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41화 (41/361)

41화 참치 특강

“그럼 임마 니는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에이, 시험 그까이 꺼. 평소 실력으로 보는 거 아닙니까? 하하! 과락만 면하면 되죠.”

“이런 대책 없는 자식을 봤나. 항해학 담당 교수님은 누군데?”

“김재덕 교수님이요.”

“젠장 할, 이거 잘못 걸렸군.”

김재덕은 이쪽 항해학 분야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양반이다. 성적이 안 되면 가차 없이 과락을 주는 원칙주의자 성격으로 우골탑을 쌓았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

하지만 선박 조종술, 항해기기론, 각종 해사 법규 등 전공과목에서 입지가 높은 만큼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관문.

출석일 수는 어떻게 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성적은 내야 할 터. 강태준의 마음이 바빠졌다.

‘이거 복학 일정을 잘못 잡았군.’

입맛이 확 떨어진 강태준이 술잔을 내려놓자, 김광필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어차피 시험은 모레잖소. 벼락치기 할 시간은 충분합니다요…….”

“그래 시팔, 끝까지 가즈아!”

술을 이빠이 마신 다음 날, 강태준은 바로 시험공부에 돌입했다.

벼락치기지만 과목이 한두 개가 아닌 터라. 강태준으로서는 무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주일간 밤을 꼴딱 새워 중간고사 6개 과목 시험을 치른 후, 핼쑥해진 차림으로 학교에 나타난 강태준.

그 모습을 보더니 혀를 쯧쯧 차는 김광필이였다.

“아니 형님, 며칠 새 얼굴이 왜 그리 상했습니까?”

“머리 빠개지는 줄 알았다. 너 땜시 이틀간 숙취로 고생하고 밤샌 거 생각하면 으으…….”

“하하. 형님도 참, 술 몇 병에 숙취라니. 형님도 예전보다 많이 약해지셨군요.”

“임마 쌩쌩한 니가 괴물인 거지. 너는 시험 잘 봤나?”

“선박 조종술 쪽은 은근 괜찮았는데 조선공학은 좀 망쳤습니다. 모르는 범위가 나와서. 해사법 쪽은 뭐 궤멸적이죠.”

“해사법은 또 왜 했어. 애초에 선택과목 아닌가. 너 그런 싫어하잖아.”

“군대 있어 보니 법규가 겁나게 중요하더만요. 영창 안 갈려면 법규에 빠삭해야 되겠더라고요. 그때 아는 게 힘이라 느꼈습니다. 게다가 나중에 해외 쪽에 취업할지 누가 압니까. 대충 수박 겉핥기 정도는 알아 놔야죠.”

“니가 그 정도 생각이 있을 줄은 차마 몰랐네. 그보다 오늘은 또 왜 수업이냐. 시험 끝나고 바로 수업 진행이라니 너무한 거 아녀?”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또 이번에 초빙한 강사분이 보통 사람이 아니랍니다.”

“누군데?”

“저희 학교 선배라는데요. 태동산업 양재문이라고. 최연소 어로과장이랍니다. 그쪽에서 방귀 좀 뀌는 분이라는데요?”

“태동산업이면 꽤 잘 나가는 곳인데. 양재문? 양재문이라.”

어딘가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인데?

가만. 양재문이라면 한국 최초로 원양어선을 타고 사모아에 처음으로 진출한 선장 아닌가?

기억을 더듬는 사이 백발의 노교수가 실내로 들어왔다.

소란스러웠던 실내가 정리되고 착석한 학생들.

앞을 바라보니 성마르고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 하나가 동행하고 있었다.

얼굴이 까맣게 탔지만 팔이 원숭이처럼 길다.

짙은 구릿빛 피부에 단련된 팔뚝이 인상적인 선원. 다름 아닌 양재문이었다.

“자자, 주목. 자네들 선배인 양재문이다. 여러분을 위해 특별히 초빙한 분이니, 박수로 맞이하도록.”

짝짝짝짝~~~!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성적으로 박수를 치는 학생들.

까탈스러운 김재덕 교수에 조건반사적으로 나온 반응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열렬히 물개박수를 치는 학생들의 행동에 김재덕 교수가 좌우를 진정시켰다.

“호응이 좋군. 평소에도 이렇게 열심이면 좋을 것을. 암튼 이번 수업을 꼭 주의 깊게 경청하기 바란다. 뭐 이건 노파심이지만 혹시나 수업 중간에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말게나. 강의에 빠지면 학점은 장담할 수 없으니 그럼 재문이. 오늘 잘 부탁하네.”

“네. 교수님.”

경고 겸 인사를 마친 노교수가 퇴실하자,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양재문이 꽉 찬 강당을 둘러보며 하얀 분필을 들었다.

