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66화 (66/361)

66화 첫 출항

양재문이 박수를 멈추고 말했다.

“자, 경력은 아직 일천하지만 이들 둘은 아주 능력 있는 인재들이라 자부한다. 예전에 들어서 알지? 이 강태준이는 예전에 어로학과 대표로 항해과와 시합을 벌여서 콧대를 꺾어 준 일 말이야.”

“아, 그 사람이 바로 저 녀석입니까?”

“아, 양 선장이 침이 마르게 이야기하던?”

새삼스럽게 돌아보는 선원들.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양재문이 좌중을 환기시켰다.

“자자, 서로 인사는 알아서 하고 뭐. 다시 말하지만 배 위에서는 안전과 규율이 중요하다. 첫째가 안전제일이고 둘째 규칙 준수. 내가 허락하지 않고 선상에서 음주는 절대 금지다. 술을 멋대로 음용하거나 무단으로 자리에서 이탈할 경우 퇴선이며 예외는 없다. 이 두 가지가 우리 배의 룰이다. 알겠는가?”

“예.”

“그럼 따라 하라! 안전제일! 규칙 준수!”

“안전제일! 규칙 준수!”

만족스러운 듯이 주위를 돌아본 양 선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수적인 내용은 갑판장이 소개하겠다. 주부식비도 그쪽이 전담하니 그 쪽에게 주면 된다. 이상~!”

“알겠습니다.”

배식이 끝난 후엔 선원들이 돌아가며 각자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행에 가장 먼저 친근감을 보인 것은 까맣게 탄 얼굴의 남자였다.

거뭇한 구레나룻을 앞세운 갑판장이 큼직하고 억센 손으로 인사를 청했다.

“안녕하쇼? 나는 갑판장을 맡은 염일우일세.”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귀 따갑게 들었네. 싹수 있는 친구가 탐난다 하더만 진짜로 오실 줄은 몰랐군.”

“근데 한 분이 없는 거 같은데. 1등 항해사는 어디 계십니까?”

두리번거리는 강태준이 상대를 찾자 염일우가 쓰게 웃었다.

“아 초사 말인가? 그분은 좀 찾아도 소용없어. 요새 술추렴하시느라 바쁘시거든. 여기가 유람선인 줄 아는가 보지.”

“차라리 없는 게 낫죠. 허리 아프다고 지랄 떨면 답 없잖습니까.”

“아주 지가 하나님이시지 뭐.”

하역 당직 때 빼곤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매일같이 다른 어선 기관부 사람들과 놀자판이라고. 그 말에 FM인 오재갑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아무리 시험 조업이라지만 출항 전에 술이라니, 좀 그렇군요.”

“허허, 근해 정도야 뭐 크게 문제 되는 부분은 아니지. 다들 베테랑이니 말이야. 그보다 어이 햇또(헤드 세일러의 줄임말), 시고미는 다 했나?”

갑판장이 옆에 식사를 거의 다 마친 남자에게 묻자, 고깃덩이를 꿀꺽 삼킨 녀석이 대답했다.

“옙. 생수랑 식수는 인원수대로 실었습니다. 연료유도 40드럼 정도 넣었고요.”

“미끼 선적 체크하고 방한 외투도 좀 넣어. 아무리 그래도 몇 주는 바다에서 생활할 텐데, 불편함은 적어야지.”

“예. 갑판장님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녀석이 곧장 브릿지로 밖을 나가려고 하자, 갑판장이 그를 말렸다.

“어이, 밥은 마저 먹고 가야지. 서로 인사 안 했지? 이 녀석은 햇또인 윤기수야.”

“예, 안녕하십니까. 밥은 다 먹었으니 전 일단 일부터 마치고 오겠습니다.”

건성으로 고개를 숙인 남자가 서둘러 자리를 피하자, 염일우가 민망한 듯 웃었다.

“어휴, 또 저러는구만.”

“프로정신이 투철한 분이군요.”

“그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그래. 낯을 생각보다 많이 가리거든. 꽤 과묵하지만 그닥 나쁜 녀석은 아니야. 차차 친해지면 말수가 늘걸세.”

염일우는 대략적인 선원들에 대해 설명했다. 기관장을 비롯해 선원들과 안면을 익힌 강태준이 인사를 나누었다. 다행히도 초사 김정욱을 제외하고는 다들 가려 뽑은 것처럼 대체로 성격이 원만하고 모난 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식사 후, 브릿지에서의 작업이 정리되자 양 선장이 기관사를 불러 물었다.

