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44화 (44/361)

44화 오징어 수출

수북이 쌓인 건어물의 정체는 무안산 마른오징어.

유심히 물건을 살펴보던 탁 사장이 오징어 다리 하나 뜯어내 질겅질겅 씹었다.

“음, 맛은 그럭저럭 괜찮구먼. 말린 상태도 이만하면 대충 괜찮고, 이게 얼마나 된 건가?”

“말린 지 대략 이삼 개월쯤 되었습니다. 새벽 잡은 오징어를 선착장에 오자마자 활복해 깨끗이 세척한 다음 볕이 잘 들 때를 노려 해풍에 말린 물건입니다.”

맛이 꽤 괜찮았는지 탁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품질은 합격이구먼. 딱히 변질된 것도 없고 양호하이. 그럼 초도 물량은 얼마나 댈 수 있나?”

“무안 쪽 창고업자들과 거래 중인데, 대략 100여 톤 정도는 댈 수 있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양호하군. 내가 일본 시모노세키 쪽이랑 거래처를 뚫어 보지.”

“감사합니다. 어르신.”

“감사는 무슨. 나도 무료봉사 아니여. 다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말이야.”

사케 안주로 수출할 건오징어는 따로 엄선했다.

원료가 신선하고 제품의 색택, 형태 및 건조가 적당하고 잡물이 없어야 수출이 용이하기 때문. 준비가 끝나자 춘삼이가 물었다.

“포장은 어떻게 할까요?”

“20마리를 1속으로 묶은 다음 방수지로 싸고 새끼로 엮어야지. 골판지로 상자를 제작하는 게 좋을 거 같으니 최 목수님한테 만들어 달라고 해.”

그 말에 김광필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니 형님, 번거롭게 상자까지 만들 필요 있습니까. 애초에 오징어는 벌크 선적인데요?”

“상등품은 따로 뽑아서 팔아야지. 외국에서는 나무 상자에 담아 오는 게 일반적이니 우리도 표준을 따라야지. 제품별로 품질 차가 있지 않아? 어차피 폐짓값이야 공짜나 다름없고 포장 때문에 제값을 못 받으면 그건 그거대로 아쉽지.”

그러자 춘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무리 공들여 햇빛에 말려도 보관을 잘못하면 변질이 쉬우니 상자에 담는 편이 확실히 품질관리에 도움이 되긴 하겠죠. 근데 오징어는 가격 변동이 심해서. 과연 이윤이 남을지 모르겠네요. 몇 번 재미를 보다가도 가격이 확 폭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잖습니까?”

오징어잡이는 7~11월이 성수기다. 다만 당시까지는 건조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장마철에 비가 내리면 기껏 건조해 둔 물건이 다 썩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

반대로 햇살이 쨍쨍 나서 물량이 한꺼번에 풀리면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도 발생했을 정도.

하지만 그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강태준은 여유 만만했다.

“걱정 마. 그건 정부에서 손실을 보전해 줄 거야. 수출 장려보조금이 나올 테니까.”

“에? 보조금을 준다고요? 수출 시 손실이 나도 결손을 보전해 준다는 겁니까?”

“국내 시세보다 외국 시세가 낮을 경우에 말이야. 이번에 미국에서 ‘유엔 한국 재건단’(UNKRA)을 통해서 대한 원조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고 해. 원조 계획에 따르면 국내 산업이 자생력을 가질 때까지 정부가 수출 기업을 밀어줄 거라는군.”

한국의 산업 시스템을 재건하기 위한 정책으로 이 제도는 사실 아직 시행되지 않았고 올해 11월쯤 되어서야 전격적으로 시행된다. 한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해외 수출로 성장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수출 원가가 국제 시세보다 높아 수출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정부가 생각해 낸 묘안이 바로 ‘수출 장려 보조금 제도’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의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특정 산업을 밀어주기로 한 것. 이런 전략적인 육성책은 섬유산업 쪽에도 계승되어 로스율을 보전하는 정책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출 지원책이 확정된 후에 뒤늦게 호들갑을 떨어 봐야 의미 없을 거야. 물량 중 상당수는 대기업들이 일찌감치 선점할 테고, 남은 부스러기를 두고 박 터지게 경쟁하느니 미리 수출길을 뚫어 놓는 것이 유리하다는 거지.”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라는 거군요.”

