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옹기 장인
대정읍 구억리.
주변에 모슬포 등 상행위에 유리한 포구가 위치하고 옹기 가마 운영에 필요한 연료인 땔감과 점토를 보다 쉽게 구할 수 있어 예로부터 옹기 제조로 유명한 동네다.
대정 현성을 지나자 이정표처럼 돌하르방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귀가 부처처럼 크고 둥근 것이 소박하면서 인간미가 있어 보이는 외양이었다.
잠시 후, 돌로 된 담벼락과 초가가 나타나자 강태준은 트럭을 멈춰 세웠다. 마을 어귀로 들어선 강태준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가요?”
“글쎄? 여기서부터 마을 같은데 이쯤부터는 내려서 찾아가야지.”
생각보다 썰렁한 것이 별로 인적이 없어 보인다. 때마침, 물동이를 지고 가는 여자의 모습에 마침 잘 되었다 생각한 오재갑이 서둘러 길을 물었다.
“저기 아주머니, 길 좀 여쭙…….”
“히익! 내는 모르이.”
흠칫 놀라는 아낙이 기겁하며 사라지는 모습에 뻘쭘해진 오재갑. 강태준 일행이 여러 번 말을 걸어 보려고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다가가기 무섭게 눈을 내리깔거나, 빠른 걸음으로 줄행랑을 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당최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는 노릇에 답답해하던 즈음 부지깽이를 든 영감 하나가 일행을 보더니 인상을 팍 썼다.
“거, 밖 외지에서 왔나?”
“예. 그렇습니다. 어르신.”
“마, 여기서 허튼짓 말고, 얼렁 돌아가라우. 이 동네서 뭐 해 먹을 것도 없으니.”
노인은 경계하듯 한마디 던지더니 이내 침을 탁 뱉었다. 거 재수 없게…….
앞뒤 없는 폭언에 대략 정신이 멍해진 일행들.
정신을 수습한 오재갑이 민망함을 털어 내려는 듯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허허. 이 동네, 사람들이 낯을 많이 가리나 봅니다?”
“그러게…… 이렇게 동네가 배타적이라는 말은 못 들었는데. 지나치게 냉랭하구만.”
환대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이렇게 경계심이 강할 줄이야,
난감하기 짝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다. 강태준은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약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주소 보고 찾아가는 수밖에 없겠군.”
더듬더듬 마을 길을 따라 길을 걷는 일행. 몇 년 새 지형이 바뀌었는지, 군데군데 그림과 약도와 달라진 곳이 많다. 얼추 꾸역꾸역 대조해 보며 위로 오르던 중 뭔가 특이한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형님 저거 보십시오.”
“응? 저건 옹기들인가?”
“그러게요. 아무래도 만들다 만 것들 같습니다.”
깨진 옹기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에 절로 눈이 가는 둘.
깨진 파편을 살펴보니 도자기 색깔에 검은 윤기가 흐른다. 개중에는 표면이 거칠게 숨구멍이 송송 난 물건도 있고, 검게 타서 시꺼멓게 변한 물건도 있었지만 대체로 깨서 버린 물건이라고 보기 아까울 만큼 품질이 고르고 매끄러웠다.
한동안 옹기 구경에 빠진 둘 뒤로 문득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변태들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신기합소까? 다 박살 난 쓰레기들 보면서 실실대긴.”
대바구니에 물지게를 지고 있는 소녀 하나가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검정 고무신에 저고리를 걷어 올린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소녀랄까.
소처럼 크고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호기심이 가득 들어 있었다.
“첨 보는 사람인디, 어데서 왔소?”
“부산서 왔단다. 여기서 사니?”
“니에. 여기 토박이이유. 근데 무슨 이유로 왔슴가? 여기 뭐 구경할 게 널린 것도 아닌데.”
“아, 우리는 관광객이 아니야. 우린 옹기 장인을 찾고 있단다.”
“옹기유? 주소는?”
주소지를 확인해 본 소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따. 김가네구먼요. 이 집은 예전에 불타서 없어져 버렸는디. 벌써 몇 년 됐어유.”
“뭐라고? 언제?”
“그기 삼 년쯤 됐당가? 그때 화재가 말이 아니라서 동네가 아주 떠들썩했지유. 동네 사정을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어째 그런 것도 모르는교?”
“그럼 시중에 유통되던 옹기들은?”
“그거야 몇 년 전에 만들어 둔 거겠쥬. 원래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지 않남…….”
듣자 하니 이미 그쪽의 가마는 화재 이후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단다. 옹기장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제 갈 길을 가 버리고 말았다나. 강태준으로서는 정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뭐, 이거 야단났군. 우리도 소개받아서 온 건데.”
