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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67화 (67/361)

67화 상어 투승

해류를 주시하던 강태준이 문득 물었다.

“상어는 몇 번 잡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전에 많이 보기는 했지. 조부께서 용당에서 알아주는 어부였거든. 특히 오륙도나 가덕도 부근에서도 많이 잡혀서. 용당 사람 한 명이 배를 서너 척씩 가지고 있었는데, 몰이 사냥을 하듯이 제주도랑 대마도 근해 강원도까지 다니며 잡곤 했지. 그래서 생일날 샥스핀으로만 파티를 한 적도 있지.”

“와우. 대단한데요.”

“뭐. 근데 웬걸. 부친께선 그게 싫었나 보이. 어부 안 한다고 뭍으로 나와 교편을 잡았거든. 근데 돌고 돌아서 이렇게 뱃놈이 된 걸 보면, 뱃놈 유전자란 게 따로 있나 보이.”

양재문에게는 뭍 생활이 오히려 따분했단다. 중학교까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면서 항상 모험을 동경하고 있던 양재문은 바다에 나와 보고는 그대로 반해 버렸다.

그러고는 바로 천직이라고 느껴 끓은 혈기에 바로 수산대에 입학했다고.

덕분에 아버지와는 한때 의절할 만큼 서먹하기도 했지만, 손자들이 태어난 지금은 다시 회복된 사이라고.

과거를 회상하며 커피를 마시는 양재문에 강태준이 동의하듯 끄덕였다.

“확실히 바다란 게 묘한 마력이 있지요. 그보다 초사는 이제 좀 괜찮습니까? 아까 보니 정신이 없어 보이던데.”

“글쎄, 아직 숙취에서 못 벗어났더군. 그놈 아주 정신을 못 차리게 대가리가 더 깨져 봐야지. 마음 같아서는 하선시키고 싶은데, 저걸 당장 자를 수도 없고 말이야.”

“그런 분을 초사에 선임하다니, 굳이 뭔가 말 못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강태준으로서는 당연한 의문이다. 보통 선장으로선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1등 항해사는 자기 심복을 심곤 한다. 더욱이 이렇게 회사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항해에서 트러블을 일으킬 요소를 배제하지 않을 줄이야. 인선이 이해되지 않을 법도 한 것이다.

그 말에 양재문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제 와 뭘 속이겠나. 저 자식 외숙부가 심익태 사장일세. 수산협동조합에서 있던 놈인데 굳이 타겠다고 생떼를 부려서 배에 탄 거지. 지 딴에야 대형 강선 승선경력 한 줄 추가하려고 들어온 거지만.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어.”

“그렇습니까? 행패가 심한가 보군요.”

“말도 말게 오죽하면, 고참 선원 중 저놈 등쌀에 못 이겨 나간 녀석이 벌써 세 명이 넘어. 2항사를 포함해서. 사실 자네가 들어온 것도 반은 저놈 덕이야.”

“허, 그 정도입니까? 그거 알 만하군요.”

“그래도 굳이 붙어 있는 게 철판을 보통 깐 게 아니라니까. 조업에만 열중하기에 모자랄 판에 정치질까지 필요하다니. 그래도 깨어 있을 땐 나름 역할을 하긴 하니 대놓고 타박할 수도 없고. 차라리 어중간한 실력이면 자르기도 편할 텐데, 여러모로 계륵이야.”

“허어. 골치 아프군요. 실력은 있는데 태업을 한다라.”

“하하. 다 내 업보 아니겠나. 암튼 티 내지 말게.”

심 사장으로선 전혀 이해 못 할 행태는 아니다. 솔직히 이 시대의 선장들은 그야말로 기본도 안된 경우가 많았으니까 각종 경비랑 선원들 부식비 횡령은 기본. 항구에서 오입질로 지갑을 털리는 건 기본이고 관제 채널을 헷갈려서 쿠사리를 먹지 않나.

정상적으로 제 몫을 하는 시니어들이 적다 보니 아무리 엄선해 뽑았어도 선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안한 노릇, 게다가 원양어선은 선장이 선원들과 짜고 어획물에 장난을 쳐도 답이 없는 만큼 감시역을 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감시역 자체가 꼴통이니 문제가 되는 것이지.’

아무튼, 그 덕에 탑승까지 한 셈이니 고마워해야 하나.

뱃걸음으로 12~15시간 정도 가자 마침내 대화퇴어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지나 한숨 자고 일어난 강태준이 쌍안경으로 주위를 계속 살폈다.

“주변 해역은 어떤가, 근처에 느낌은 좀 있나?”

“저쪽 파도가 느낌이 좋습니다. 갈매기 떼를 보니 먹이도 풍부한 것 같습니다.”