“아마도. 아직 수출을 경험이 있는 기업들이 별로 없는 상태니까. 이번 기회에 수출 실적만 올리면 절대 손해는 안 보거든. 저 너구리 영감도 모르긴 몰라도 대충 그런 흐름은 예상은 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우리 요구를 쉽게 받아 준 거고.”

논리정연한 설명에 감탄한 김광필이 엄지를 추켜세웠다.

“와, 어떻게 그런 걸 계산합니까. 존경스럽습니다. 형님.”

“대단해요. 사장님. 역시 사장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뭐 춘삼이, 너도 공부 열심히 해라. 사업은 몸뚱이만 부지런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지.”

그로부터 몇 달간 작업을 진행하던 강태준은 사람의 성격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다.

‘광필이 이 녀석 원래 군대 일을 해서 그런지 제법 일머리가 있구먼. 재갑이도 물건이고.’

역시 미래의 대그룹 회장이라선가. 타고난 FM인 오재갑은 모든 일에 적당히란 단어가 없었다. 면도기 품질 관리에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불량률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던 것.

덕분에 판로를 넓힌 강태준으로서는 보다 영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사이 매출은 순조롭게 증가해 전 달의 두 배를 넘었다. 견적서를 확인한 광필이의 눈이 커지는 것도 불문가지였다.

“아니 형님, 이 정도면 부산 일대에서도 상위권 아닙니까? 해상 운송업에 오징어 총판, 거기 모터풀까지. 생각해 보니 고철 사업도 있네. 거기에 면도기 한 개에 이익금이 50센트라고 쳐도 1,000개 팔면 최소 500달러. 그럼 대체 이게 이윤이 얼마여?”

“영업 비밀이지. 그걸 갈켜 줘야 쓰나?”

“에이. 우리가 남이가. 좀 알려 주면 덧나나?”

제 일처럼 떠벌리는 김광필에 강태준이 웃으며 타일렀다.

“시꺼.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여. 고정비는 생각 안 해. 직원 봉급이랑 임대료 내고 나면 얼마 안 돼.”

“에이 구라쟁이 같으니라고. 내 보니 완전 알짜배기구먼. 이참에 나도 학교 졸업하고 형네 회사 취직하면 안 되우?”

농담 반 진담 반인 소리에 강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아니, 불쌍해서 물 빠진 놈 구해 줬더니 아주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네. 이제는 대놓고 빈대 붙겠다 이건가?”

“솔직히 배 타는 것보다 이게 훨 꿀일 거 같은디? 내도 임원 소리 한번 듣고 싶당께요.”

그 말에 강태준이 턱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시답잖은 소리. 헛꿈 꾸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아니 형님 이럴 거요? 우리 지금껏 쌓은 정이 얼만데?”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지. 그럼 너도 요령 적당히 피우고 좀 잘해 봐. 재갑이를 봐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니도 좀 배워 봐라. 돈 받아서 술만 처먹지 말고.”

“형님, 지는 엄연히 인간이지 말입니다. 갸는 솔직히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비교 대상이 잘못됐지요.”

“임마, 그 반이라도 좀 열심히 살아 봐라.”

“그건 동기부여가 돼야지 열심히 하지요. 우리 쩐주님께서 인심 좀 쓰면, 거 없는 의욕도 생길 거 같은데.”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 김광필이 눈을 찡긋하는 모습에 강태준이 딱밤을 때렸다.

“떼끼. 니 실력으론 턱도 없다. 가서 일이나 해.”

“아이쿠야. 손 맵네. 형님 이거 폭행이에요. 폭행. 이거 경찰서 가서 합의금이라도 받아야겠네.”

“어이 짜식이, 진짜 매운맛 좀 보여 줄까?”

아웅다웅하던 일행이 걸어가는 사이, 저 멀리, 앳돼 보이는 학생 하나가 나타났다.

그를 본 강태준이 먼저 인사를 했다.

“어이, 재진이냐?”

“네. 형님들. 근데 어디 가십니까?

“수업 들으러 가지. 너야말로, 어디 가는데?”

“아, 오늘 휴강이래요.”

“그래? 이거 못 들었네. 근데 너 그 복장은 뭐냐?”

