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작업반장을 달다
“이봐, 멈춰!!”
불길함을 감지한 강태준이 경고를 보냈지만, 상대는 보지 못했다.
며칠간 계속되는 철야에 운전공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사신경은 무뎠고 머리는 멍했다.
그렇게 깜빡 조는 사이에 회전하던 추가 벽체를 치고 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와장창 무너진 벽이 작업 중인 사람들을 덮쳤다.
“어이쿠야! 제기랄!”
“사람이 깔렸어!”
서둘러 떨어진 벽돌을 치우긴 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무너진 벽체를 치우려다 헛발을 디디는 바람에 엄한 곳에 다리를 찔리고 만 것이다.
“끄억! 내 다리!”
“이봐, 수사 괜찮아?”
날카롭게 갈린 철근에 오른쪽 장딴지가 꿰어지자 큰 상처를 입은 인부는 비명을 지르며 발광했다. 하지만 덕분에 장딴지는 더욱 곤란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검지손가락만 한 굵기의 철근이 장딴지 반대편으로 삐죽하게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젠장, 완전 세컨 박혔어, 힘줘도 안 뽑히는데.”
“아아아! 아이고, 나 죽네!!”
“이봐 수사, 심호흡하라고.”
철근에 꿰뚫린 녀석은 평소 성경 구절을 읊고 다녀 수사라고 불리는 녀석.
체통도 없이 울부짖는 모습에 난감해진 사람들.
끔찍하게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질질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어쩔 줄 몰랐다.
“이봐. 수사 양반. 정신 차려. 이거부터 빨랑 빼내야 해!”
“자네. 제정신인가? 그렇게 무 뽑듯 확 뽑으면 상처가 더 벌어진다고.”
“일단은 뽑아서 옮겨야죠. 파상풍 걸릴 일 있습니까. 자, 다리를 꽉 붙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자 강태준이 서둘러 통제에 나섰다.
고통에 게거품을 문 수사는 눈동자가 돌아간 지 오래.
어찌나 꽉 박혔는지 꼬챙이에 꿰인 허벅지는 꼼짝달싹하지 않는다.
목장갑을 낀 강태준의 손이 상처를 살피더니 경직된 다리를 단단히 움켜잡았다.
“자, 도와주십시오. 구호에 맞춰 한 번에, 하나둘!”
“끙!!”
사람들이 다 함께 힘을 주자, 상체가 들썩인다.
구멍이 뚫린 상처에서 핏줄기가 울컥하고 뿜어져 나왔다.
“자, 다시!”
덜덜 떠는 사람들이 주저하는 모양에 소리를 지르는 강태준.
고통에 기절했던 수사는 다시 죽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핏물이 뿜어져 나오며 철근이 쑥 빠져나갔다.
“씨…… 씨부럴!”
“이런 미친…… 돌았네. 이거.”
우툴두툴한 철근 표면에는 장딴지에서 나온 살점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혐오스러운 모습에 일부 사람들은 헛구역질을 했다.
강태준이 호통을 치며 정신을 깨웠다.
“아니 뭣들 하고 있습니까? 빨리 환자 지혈하고, 옮깁시다!”
“업어야 하나?”
“일단 들것부터 가져와요!”
고함을 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서둘러 움직인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응급처치를 하러 가건물로 들어가자 사무원을 제외하고 상시 대기해야 할 의료진이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서야 헐레벌떡 들어온 작업반장이 텅 빈 방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얌마, 의사 어디 있어!”
“지금 식사하러 밖에 나갔는데요. 2시는 되어야 복귀한다고.”
“미친, 지금 장난하나! 이 인간이 정신이 있어 없어? 빨리 연락 좀 해 봐!”
멱살을 쥔 작업반장이 호통을 치자 어쩔 줄 모르는 사무원.
출혈로 보아 지체할 시간이 없다 여긴 강태준이 춘삼이를 불렀다.
“소독약이랑 압박 붕대 가져와, 거즈랑 실도!”
“아, 예!”
“뭐? 설마 자네가 손보려고?”
“응급처치 정도야 가능하니까요. 대학교에서 얼추 배웠는걸요.”
사실 원래 이런 외상 응급처치는 선장의 기본소양이다. 선장을 하다 보면 별별 상황에 다 부닥치게 되는바, 선상서 재해가 일어났을 때의 대응법을 숙지해야 하기 때문.
열악한 배에서는 의술을 아는 사람이 외과의를 대신하기도 했던 만큼, 강태준의 머리엔 다년간의 경험이 누적되어 있었다.
‘그때 쌍욕 듣고 처맞아 가면서 배웠지.’
강태준은 첫 배에 함께 탔던 갑판장을 떠올렸다.
술주정뱅이에다 성격은 지랄 맞았지만 야매로 상처 꿰매는 실력 하나만큼은 의사 뺨치는 수준. 예전에 청새치 뿔에 관통상을 입었을 때를 떠올리며 강태준이 상처를 자세히 살폈다.
