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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3화 (13/361)

13화 시체 인양

허리에 맨 끈을 잡아당긴 강태준이 앞을 주시하며 조용히 헤엄쳐 나갔다.

강태준은 30분가량 해저 바닥을 샅샅이 수색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장구의 무게는 수중의 부력 덕에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옥죄는 압력이 도리어 반대로 힘이 되어 주었다.

바닥에는 끈적끈적한 녹조류부터, 질피와 미역 따위가 흐느적거리고 있고, 펄 속에 숨었던 넙치가 포식자를 피해 자리를 옮겼다.

마침 무리를 짓던 꼬치고기 떼들이 나타나자, 유영하듯 스쳐 지나가던 고기가 겁먹은 듯 쏜살같이 달아났다.

한동안 그렇게 바닥을 유영하던 그에게 끈으로 신호가 왔다. 올라오라는 소리. 조금 더 유영을 해 봤지만, 흙물이 가득히 올라오자 시야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잠시 후, 머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 강태준이 물갈퀴를 차며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했다.

사다리를 붙들고 올라온 강태준이 망태기를 건넸다.

가로장 위에서 복강을 붙이고 심호흡을 하는 모습에 복만이가 헬멧을 벗겨 주자, 바깥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왔다. 맑은 공기에 정신이 맑아지는 것도 잠시, 구역질 비슷한 느낌이 내장을 흔들어 놓았다.

헐떡이며 호흡을 고르던 강태준이 숨을 헐떡이자 복만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이구야. 얼굴이 창백하구만. 괜찮소? 성님?”

“토할 것 같군. 뭐라도 필 것 좀 줘 봐.”

“예. 여기 있습니다요.”

“오. 고마워.”

그 말에 옆에서 보조를 맡던 황 서방이 얼른 담배를 건넸다. 사양 않고 담배를 한 모금 빨던 강태준이 기침을 했다.

쿨럭쿨럭.

니코틴에 머리가 다시 띵해진다고 할까. 그래도 코로 연기가 나오자 뒤집혔던 속이 조금 나아질 것 같다. 오른손으로 면장갑을 벗으니 팅팅 부은 손가락이 나타난다.

담배를 습관적으로 빨던 강태준이 이내 가래를 뱉으며 꽁초를 비볐다.

“어휴, 힘들어. 이러다 죽겠네.”

“죽겠으면 하지 말지 왜 사서 고생을 해 가지고.”

“임마. 시작했으면 궁시렁대지 좀 마라. 남자 새끼가 쪼잔해서는.”

울렁거림이 좀 나아지자 심호흡을 하는 강태준. 눈치를 보던 복만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밑에서 대충 뭔가 찾았습니까?”

“아니. 흙탕물이 뿌옇게 올라와서 뭐가 보여야지 말이지. 눈으로는 찾을 수가 없네.”

“그럼 우짤라구요?”

“뭐 그래도 대충 알아먹긴 했다. 일단 해류를 보니 여긴 텄어. 애초에 이런 곳에서 낚시질은 안 하겠지. 다른 데로 가자고.”

키를 잡고 방향을 튼 배가 서서히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정신을 차린 강태준이 다시 자맥질을 하며, 물속으로 깊이 잠수해 들어갔다. 물 위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맥질을 하자 외부에서 밀려드는 압력으로 몸통이 짜부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같은 작업이 반복되자 온몸을 짓누르던 중압감도 이내 익숙해졌다.

하지만 수색은 지지부진했다. 허탕의 연속에 복만이도 지친 기색을 보였다.

“아이구야, 또 맹탕이여?”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네.”

“그리 쉬우면 다들 열심히 했겠지. 안색이 좋지 않소, 형님. 올라와서 좀 쉽시다.”

“그래 좀 쉬자고.”

사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강태준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지경. 깊은 곳에서 잠수하고 나오니 연탄가스를 들이마신 것처럼 골머리가 띵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하늘을 바라보자 흰 구름이 떠있었다. 잠시 피로를 삭히는 사이 황 서방이 제안했다.

“장소를 옮겨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낚싯배면 어장이 좋은 곳을 찾지 않았겠습니까? 여기는 볼 만큼 본 것 같습니다.”

“어디로 말인가?”

