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스탭 바이 스탭
“아이고, 고생 많군요. 뭘 그렇게 소란입니까?”
“아, 사장님. 오셨슴까?”
“자자. 다들 일 보지? 나는 최 목수와 따로 할 말이 있으니.”
잔소리를 듣던 아이들이 부리나케 제자리로 향하는 모습에 못마땅해하는 최달건.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태준이 부드럽게 타일렀다.
“거, 최 목수님도 쉬엄쉬엄하십쇼. 넝마 줍고, 동냥하던 애들이 처음부터 잘하겠습니까. 일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지요.”
“그래도 밥값 하려면 멀었죠. 저래 갖고 언제 사람 구실 할지. 원.”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많이 나아지지 않았습니까?”
“일머리야 많이 나아지긴 했죠. 그래도 아직 서툴러서 2~3년은 해야 대패질이랑 끌질 기본이라도 하죠.”
사실 칭찬에 인색한 최 목수는 이 정도면 굉장히 호의적인 수준.
최달건은 원래 대전서 꽤 큰 공방을 하던 사람으로 6.25 동란 직전 사업을 확장했다가 전후 폭격을 맞는 바람에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었다.
그렇게 실의에 빠진 채 술독과 도박에 빠져 있던 그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 것은 다름 아닌 강태준. 사실 그건 악성 채무자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정성택이 내놓은 묘안이었다.
“우리 기원에 쓸 만한 목수가 하나 있는데 함 데려가 쓰는 건 어때?”
“목수를요?”
“그래. 우리 기원에서 숙식하는 양반이 있는데 이놈이 아주 골때린다는 말이야. 맨날 외상값만 달아 놓고 지 안방인 양 드나드니. 지금껏 떼인 돈이 한두 푼이 아니라고.”
“형님이 돈을 떼이다니 보통 인간이 아니군요.”
“인간이 완전히 고집불통이라서. 예전에는 잘 나갈 땐 친분이 좀 있었거든. 몸 망가진 중늙은이를 염전 같은 데 확 팔아먹을 수도 없고. 그냥 살살 달래서 쓰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말씀은 좋지만 제가 뭘 어쩌라고요?”
“뭐 간단하게 활용할 일은 많잖아. 예를 들면 주택 개량이나 가구 수리나 제작 같은 거?”
“가구 수리업이요?”
“예. 강 사장 자네 폐기물 수거한다면, 거기서 폐가구나 폐목재 많이 나오지 않나?
“그렇기는 하죠. 미군부대 나무 박스 같은 것도 있고.”
“최 목수 솜씨 좋으니 한번 써 봐. 폐가구 중 부러진 의자나 탁자 중에 쓸 만한 부품이 있지 않나. 그런 걸 벌크로 끼워 맞춘 다음 새로 손봐서 칠하면 완전 새 가구 될 거 아녀?”
“흠…… 말은 그럴듯하지만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잘 생각해 보게…… 원래 매입한 중고품의 원래 가격이 200환 정도면 그렇게 만든 물건은 600환 정도더군. 그 정도면 마진이 두 세배는 남는 장사니 은근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겠나.”
“흠. 고작 전문가 하나 있다고 작업이 될 리 있겠습니까? 최 목수 혼자 그 일을 어떡합니까? 필연적으로 보조 인력도 뽑아야 할 텐데요.”
“잡무는 그 목책교 애들 쓰면 되지 않나. 갸들도 나이들 먹어 가는데 독립하려면 기술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태준이 니가 언제까지 갸들 인생 책임질 수는 없지 않나?”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강태준은 재료와 영업장을 제공하는 대신 최 목수는 아이들에 기술을 전수하면서 돈을 갚는다. 강태준으로서는 향후에 필요한 인력 확보를 할 수 있으니 좋고, 파산 상태에 놓였던 최 목수로서도 일할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 아닌가.
그렇게 합류한 최달건은 처음에는 그야말로 군기를 잡으며 부려먹었다. 사실 현장이라는 것은 방심하는 사이 손가락 한두 개 정도는 그냥 잘려 나갈 수 있는 만큼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미운 정도 정이랄까. 스승님 하면서 죽자 살자 달려드는 아이들을 보니 내심 애틋하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게 없던 책임감이 생겨났던 것. 그런 심경의 변화를 느낀 강태준으로서는 최 목수의 말이 단지 불평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암튼 애들 엄청 최 목수님 따르는데, 너무 쥐 잡듯 잡지 말고, 적당히 다독이면서 하세요. 그보다 저번에 말씀드린 쇠 파이프는 어디 있습니까?”
“예. 잘 분류해서 저기 구석에 따로 모아 두었지요. 근데 그 파이프들은 어디서 쓰시려는지?”
“수도관이나, 우물용 배관으로 재활용해 보려 합니다. 쓸 만한 건 깨끗이 세척해서 펴낸 다음 아연도금만 살짝 해 보면 거의 새것이나 진배없으니 말입니다.”
강태준은 남들이 좀처럼 주목하지 않는 물건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주한미군 캠프에서 버려진 경량 파이프였다. 그냥 팔면 고철이지만 가공해 팔면 훨씬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최 목수로서는 그 물량이 다 팔릴지 여전히 반신반의할 일이었다.
