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7화 (27/361)

27화 부대찌개

‘누구지?’

불량한 외모에 긴장하는 사람들.

곧이어 양옆으로 호위하듯 야구 빠따를 든 덩치들이 등장하자 주변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거 뭘 봐. 눈 안 깔아?”

혀를 끌끌 차던 거한이 소리치자 슬슬 눈을 피하는 사람들.

어슬렁대던 덩치가 이쪽으로 오더니 황철득에 시비를 걸었다.

“아놔. 영감탱이, 여기 일 안 하고 노닥거리러 오셨나? 요새 겁나 한가한가 봐?”

“하하, 아닙니다요. 막 움직이려는 참입니다요.”

쩔쩔매는 황철득의 행동에 강태준이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거만하게 턱을 추켜올린 녀석.

강태준이 고개를 쳐든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썼다.

“인사는 안 하나? 임마 너 나 몰라?”

“신삥이라…… 임마 인사해. 여기 대빵이신 대호자원 김 사장님이다. 수거 감독직을 맡고 있지.”

첫인상부터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이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지만 황철득이 눈치를 보며 지그시 뒷머리를 누르자 강태준도 하는 수 없이 짤막하게 목례를 하였다.

“강태준입니다.”

“아, 그 수사 허벅지 꼬매 준 놈?”

“그렇습니다요. 재주가 신통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김무룡이 심드렁한 태도로 귀를 쑤셨다.

귀지를 파던 녀석이 비아냥거렸다.

“글쎄, 의사도 아닌 돌팔이가 사람 잘 고쳐서 뭐 해? 거 누더기 기워서 팔 것도 아니고.”

“그, 그렇긴 하지만…….”

“뭐 봉제 인형 공장이라도 취직하면 또 모르겠군. 공장장 자리라도 줄지? 하하!”

제 딴에는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웃어 재끼는 행동이었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

입장이 난처해진 황철득과 달리 태연하기 짝이 없는 강태준.

머쓱하게 웃음기를 거둔 김무룡이 나직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암튼 황 영감. 농땡이 피지 말고 잘 좀 해. 퇴물 주제에 갈 곳도 없지 않아? 봐줄 때 잘해야지. 먹여 살릴 새끼들 한둘이 아니라며?”

“예예. 맞는 말씀이죠.”

“그럼 더 잘해야지. 야, 돌팔이. 니도 사람 가려 사귀라고. 저런 퇴물이랑 어울려 봐야 좋을 거 없어.”

대놓고 비웃는 말에도 황철득은 허허 웃기만 할 뿐 달리 대꾸하지 못했다.

한 바퀴 주위를 돌던 녀석이 여기저기 훈수를 두다 유유히 사라졌다.

김무룡이 자리를 비우자, 급격하게 표정이 바뀐 황철득이 씩씩거리며 성질을 부렸다.

“아놔, 건방진 시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확 그냥!”

“저 자식한테는 왜 빌빌대는 겁니까?”

“그러게요. 장원영 전무님이 저런 놈을 채용하다니. 저건 숫제 깡패 아닙니까?”

“나도 같잖지만 어쩌겠는가. 애초에 저 녀석 친형이 경무대 곽 경감하고 수도 경찰학교 동기야. 김무진이라고 영도 경찰서 경위인데 줄을 잘 탔어.”

“무슨 관계인지, 대충 느낌이 오는군요.”

“엿 같아도 어쩔 수 없는겨. 뒷배가 좋다 보니 사고를 아무리 쳐도 죄다 훈방 조치거든, 다들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이권이 개입하는 곳에서는 벌레가 끼어들기 마련.

애초에 강태준도 그런 청탁에서 떳떳하지 못한 입장.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강태준에 황철득이 수심이 가득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내일부터 장난 아니겠구만. 김 사장 근마, 뭐 뜯어먹을 것이 있나 온 모양인데, 골치 아프게 되었어.”

황철득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다음 날부터 김무룡은 폐기물 수거 감독업무를 명목 삼아 철거장을 돌아다녔다. 돈 되는 폐품이랑 고철을 먼저 찜해 놓고, 온갖 패악을 다 부렸던 것이다.

고철이나 폐품 수거량이 적게 나오면 행패를 부리거나, 다른 고물상에 납품할 폐기물까지 지멋대로 수거해 가는 등 윽박지르기가 다반사.

덕분에 철거장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야, 임마. 니는 대가리에 똥밖에 안 들었나? 이거 하나 구분 못 해? 대충 광나는 게 스뎅이고, 불그스름한 게, 황동이지. 이렇게 두드려 보면 꽉 찬 느낌이 들잖아. 이게 스뎅이지 뭐야?”