“동쪽으로 가 봅시다. 수심이 좀 더 깊긴 하지만 아직 살펴보지 못한 곳 아닙니까. 그쪽은 손이 덜 간 거 같은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잔잔한 수면 위로 흰 물결이 일고 있다.

고기 떼가 모여든 장소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햇살이 바다 거죽에 떠서 환하게 일렁이고 있다

바람기도 있는 듯 만 둥 한 데다 햇살이 눈부시게 밝았다.

“해류 속도가 빠른데요. 정말 내려가시겠습니까?”

“내려가 봐야지. 혹시 물살이 빨라지면 닻을 던져.”

직감적으로 뭔가 있다는 것을 확신한 강태준이 서둘러 준비를 명했다. 손에 작살을 든 강태준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밑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한결 깨끗해 뵈는 바다 밑은 잠수모 앞 10미터까지 밝게 트여 있었다.

강태준은 몸을 잔뜩 앞으로 굽힌 채 모래톱을 차며 나아갔다.

얼룩덜룩한 바위들 사이에 바다풀과 산호가 엉겨 붙어 있었다.

돌자갈 사이로 기어 다니는 해삼을 뒤로하고 서둘러 발을 놀리던 강태준은 곧 엄청난 수의 전갱이 떼들을 발견했다.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연상될 만큼 수는 어마어마했지만 안타깝게도 씨알이 작아 상업성은 없어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전갱이들을 먹으러 온 큰 고기들이 입을 벌리고 달려들자 위협을 느낀 전갱이는 떼로 뭉쳐 한 몸처럼 움직였다.

크고 작은 고기들이 많았지만, 강태준은 추가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느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목적부터가 달랐다.

그때 마침 강태준의 시선에 거꾸로 엎어진 배가 포착되었다.

동강 난 배 주변을 돌아보니, 과연 미라처럼 풀어헤친 시신이 눈에 띄었다.

물주머니처럼 부푼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닥에 내려앉아 있는 모습.

해초 무더기 속에서 발버둥을 쳤는지 엉킨 몸이 그물에 끼어 있었다.

남자는 그렇게 죽어 있었다.

‘재수도 옴팡나게 없는 사람이군.’

배가 뒤집히면서 얽힌 해구가 물에 빠진 남자를 해저까지 끌고 들어간 것이다.

그물을 움켜잡은 채 굳어 버린 시체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유령처럼 변한 얼굴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부릅뜬 두 눈에 벌어진 입이 그가 겪었던 공포를 말해 주는 듯했다.

곧바로 얽힌 해구를 끊어 내려던 찰나,

그때 별안간 신호 줄이 연속적으로 탁탁탁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펌프가 무거워지며 공기가 주입되지 않았던 것이다. 느슨했던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자 강태준의 몸이 저절로 끌려갔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통에 강태준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발버둥을 쳤지만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이 아찔한 그였지만 당혹감도 잠시, 강태준은 냉정하게 이성을 찾았다.

호스에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잠수복 내에 차 있는 산소만으로 4, 5분은 버틸 수 있었다. 그때의 판단이 생존에 대한 동물적인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강태준은 당황하지 않고, 호스를 과감하게 끊어 낸 다음 호스 끝을 막은 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그가 숨을 참고 사력을 다해 물갈퀴를 흔들었다.

그의 몸뚱어리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

“아이고! 형님!! 형님!”

“정신 차려라 임마, 여기서 뛰어들면 너도 죽어.”

“그럼 이대로 형님이 죽게 놔두라고? 아이고!”

강태준이 올라오기 직전 웃장에서는 호스가 끊긴 것을 파악한 후 패닉에 빠졌다.

갑자기 너울이 거세지며 배가 흔들렸던 것이 원인이었다. 배를 고정시키기 위해 불가항력으로 닻을 던지기는 했지만 몇 분이나 펌프에 손을 놓은 만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 순간에 팽팽해졌던 호스가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

물에 뛰어들려는 복만이를 황 서방이 서둘러 막는 동안, 시간은 하릴없이 흘렀다.

모두 일이 터졌다 싶어 낙심하던 찰나 시퍼런 바닷물 속에서 물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형님!!”

“사장님!”