“소량이면 몰라도, 저런 물건이 팔리겠습니까? 괜한 짓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걱정 마세요. 어디 건물 올릴 데가 한두 곳입니까? 공사장에 놔두면 어떻게든 쓰겠죠. 어차피 그냥 팔아 봤자 고철값 밖에 못 받는 마당이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죠.”
사장의 명에 따라 노임을 받던 막노동꾼들이 서둘러 철제 파이프를 옮겼다.
화물차에 재활용 파이프를 싣고 출발하려는 찰나, 저 멀리 콩알만 한 빡빡이가 헉헉대며 달려왔다. 그는 다름 아닌 덕배였다. 한참을 달려오던 녀석이 엎어지려는 순간 강태준이 잽싸게 녀석을 받았다.
“감사요. 헥헥!”
“아니 뭘 그렇게 서두르긴. 무릎은 안 까졌니?”
“그게 외자관리청 쪽에서 트럭 불하가 승인되었다네요. 오늘 막 우편이 왔어요!”
“뭐라고?”
상기된 표정의 덕배가 숨을 헐떡이며 우편을 건넸다.
강태준이 서둘러 봉인을 뜯고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과연, 불하라고 적힌 글씨 아래 국한문으로 된 글씨와 영문이 혼용되어 있고 그 아래 임시 외자관리청장의 직인이 쾅 하고 찍혀 있었다.
“시방, 우리 이제 운수업자 면허 딴 거요?”
“경사 났구먼! 경사 났어.”
넘쳐오는 희열감. 감개무량한 강태준에 복만이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외자청 쪽에서 마침내 트럭 불하가 허가된 것이다.
스튜어트 대위로부터 물밑 협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지 무려 3개월여 만이였다.
“혹여나 낙찰이 안 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입니다. 형님.”
“스튜어트 대위가 힘써 준 모양이지. 이번 기회에 사례해야겠어.”
원래는 불하 직전 내정자가 들어와 나가리가 될 뻔했지만, 미 정보과 출신인 스튜어트 대위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항의한 덕에 이권을 뺏기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원조에 경제를 기댄 상황이니만큼 미 ICA 장교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던 탓이다. 한숨 돌린 강태준으로서는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제 운용하는 화물 트럭이 무려 다섯 대나 생겼으니 이제 작업도 훨씬 더 편해지겠습니다.”
“그러게. 이제라도 승인이 떨어져서 다행이구먼. 그럼 나는 이제 천 영감 댁에 다녀오지.”
복만이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에엑, 형님. 이렇게 좋은 날에 또 일입니까. 오늘은 좀 쉬고 삼겹살 잔치라도 벌여야죠.”
“임마, 어디서 요령 피우는 법만 배워서, 그건 불하된 차량이 도착한 뒤에 벌여도 늦지 않아. 복만이랑 춘삼이는 여기서 고철 분류하고 있어라. 복만이 니는 파상풍 걸리니 면도 상처에 아까징끼 잘 바르고.”
“알겠습니다요. 사장님.”
그러나 부루퉁한 표정의 복만이는 말이 없었다.
“대답이 없구나. 복만아.”
“알았슈. 형님. 내가 애인 줄 아나.”
강태준이 찾은 곳은 다름 아닌 부산 동구의 범일동의 매축지 마을.
부산진 해안을 메워 만들어 매축지라고 불린 이곳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 이후 군수물자 보급을 위해 매립한 지역으로 50년대 이후 부산항으로 반입되는 군수품을 일시 보관하는 보급창 역할을 했다.
조선방직, 삼화고무 등의 공장 설립과 더불어 형성된 거주지는 부산으로 쓸려 온 피란민들이 거주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마구간을 칸칸이 잘라 세 들기 시작한 것이다.
석탄과 연탄 화로를 사용하는 더미, 미로처럼 뻗은 골목 사이로 말리다 만 채 널려 있는 빨랫감들을 지나자 녹슨 슬라브집 벽체에 옆에 타다 남은 자국들이 남아 있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흙집은 대화재에서 살아남은 흔적들. 거미줄 같은 훈장의 틈새로 염분과 바다 냄새가 스며든 듯. 그런 판자촌들이 비좁게 밀집한 마을 어귀, 대로변에 자리 잡은 대장간.
거기서는 쇠 두드리는 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깡깡! 깡!
쇠메로 모루를 때리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진다.
덕창단조라는 이름의 대장간 안, 숨 막힐 듯한 열기와 튀어 오르는 땀방울. 열을 뿜는 쇳덩어리와 씨름하는 천대광 영감은 바로 이 자리에서 30년이 넘게 쇳밥을 먹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한결같이.
공장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영감을 향해 신고식을 했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오, 태준이 왔나? 오늘은 조금 많이 늦었군.”
“일이 좀 밀려서요.”
