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폭행 시비
“밥 먹는 데는 개도 안 건드리는데…… 그래도 줄은 서야지 않나?”
“김 사장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염치가 없구먼.”
“그러게? 이건 좀 많이 아니지.”
고기반찬을 덜 담았다는 이유로 칼부림이 나던 시절,
다들 하루 종일 노동을 하느라 예민해진 터라 눈깔이 번들거리고 있다.
아무리 김무룡이 겁도 없이 거들먹거리는 인간이라지만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아, 실수했군. 쏘리.”
겸연쩍은 얼굴로 물러서는 김무룡, 뒤이은 떡대들도 순순히 줄 뒤로 돌아갔다.
차례대로 춘삼이가 그릇에 국을 떠 주는 춘삼이.
건더기를 한술 뜬 김무룡이 관찰하듯 내용물을 살피더니 한 숟갈 가득 입에 넣었다.
곧이어 우물거리던 그가 맛을 보더니 이내 눈동자가 커졌다.
“맛이 색다르긴 하지만 은근히 먹을 만하죠?”
“그러게. 먹을 만은 하구먼.”
마지못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김무룡에 춘삼이가 뿌듯한 얼굴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텅텅 빈 솥단지.
황철득이 엄지를 추켜세우며 칭찬했다.
“자네, 요리 쪽에 재주 있는데? 이거 재주꾼일세.”
“팔아도 될 거 같은데? 이참에 아주 좌판을 벌이는 건 어떤가?”
“매번 이렇게는 못 하죠. 가끔 대접하겠습니다.”
의도했던 신고식은 덕분에 성황리에 끝났다.
하지만 이후로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강태준에게 앙심을 품은 김무룡 측에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어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작업속도가 느리다며 여러 번 뺀찌를 주지 않나. 작업 구역을 지멋대로 바꾸지 않나.
시비를 거는 행동이 아주 치졸하기 짝이 없다.
덕분에 잔업에 시달리던 복만이는 며칠 새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아휴, 저 개같은 시키. 잔소리도 가지가지 하네. 입을 확 찢어 버릴까 부다.”
“야 사람들 듣는다.”
“아 그렇잖습니까. 일은 조또 안 하면서 아가리만 살아서는.”
툭툭 건드는 것이 시비 털고 싶어 안달 난 듯했지만, 강태준은 꾹 참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여기서 싸우면 피곤해진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인내심도 오래가지 않았다.
하루의 추가 잔업이 끝난 후 그에게 황철득이 다가왔다.
“김 사장이 자네 또 부르는데”
“또 뭐요?”
“회식에 술이나 한잔하자는데 자네보고 오라더군.”
“아니, 귀찮게. 이젠 업무 외에도 시비입니까?”
“그거야 모르지, 근데 매번 회식 빠지는 것도 모양새가 안 좋아. 내일 또 염병하는 꼴 보기 싫으면 얼굴이라도 비추는 건 어때? 어찌 되었든 김무룡 그 인간 지금 철거반의 권력자 아닌가.”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 보는 입장이니 적당히 굽히라는 소리. 내키지 않았지만, 강태준이 호출한 장소로 가니 얼큰하게 취한 김무룡이 안주를 앞에 둔 채 일장 연설을 하는 중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어이 돌팔이 녀석. 이제 왔네. 여기 술병 가져가라고 불렀다. 후식으로 커피도 시켰으니 커피값은 니가 계산하고.”
선심 쓰듯 말하는 김무룡의 말에 주위를 보니 이미 식사는 끝난 뒤다.
널브러진 술병들을 보니, 다 합쳐야 10환 어치밖에 되지 않는 금액.
반대로 커피값은 80환이 넘는 만큼 강태준이 한숨을 쉬었다.
“사장님, 이거 수지가 안 맞잖습니까?”
“임마, 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뭐 말이 많나? 임마,”
“그럼 돈부터 주시죠.”
“성급하긴. 차액은 나중에 줄 테니 담에 보자고.”
은근슬쩍 돌아서는 김무룡의 행동에 강태준이 팔을 붙들었다.
“뭐야 임마? 이거 안 놔?”
“돈거래 같은 건 확실히 해야지요. 여기서 외상이 어딨습니까?”
“뭐 임마? 이누마가 가오 상하게. 내가 설마 그 돈 떼어먹을까 봐?”
손을 뿌리친 김무룡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지폐와 동전 몇 개를 꺼낸 뒤에 땅에 뿌렸다.
“야, 됐지? 주워서 가져가라?”