“아, 이거요. 학과 승선 실습 과정 안내문 못 보셨습니까?”

“그게 어디 있는데?”

“학과 행정실 앞에 붙어 있습니다. 같이 가 보시죠.”

과연 실습실 앞에 공고문이 붙어 있다. 김광필이 글을 주룩 살폈다.

- 승선 실습 선사, 장학금 지급 선사, 임시 사원 선사가 채용을 희망하고 본인도 이에 동의한 경우엔 종합 성적과 관계없이 우선 배정한다. 우선 배정에서 제외된 학생은 종합 성적에 따라 취업 실습 본부에서 임의 배정한다.

“뭐 간단한 이야기네요. 근데 우선 배정이라니?”

“아시잖아요. 과탑이나 아주 똘똘한 놈들은 1학년 때 미리 찜해 두는 거. 아니면 선사 쪽 임원이나 있는 집 자식들이던가요.”

“제길, 치사하게. 공부 잘하던지, 아님 잘 태어나기라도 하라 이건가? 세상 살기 팍팍하네.”

“원래 인생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꼬우면 출세하라 이거죠.”

생각해 보면 예전의 강태준 역시 멸치잡이 선주의 아들이라 딱히 실습 문제를 걱정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사정이 달라진 만큼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강태준이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우린 백 프로 일반 배정 대상자겠군.”

“아마도요. 저희뿐 아니라 학생 대부분이 일반 배정 대상이겠죠.”

“그래서 재진이 넌, 승선 실습 신청 끝냈냐?”

“네, 어제 신청했어요, 이번 주까지 신청하면 되거든요. 서류 접수는 학과 사무실에서 하는 중이랍니다.”

여권과 국외 여행 허가 필증은 필요 없겠지만 최소한 선원 수첩과 건강검진표 기초 안전 교육 이수증 정도는 필수로 준비해야 한다고. 잠자코 듣고 있던 김광필이 성가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일이 성가시구먼. 근데 일주일 뒤면 많이 남았는데…… 왜 벌써 호들갑이야?”

“실습 전에 선박 점검부터 해야죠. 오늘 마침 휴강이라네요. 다들 배 한 번이라도 더 타 보려고 다들 항구로 갔지요, 뭐.”

“아, 그렇구만. 그럼 나도 같이 가지.”

내친 김이라, 강태준과 김광필 역시 다시 영도항으로 향했다.

승선 실습 전에 배를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원래 오기로 한 사관은 없고, 심각한 표정의 후배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뭔가 일이 터진 것을 예감한 강태준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야? 이 고물 배는 뭐고?”

“그게 지금 제일 문제입니다. 이 고물 배가 승선 실습에 쓰일 실습선이랍니다.”

딱 보기에도 낡아 녹이 슨 실습선을 보니 침몰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한심한 모습에 속상해하는 학생들.

명백한 차별에 강태준 또한 욱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참다못한 김광필이 분통을 터트렸다.

“아니 이런 배로 실습을 어떻게 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맞아. 실습선으로 새 배 배정되었다며? 3달 전에 일본에서 나포한 배 말이야.”

강태준의 의문에 재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답했다.

“저희도 그렇게 알고 있었죠. 어제까지 분명히 저희 과가 실습에서 우선 배정을 받기로 했는데, 빌어먹을 항해과 놈들이 바꿔 치기를 했지 뭡니까?”

“뭐라고? 그게 뭔 개짓거리여?”

수산대 학생은 재학 중 1년 이상 승선 실습을 해야 하는 게 원칙.

일본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 나포된 명왕호가 실습선으로 배정된 상태였는데, 항해과 쪽에서 슬그머니 담당 된 배를 교체해 버린 것이다.

“그쪽에서 먼저 실습 마치면 돌려준답니다. 그때까지 잠시만 쓰라고. 헌데 저따위 고물선으로 실습을 할 수도 없고 그럼 우들은 어쩌면 좋습니까?”

“맞아요. 우리는 그럼 뭐가 됩니까?”

어로학과 학생들로서는 잔뜩 기대했다 미역국을 먹은 셈.

실습이 늦어지면 그만큼 취직에도 영향이 큰 만큼 어로학과 학생들로서는 심각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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