“죄송합니다. 그냥 아연 도금한 걸로 착각해서.”

“멍청한 놈. 백날 가르쳐 봐야 밥값도 못한다니까. 니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

‘자석으로 확인하거나 긁어 보면 될 것을.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그런 짓을 했다간 김무룡에 처맞을 것이 뻔한 마당이니 모두 대꾸하지 않고 있었던 것.

이상한 것은 김무룡 밑에서 일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굴종적이었다는 사실.

따귀를 맞으면 맞고, 때리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자존심이 없는 사람 같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마음이 불편할 정도였으니 오죽하겠는가.

‘저런 식으로 사람을 부려 먹다니.’

아무리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남루한 옷차림에 북어처럼 죽은 눈.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그야말로 현대판 노예가 따로 없다.

궁금증을 참다못한 복만이가 황철득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 새끼가 뭐라고. 왜 저렇게까지 저자세입니까?”

“아 저놈들 중 상당수는 이북에서 피란 온 피난민들이거든. 집도 절도 없이 몸뚱이 하나 가지고 내려왔으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내쫓기면 먹고살 방법이 없으니 저리 고분고분한 거야.”

“그래도 그렇지, 쓰레기 더미에서 맨몸으로 폐품을 고르라니. 수공구라도 줘야죠.”

"정말 돈이 없어서 저 짓거리를 할까. 그게 싸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대충 일당 몇 푼에 하루 세끼 준다 꼬셔서 죽어라 부려 먹는겨.”

“아주 그냥, 인간도 아니군요.”

덕분에 대호자원 인부들은 하루 14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중노동에 시달리는 중.

그러다 보니 경험이 쌓이면 매번 관두는 바람에 악순환이 계속되었던 것.

그렇게 한참 직원들을 갈구던 녀석이 곧 시들해졌는지 반쯤 자르다 만 드럼통 위에 앉아 입맛을 다셨다.

“아, 일하다 보니 시장하구만. 여기 밥은 왜 안 하나?

“걍 시켜 먹습니다. 각자 준비하던지 근처 밥집으로 나가서 먹죠.”

“시간 아깝게. 시간이 금인데 그렇게 하나. 그래 맞다. 야 돌팔이, 니가 식사 당번해라.”

정리를 하던 강태준을 가리키자 화들짝 놀란 복만이가 되물었다.

“아니, 저희가 말입니까?”

“그래, 꼽아? 어디서 개념 없이 윗사람이 시키면 네 하지 못하고, 말대꾸야,”

혀를 차던 김무룡이 그러면서 주위를 빙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이, 황 영감, 신입 교육은 어떻게 시켰어? 여기가 학교냐, 선배 노하우를 날로 먹으려 들고? 안 그런가들?”

“그.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점심밥 정도는 대접해야 정상 아냐? 자네들도 좋지 않잖아? 밥하는 사람이 있으면 먹는 시간도 절약되고 이참에 점심 당번 한번 시켜 보는 거 어떤가?”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인부들도 웅성대었다.

“그건 맞는 말이지. 간만에 김 사장이 맞는 말 했군.”

“고럼, 신삥이 신고식도 안 치르는 게 말이 되나?”

은근히 선동하는 분위기에 사람들도 수긍했다.

작업자들도 매번 밖으로 나가서 식당에 가는 것도 무지 귀찮았던 것이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보다 못한 황철득이 두둔하고 나섰다.

“아이구, 그건 좀, 일 배우기도 바쁜 판에 사람이 일하면서 그거까지 어떻게 합니까?”

“영감은 오지랖 부리지 말고 빠져 있지? 난 저 신삥한테 묻는 거야. 야 돌팔이. 너 할 거야 말 거야.”

강태준이 말없이 김무룡을 주시했다. 김무룡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간 같이 생활해 봐서인가. 강태준이 성깔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황철득으로서는 이 상황이 조마조마했다.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자 침을 꿀꺽 삼키는 사람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싸움 구경이라고 할까? 나름 흥미진진한 듯 어떤 일이 발생할지 지켜보는 눈빛이 따갑다.

이윽고 강태준이 한숨을 쉬었다.

“좋습니다. 하지요. 대신 식비는 따로 걷겠습니다.”

“뭐라고?”

“밥하는 것도 노동이니 적어도 품삯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짜는 없습니다. 아니면 말고요.”

그 말에 미묘하게 눈치를 보던 사람들. 김무룡이 불쾌한 듯 되물었다.

