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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4화 (14/361)

14화 유물 발견

황급히 사다리를 내린 강태준이 배를 출발시켰다.

잡힐 땐 잡히더라도 일단 도망쳐야 한다.

신형 엔진을 단 배는 추격하는 해경 감시선을 피해 바위섬 뒤로 배를 슬며시 붙였다.

잠시 후, 어업 지도선은 선체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가까이 옴에 따라 심장이 달음박질을 했다.

‘지나가라. 제발 그냥 지나가라…….’

강태준은 기도하듯 속으로 읊조렸다. 설마하니 저쪽에 걸리면 아주 골치 아파진다. 다행히 어업 지도선은 백 미터 거리를 두고 그들이 숨은 섬을 빗겨 갔다.

감시선이 디젤 폭발 엔진음을 내며 멀어져 가자, 숨어 있던 일행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항구 쪽으로 사라져 가는 감시선을 보며 복만이가 주먹감자를 먹었다.

“개 시러배 같은 시키들. 사람 놀라게 하긴.”

“십년감수했네. 염통이 다 쫄깃하던디요.”

“뱅신 새끼들, 일은 안 하면서 삥 뜯는 건 존나 열심히 해요.”

“짭새들이 원래 그렇지 않나.”

이들이 전전긍긍했던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감시선에 걸리면 잡히면 장비고 뭐고 죄다 압류당해 버리기 때문.

원래 잠수기 사업을 하려면 수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이런 연중 작업을 할 수 있는 11종 잠수 허가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12종 역시 봄과 겨울철 작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조차 얻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

덕분에 잠수 기수 조합 산하 어선은 무려 스무 척이 넘지만, 그중에서 정식 어업 허가를 가진 배는 일고여덟 척도 되지 않았던 것.

여수 국동항을 중심으로 전라도 지역에 근거를 둔 잠수기협은 지소에서 허가를 내고 조업 및 위판을 하고 있었고 타지 영세 어민들에게 배타적인 성향이 강했다.

“처음부터 불법 합법 가리지 않고 영세 어민들을 모아 조합이란 걸 만들어 놓고는 이제 와 배척한다는 것이 웃기기도 않습니다.”

“원래 이권이 걸리면 그걸로 천년만년 해 처먹으려는 족속들이 생기기 마련이지.”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들 그렇게들 아귀다툼을 해 대는지.”

강태준은 항구 방향을 주시했다. 어업 지도선이 도착했으니 해경들이 한바탕 드잡이질을 할지 모른다.

“단속이 떴다면 일단 항구로 바로 돌아가긴 어렵겠군.”

“그럼 어떡합니까?”

“근처에 배 숨길 곳이 없나? 일단 배를 맡겨 둬야겠는데.”

“그럼 도덕도로 가는 건 어떨까요?”

도덕도는 굴도 근처에 있는 나비 모양의 섬으로 똑딱선들이 선착장 대신 찾는 곳이다. 가끔 낚시 철이 되면 그물배들이 드나들며 조업을 하는데 부채꼴 모양으로 생긴 백사장이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유명했다.

“그러게. 일단 거기 가서 요기나 때우자고. 아침에 들어간 게 없어서 배가 고프군. 오늘 당번은 누군가?”

“접니다. 형님.”

“부탁한다. 복만아.”

한동안 몸을 움직였더니 시장기가 몰려온다. 고물 끝에 차려 놓은 화덕에 장작을 지핀 다음, 배추 시래기를 넣은 된장국을 끓였다. 식칼을 들고 이물로 건너온 복만이 칼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강태준이 주섬주섬 잠수복을 입으려 하자, 복만이가 다시 물었다.

“아니, 식사 전에 또 어디 납시려고요?”

“고래치라도 한 마리 잡아야지 않겠나. 맨밥에 넘길 수야 없지.”

“뭘 그렇게 호들갑이요.”

“임마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먹어야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인디.”

“알았소. 성님도 참. 사고 치지 말고 퍼뜩 다녀오소.”

“오냐. 알긋다.”

잠수복을 챙겨 입은 강태준은 바다 밑으로 잠수했다. 수심은 그렇게까지 깊지 않은 듯 태양빛이 비쳐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니 완만한 진펄에 이끼처럼 녹조류가 덮인 돌덩이가 눈에 띄고 산호말과 다시다 등의 해조류가 뒤엉켜 있었다.

‘먹을 거 많네.’

