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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2화 (12/361)

12화 머구리

무슨 일이지?

몰려드는 군중 떼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슬쩍 끼어든 강태준이 옆을 향해 슬쩍 물었다.

“무슨 사건이 터졌습니까?”

“낚싯배 하나가 야밤에 출조를 나갔다가 침몰했답니다. 섬 근처에서 낚시하다 큰 배가 일으키는 너울성 파도에 그만 뒤집혀 버렸다는군요.”

“저런 사고 장소가 어딘데요?”

“우도리 근처라는군요. 겁도 없이 하필 거기까지 갈 게 뭐람.”

우도리는 섬이 많고 유속이 빠르다.

무안지역에서도 조류가 세기로 유명한 곳.

훗날 조력 발전소가 세워질 만큼 급류가 흐르는 지역인 만큼 자칫 잘못하면 조류에 휩쓸릴 위험도 있다.

그런 곳에서 겁도 없이 출조질을 하다 그만 변을 당한 것이다.

“저런. 경솔하기는. 밤에는 숙련된 선원들도 피하는 장소인데?”

“낚시에 미쳐서 목숨을 걸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쯤은 이미 살아날 가망이 없겠지요. 뭐.”

과연 어민의 말대로였다. 며칠간 해경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렇게 사고에 대한 기억이 잊혀 갈 즈음, 다시 목포에 입항한 강태준 앞에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니 안 된다니까요.”

“안 되긴, 사람이 죽었는데 벌써 철수한다는 게 말이 되나?”

“저희도 할 만큼 했습니다. 더는 시간 낭비입니다.”

해경과 직접 실랑이를 벌이는 것으로 보아 유가족들인 듯하다.

꽤 잘 차려입은 양장이 말쑥해 뵈는 것이 돈깨나 있어 보이는 집안인 듯.

해경의 거절에 마음이 급했는지 중절모를 쓴 노인이 다시금 사정했다.

“이보게 독고 경감, 그럼 시체라도 찾아 주시게나. 입관을 하려면 시신이 있어야지. 뭐라도 남는 게 있어야 장례를 치를 것 아닌가.”

“아니 인근에서 수색작업을 진행했지만, 아무 단서도 없었습니다. 이 넓은 해역에서 어떻게 찾습니까? 지금까지 물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면 답이 없습니다. 전문가들도 그 위치는 힘들다고 합니다.”

그 말에 급해진 노인이 지폐를 쥐여 주며 부탁했다.

“이보게, 시체만 찾아 주면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 제발 부탁일세. 삼만 환…… 삼만 환 어떤가. 내 아들, 내 아들 좀 찾아 주게.”

“저도 딱한 사정은 압니다만. 이건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니까요”

“자네도 자식이 있으면 알 거 아닌가. 아들 시신이라도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제발 부탁일세. 제발. 내 자식. 시신이라도 찾아 주게. 시신을 찾아 주면 내 후사하겠네.”

“에이 참. 곤란하게 전문 잠수부들도 어렵다는데 제가 무슨 수로…… 돌아가세요. 어르신.”

큰돈이 걸렸지만 아무도 쉬이 나서지 않았다. 날고 긴다 하는 잠수부라도 해류가 빠르고, 위험한 지역에 가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다.

지금 같은 시대 쉽사리 목숨을 걸고 나설 사람은 없었던 것.

삼만 환이라 큰돈이지만 목숨을 걸기에는 애매한 금액이다.

애써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울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에이씨…….’

그 모습을 본 강태준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전생에 끝내 찾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이 아른거렸던 것.

이렇게 그냥 지나치면 꿈자리가 사나울 것만 같다. 결국 결심을 굳힌 강태준이 발걸음을 돌렸다.

“삼만 환 확실합니까?”

“뭐?”

눈물을 멈춘 노인이 강태준을 돌아보았다. 강태준이 다시 힘주어 말했다.

“시신을 찾을 경우에 약속한 비용 말입니다. 삼만 환 정말 주실 수 있습니까?”

“그, 그렇네. 시체를 찾기만 하면 약속대로 삼만 환을 주지.”

“그럼 그 일 제게 맡겨 보시죠. 제가 해 보지요.”