“소독약!”
“자, 여기 있습니다.”
춘삼이가 약을 가져오기 무섭게, 강태준은 헤벌어진 상처에 알콜을 쏟아부었다. 따끔한 약효에 깨어난 수사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엄니 나 죽소!”
“엄살은, 참아, 이걸로는 안 죽어!”
강태준이 수술 도구를 소독하는 모습을 본 녀석이 새파랗게 겁에 질렸다.
“설마…… 생으로 꼬매려고?”
“그럴 리가. 마취는 할 테니 참으소. 그래도 많이 아프기는 아프겠지만.”
마취제를 주사한 강태준은 환자에게 헝겊을 물렸다. 복만이와 춘삼이가 발광하는 수사를 붙든 사이, 강태준은 길게 베인 상처를 하나씩 봉합했다.
한땀 한땀 빠른 속도로 상처를 봉합해 가는 강태준.
찢어진 피부가 얼추 기워지자, 강태준은 붉은 아까징끼에 적신 거즈를 돌돌 만 다음, 상처 구멍에 사정없이 쑤셔 박았다.
“끄으읍!”
수사는 어린애처럼 눈물을 질질 짜며 끅끅거렸지만, 강태준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맞은편에도 사정없이 거즈를 쑤셔 박은 강태준이 압박 붕대를 단단히 매어 주자, 초조하게 지켜보던 작업반장이 다급히 물었다.
“봉합은 대충 끝났나?”
“예. 대충은요. 이제 병원에서 검사받으면 됩니다.”
“근데 왜, 끝까지 봉합하지 않나?”
“워낙 상처가 깊어서 이걸 봉합해 버리면 살이 잘 차오르지 않습니다. 심을 박아 넣었으니 그걸로 참아야죠. 대신 매일 거즈를 갈아 끼워야 할 겁니다.”
“그런 이유가. 그보다 자네 대단하구먼. 이런 건 살면서 처음 봐.”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태준을 보는 작업반장.
차량에 실린 녀석은 뒤늦게 캠프 내 병원으로 직행했다. 다행히 큰 위기는 넘겼지만 다른 부위에 추가적인 손상이 있는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호흡이 일정한 것을 확인한 군의관이 진료를 마친 후 신기한 듯 물었다.
“이거 누가 했습니까? 치프 오피서?”
“왜 뭔가 잘못되었습니까?”
“그 반대입니다. 깊은 상처인데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하다니. 누군지 몰라도 정말 대단한 실력입니다.”
그제야 안색이 돌아오는 수사. 수사가 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전 다시 걸을 수 있는 겁니까?”
“네. 딱히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문제없습니다. 워낙 조치를 잘해 둬서 추가적인 조치는 불필요할 거 같군요. 다행히 근육이 상하지 않았으니 파상풍약만 먹고 매일 거즈만 제때 바꿔 주시면 충분합니다. 일단 진통제를 놔 드리겠습니다.”
철근에 관통되어 뻥 뚫렸던 구멍은 조금씩 살이 차올라 메꿔질 거란다.
신입을 갈구던 철거 반원들의 태도가 변한 것도 그때부터.
수사가 목숨을 건지자 강태준 일행은 성가신 불청객에서 믿음직한 녀석으로 평가가 격상했다. 공사장에서의 부상은 아무리 조심해도 때로는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니만큼 굳이 상대와 척지어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일을 덮어 준 덕에 장원영은 몹시도 고마워했다.
이번 일을 빌미로 반장으로 승진한 강태준에게는 졸지에 돌팔이 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덕분에 강태준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들도 생겼다. 그중 하나가 황철득이었다.
“이봐 돌팔이!”
“어이구야. 황 반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듣는 돌팔이 기분 나쁩니다.”
“돌팔이를 돌팔이라카지 그럼 뭐라고 불러? 일을 더럽게 못 하니 팔푼이라고 할까?”
“아따. 말본새하고는 꼭 그렇게 놀려 먹으셔야하나. 암튼 형님은 일은 다 끝내셨수?”
“뭐 나야. 대충 꼭대기 일만 마치면 널널하지.”
“부럽구만. 전문가는.”
“그러니까 나 같은 중늙은이를 이 나이까지 부려 먹는 거 아니겠나?”
거드름을 피는 황철득이었지만 은근히 미워 보이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황철득은 한때 이름을 날린 도비꾼으로 한때 최고로 통했다. 맨손으로 돌이나 무거운 건설장비를 높은 곳까지 들고 나르는 재주로 밥을 빌어먹고 살던 그였지만 특히 그가 유명해진 데는 특별한 스토리가 있었다.
