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9화 (19/361)

19화 군자금 확보

포위망을 결성한 건달들이 서서히 숨통을 조여 온다.

거친 숨을 내쉬던 엄석호가 이내 비열한 얼굴로 마른 입술을 핥았다.

“어이 형씨. 뛰어 봤자 벼룩이야. 그만 포기하고 돈부터 내놓지.”

“뭘 말인가?”

“이거 왜 이래. 청자 판 돈 말이여. 시장서 돈을 벌었으면 상납금은 기본 아녀? 이참에 불우이웃 기부 좀 하게.”

“깡패 새끼 주제에 옘병은. 개소리 말고 덤벼.”

강태준의 태도에 엄석대가 실소를 머금었다. 주먹 바닥에서 먹고살던 그로서는 강태준의 말이 호기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것. 뒤따라온 주먹패들 역시 비슷한 생각인 듯 여유가 넘쳤다.

“허. 겁대가리가 없구먼. 누가 나설래?”

“제가 해 보겠습니다.”

덩치깨나 있어 보이는 녀석이 건들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유도를 했는지 귀 끝이 약간 만두처럼 뭉개진 모습에 약간 긴장하는 강태준. 눈싸움을 하던 강태준이 상대의 발끝에서 위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상대의 시선도 같이 움직였다.

계속해서 발 움직임을 주시하는 강태준. 강태준이 시선을 떨구자 그걸 기회로 여긴 상대가 선공을 가했다. 어설프게 팔을 뻗치는 모습에 강태준이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녀석의 팔이 허공을 가르자, 강태준은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킥이 덤벼들던 건달의 턱을 명중하자 환호성을 지르는 복만이.

비틀대는 녀석이 뒤로 주춤하기 무섭게 강태준이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안면을 후려쳤다.

녀석은 선 채로 풀썩 주저앉았다. 기절한 것이다.

멋모르고 덤빈 녀석이 한순간에 아작 나자, 싸움을 지켜보던 건달들은 긴장한 듯 자세를 바로 했다.

“이거, 어디서 쌈 좀 해 본 녀석일세 어디서 굴러먹은 놈이냐?”

“해병대 출신이다. 잔소리 말고 덤벼, 이 깡패 놈아.”

강태준이 손을 까닥하자. 녀석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야, 죽기 직전까지, 조져.”

패싸움이라면 나름 일가견이 있는 강태준이었다.

외국 항구에서 술판을 벌일 때면 허구한 날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졌다. 술집에서 만난 외국 선원들끼리 욕지거리를 주고받다가 불량배들과 패싸움을 벌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던 탓.

쇠 징이 박힌 장갑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좋은 흉기.

와락 달려드는 녀석의 관자놀이를 때리자, 제대로 맞은 깡패가 휘청였다.

뒤이어 달려드는 녀석의 무릎을 후려 까는 순간, 허리를 끌어안으려는 녀석.

하지만 강태준은 봐주는 것이 없었다. 밑 장의 날을 이용해 상대의 정강이뼈를 무릎 중간 지점부터 훑어 내려가 발을 강하게 밟았다.

그를 다시 일으킨 강태준이 이번에는 급소를 걷어찼다.

“꺼억!”

낭심을 걷어차인 녀석이 고통에 데굴데굴 구르는 사이, 각목을 들고 달려드는 2인.

그 순간 팔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리면서 동시에 몸쪽으로 팔을 비틀자 왼발로 서게 되는 모습. 그 순간 오른발을 내디디며 팔 아래를 통과한 강태준.

팔을 아래쪽으로 뽑으며 어깨를 바닥에 향하게 힘을 주어 눌렀다. 뿌득 소리와 함께 기괴한 방향으로 팔이 꺾인 건달 녀석이 발광하는 사이, 강태준이 버려진 병으로 뒷 목을 힘껏 후려쳤다.

콰직!