“정말인가? 고맙네, 정말 고마워.”

노인은 양손을 붙잡고 고마워했다. 강태준이 머구리 일을 맡겠다 통보하자, 소식을 들은 김복만이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형님 어쩌시려고요? 머구리질이라니. 형님이 무슨 물개라도 된답니까?”

“아따, 이 형님을 믿어 봐. 일단 장비부터 빌려 보자고.”

강태준은 백운상회를 다시 찾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이중혁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임마야. 거기는 진짜 잘못하면 죽는다. 니 물귀신 되고 싶나?”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그깟 돈 몇 푼에 목숨 걸지 마. 앞길도 창창한 놈이. 뭘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해.”

“그렇다고 시신 하나도 없이 장례 치를 수는 없잖습니까?”

“쓸데없이 오지랖은, 마 같잖은 동정심은 집어치워라. 살 사람은 살아야지. 난 송장 치우고픈 마음 없다.”

축객령을 내린 이중혁이 다시 장부 정리에 열중했다.

그러나 강태준은 입을 꾹 다문 채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다.

말없이 뚫어지라 보는 시선이 따가울 지경.

시위에 참다못한 이중혁이 마침내 들고 있던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임마, 수심 50미터에 자맥질하는 게 장난으로 보여? 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제가 이런 일에 목숨 거는 놈인 줄 아십니까? 다 방법이 있으니 함 도와주시죠.”

기가 찬다는 얼굴을 한 이중혁이었지만 강태준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결국 항복한 것은 이중혁이었다.

“알았다. 임마, 고만 노려봐라. 눈 빠지겠다.”

한숨을 내쉰 이중혁이 직원을 시켜 창고에 가더니, 우주복처럼 생긴 헬멧과 주황빛 잠수복을 넘겨 주었다.

“이거, 생각보다 묵직하네요.”

“몇 년 놔둔 건데, 아마 아직 쓸 만할 거야. 다만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면 깊은 물 속에서 돌아올 때는 천천히 감압하면서 올라와야 해. 젊은 놈이라도 잠수병은 무섭다. 시베리(잠수병) 맞으면 그냥 골병드는 거야.”

“걱정 마세요, 부친께서 자주 알려 주신 부분이라, 저도 웬만큼은 다 압니다.”

“좋은 일 한다니 특별히 빌려주는 거지만 이러다 송장 치우는지 모르겠네.”

“복 받으실 겁니다.”

“감시선에 걸리지나 말어. 무리하게 배 돌리다 뒈지지 말고. 산소 공급 호스가 꼬이거나 끊어지면 그대로 죽는 거니 조심해.”

머구리. 일본을 통해 잠수복이 들어오면서부터 생긴 직업이다. 당시까지는 꽤 수입이 짭짤했던 직업이었지만 여기에는 큰 리스크가 있었다. 감압해야 잠수병의 원인인 혈액 속 질소를 없앨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 무지 덕에 한때 동해의 머구리들은 한 해에도 수십 명씩 죽곤 했다.

잠수복을 받아든 강태준은 문득 전생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전생에 UDT 요원이었던 아버지는 잠수부였다. 잠수부로서 사양길에 들었던 나이에도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20년 골병이 들었어도 호구지책으로 아버지는 결국 바다로 나갔다 죽었다.

‘더럽게도 미련한 인간 같으니라고.’

기회만 있으면 때려치우겠다 말하면서도 결국 바다를 포기하지 못한 아버지 잠수란 워낙 사람 골병 들이는 노역이라 오래 하다 보면 힘줄과 뼈마디가 다 망가지게 된다. 기침에 피 가래가 섞여 올라오는 케이슨병 증세가 나타나면 그만둘 때가 되었다는 증거.

그쯤 되면 어지간한 마초라도 목숨이 아까워 손을 털기 마련이지만, 아버지는 몸이 다 망가진 뒤에도 잠수부 생활을 청산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잠수하지 못하게 하려 몰래 잠수복을 버리기까지 했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바다 안에 있어야 살아 있음을 느낀다니 무슨 변태도 아니고.’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할까. 바로 자기가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지 않나?

부전자전이라는 생각에 쓴 웃음을 짓는 강태준. 준비를 마친 강태준은 예정했던 대로 배를 타고 사고지점을 향했다.