호미로 펄을 긁어 헤치기 시작하자 잔돌이 섞인 뻘흙이 드러났다.

곧이어 딱딱한 것이 호미 끝에 걸렸다. 대합이었다.

망태기에 먹을 만한 조개를 적당히 채운 강태준이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반찬감을 물색했다.

우르기, 놀래기 같은 고기들이 심심찮게 나타났다. 가로줄이 긴 돔들이 총알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만, 씨알이 실한 놈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구멍 난 얼룩 바위 앞에서 약간 붉은빛의 열기 하나가 느리게 지나간다. 시꺼먼 구멍 앞에서 어정거리는 것이 먹이를 노리는 듯하다.

강태준이 작살을 겨누고 살며시 다가갔지만, 녀석은 어디에 정신이 팔렸는지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 고무줄을 당긴 그가 작살 끝을 배때기에 겨누고 쏘았다.

타악~!

물살을 가르며 날아간 작살이 정통으로 고기의 아랫배를 뚫자 일격을 맞은 열기가 움찔했다. 날카로운 칼날에 배를 꿰뚫린 녀석은 무려 팔뚝만 한 크기였다. 창날을 돌려 고기를 망태에 담던 강태준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살그머니 시커먼 바위 구멍을 들여다보던 강태준이 대충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했다. 붉은 살점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지 않은가. 언뜻 보이는 빨판에 강태준은 입맛을 돌았다.

‘문어가 집을 뺏었나 보군.’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문어는 교활하고 머리 좋은 동물이다. 녀석은 보통 고래치(쥐노래미가) 사는 바위 구멍이 빌 때만을 기다리다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안으로 들어가 주인이 올 때를 기다린다. 그렇게 몸을 어둠 속에 숨긴 채, 다리를 내밀어, 먹잇감을 유인하는데. 그러다 물고기가 미끼에 속아 다리 끝을 집어삼키려고 하면 쑤욱 다리를 뻗어서는 빨판으로 감아 죄어 버린다. 한 번 다리에 붙잡히면 그것으로 끝. 주인은 어디 가고 마침 배고픈 열기 하나가 어정거리다 부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거 월척이로군. 간만에 몸보신하겠구먼.’

덩치로 보아하니 넷이서 푹 고아 먹고도 남을 크기.

강태준은 가벼운 흥분감에 몸이 달아올랐다.

과연 바위 끝에 오동통한 붉은 문어 다리가 빠꼼히 입을 내민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강태준은 작살을 들어 바위 구멍을 깊숙이 푹푹 쑤셔대자 움츠러드는 문어 놈.

뭉클한 감촉이 느껴졌음에도 문어는 끌려 나오지 않기 위해 더욱 완강히 저항하며 안으로 스며들었다. 일단 위험을 감지하고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독 안에 든 쥐. 서너 번 구멍 안을 찍던 강태준으로서는 별로 서두를 것이 없다.

다시금 푹푹 안을 찍어 버린 강태준이, 유영하듯 바위 뒤를 돌며 홍합과 멍게 등을 수금하고 돌아왔다.

뭍에 있었다면 망태기가 쩔렁거릴 만큼 두둑이 안을 채운 그.

돌아와 보니 머리 한쪽이 길게 찢긴 문어가 기어 나온 채 쓰러져 있다.

치명상을 입은 듯 간헐적으로 숨을 몰아쉬는 것이 이미 목숨이 위태로워 보인다.

거의 빈사 상태의 문어를 집어 든 강태준이 문어를 망태기에 넣으려고 할 즈음, 문득 다리에 무언가 하나 둥그런 것이 딸려 나왔다.

‘응?’

다리에 딸려 나온 것은 다름 아닌 항아리다. 용케 깨지지 않은 것이 천운이랄까.

형언할 수 없는 감각에 특별함을 느낀 강태준이 망태기에 다시 물건을 쑤셔 담았다.

망태기를 채운 강태준이 서서히 위로 올라가자 복만이가 기다리던 헬멧을 벗겨 주었다.

“수확은 좀 있었소?”

“여기 문어랑 대합 좀 가져왔다.”

“와. 실하네. 근데 이거는 그게 뭐시여?”

“아니, 문어 잡다가 대충 주웠어.”

항아리 표면을 푸른 빛의 감태가 촘촘하게 덮은 모습. 진흙이 잔뜩 들어 무거운 항아리에는 굴 껍데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유심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 서방이 중얼거렸다.