대가리가 깨진 녀석이 정신을 잃자, 건달들이 주춤했다. 주먹이 움직일 때마다 덤벼들던 녀석이 피곤죽이 되어 나가떨어졌다. 각목에 터지거나 주먹질 세례를 받고 뻗은 녀석들이 한둘씩 늘어났다.

“우어어어어!!!”

씨름으로 단련된 복만이가 곰 같은 덩치를 앞세워 상대를 땅에 메다꽂았다.

복만이는 원래부터 싸움기술은 없어도 체력이나 악력이 남다른 녀석이었다.

곁눈질을 하니 춘삼이도 생각 이상으로 잘 싸우고 있었다.

덩치는 작았지만 작은 체구를 역이용해 하체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이런 씨발 새끼들 밥 처먹고 이 정도밖에 못 해?”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에 보다 못한 엄석대가 성질을 부리자, 뒤따라온 녀석들도 연이어 달려들었다. 난장판이 된 모습을 지켜보던 엄석호가 잭나이프를 꺼냈다.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이자, 춘삼이가 소리를 질렀다.

“형님, 위험합니다!”

강태준이 고개를 돌렸을 때쯤 부메랑처럼 던져진 나이프가 안면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날아오는 칼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안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따끔한 감각과 함께 볼에서 튀는 피.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녀석이 황소처럼 돌진했다.

요리조리 칼을 피하던 강태준이 바닥에 널브러진 철주를 쥐었다.

엉겁결에 철주를 들어 막자, 수직으로 내리찍는 칼에 철주가 쨍하고 맞부딪쳤다.

충격에 팔이 저린 엄석호가 주춤하자 강태준은 틈을 놓치지 않고 턱을 향해 다리를 쭉 뻗었다.

나가떨어진 녀석이 입에 피를 흘리자 강태준이 철주를 집어 들고 달려갔다.

머리를 후려치려는 순간, 칼칼한 목소리가 그를 막았다.

“멈춰! 피 보고 싶지 않으면.”

어느새 복만이와 춘삼이가 붙잡혀 결박당해 있었다.

강태준이 다시 철주를 치켜드는 순간 엄석호가 복만이의 목에 날이 시퍼렇게 선 나이프를 가져다 대었다.

“돈 내놔. 안 그러면 이놈 목숨은 없다.”

“형님, 절대 주면 안 됩니다. 죽어도 안 돼요!”

“이런 개새끼가?”

화가 난 엄석호가 무릎을 쳐 그를 꿇어 앉혔다.

잭나이프를 들어 목에 겨누자 목젖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무기 내려놔.”

강태준이 철주를 집어던지자 얼굴이 활짝 펴졌다.

순간 강태준이 문득 주머니에 있던 총을 번개처럼 꺼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총구가 머리를 겨누자, 당혹감이 어렸다.

“뭐?”

“형님 총입니다.”

“저거 가짜야. 시발. 그럼 여태 왜 안 꺼냈겠어?”

웅성거리던 건달들의 모습에 엄석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겁 없이 다가오는 건달들의 모습에 강태준을 하늘을 향해 한 방을 쏘았다.

탕! 하늘을 뒤흔드는 총성에 건달들이 움찔했다.

“첫 탄은 공포탄이지만 두 번째는 아니야.”

“돌았나. 이 미친놈이.”

“그럼 이 정도 보험도 없이 여기 왔겠나? 어이 누가 맞고 싶나? 뒈질 새끼 있으면 손들어.”

총을 겨눈 강태준이 총구를 돌리자 기겁한 건달들이 물러났다.

“어이, 쫄지 마. 저놈 절대 못 쏴.”

“허, 너 같은 쓰레기들 죽이는 거 일도 아니지. 총이 빠른지, 니 칼이 빠른지 어디 시험해 볼까?”

깡패들의 눈에 망설임이 일었다. 이거 제대로 미친놈이 분명하다.