선장이 시선을 주니 과연 흰 스웰이 비단결처럼 너울거리는 것이 보였다. 백파가 보인다는 건 물고기가 많다는 증거. 강태준의 말에 동의한 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항해사, 배 방향을 가운데 돌리고 투승 조원들을 불러!”

“알겠습니다.”

서둘러 갑판 위로 나온 선원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상어를 잡으려면 신선한 상태의 미끼를 사용해야 하에 목표지를 정한 후부터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미끼는 다름 아닌 장어.

점액질로 미끈거리는 장어를 낚싯줄에 하나씩 꿰는 모습에 오재갑이 신기해했다.

“장어 낚시라니 호사스러운 미끼군요.”

“민물 장어일세. 바닷장어보다 살결이 단단하고 비린내가 많아 상어가 좋아하는 먹이지. 이것도 가격이 꽤 들었어.”

“뭐, 상어도 몸보신해야지 않겠나. 이게 마지막 만찬이 될 텐데 말이야.”

이것저것 농을 해 가며 선원들이 서둘러 미끼를 꿰었다. 일반적인 목선의 경우 한 바리에 보통 30개 정도지만 이번에는 꿰여야 할 미끼만도 2,000마리가 넘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숙련된 솜씨로 미끼만 먹고 도망가지 않도록 낚싯바늘을 단단히 끼웠다.

“준비 다 되었습니다.”

“오케이 90도 정침, 투승 개시!”

줄을 감아 드는 선원들의 손이 바빠졌다. 상어는 피 냄새를 좋아하는 만큼 연줄에도 피를 잔뜩 묻힌 다음 바다 위로 풀어 놓는 것이다. 갑판장인 염일우가 고함을 지르며 작업을 독려했다.

“좋아. 하나 둘 셋!!”

부표를 던진 선원들은 미끼 놓을 곳의 위치를 표시한 다음, 외줄에 17미터 간격으로 달리는 배 위에서 미끼를 하나씩 던졌다.

“주낙이 꼬이지 않도록 조심해! 거기 신병, 거 빠릿빠릿하게 못 움직이나?”

“예. 시정하겠습니다.”

“허둥대지 말고, 빨려 들어가지 않게 조심히 던지라우.”

투승이 절반쯤 진행된 시점 지평호는 다시 침로를 꺾어 정남으로 번침했다. 번침을 중간에 한 것은 ㄴ자 쪽이 빗변에 해당하는 거리가 훨씬 짧기 때문. 조업 첫날인 만큼 배를 전속으로 항진하며 30여 마일의 거리에 2,500여 개의 낚싯바늘을 넣었다.

표층 온도가 섭씨 21도 정도로 낮았던 만큼 30km 정도 되는 원줄을 축률 0.5 정도.

깊이는 100미터 내외로 조절하기로 한 것.

오후 1시를 넘어 다시 양승작업이 시작되자 키를 잡은 선장의 손이 떨렸다.

평소답지 않은 양재문의 행동에 강태준도 덩달아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첫 투승이라서일까 시험을 보는 기분이었다.

“올라온다! 서둘러.”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양승기의 링이 회전하기 시작하자, 물속에 깊이 꽃인 메인 라인이 빨리듯이 감겨 올라왔다. 브랜치 라인이라고 불리는 낚싯줄이 가지처럼 갈라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첫 번째로 바스켓 한 바구니를 들어 올렸지만 공허한 무게.

먹다 만 장어 머리만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에 김빠진 갑판장이 한숨을 쉬었다.

“시부럴. 물방이네.”

“젠장, 영악한 시키들. 미끼만 먹고 튀었구먼.”

햇또 역시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미끼로 쓴 장어들이 쏙 빠진 채 바늘만 덜렁거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텅 빈 낚싯바늘만 올라오자 선원들의 표정이 점점 냉막해졌다.

껄끄러워진 분위기를 감지한 강태준이 과장되게 박수를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자자 왜들 그러십니까. 조업 처음도 아닌데, 이렇게 풀이 죽어서는. 이제 겨우 시작 아닙니까?”

“그래. 너무 서두르지 말자고. 이제 시작일 뿐이니. 아직 2천 개가 넘는 낚시가 물 안에 드리워져 있지 않나? 게다가 이건 연습이야 연습.”

선장의 격려에 정신을 차린 선원들이 심기일전하여 다시 조업을 계속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허탕이었지만 네 번째 바스켓부터는 달랐다. 세 번째 낚시에 큰 놈이 하나 걸려 있었던 것이다.

물속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모습. 그때 사이드 롤러를 지켜보던 꺽다리의 낯이 밝아졌다.

“상어다!”

“환도상어로군. 이거 시작이 좋은데!”