옆에서 낄낄대는 꼬라지에 강태준도 더는 참지 못했다.
툭 하고 이성이 끊어진 강태준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야, 김무룡이 내가 당신 시다바리야?”
“지금 너 뭐라고?”
“그래, 인마. 나이 처먹었음 나잇값을 해야지. 사람 불러 놓고 뭐? 이게 장난하는 거야 뭐야?”
“이 자식이. 어디서 건방지게! 어디서 배워 먹은 버르장머리야?”
“그럼 댁은 나이 처먹은 게 자랑인가. 어디서 쓰레기 같은 것만 배워서 꼬장이야?”
사태가 심상찮게 흘러가자 김복만이 어색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어이쿠, 이러지 마십쇼들. 싸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넌 닥치고 꺼져. 이 돼지 자식아.”
싸움을 말리려는 복만이가 따귀를 맞고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깜짝 놀란 춘삼이가 복만이를 부축하자 강태준이 멱살을 쥐었다.
“이게 지형 빽 있다고, 가만히 있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이 존만 한 자식이, 디지게 맞으려고.”
다시 날아오는 주먹을 피한 강태준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설마 두 번이나 공격이 막힐 줄은 몰랐는지 동그랗게 뜬 눈.
강태준이 이마로 냅다 박치기를 하자, 녀석은 코피를 뿌리며 나동그라졌다.
“어이쿠야!”
“형님!”
험상궂은 떡대들이 다시 달려들었지만 둘 다 거나하게 취한 상태. 순식간에 급소를 얻어맞은 녀석들이 볼썽사납게 나뒹굴자 손바닥을 턴 강태준이 이죽거렸다.
“덩칫값도 못 하면서 나댄 건가? 거 부끄러운 줄 아쇼.”
“너 이 새끼!”
코피를 흘리며 부들부들 떠는 꼴이 우습기 짝이 없다.
그렇게 돌아서려는 순간, 쓰러진 척했던 떡대 하나가 소주병으로 기습 공격을 가했다.
“사장님!”
다급한 소리에 달려드는 떡대를 손칼로 후려치는 강태준.
목젖을 얻어맞은 녀석이 컥컥대며 쓰러졌다.
김무룡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코를 부여잡고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이 시팔! 야 저 시키 죽여 버려!”
의자를 집어 든 떡대가 의자를 후려치려는 순간, 상황을 주시하던 춘삼이가 와락 뒤를 덮쳤다.
그렇게 서너 명이 엎치락덮치락 하는 모습에 시장통에 있던 사람들이 와르르 몰려나오는 모습.
잠시 뒤 누가 신고했는지, 삐익 하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찰이 몰려나오고 엉거주춤 망을 보던 춘삼이가 다급히 외쳤다.
“사장님, 짭새입니다!”
“일단 너 먼저 도망가! 내가 아침까지 안 오면, 저번에 알려 준 박 여사에게 연락하고.”
“예!”
“어딜!”
서둘러 도망가는 춘삼이를 붙잡으려는 행동에 강태준이 팔꿈치로 와락 달려드는 김무룡의 등을 찍었다. 억 하고 엎어진 녀석을 짓밟은 강태준이 옆구리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그렇게 마구잡이 개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싸움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은 다짜고짜 수갑을 채웠다.
“개 난장판이구먼. 다들 연행해!”
“야, 임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몰라. 임마!”
술에 취한 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추태에 혀를 차던 경찰이 강제로 차 안으로 넣었다. 졸지에 같이 끌려가게 된 복만이가 억울한 듯 항의했다.
“아니, 전 왜 끌고 갑니까? 난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건 경찰서에서 따지자고, 자 끌고 가!”
수갑에 채워진 강태준 일행은 그대로 유치장에 갇혔다. 졸지에 철창신세를 지게 된 복만이가 억울하다 빽빽거렸다.
“아놔, 사람을 이렇게 가둬도 됩니까?”
“임마, 조용히 해. 여기가 네 집 안방이냐?”
“이게 다 누구 땜시 왔는데!”
투덕거리는 통에 잠바를 입은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참 조용히 안 해! 쌈질로 잡혀 와는 안에서도 쌈질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제 말 좀 들어 보실까요?”
“나중에…… 그보다 김무룡이 누구야? 김무룡 나와!”
잠시 후, 취조실로 들어갔다 나온 김무룡이 멀쩡한 모습으로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한쪽이 멍든 녀석이 밖으로 곧장 인도된다.
기가 막힌 황철득이 철창을 잡은 채 소리를 질렀다.
“저저! 아니, 저 녀석은 왜 보내 줍니까?”