칠판 앞에 한자로 커다랗게 梁 在 文이라는 석 자를 적은 그가 들보 양(梁)자의 삼수변만 남기더니 다시 큰 바다 양(洋)자로 고쳐 썼다.

“안녕하신가 제군들, 나는 양재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금 태동산업 어로과장을 맡고 있다. 간만에 학교에 오니 감회가 새롭군. 본인은 앞으로 졸업 후의 취업이나 향후 수산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현장에서 느낀 경험을 여러분과 나눠 보고자 이 자리에 나왔네.

그럼 강의에 앞서 시작하기 전에 대충 숙지할 내용부터 시작하지. 먼저 지금까지 한국에서 어업에 어떻게 발달되어 왔으며 왜 어업이 중요한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분필을 든 양재문이 칠판 위에 일필휘지로 지도를 그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포함된 부속 도서가 상세하게 구현되었다.

놀랄 만큼 정교한 그림체에 학생들이 눈을 치켜뜨자 양재문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자, 보다시피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국토면적 대비 해안선의 길이 비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지역이지. 동남서 근해의 총면적은 약 148만 7,000㎢로 이는 육지 면적의 7배에 달한다. 그래서 해황이 고르고 부존 자원은 풍부하여 일찍부터 고대부터 어업이 발달했지…….”

양재문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통일신라 때는 나잠법이 발달해 다시마 같은 해조류 채취가 성행했지만 그물 말고 성기게 짠 소포를 사용했기에 조업 성과가 높지는 않았다. 허나 고려 때부터 어량 어업이 발달하면서 달라지지. 자네들도 종종 봤지? 근해에서 물길을 따라 나무를 세워 놓은 거 말이야.”

“네. 맞습니다.”

학생들이 합창하듯 대답하자 양재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그게 어량일세. 그러니까 어업이 재산권으로서 가치를 갖게 된 건 꽤 오래된 일이야. 그럼 자네들 중에 어량의 구조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나? 거기 자네. 한번 말해 보지. 자네 거기 이름과 소속이?”

어제 숙취 기운이 남았는지 약간 멍을 때리는 김광필.

강태준이 옆구리를 쿡 찌르자, 깜짝 놀란 김광필이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렁차게 외쳤다.

“넵, 어로학과 2학년, 김광필입니다.”

일순간 폭소가 터진 강의실. 짧게 끊어 대답하는 행동이 마치 군인 같았던 것이다.

얼굴이 빨개진 김광필에 양재문이 미소를 지었다.

“하하. 학생 여기는 군대가 아닐세. 자네 복학한 지 얼마 안 되었군?”

“네. 이번 학기에 복학했습니다. 사실 아직 정신이 없어서.”

“그래. 그럼 어량 구조에 대해 다시 말해 보지. 대답할 수 있겠나?”

난감한 듯 눈동자를 굴리는 김광필에 강태준이 슬쩍 써 놓은 쪽지를 보여 주자 김광필이 재빠르게 받아 읽었다.

“옙. 조류를 가로막는 발을 세워 고기를 잡는 장치입니다.”

“음. 간단하지만 잘 설명했군. 착석하게! 어량이란 건 쉽게 말하면 통발이다. 다른 말로 어전이라고 부르지. 물속에 기둥을 세우고, 싸리나 나뭇가지·갈대 등으로 엮어 날개를 만든 다음 날개가 맞닿는 곳에 설치한다. 이런 어량 어업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부터 발전해서 왜정 때는 2,000통이 넘는 어량이 있을 만큼 성황이다. 영도의 역사도 그만큼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열정적인 강의가 계속되었다. 연강이 계속되자 학생들은 지친 기색을 보였다.

‘다 유익한 이야기긴 한데, 말이 너무 길어.’

모두 시험을 직후라 피곤한 데다, 뒤풀이까지 마치고 온 학생들에게 그지없이 계속되는 강의는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하품을 참으며 억지로 눈을 부릅뜬 것이 대부분 비슷한 표정들이었다.

‘살려 줘! 제발.’

‘저, 저 입을 꼬매 버리고 싶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계속되었지만 자기 말에 도취한 양재문은 입을 멈추지 않았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근해의 어업 자원은 아주 풍부했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시대 일개 하급 관리에게 준 뇌물이 명태를 말 5마리에 가득 실을 정도였다는군. 지금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지. 왜정 시대에 전쟁한답시고 남획한 이유도 있고. 문제는 근해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걸세. 그래서 이제는 우리도 목표를 바뀌어야 하네. 대양 쪽으로 말이야.”

그제야 절망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알아차린 양재문이 손을 들었다.