천 영감은 작업에 열중한 듯 여전히 일손을 놓지 않은 채였다. 화덕 안의 불꽃이 뱀처럼 날름거리는 동안. 팔뚝의 핏줄을 한껏 세운 대장장이가 달궈진 쇳덩이를 두드리고 있다. 천 영감은 주위 인기척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에 맞은 쇳덩이가 불꽃을 튀길 때마다 볼품없던 쇳덩이는 어느새 호미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완성된 호미를 찬물에 담그자 치익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담금질을 끝낸 호미 날이 번들번들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자 그제야 한숨을 돌린 영감이 땀을 훔치며 돌아선다.
“그래. 작업할 재료들은?”
짐을 내린 직원들이 가져온 쇳덩이들을 와르르 쏟아 놓는다.
“여기 있습니다.”
“양도 많군. 이거 접때 말한 대로 처리하면 되는 거지?
“네, 영감님.”
파이프를 옮긴 작업자들이 작업에 들어갔다. 구부러지고 휘어진 파이프는 열을 가한 다음 안에 둥그런 쇠몽둥이를 넣어 일자로 폈다. 얼추 파이프가 원래 모습을 찾자 끝단을 잘라낸 천 영감이 다시 물었다.
“자 이 정도면 됐나?”
재생한 파이프의 내부를 몇 개 확인해 보니, 찌든 때와 이물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걸 본 강태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영감님, 좀 더 신경 써 주십쇼. 명색이 파는 물건인데 보기에 깨끗해야죠. 앞으로 반나절쯤 잿물에 담가 둬야 할 거 같은데요.”
“이걸 전부 다? 임마 그것도 다 일이야.”
“예. 수당은 좀 더 쳐드릴 테니 부탁드려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죠.”
“임마, 의뢰인 중에 너같이 까다로운 놈은 첨 봤다.”
“그래도 저만큼 돈 벌어 주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영감님 아니면 이런 부탁 못 합니다.”
“거 말이나 못 하면 덜 얄밉기라도 하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은 툴툴거리면서도 곧잘 시키는 대로 하는 천 영감이었다.
엄청난 분량이었지만 여러 명이 거들자 순식간에 작업이 끝났다.
순식간에 절단 작업을 마친 천 영감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내일모레쯤 작업 끝날 때 오면 돼. 세척하고 건조시키려면 만 하루는 지나야 하니 그때 와라.”
“감사합니다. 여기 지난번 수고비입니다.”
강태준이 돈을 건네자, 천 영감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깃든다.
“아 맞다, 아까 깜빡했는데 요새 거제 쪽에서 강제수용이 해제돼서 징발 보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더군.”
“징발 보상을요?”
“그래. 쉬쉬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아. 자네 집안도 꽤 피해를 본 거로 아는데 한번 확인해 봐.”
서둘러 알아보니 정말로 그랬다. 정부에서 거제 수용소를 철거하면서 징발된 토지 가운데 불요불급한 토지는 내년 8월까지 해제, 소유주들에게 돌려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징발에 대한 보상 대책이 막연하므로 해당지구 민의원들이 대표로 처리 대책 위원회를 구성하고 면장을 통해 처리 대책을 강구한다는 이야기.
소식을 접한 복만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그게 진짭니까?”
“거의 확실한 거 같더군. 일각에선 보상이 시행되어 땅을 돌려받은 사람도 있다네. 연초면 쪽에서 말이야.”
“거참,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보상이라니 어이없네…….”
“소문나면 뒷감당이 안 될 테니, 일단 간 보는 게 아닐까? 한꺼번에 보상 신청이 들어오면 난감할 테니.”
“그래도 기사 한 줄이 없다니. 언론 통제라도 하는 건가? 암튼 꽤 고무적인 일인 건 사실이지만요.”
하지만 춘삼이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정말 정부에서 순순히 보상해 줄까요?”
“징발 손해를 다 보상해 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게다가 사기꾼이 좀 많나. 소문 듣고 몰려올 어중이떠중이들도 많을 테고. 신청 요건을 제대로 구비 못 하면 생돈만 날릴 수도 있고. 그래도 밑져야 본전인데, 해 봐야지.”
“전문가가 필요하겠네요.”
이런 일을 하려면 행정과 법리에 빠삭한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일을 맡을 만한 능력자가 있을까.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신청한다는 건 사실 그리 만만하지 않다.
아직 제대로 된 법규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상당한 내공을 요하는 일.
그렇다면 따로 변호사라도 찾아가야 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던 찰나, 퍼뜩 저번에 받은 쪽지 하나가 떠오르는 강태준이었다.
‘아, 그래. 설유하라고 했나. 그 여자가 주소를 줬었지. 부경 법률 사무소라 했던가?’
주머니를 뒤져 수첩을 꺼내 보니 약간 변색이 되긴 했지만, 다행히도 내용 자체는 멀쩡하다. 잉크가 살짝 번진 주소지를 확인한 강태준이 복만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일 또 시간 빼서 법원 앞에 다녀와야겠구먼.”
“법원 앞이라니 무슨 소송이라도 하려고요?”
“필요하다면. 일단 징발 보상을 받으려면 대리인이 필요하지 않겠나. 우리 같은 일반인이 나서 봐야 귓등으로도 안 들어먹을 테니, 그럼 변호사라도 하나 선임해야지.”
“따로 아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그건 차차 알아봐야지.”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