“자신 있나?”

“자신 있고 없고는 모르겠고. 그쪽보다야 잘할 거 같긴 합니다만.”

“허허. 좋아. 대신 맛없으면 돈은 못 줘. 개밥 따위에 돈 낼 수는 없으니까.”

“좋습니다. 그 정도야 저도 감수하죠.”

“그럼 내일부터 기대해도 되겠군. 여기 똑똑히 들었지? 다들 식대 정도는 챙겨 오라고!”

한바탕 싸움 구경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흥미를 잃은 듯 뿔뿔이 흩어졌다.

말을 끝내고 나니 부리나케 달려온 복만이가 기가 막히다는 듯 칭얼거렸다.

“아니 형님. 진짜로 하려고요? 장정이 몇 명인데 식사 준비를 합니까?”

“그까이 꺼 아무것도 아니다. 어차피 대충 한 끼 정도 사 먹일 생각이었어.”

배에서 선원의 일은 크게 갑판부, 기관부, 사주부로 나뉜다. 하지만 열악한 배의 경우 조리장도 따로 없는 경우도 많다. 정식 항해사가 되기 전에 갑판원이었던 강태준으로서는 당번병을 하며 수십 명이 넘는 식사를 담당했던 적이 적지 않았다.

대인원의 식사를 마련하는 일에 이골이 나 있는 만큼 기본은 하지 않겠는가.

“저번 일로 인식이 좀 개선되긴 했어도 우리는 여전히 굴러온 돌이지. 황 조장 외에 딱히 아군이라 할 사람도 없지 않나. 이참에 좀 사람들 인심도 사고 기름칠 좀 하는 수밖에. 세상에 맛난 밥 주는 인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뭘 준비할 건데요?”

“저기 미군부대 PX 가서 유통기한 지나서 별로 빼 논 고기랑 식료품들 최대한으로 가져와. 아마 시간 지난 건 짬처리하려고 쌓아 뒀을 거야.”

“유통기한 지난 걸로 말입니까? 혹시 탈이라도 나면.”

“며칠 지난 건 괜찮아. 먹는 데 지장 없어.”

애초에 유통기한이라는 건 취식 가능한 기간이 아니지 않나. 팔을 걷어붙인 강태준이 직접 나섰다. 강태준은 야적장에서 가져온 큰 솥을 받아 걸고, 찌개를 끓였다.

PX와 미군식당에서 떨이로 받아온 야채에 식당에서 무료로 얻은 신김치를 넣고 팔팔 끓인 다음. 스팸과 소시지, 돼지고기와 콩까지 아낌없이 투하한 것.

아쉽게도 라면은 보급되지 않았기에 대신 당면을 넣었다.

스팸과 소시지가 섞이며 뭉근하게 끓이니, 더운 김이 뿜어지며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마침 점심때가 되자, 솔솔 풍기는 부대찌개 냄새에 시장했던 사람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아니 이게 뭔가, 꿀꿀이죽이야 뭐야?”

“잔소리 말고 한번 드셔 보십시오. 불평은 그다음 하셔도 괜찮습니다.”

여러 재료가 뒤섞인 잡탕이었지만 잘 익어 더운 김을 뿜는 것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참다못한 황철득이 먼저 나섰다.

“자, 10환이면 되지?”

“첫 손님이니 반만 내십시오.”

부대찌개를 받아 간 황철득이 입김으로 용기를 내 맛을 본 황철득이 감탄했다.

“와, 이거 맛있는데?”

“그래?”

“나도 좀 줘 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복만이가 양철통을 치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자자, 먹고 싶으면 줄 서요. 일 인분에 10환입니다.”

“야, 이거 맛있네.”

“영양도 만점입니다. 없는 게 없지요.”

야채로 낸 단맛에 적당한 감칠맛. 푹 고운 묵은지가 스팸의 느끼함을 잘 잡아 주고 있었다.

갓 지은 쌀밥에 잘 어울리는 조화에 몰려든 사람들.

걸신들린 사람처럼 퍼먹는 통에 순식간에 줄어드는 분량.

결국 보다 못한 김무룡도 성큼 앞에 나섰다.

“야, 여기 돈, 나도 하나 줘 봐라.”

“자, 줄 서세요.”

“뭐라고 했냐, 너?”

“줄 서시라고요. 순서가 있지 않습니까?”

김무룡은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 멈칫했다. 뒤통수가 간지러웠던 것이다.

싸늘한 기운에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의 표정이 험악해져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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