“음, 계속 듣고만 있자니 재미가 없나? 그럼 뭐라도 거는 게 좋겠군. 자네들의 관심사는 학점일 테니. 혹시 튜나라는 생선이 뭔지 아나? 맞추면 1점을 주지.”

강태준이 손을 들기도 전에 똘똘해 보이는 안경 하나가 손을 들었다.

“흠, 말해 보게.”

“일본에서 마구로 まぐろ)라고 부르는 생선으로 다랑어과에 속하는 어종입니다. 참다랑어와 눈다랑어는 횟감으로, 가다랑어는 가쓰오부시의 재료로 유명하지요. 횟감으로 먹는 붉은 살코기는 구우면 부드러운 닭고기 맛이 난다고 하더군요.”

“아주, 훌륭한 대답일세. 사실 튜나는 예전에는 별 인기 없는 생선이었지. 그런데 1903년경 갑자기 정어리 떼가 사라지면서 어획량이 크게 줄어든 거야. 이때 고민에 빠진 정어리 통조림 공장 사장이 생각해 낸 대안이 튜나라네. 이후에 튜나는 값싸고 맛있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각광받았고 고기 대용으로 쓰이다가 점차 인기가 높아지게 된 걸세.”

전한 동경의 요리사가 참치회를 간장에 절인 니기리 회를 팔았는데 기름진 맛이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서 참치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덕분에 일본인들도 50년대 들어 적극적으로 튜나잡이에 나서고 있지. 동경의 수산물 공판장인 츠키지 시장에선 해마다 참치 경매가 열리는데 비싼 건 한 마리에 무려 만 달러가 훌쩍 넘기도 한다는군.”

“네? 만 달러요?”

“그게 실화입니까?”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생선 한 마리에 만 달러라니 전혀 현실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지.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벌이는 이벤트니까. 하지만 실제로 그 가격에 팔리는 걸 보면, 얼마나 부가가치가 높은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럼 묻지. 이 튜나란 물고기를 어떻게 잡을까?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사람 있겠나? 거기 자네? 아님 자네?”

그 말에 모두 고개만 돌릴 뿐, 침묵을 지켰다. 튜나라는 생선을 본 적도 없는 마당에 누가 답변할 수 있겠는가.

이 당시에 전문 서적에서조차 사진이 첨부된 경우는 드물었고, 삽화나 그림이 그려진 책의 경우에는 소장품용으로 둔갑해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덕분인지 학생들은 우물우물할 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아무도 없나? 안타까운 일이군. 앞으로 대양을 책임질 동량들이 고작 이 정도라니.”

그때 눈치를 보던 강태준이 손을 들었다.

“오, 그쪽이 할 말이 있나? 말해 보게나.”

“튜나는 기본적으로 상어나 오징어처럼 연승 낚시로 잡는 물고기입니다. 기다란 모릿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늘여 놓고 끝에 미끼를 꿰어 잡는 방식이죠. 이 방법은 피부에 상처가 덜 나서 고급 횟감용을 잡는 데 적합하지요. 대부분의 튜나잡이는 이 방식으로 잡습니다.”

“호오, 그럼 다른 방법도 있나?”

“트롤 어법을 쓰기도 합니다. 저인망으로 전개판이 달린 그물을 끌어 잡는 방식이죠. 다만 이 경우는 선박 자체의 출력도 높아야 하고 좀 덩치가 커야 합니다.”

“그건 왜지? 참치도 생선인데 굳이 까다로울 이유가 없지 않나? 오징어나 대구 같은 어종은 충분히 가능하잖나?”

“튜나는 다 크면 한 마리에 3m, 몸무게가 350kg이 넘을 만큼 거대한 물고기입니다. 자루처럼 싸맨 그물 아랫깃을 해저에 내려 수평으로 끌어당겨야 하는데, 물속에서 이런 무거운 그물을 시기에 맞게 좌우로 펼쳤다 좁혔다 하려면 수압을 이겨 낼 강한 동력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튜나는 다른 생선과 다르게 피부가 많이 약해 표피가 잘 상하거든요. 그물에 말려들어 피부가 쓸리면 어가가 떨어지니 쉽사리 그물을 쓰기 어려운 거죠. 게다가 기동력 문제도 있습니다.”

“기동력이 왜 그렇게 중요하지?”

“튜나는 유영 속도가 빠르니까요. 최고 시속 64㎞에 순간 속도는 시속 160㎞에 달합니다. 게다 집단으로 유영하기 때문에 한 마리만 빠져나가도 무리를 전체를 놓칠 확률이 높습니다.”

거침없는 답변에 오오, 감탄사를 뱉는 학생들. 처음부터 논리 정연한 답변을 기대하지 않았던 양재문으로서도 몹시 감동한 얼굴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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