“허…… 이제 어쩌죠?”
호언장담하길래 왔는데, 거래할 곳이 아예 불타 없어져 버렸다니.
난감해하는 강태준에 까무잡잡한 소녀가 되물었다.
“뭘 그렇게 걱정이 많으신가. 옹기 사러 오셨음, 옹기만 잘 만들면 되는 거 아니유? 꼭 거길 고집할 이유야 없잖슴까?”
“그건 맞지.”
“그런 거라면 따라오셔유. 우리 집도 옹기 만들어유.”
스스럼없이 손을 잡아끄는 모습에 강태준이 엉겁결에 따라갔다.
얼마를 위로 올라갔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거리에 오재갑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헉헉, 어디까지 가야 되는 가는 거니?”
“가마 있는 곳이요. 남자기 무슨 체력이 그렇게 없나. 조금만 좀만 더 가면 됩니다요.”
보채는 소녀의 한심하다는 눈빛에 오기를 부리는 오재갑. 다행히 30분쯤 더 가자. 산기슭 어귀에 기울어진 가마와 토담집 하나가 있었다.
종이 한 장 크기의 아치형 창이 난 토담집 앞에는 비스듬하게 누운 석요가 기대듯이 누워 있다. 반원형의 통요 앞에 아궁이처럼 입을 벌린 앞고망이 있고, 뒤쪽엔 연기 구멍이 나 있다. 일반적인 굴뚝이나 배연 시설과는 차이가 있다.
그 앞으로 바람과 눈비를 막기 위해 돌로 쌓은 부쟁쟁이가 있었다. 살아있는 나뭇가지를 말려 짚단처럼 엮은 섬피들이 해량돌로 덮인 굴 앞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성형장 안으로 들어가니 좌우에는 떡가래처럼 늘어진 흙 타래가 있었다. 성형용 공구와 물그릇을 옆에 두고 옆에 두고 마로 된 겉옷을 입은 노인이 발 물레를 돌리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긴 수염에 흰 머리를 묶은 모습이 마치 도인이 연상되는 모습. 자연 채광에 의지해, 물레로 통개를 빗는 모습에 절로 시선이 갔다.
“할부지, 시원하게 들이켤 물 떠 왔어요.”
“에유. 우리 강아지. 이제 오니. 수고했다.”
그제서야 고개를 든 노인이 눈가에 인자한 웃음으로 손녀를 반기다 낯선 이방인을 보고는 얼굴이 굳었다.
“어, 뒤에 분들은 누구냐?”
“헤헤…… 제가 손님을 좀 모시고 왔지요.”
“손님? 누구?”
“아, 강태준이라 합니다.”
“반삼평이요. 처음 보는 분이구먼. 대체 어떻게 오신 건가?”
의구심 가득한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강태준이 거리를 두고 말했다.
“사실은 요 뒤에 김가네를 찾아온 사람입니다. 추천을 받았거든요.”
“추천이라니 누구한테?”
“황철득 어르신이라고 도비꾼하시던 분입니다. 저랑 막역한 사이인데 제주에 좋은 옹기장이 있다고 귀띔을 해 주시길래 수소문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안색이 누그러진 노인이 아는 척을 했다.
“철득이? 아, 기억나오. 안 본 지 이십여 년 정도 되었나? 나무를 아주 잘 타서 장비 없이도 날아댕기던 사람이었지. 읍내의 전봇대도 그 녀석이 설치해 준 거지. 그보다 철득이랑은 어떤 사이요?”
“같이 현장에서 만난 사이입니다. 여기 신원을 증명할 소개편지랑 그려 준 약도도 가져왔거든요. 혹시 몰라서 전해 달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마터가 통으로 없어져 버렸으니, 전달도 곤란해졌군요.”
“함. 줘 보시게나.”
안경을 든 노인이 신중하게 편지지에 적힌 글씨체를 확인했다.
편지를 읽어 내려간 직후 의구심을 떨친 듯 날카로웠던 눈빛이 연해졌다.
“철득이 그 녀석 필체가 맞구먼. 말투도 그렇고.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소? 흙이 마르기 전에 작업부터 끝내야 해서. 양이 많지 않아서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요.”
“당연히 기다리지요. 그럼 좀 구경해도 될까요?”
“그럼 저기 앉아 계시구려.”