정전협정 직후, 판문점에서 정전회담이 열리게 되면서 판문점 근처의 대성동과 기정동 두 마을이 군사 분계 선상 전투 지역에서 제외된 것
근데 이게 웬걸. 분계선 너머로 나란히 국기 게양대를 설치했는데 저쪽에서 1미터, 이쪽에서 2미터 이렇게 높이다 보니 그게 뜬금없이 경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자본주의 돼지 놈들에게 고점을 뺏길 수야 없지 않나!
-빨갱이 따위에게 밀릴 수야 없지 않나? 어떻게든 빨갱이보다 높이 달아야 해!
본의 아니게 게양대 높이가 남북 간 자존심 대결이 되자 군은 대책 마련을 고심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의 건축 기술이 그닥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대학교수니 전문 기관이니 이름난 석학들에 의뢰해 봐도 이 이상 게양대를 높이 설치하는 건 공법상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던 중 나온 이름이 이 황 아무개였다.
“그러니까 국기 게양대 끝에서 올라가 2~3미터쯤 늘여 달라 이 말이요?”
“그래. 저 빨갱이 놈들보단 게양대 높이를 올려야 하지 않겠나?”
“허참, 그게 무슨 유치한 짓거리인가?”
“그 말엔 동감하네만. 저위에 높으신 분들은 생각이 달라서 말이지. 글구 빨갱이들보다 낮은 건 존심 상하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겁나게 쓸데없는 자존심이구먼. 그런 건 전쟁에서 이긴 다음 부리는 게 낫지 않나? 다 끝난 다음에 무슨 짓인지.”
“궁시렁대기는, 못한다면 못한다고 하게. 설마 자네도 자신 없는 건가?”
“허. 사람을 뭘로 보고. 하지만 대신 금액이 중요하지.
“얼마를 원하는데?”
“미터당 사 딸라는 받아야겠소.”
“아니 이 친구가 꼭대기에 금덩이를 붙이는 것도 아니고 뭘 그리 비싸.”
미터당 4달러면 81미터만 해도 324불에 당시 미 8군이 인력 중개 회사를 통해 고용한 노동자들이 받은 일급이 800환(44센트)이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황철득은 완강했다.
“저 꼭대기에서 올라갔다 떨어지면 개죽음인데 그만한 값은 줘야 하지 않겠소. 나도 한번 해 보겠다는 거지. 반드시 확답을 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요. 그 정도 값도 주기 싫으면 때려치우소 그래.”
“알았네. 거참 까다롭긴. 그 돈. 당장 주면 될 것 아닌가?”
확답을 받은 황철득은 약속한 대로 원숭이처럼 기어 올라간 뒤 게양대 밑동을 뚝 잘라내 선심 쓰듯 5미터를 높여 땜질해 주었다.
그렇게 대성동 마을 중심엔 85m 높이의 국기 게양대가 생기고 바로 맞은편 북쪽 기정동 마을엔 80m의 인공기 게양대가 세워져 체면치레를 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황철득은 국위 선양이라 명목으로 표창을 받았고, 그 인맥을 바탕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물상 일을 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저번의 안전사고가 발생한 이후, 황철득은 강태준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런저런 훈수를 둬 가며 노하우를 알려 주곤 했다.
“그래서 이런 물랭이 같은 거 말고, 양철로 만든 통이 더 값어치가 나간다는 말입니까?”
“그려. 그게 미제 함석으로 만든 물건이라 비싸다고. 아연으로 도금한 철판이라 이거여.”
“가드레일이나 신호등 기둥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 아닙니까? 양동이를 비싸게 판다라 금시초문인디요.”
복만이가 고개를 갸웃하자 황철득이 쯧쯧 하며 핀잔을 주었다.
“문딩아, 그냥 양동이를 그냥 팔면 똥값이지 당근.”
“그러면요.”
“잘 세척해서 얇은 합판에 대고 펼쳐야지. 그렇게 가공해 팔면 몇 배는 받는다고.”
“고작 이런 게 말입니까?”
“그래 시골에서 함석 쓰레기통 못 봤나? 어딜 가나 보이지. 근데 그거 막상 사려면 생각보다 비싸당께.”
그러자 복만이가 툴툴대며 중얼거렸다.
“그러려면 품이 많이 들지 않겠습니까?”
“임마, 노력도 없이 돈 많이 벌려고 하면 그게 날강도지. 사업가여?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야지. 세상 날로 먹으려 들지 말라.”
“암. 우리 황 조장님이야말로 진짜 사업가죠. 그래서 저번에 군용 휘발유도 요령껏 빼돌려서…….”
황급히 입을 틀어막는 황철득이 과장되게 웃으며 말했다.
“어이 이 자식이, 어디서 헛소리만 들어가지고. 임마, 괜히 애먼 사람 잡지 마라.”
그렇게 시시덕거리는 중, 어디선가 산통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임마들, 또 쉬엄쉬엄하나? 거참 내가 안 올 수가 없다니까?”
긴 철봉을 배트처럼 등에 멘 채 등장하는 남자.
우락부락 옆으로 퍼진 것이, 복만이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거한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