실! 상태 괜찮나!”
“다행히 시야에는 이상 없습니다.”
강태준은 쏟아지는 물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타륜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에서 마이크로 ‘영해 밖으로 나가라’ 경고하는 목소리가 퍼져 나왔다.
갑판장인 염일우가 소리를 질렀다.
“적선, 우현 접근 중, 우현 접근 중!”
멀리 있던 배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왔다.
[귀선은 포위당했다. 승선에 협력하라.]
“빠가야로! 너라면 듣겠냐? 이거나 처먹어!”
주먹감자를 먹이는 염일우에 물대포가 조타실을 향하자 지평호도 지지 않았다. 난타전을 주고받는 두 배였지만 총 톤 수 150톤에 덩치가 상대적으로 작은 노시로가 훨씬 불리했다. 정통으로 물대포를 맞은 순시선이 견디다 못해 거리를 벌렸다.
“전속 전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오재갑이 소리를 질렀다.
“적함 선미 쪽으로 재접근 중입니다. 승선 시도합니다!”
“우리는 일본 해경이다. 올라가서 검사할 테니 협조하라!”
“조까! 니들이라면 하겠냐?”
뒤에서는 헤쿠라 호가 맹렬한 기세로 쫓아오고 있었다. 같은 시간, 어느새 재정비를 마친 노시로가 다시 속력을 내 다가오자 다시 물대포를 뿜었다. 사각을 피해 측면으로 다가선 경비 단정이 엄호를 맡고 등선을 시도했다.
“단정 고속으로 접근합니다. 이쪽에 승선 시도하려는 것 같습니다.”
“거리를 벌려. 전속 우회!”
배 옆구리에 순시정을 대고 강제로 정선시키려는 모양이었다. 배 세척이 동시에 포위하려는 모양에 긴박한 상황이 연출됐다. 헤쿠라호가 집단으로 돌진하며 선체 충돌 위협을 가한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