“혹시 기름띠가 있는지 잘 보라고, 침몰한 배에서 아직 흘러나오고 있는지 모르니까.”

미약한 가능성이었지만 실마리를 찾아야 했다. 한참을 그렇게 돌아다니던 중, 시야에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저기 부유물이 있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선박의 잔해로 보이는 목제 선박 파편이 부표에 엉킨 채 둥둥 떠있었다. 구명구를 던져 정체를 확인한 김복만이 약간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선수 부위입니다. 아무래도 이 근처인가 보군요.”

“일단 여기 이 지점부터 수색해 보지.”

강태준은 사고지점을 빙 둘러가며 지도로 그린 다음 수색할 지역을 정했다. 단계적으로 바깥쪽부터 조류가 약한 쪽에서 강한 쪽으로 조사해 나갈 참이었다.

일행은 간단한 죽으로 식사를 때운 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혼자 입을 수 없는 만큼 도움이 필요했다. 몸이 고무복에 완전히 들어가면 포금으로 된 헬멧대를 어깨에 얹어 아래쪽과 이를 맞춘다. 나사를 죄어 패킹이 붙은 접합 부분을 완전히 압착시킨 다음 허리띠를 두르고 가슴과 등 허리에 납으로 된 추를 채운다.

홀쭉한 소맷부리 위로는 고무 밴드를 단단히 두르고 손에는 면장갑 두 개를 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형님.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시는 편이…….”

“걱정하지 말라고, 위험하면 바로 올라올 테니, 호스 꼬이지 않게 잘 보고 있어. 복만이랑, 황 서방 잘 부탁하네.”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서글서글한 눈매의 황덕구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황덕구는 이번에 정식 채용한 직원이었다. 나이는 20대 초반에 불과했지만 젊은 나이에 애가 셋이나 딸린 다둥이 아빠라서 황 서방이라고 불렀다.

긴장한 표정의 복만이와 황 서방이 공기 펌프의 손잡이에 붙어 노를 저을 준비를 했다.

강태준이 몸을 일으키자, 무게감이 전해져 왔다.

물에 내린 사다리에 한쪽 발을 내리자, 발바닥에 붙은 납덩이가 그를 바다로 끌어들인다.

물속에 반쯤 잠기자 그가 헬멧을 바로 쓰고 나사로 된 이음새를 조였다,

철컥 소리와 함께 외부와 단절되는 순간, 황 서방과 복만이가 빠르게 에어 공급 수동펌프를 가동했다. 압축된 공기가 훅하고 헬멧으로 밀려들어 오자 펌프 젓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기름기 밴 고무 냄새, 공기가 들어찬 잠수복의 앞가슴이 발효된 빵처럼 부풀었다,

강태준은 호미와 망치가 든 망태기를 옆구리에 매고 서서히 입수했다.

긴 호스를 통해 천평기에서 나오는 산소를 공급받다 보니 공기 방울이 꿀렁이며 물 위로 올라간다.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수경을 통해 어둠침침한 세계가 보인다. 사방에서 옥죄는 수압에 귀가 먹먹하다. 차가운 바닷물의 냉기가 고무를 뚫고 들어오자, 척추부터 말초신경까지 찌르르한 한기가 올라왔다.

공중에 붕 뜬 기분, 평화와 지구상에는 없을 법한 고요가 온몸을 감싸고 있다.

헬멧 옆의 오른쪽에 기리부를 옆머리로 눌러 공기를 배출시키자, 끓는 물처럼 부글거리던 기포가 위로 올라가며 공기가 빠진다.

강태준의 신호를 보내자 배 위에서 펌프를 연신 젓던 복만이가 소리를 질렀다.

“호스 풀어!”

망을 보던 직원 하나가 황씨와 함께 서둘러 펌프를 돌린다.

복만이가 호스가 엉키지 않게 풀어 주자, 순대처럼 긴 호스가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숨 쉬는 게 조금 편해지자, 강태준은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강태준의 발이 바닥에 닿았다. 조심스럽게, 부드러운 개흙이 깔린 바닥이 닿는 순간. 발바닥에 전해 오는 감촉이 부드럽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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