“이건 고려장한 물건 아닙니까…… 예전에 노인네들 수장하면서 갖다 버린 거라 재수 없다고 버리던 건데.”

“귀신 붙은 물건?”

“네. 가끔 인양되곤 합니다. 예전에 저희 집에서 우리 집 개 밥그릇으로 쓰기도 했는디 개시키가 쥐약 먹고 죽어 버려서. 그대로 갖다 버렸습죠.”

황 서방은 찜찜한 표정이었다. 도덕도 앞바다에서는 평소에도 그물에 도자기가 심심찮게 걸려 나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부들은 재수 옴 붙은 물건이라며 매번 바다에 던져 버리곤 했다.

그에 복만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가 보기엔 쓸 만해 보이는데요. 정 아님 요강으로라도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게. 일단 가져가 보자고. 나중에 버려도 늦지 않아.”

뒤늦게 항구로 돌아온 강태준은 항아리를 조심스럽게 닦아 광을 냈다. 깨끗하게 표면을 세척하고 난 다음 해조류를 떼어 보니 숨겨 왔던 때깔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모양이 좀 범상치 않은데?”

“그러게요. 그냥 요강 따위로 치부하기엔 좀 있어 보이는 물건인데. 어머니께서는 혹 보셨습니까?”

“나도 이 정도로 뛰어난 물건은 처음 보는데. 아무래도 보물단지 같구나. 아무래도 고려 시대 청자가 확실한 거 같은데?”

어머니도 한 소리 했다. 아랫부분에는 꽃무늬와 구름 문양이 둘렀으며 굽 위로 비상하는 학 여러 마리가 날고 있다. 거기에 비취색이 은은히 빛나는 것이, 딱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생김이었다.

예술에 크게 조예가 크게 없는 강태준이라지만 적어도 개 밥그릇 따위로 치부할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김복만도 이런 물건일 줄은 몰랐는지 신기해했다.

“이거, 골동품 같은데요. 군청에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유물은 무슨. 보상금만 노린다. 욕 안 처먹음 다행이지.”

당시까지 문화재 관리는 매우 미흡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애초에 전란이 끝난 직후인지라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 옆 나라인 일본에서조차 50년이 되어서야 문화재 보호법을 만들면서 문화재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마당이니 오죽하랴.

70년대 청자를 발견한 어부가 시청과 군청에 갔다가 직원들이 보상금을 타내려 한다고 되려 꾸짖음을 당할 정도였으니 알 만도 했다.

“정부가 주는 보상금이라 봤자 쥐꼬리만 한 수준이야. 내가 죽 쒀서 개 줄 이유야 없지 않나?”

“그럼 어떡하시려고요. 이런 걸 처분하려면 소문이 안 퍼질 수야 없는데 그럼 이중혁 사장한테 부탁이라도 할까요?.”

“그러면 안 되지. 중혁이 그 양반이 성격은 좋아도 입이 무겁지는 않잖은가. 그럼 벌레 꼬이는 거 순식간이야.”

“그러믄요.”

“일단 서울로 가 보자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당분간은 모르는 척해.”

강태준은 추가로 건질 것이 있나 저번에 갔던 지역을 조금 더 살펴볼 참이다

특별히 밤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다. 이 당시 문화재 관리국은 무늬만 있는 상황이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에 걸친 집중적인 수색 끝에 강태준은 매화무늬 꽃병과 뚜껑에 용무늬가 장식된 동물장식 향로, 향초 접시 등 유물 7점까지 추가로 인양하는 데 성공했다.

“바닥까지 샅샅이 훑었습니다. 이 근방에 더는 없습니다.”

“수고했어.”

마음 같아서는 트롤 어망으로 싹 한번 훑어보고 싶었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비밀리에 목재 함을 구한 강태준은 깨끗하게 도자기를 세척한 다음 신문지에 싸서 안에 넣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강태준이 어머니에게 고했다.

“엄니, 서울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서울은 왜?”

“전쟁도 끝났으니 시장조사도 할 겸 들러야죠. 아버지 문제로 의뢰할 부분도 있고요.”

“그래, 알겠다.”

대충 어떤 일을 하려는 건지 감을 잡은 어머니지만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아들이 경제활동을 하게 된 이후, 그저 지켜보기로 정한 것이다.

강태준이 서울로 떠나가는 동안, 무안호의 정기 운행은 황 서방이 맡기로 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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