몸길이의 반에 달할 정도로 긴 꼬리지느러미를 지닌 환도상어는 맛이 좋고, 지느러미가 길어 좋은 값에 팔리는 녀석이다. 대나무 갈퀴를 움켜쥔 선원들이 정수리 부분을 사정없이 내리찍자 괴롭게 비틀거리던 상어가 올라왔다.

마수걸이로 잡은 환도상어를 시작으로 상어들이 하나둘 올라오자 선원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1분에 150미터의 줄을 감는 양승기가 어획물을 끌어 올리자, 상어와 함께 딸려온 고기들까지 갑판 위로 떨어졌다. 수압차로 부레나 내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고기들은 갑판 위에서 퍼덕거렸다.

갈퀴로 찍어 낸 상어들은 곧장 어창으로 직행했고 갑판 위는 비린내와 피 냄새로 가득 찼다.

“지느러미! 지느러미 조심해! 지느러미 상하면 제값 못 받는다.”

상어의 몸값 대부분은 샥스핀에 있는 만큼 지느러미가 가격의 핵심이다.

잡힌 상어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했다. 머리가 망치처럼 생긴 귀상어를 비롯해 야지상어, 빔상어, 참상어 등 여러 종류였다.

그 외에 새우, 복어, 참방이 등등. 이름 모를 고기들이 떼 지어 올라왔다.

그러던 중 갑자기 턱 하고 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낙이 뚝뚝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쇠막대기처럼 꼿꼿해지는 것이 아닌가.

갑판장이 급히 레버를 누르자, 물속 깊숙이 꽂혀 있던 메인 라인이 수면과 수평으로 떠오르면서 선후 멀리 뻗어 나갔다.

연필 굵기만 한 메인 라인이 슉슉 소리를 내자, 바닷물 밑으로 거센 진동이 느껴졌다.

“뭐, 뭐야.”

“밑에 큰 놈이 있습니다. 이거 힘이 아주 장산데요.”

잘 당겨지지도 않을 만큼 묵직한 느낌에 갑판장이 심상찮음을 감지했다.

어구는 대젓가락 굵기의 면사를 꼬아서 사용했기 때문에 몹시 질긴 만큼 쉽게 요동치지 않는다. 그 움켜쥔 낚싯줄이 아주 고집스럽게 긴장된 채로 멀리 물 깊숙이로 뻗쳐 있는 것이다.

선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무언가가 부상하는 잠수함처럼 떠오르고 있다.

심상찮은 기색을 감지한 선원들이 우르르 현문 쪽으로 몰려갔다.

웅성거리는 소리에는 흥분이 섞여 있었다.

“이거 대어다!”

“끌려들지 않게 조심해!!”

연거푸 주의를 주던 선장 역시 상갑판으로 뛰쳐나갔다.

보통 고기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 순간 수중에서 발사된 미사일과 같이 바닷물이 움푹 파헤쳐지더니, 쇠꼬챙이 같은 것이 불쑥 솟아올랐다. 가시돌기처럼 들쑥날쑥한 이빨을 드러낸 녀석을 본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발…… 뭐야!”

“백상아리다!”

“엄청난 대물이야!”

사람들의 경악에 호응하듯 상어가 아래턱을 벌렸다.

무기질 같은 눈동자가 고정된 채로 배를 노려보듯 부릅뜬 것이 실로 위협적이었다. 방추형의 몸에 뭉툭한 주둥이를 흔들어 대는 녀석의 입속에 삼각형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 엄청난 놈이군.”

“허허. 이 자식 뭘 먹어서 이렇게 컸나. 힘이 아주 장사인데 그래?”

선원들의 눈은 대어를 만났다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풍에 맞서는 돛처럼 등지느러미를 활짝 편 것이 꼬리까지 길이가 적어도 4m는 넘어 보이는 거물이다. 포효하듯 쫙 벌린 입이 위엄을 돋보이는 모습.

덧니가 인상적인 입을 벌리며 몸부림을 치는 상어에 오재갑이 재빨리 메인라인을 양승기에서 벗겨 냈다.

힘에 부친 갑판장의 모습에 사이드 롤러 쪽으로 달려간 강태준이 나섰다.

“다음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럼 부탁하이.”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는 선원들의 모습에 양 선장이 고함을 질렀다.

“거기 뭣들 하나? 브랜치 라인 빼고, 요비도 빨리 연결하라고.”

“예!”

“거기 햇또는 어서 학갓대 갖고 와! 갑판장! 교대해 주게!”

선장의 얼굴 역시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갑판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충만해졌고, 브리지에서 위에 있던 선장의 손에도 땀이 흥건했다. 메인라인을 인계받는 순간, 손아귀를 파고드는 줄 끝으로 묵직한 무게감을 느껴졌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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