몸통이 불쑥 솟아오르는 순간, 놀란 일행이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 두어 번 안간힘을 쓰자 빙그르르 맴을 돌며 그를 갑판 위로 끌어 올려졌다.

“커헉!!”

간신히 배 위로 올라온 강태준이 파리해진 얼굴로 숨을 토했다. 코끝에는 핏줄기가 흘러오자 정신이 몽롱하다. 움츠러들었던 폐가 싱싱한 바다 공기를 빨아들이자 찬 얼음에 마비되던 정신이 트인다. 그를 부축해 올린 김복만이 울먹이며 그를 끌어안았다.

“아이고, 형님! 물귀신 되는 줄 알았다고요, 괜찮으세요?”

“찾았다.”

“예?”

“시체 찾았다고.”

산소 부족으로 창백해지긴 했지만, 강태준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밝았다.

그렇게 스무 발이나 내려간 바다 밑에서 끌어올린 시체는 인양 직후 유족들에게 인도되었다. 자식의 시체를 확인해 본 노인이 통곡했다.

“아이고, 대영이 이눔의 자식아, 왜 이런 꼴이 되었어!”

곡소리를 하는 노인의 외침에 유족들도 눈물바다가 되었다.

진정이 끝난 후, 형제 중 하나가 물기를 머금은 눈으로 다가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형님을 편히 보낼 수 있게 되었소.”

“아닙니다. 더 빨리 인양하지 못해서 죄송스럽습니다.”

“인양 중에 큰 사고가 있을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묵직한 봉투에 강태준이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걸…….”

“이미 비용은 받았습니다.”

“이건 별도의 제 성의입니다. 몸조리 잘하십시오.”

봉투를 열어 보니 오천 환이 더 들어있었다. 그 뒤로 알음알음 소문이 퍼진 것인지 이중혁을 통해 강태준에게 종종 인양 의뢰가 들어왔다. 휴전 후, 해상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사고 빈도도 증가한 탓. 대금을 세는 복만이의 얼굴에도 이윽고 탐심이 깃들었다.

“허어…… 이게 돈이 얼마요. 엄청나네. 이거.”

“임마. 그런 거 하지 말라며.”

“안 하긴요. 계속해야지. 수중고혼으로 떠다니면 얼마나 가슴이 사무치겠소. 물속에서 원귀가 되는 건 막아야 쓰지 않겠나?”

처음에는 탐탁잖게 여겼던 황 서방과 직원들도 머구리 일로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오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머구리 일은 부정기적이었지만 그만큼 짭짤했다.

한두 번 시체를 인양해 주고 얻는 돈이 한 달간 여객 운송으로 버는 돈에 맞먹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되자 강태준은 아예, 백운상회에서 잠수복을 대여받고 머구리를 부업으로 삼았다. 바람이 불지 않고 파도가 잔잔한 날이면 하나의 일과가 된 것이다.

오늘도 오전 일정을 마친 배가 사고 장소로 향했다. 머구리 배에는 머구리 외 보통 4명이 한 조로 움직인다. 주내끼를 맡은 복만이 곁눈질을 하며 이따금 먼 바다나 마을 쪽을 살폈다. 오늘은 강태준 대신 새로 영입한 권오순이 잠수부로서 작업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속력을 죽인 배는 노를 서서히 저어 산소 호스가 풀려 나가는 대로 머구리를 따라다녔다. 기관조를 맡은 황 서방은 기관실 옆에서 산소를 공급하는 컴프레셔를 확인했고, 강태준은 뱃머리 위에 걸터앉아, 흰 고무호스가 바다 밑으로 풀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 별안간 칼이라도 맞은 듯 망을 보던 복만이가 소리를 질렀다.

“배다!”

“취체선 아닌가?”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과연 속력이 빠른 해경 감시선이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후다닥 일어난 복만이가 허리에 묶인 줄로 수신호를 보냈다. 얼마나 되었을까, 바닥에 내려갔던 잠수부가 바다 위로 떠올랐다.

“배 좌현으로 돌려!”

머구리를 상갑판 위로 끌어 올리기 무섭게 강태준이 소리쳤다. 복만이가 노를 끌어 올리고 상판에 발동을 거는 동안, 강태준이 이물로 달려가 키를 잡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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