한동안 교착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돌자 손에서 식은땀이 나는 엄석대였다.

‘이거 확 그어 버려?’

엄석대는 속으로 갈등했다. 리볼버라니 총을 다뤄 본 적이 있는 그로서는 당시 권총의 명중률이 형편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파지법을 보니 총을 많이 쏴 본 솜씨도 아닐 터.

강태준을 노려보던 그가 부하와 수신호를 교환했다.

그를 노려보는 강태준의 눈은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삐뽀삐뽀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짭새다! 짭새야!”

벌써? 의문도 잠시, 노란 차량 라이트가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당황한 깡패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닭장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사방을 포위했다.

“모두 동작 그만, 무기 버리고, 손들어!”

“지랄은…… 디질라고.”

깡패들이 호기롭게 덤비려 했지만, 진압 경찰의 수는 시장에 모인 건달들의 수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진압봉과 방패로 완전무장을 한 경찰들은 보는 즉시 건달을 두들겨 뭉개고 잡아 던졌다. 제아무리 힘 좋은 건달들이라지만 공권력을 이길 수는 없는 법.

사정없이 휘두르는 몽둥이질에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기는 녀석들.

압도적인 폭력에 곤죽이 된 깡패들이 각목을 빼앗겼다.

복날 개 맞듯 처맞던 깡패들은 금세 제압당했다. 상황이 정리될 무렵 말똥 4개의 계급장을 단 남자가 지프에서 내렸다. 그 정체는 동대문 경찰서장 남국진. 자리에서 내린 경찰서장은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이런 막돼먹은 자식들.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려? 이런 썩을 노무 자식들이 깡패질하니 눈에 뵈는 게 없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시장 질서 차원에서.”

“이런 시불. 아가리 닥쳐! 이 빨갱이 새끼들 싹 잡아들여!”

엄석대가 항변했지만, 경찰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붙잡힌 건달들은 포승으로 굴비 엮듯 꽁꽁 묶여 끌려갔다. 상대가 끌려가는 뒷모습에 구경 나온 상인들이 고소하다는 듯 혀를 찼다.

“어후, 그지 같은 놈들. 꼬시다.”

“빌어먹을 십 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거 같네.”

“깜빵 들어가서 폐병이나 걸려서 콱 뒈져 뿌리면 좋겠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고 난 뒤 뒷짐을 진 백 영감이 어슬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 끝났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태준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손을 내젓는 백 영감이었다.

“아녀. 도움은 무슨, 내 고객한테 손을 대는 놈들은 가만둘 수 없지. 그간 나대는 꼬라지가 눈꼴사납긴 했어.”

“어찌 되었든 이번 사건은 영감님께서 힘써 주신 덕이죠. 시장이 평화로워지겠군요.”

시장을 어지럽히던 패거리들이 사라졌으니 당분간은 평화로울 것이다.

“뭐 쓰레기를 청소해도 또 쓰레기가 오겠지. 그래도 암튼 자네 오지랖 하나는 알아줄 만해.”

“글쎄요. 불치병이랄까요. 이상하게 나쁜 놈들이 잘되는 꼴을 보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지 말입니다.”

“허허. 알량한 정의감으로 사고 치지 말고. 그럼 나중에 좋은 물건 있으면 또 연락하게.”

춘삼이는 섭섭한 듯 모자를 구겼다. 사실 춘삼이도 이번 유인 작전에 꽤 공이 컸다.

“가십니까? 이제 헤어지는 거군요.”

“딱히 할 일 있냐? 니는 앞으로 뭐 하고 먹고살 건데?”

“이제 다시 찾아봐야죠.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습니까? 깡패 놈들도 없어졌으니 당분간은 품팔이나 해 볼까 해요. 아니면 저 백 영감님 시중이나 들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다. 복만이와 은근히 시선을 교환한 강태준이 슬쩍 질러 보듯 말했다.

“그럼 나 따라올래?”

-다음 화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