“기관 정비는 다 되었나?”

“거의 끝났습니다.”

“초사는?”

“그게 아직입니다.”

“뭐? 그 자식 빨리 불러와. 다리 몽둥이 확 분지르기 전에.”

정각이 4시가 되어 배는 출항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임검소에서 경찰관 한 사람이 올라와 승선 인원과 선원증을 확인할 무렵이 되자 양재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양재문이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기 직전 술로 반죽음이 된 초사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왔다. 눈이 풀리고 코가 빨개진 모습에 참다못한 양재문이 버럭 성을 냈다.

“임마, 출항이 코앞인데 또 얼마나 처먹었어?”

“나가면 못 먹으니 몰아서 먹어야죠.”

“뭐라고 이 자식이 그냥?”

넉살 좋게 대꾸하는 행동이 양 선장의 화를 더 키웠다. 양 선장의 주먹에 불끈 힘이 쥐어지는 순간 염일우가 순간적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하하. 왜 그래. 초사 양반? 정신 차리라고. 냉수 마시고 속이나 차리게. 어서 들어가 봐.”

“예이. 그럼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새끼가…… 감히.”

“참으십쇼. 선장님. 원래 저런 놈인 줄 아시잖습니까? 취객과 상대해 봐야 똥밖에 안 나옵니다. 꾸짖더라도 나중에 하시지요.”

갑판장의 간곡한 부탁에 양재문은 주먹을 거두었다.

가까스로 표정을 수습한 양재문이 심호흡을 하더니 눈을 감았다 떴다.

잠시 후 평정심을 되찾은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초사는 정신이 아직 안 돌아온 듯하니 태준이 자네가 수고해 줘야겠군. 강 항해사 준비되었나?”

“물론입니다.”

“그럼 좀 이르지만, 시험 한번 해 보지. 자 출항이다. 엔진 스탠바이!!”

“스탠바이!”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원들. 잠시 후 엔진이 걸린 배가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갔다.

“엔진 슬로 어해드! 키 스타보트 이지!

타륜을 6~7도 정도 오른쪽으로 돌리자 선미의 배수류가 왈칵 뿜어져 나온다. 배가 조금 전진하는 듯하더니, 선수부가 오른쪽으로 찬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 흐르는 듯 부드러운 움직임에 선장인 양재문의 표정이 좋아졌다.

“처음 모는 배인데 운전이 능숙하군. 언제 비슷한 선박 몰아 본 적 있나?”

“그럴 리가요. 예전에 타던 배랑 구조가 비슷한지 이상하게 손에 익네요.”

“그거 타고났구먼.”

전생에 몰던 선박과 비교하면 조족지혈 수준이긴 하지만 49만 달러나 되는 비용을 들여 건조한 선박인 만큼 타륜이 예민한 것이 꽤 마음에 든다. 뒤이어 따르릉 하는 부저 소리가 멎자 선체는 물을 털어 내듯. 프로펠러를 돌렸고, 배 꽁무니로 완만한 모양의 항적이 그려졌다.

배는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갔다. 배가 속력을 내자 선수 갑판에 있던 갑판원들이 계류색을 끌어올렸다. 정박 중 선박을 부두에다 비끄러매는 데 쓰이는 로프는 당분간 보슨 스토어 깊숙이 수납될 참이었다.

이윽고 항구를 빠져나온 양 선장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다시 명했다.

“엔진 하프 어헤드!”

명령에 따라 서북으로 돌아간 뱃머리가 대양을 가른다.

바닷바람을 뚫고 내달리는 배 밑에서 파도는 하얀 포말을 내뿜으며 갈라진다.

맞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리며 엔진 소음이 거세지자 양재문이 목청을 높였다.

“현재 선수는?”

“56도입니다.”

“제대로 가고 있군.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 일단 속도는 5노트 정도로만 맞추게나.”

“알겠습니다.”

뒤쪽을 보니 연통에서 나온 연기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배는 해무처럼 뿌연 연기를 뿜어내며 느릿느릿 항진해 나갔다.

중간중간 양재문은 신참내기인 선원들을 숙달시키며, 대략 3, 4회 정도 조업 연습을 했다. 돌돔류 몇 마리에 오징어만 잡힌 저조한 수준이었지만 애초에 손발을 맞추기 위한 연습인 만큼 딱히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순항하던 배가 작업 예정 지역에 도착하기까지는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독도로군.’