“조사 끝났어. 저놈은 피해자 아닌가.”
“네? 누가 피해자란 말입니까?”
“야, 임마 시끄러워. 면상에 쌍코피 터진 놈이 가해자냐, 피해자지.”
“그럼 저는?”
“좀 기다려. 밥 먹고 오게.”
귀찮은 듯 귓구멍을 후벼 파는 형사의 행동에 어이가 없는 복만이
김무룡의 똘마니들까지 사라지자 복만이는 털썩하니 주저앉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힘 빼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구치소에 앉은 강태준의 행동에 오히려 화를 내는 복만이었다.
“허, 참나. 형님! 형님은 화도 안 납니까.”
“침착해라. 김무룡 그놈이야 뒷배가 있으니 저리 뻗대는 거지.”
“아니, 그럼 우린요. 우린 우짭니까?”
“춘삼이가 있잖느냐. 혹시나 문제 생기면 비상으로 연락해 두라고 했으니까 그냥 기다려 봐.”
어차피 벌어진 일.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잠을 청하는 도중 중간에 그를 깨운 형사가 강태준을 취조실로 데려갔다.
“거, 배짱이 대단한 녀석이네. 유치장에서 잠이 오나.”
“그리 편하지는 않더군요. 찬 바닥에서 자니 뼈마디가 다 쑤시네. 바닥 난방은 안 됩니까?”
“이 새끼가, 어디 호텔 온 줄 아나?”
너스레를 떠는 강태준은 전혀 긴장한 기색이 아니다. 그가 어느새 작성한 서류를 내밀었다.
“자 진술조서야, 지장 찍어.”
“네?”
내용을 읽어 보니 김무룡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적힌 내용이었다.
등받이에 기댄 강태준이 삐딱한 투로 앉았다.
“이건 사실과 많이 다른데요.”
“뭐가?”
“여기엔 제가 일방적으로 폭행했다고 써 있지 않습니까. 근데 전 때린 적이 없는데요?”
“그래서 상대 코뼈가 혼자 부러졌나?”
“지가 꼴 받아서 달려들다 자빠진 거죠. 게다가 코뼈가 부러졌다는 말은 좀 웃긴데요. 그 인간 원래 주먹코입니다. 주저앉을 콧등도 없지 않습니까?”
피식. 웃을 뻔한 형사가 서둘러 표정을 수습했다.
체면이 깎였다 여겼는지 근엄해진 형사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임마, 어디서 말장난이야. 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형사님이야말로 바쁜 사람 불러 놓고 너무하시네요. 제가 무슨 범죄자입니까?”
“야! 이 시키가? 그럼 범죄자지. 사람 패 놓고 잘했다 이거야?”
“덩치 보십쇼. 김무룡이 그 인간이 어디 맞고 다닐 인간입니까? 지 형 빽 믿고, 나대는 인간인데, 형사님도 대충 아시지 않습니까.”
“거 야마 돌게 하네. 거참.”
빡친 형사가 이를 갈며 으르렁대었다.
“너 지금 큰일인 거 몰라? 이 사건 검찰로 이관되면 콩밥 먹을 수도 있어.”
“검찰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인 줄 몰랐네요. 아님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나.”
“이 자식이 지금 쪼개는 거야 뭐야? 너 나 멕이냐?”
“그냥 제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가슴이 웅장해져서 말입니다. 아님 형사님께선 뭐라도 받으셨습니까?
“뭐?”
“김무룡 그 인간한테 뇌물이라도 받으셨냐고요. 그러지 않고서야 저같이 선량한 시민을 이렇게 편파적으로 몰아붙이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허, 이게 진짜? 너 뚫린 입이라고 정말.”
강태준을 한 대 칠 기세로 노려보던 형사가 빈정이 상한 듯 눈을 부릅떴다. 일순간 분위기가 흉흉해졌지만, 강태준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눈싸움을 하던 중 밖에서 똑똑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간 형사의 목소리가 커졌다.
“뭐 풀어 주라고? 벌써?”
아웅다웅 언성을 높이던 소리가 들리더니 조사실로 들어온 형사가 씩씩거렸다.
숨을 가다듬은 그가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더니, 한숨을 쉬곤 수갑을 풀어 주었다.
“이 자식, 믿는 구석이 있었구먼. 너 운 좋은 줄 알아.”
“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 보지 말죠.”
복만과 함께 경찰서 앞으로 나오니, 광명처럼 햇살이 비친다.
보랏빛 숄을 걸친 박원숙이 춘삼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