양해를 구하는 노인의 말에 냉큼 강태준은 자리에 앉았다. 평소 이런 걸 구경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물레로 그릇을 빚는 작업은 보고 있기 꽤 신기했다. 외벽에 칼날을 대고 물레를 회전시키면 원심력에 의하여 울룽불룽한 부분이 없어지고 부드러운 원형이 된다.
날칼 모양의 밑가새를 쥐고 가만히 대고 있자 깎여 나간 몸통이 둥글어졌다.
강태준이 계속 시선을 주자, 노인이 웃으며 권했다.
“그냥 기다리기 무료하실 텐데 한번 만져 보시겠소?”
“아, 그래도 됩니까?”
“뭐, 닳는 것도 아닌데 뭘. 옹기 사러 오신 거 같은데 재질을 알면 더 좋지 않겠소?”
강태준이 사양하지 않고 물레 위에 돌아가는 흙더미를 만져 보았다.
만져 본 흙은 입자가 곱고 점성이 있는 것이 부드러운 촉감.
조심스럽게 흙을 만지작거리던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부드럽군요. 여기 흙은 아닌 거 같은데요.”
“눈썰미가 좋구먼. 하지만 이건 고냉이 찰흙이라 불리는 점토일세. 제주에서 소량 채취되는 건데 인접한 신평리에서 점토를 구매하여 이용하고 있지.”
“제주에서도 점토가 납니까? 현무암 풍화토가 대부분인 걸로 아는데?”
“잘 알고 있구만. 그래서 귀하지. 고령토는 이질암에서 그리고 소량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네. 지금도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 흙을 찾아 매일 돌아다니곤 한다네.”
“엄청나게 수고스럽겠군요. 특별히 도기 제작에 이 흙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고냉이 찰흙에 장석과 재를 일정 비율로 혼합하면 유약 효과를 내거든. 일반적인 도기와 다르게 이걸 소성하면 표면에 인공 유약을 녹여 바르지 않고도 된다네.”
“아,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 숨 쉬는 옹기인 거군요.”
섬피를 태운 열로 구워 낸 옹기에 열기가 배이면 천연 유약이 만들어진다. 굴 양쪽으로 뚫린 잿불 구멍으로 싱그러운 들판의 바람을 굴속으로 불어넣고 있었다. 작업을 끝낸 후 깨끗이 손을 씻은 노인이 일행을 돌아보며 안내했다.
“이제 초벌은 끝났구먼. 오래 기다리셨구먼.”
“아닙니다. 재미있었습니다.”
평상으로 돌아가자 아까 둘을 안내했던 소녀가 간단한 다과상을 차렸다.
조그만 다기 잔에 차를 따르자 은은한 한약 냄새가 번졌다.
“아, 고맙구나.”
“한라산에서 딴 국화에 한방을 넣고 우린 차예요. 맛있게 드세요.”
과연 다향이 독특한 것이 맑은 산의 정기가 몸 안에 스며드는 기분.
문득 찻잔을 들어 보니 어두운 검은색에 광채가 나는 찻잔에는 기기묘묘한 요번이 옆에 새겨져 있다. 불을 어떻게 다루면 이런 문양이 새겨질 수 있는가. 높은 수준에 경탄하기도 잠시 노인이 말을 이었다.
“외지인은 오랜만에 보는군. 특히 상인이 방문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흠. 여쭙기 실례일지 모르지만, 이곳은 원래 도기 판매로 운영되는 마을 아니었습니까?”
“허허, 몇 년간 큰 거래가 한 번도 없었거든. 해방 직후 큰일이 터지는 바람에…… 외지 쪽으로만 소규모 매물을 보낸 정도지. 게다가 전쟁 때문에 상황이 말이 아니었고.”
“무슨 일이요?”
“빨갱이 때려잡는다고 한동안 시끌벅적했었잖나. 뭍에서는 별로 전해지지 않았나? 해방 후에 무장공비니 뭐니 신문에서 떠들썩했을 텐데 말이야?”
제주 4.3사건을 말하는 건가? 오재갑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 남로당 무장공비 사건 말씀이십니까? 좌익 쪽에서 우익 인사들을 습격했다던…….”
“맞네. 공교롭게도 제9 연대장과 무장대 총책과의 회담이 바로 이 구억리에서 열렸다네. 그런데 하필 합의 다음 날 정체불명의 무장세력이 오라리를 습격해 불을 지르는 바람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지.”
제주 4.3 사건은 3.1절 가두 행사를 벌이다가 기마 경관에 어린이가 치인 것을 계기로 촉발되었다. 해방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제주도민들은 이 일에 분노를 금치 못했고 거기에 남로당 측 인사들의 뒷공작까지 가세하며 민관 총파업이 무장봉기로 발전한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