울릉도 동남쪽으로 87.4km, 동해안의 죽변에서 동쪽으로 216.8km

육안으로도 뚜렷이 보일 만큼 큰 돌섬이 보이자 양재문이 다시 물었다.

“얼마 남았나?”

“남동으로 40km 정도 더 가면 됩니다.”

“풍속은?”

“5m/s입니다. 기온도 선선하고 나쁘지 않습니다.”

“미풍이군. 대충 기관 끄고 표박시키게. 세 시간쯤 뒤 조업 시작하지. 교대 조만 남기고 다들 들어가.”

“아 선장님!”

“왜 그런가?”

“마스트등을 갈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좀 조명 상태가 약한 거 같아서…… 아무래도 등을 교체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초사한테 말해 놓겠네.”

초사에게 워크 오더해 1기사에게 요청하여 허락하면 기관부 보조가 들어가는 게 원칙이다. 그러자 강태준이 다시 말했다.

“굳이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있겠습니까? 그냥 제가 하지요.”

“자네가? 설마 고소 작업도 해 봤나?”

“네. 그 정도야 실습선에서 몇 번 교체해 봤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뭐. 그러면야 고마운 일이네만 조심하게.”

원래 선내 전기담당은 초짜인 삼돌이들 담당이지만 이런 고소 작업은 누구나 꺼리기 마련. 솔선수범하고 기관부에 빚을 지워 두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마스터 등 꼭대기까지 로프를 걸고 올라가 보니 아찔하기 짝이 없었다.

“후덜덜하구만…… 이거. PSCO(선박검사관)가 보면 한 소리 나왔겠는데.”

손이 후들거리는 높이였지만 꼭대기에 매달린 강태준은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세이프티 후프가 간격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간간이 황철득에게 배운 노하우 덕분에 어떻게든 올라가긴 했다. 마스트등을 살피니 다행히 수명이 다해 가는 것 외엔 다른 점은 없었다.

‘다행히 어스가 발생하거나 전압 문제는 아니군.’

능숙한 솜씨로 마스터 등을 바꿔 끼운 강태준은 로프에 몸을 기댄 채 다시 아래를 바라보았다. 선체의 중심으로 120도씩 좌우로 움직이는 등불이 해면을 비추는 가운데 어둑한 바다에는 별들이 내려앉아 바다의 잔잔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밤이 깊은 가운데 오징어 집어등의 맑은 불빛이 독도 주변 해역의 밤을 하얗게 밝혔다. 휘황한 고촉등이 불을 뿜는 가운데. 낙하산처럼 생긴 풍이 뱃머리에 연결된 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카바이트로 불을 밝힌 목선들이 빛을 내뿜는 모습을 보니, 꽤 운치 있는 광경이긴 하다. 그때 수면에 뜬 별들이 산산 조각나더니 팔뚝만 한 오징어 몇몇이 물뿜이를 하며 전진과 후퇴를 되풀이하는 모습이 보였다. 호광성 연체동물들이 표박 중인 배의 불빛을 보고 몰려든 것이다. 마스트에서 내려온 강태준이 멍하니 그 모습을 구경했다.

‘재갑이 그 녀석, 기관실서 개고생하겠구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자기가 3항사일 때가 생각난다. 그때 기름뺑이를 치며 기관부 노가다랑 찐하게 놀았던 기억이 악몽처럼 남아 있을 정도. 적어도 양 선장이 깨인 사람이라 갑판부 밥 교대는 안 하니 그나마 다행인가.

그때 마침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선장인 양재문이 잠시 쪽잠을 자고 나온 것이다.

“선등은 벌써 교체했군. 그보다 교대할 시간인데 쪽잠이라도 자 두지 그래? 안 자두면 나중에 피곤해져.”

“갑자기 밤바다로 나오니 잠이 안 와서요. 선등도 갈았으니 이참에 수온 측정 중입니다.”

“호오, 부지런하군. 그래서 어장 조사는 잘돼 가나?”

“예. 조류도 잔잔하고 수온도 23도 정도라 조업에는 무리 없을 거 같습니다.”

“그거 희소식이군.”

상어는 더운물과 찬물이 교차하는 지역에서 자라는 생물이다. 특히 상어는 번식을 위해 차가운 해류를 따라가는 습성이 있는데 온혈동물 특성상 22도에서 25도 사이에서 먹이 활동이 활발해진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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