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여객 사업
그로부터 몇 달 뒤,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읍.
어판장이 있는 작은 항구인 송도항에 한구석에 바글바글 사람이 몰려 있었다.
머리에 봇짐을 진 아낙네부터 륙색을 멘 늙은이까지.
모두 무안호를 타러 온 사람들이다. 탁상 하나를 앞에 두고 김복만이 모여든 사람들을 일렬로 세웠다.
“자자, 줄 서소. 여기 이름이랑 어디서 내리는지만 확인하십쇼.”
“그려? 나 글자. 모르는데.”
“그럼 지장으로 찍으시면 됩니다.”
“현물로도 된다던가? 부족한 돈은 이걸로 내겠네.”
노파가 내민 옹기 안에는 무엇인가 정체불명의 것이 들어 있다.
뚜껑을 열자 새빨간 색깔에 매콤함이 번져 나왔다.
“이게 대체 뭡니까?”
“태양초로 만든 고추장이여. 이번에 담근 건데 맛이 그만이야.”
“오, 고추장이라. 신기하네요. 맛봐도 됩니까?”
“그러믄 당연하지. 자 시식해 보게나.”
새끼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는 강태준. 발효 숙성을 해서인지 매콤하고 깊은 맛이 났다. 꽤 자신감 이게 나서긴 했는지 약간 불안했는지 노파가 눈치를 보았다.
“어뗘?”
“짭쪼름한 것이, 맛 좋네요. 5환 깎아 드리겠습니다.”
“아이구, 고마우이.”
“그럼, 다음 사람.”
그러자 뒤에서 큼지막한 포대 한 자루를 들고 온 사람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섰다.
“난 이걸 대신 내겠네.”
“뭔가 말린 거 같은데. 약간 꾸리꾸리한 냄새도 나고.”
킁킁대던 김복만이 고개를 갸우뚱한 기색을 금치 못했다.
건량처럼 잘 말렸지만,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것.
혹시 먹는 건가? 김복만의 표정이 괴상해진다.
그러자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득의양양한 어조로 말했다.
“엉 말린 축분이여. 연료로 그만이지.”
“축분이라면 설마 소똥 말입니까?”
“그거 맞네.”
소스라치게 놀란 김복만이 들고 있던 소똥을 훽 하고 집어던졌다.
“엑 디러워. 이 사람이 사람 보게, 물건을 달라고 했지 똥을 주면 어떡합니까?”
“개똥도 약에 쓴다는데 소똥이면 어떤가. 화력이 아주 좋아서 땔감으로 그만이라니께. 굴 패각에 섞으면 비료로도 쓸 수 있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 똥 댁이나 쓰십쇼. 똥은 현물로 안 받아요.”
“아 그러지 말고 함 봐주시게.”
“에이, 안 된다니까요! 똥 같은 소리 고만하고 저리 가시구려.”
실랑이를 벌이는 남자를 보며 흐뭇해하는 강태준.
같이 작업을 하던 직원 하나가 밧줄을 풀며 말했다.
“이거, 갈수록 성황이군요.”
“그럴 수밖에 없지. 이곳에서 무안 일대 섬들을 당일치기로 가는 여객선이 몇이나 있나. 그 가운데선 가장 빠르니 말이야.”
제대로 된 선박용 엔진을 단 배는 극히 드문 시절이다.
통통선이면 감지덕지했던 무안 사람들에게 이런 쾌속선은 가뭄의 단비였다.
게다가 송도항은 섬과 육지를 이어 주는 중심에 자리한 곳. 증도와 임자도 가는 길목에 있는 데다 국내 최고의 새우젓, 병어와 민어 등 어판장이 있어 인파가 붐볐다.
사옥대교로 연결되기 전에는 교통의 요지였던 곳을 잘 공략한 것이다.
아까부터 소똥을 가져온 남자는 사정 끝에 결국, 외상으로 타는 걸로 합의 보았다.
교통정리가 끝나고 승객들이 탑승하자 선장을 맡은 강태준이 키를 잡았다.
“다 타셨죠? 인원 찼으니, 이제 출발합니다.”
부웅- 뱃고동 소리와 함께 출항이 시작되고 배는 물살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최고속도 15노트를 넘는 배였지만 바닥이 평저선이다 보니 흔들림이 적어 쾌적했다.
솔섬에서 사옥도로 넘어가는 경로는 아름다웠다. 잔잔한 수면 위에 붉은 낙조가 아름답게 드리워져 있는 상황에서 근처에 날아다니던 기러기 떼가 훼방꾼을 피해 수면을 차고 날아가고, 바람에 실린 향기처럼 햇살이 은은히 퍼지며 수평선으로 밀려났다.
이윽고 바위섬에 부딪힌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쾌속으로 달리는 배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했다. 하늘로 날아가는 연기 너머로 산이 보이고 봉우리 밑에 다닥다닥 붙은 시가지가 기다랗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점토로 빛은 모형처럼 달라붙은 집들, 그리고 그 밑에는 배들이 촘촘히 접안한 바닷가가 눈에 익었다. 잘 구획된 근대식 주택이 자리 잡은 가운데 멀리서 유달산 자락과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고하도 근처 벽돌공장에서 뿜어지는 연기가 보인다.
“오늘은 일찍 들어왔구먼. 한 번 더 돌 수도 있겠는데요.”
“물살이 좋아서지. 일단 도착해서 짐부터 내리자고.”
평소보다 파도가 잔잔해서인지 연안 여객선 오룡호는 꽤 일찍 도착했다. 50년대 인구 10만을 넘어 국내 6대 도시로 도약했던 목포항에선 기다리고 있던 인력거꾼들이 택시처럼 돌아다니며 손님을 받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는지 의욕이 앞선 몇몇은 배 위까지 올라가 호객행위를 하려다 뿔난 선원들에게 제지를 받곤 했다.
승객들이 하나둘 무사히 내리자, 항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짐꾼 몇 명이 싣고 온 짐을 내렸다.
섬과 항구를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뱃삯 대신 받은 현물들이었다.
돈이 귀한 시절이었기에 이렇게 원시적인 물물 교환이 이루어지곤 했던 것. 하역이 끝나자 강태준이 말했다.
“난 매점에 다녀올 테니, 정리하고 있어.”
“예. 형님.”
복만이를 비롯한 보조 인력들이 배를 정비하는 사이, 달구지에 짐을 올린 일행은 만호동으로 향했다.
만호동은 목포에서 부촌으로 유명했던 동네로 왜정 시절 이곳은 2층 양옥집을 비롯하여 양품점, 자전거점 등이 열리며 번화가를 형성했다. 일자로 뻗은 반듯한 길 사이 일본식 주택들이 늘어선 가운데 큼직한 상점 하나가 보이고 목각으로 깎은 간판 옆 파란색의 산가리아 라무네 병이 광고판처럼 붙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백운 상회-
백운상회는 만호동에서 제일 큰 상회로 상점주인 이중혁은 목포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업가다. 해방 직전 식료품점에서 일하다 적산 불하로 신분이 급상승한 그는 해방 후 적산 회사에 근무한 것을 연고권으로 활용해 헐값이 매도받아 사업을 키웠다.
현시점에서 매점은 무려 200평이 넘는 데다 직원도 수십 명이나 되었고, 항상 손님들이 끊이질 않을 정도. 강태준은 속으로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몇 년만 일찍 환생했다면 득 볼 방법이 많았을 텐데.’
성황리에 영업 중인 상점을 보니 내심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도 소용없는 일.
생각해 보니 전쟁에 끌려가지만 않은 것만도 다행이랄까.
계산대에서 셈을 보던 직원이 강태준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 벌써 오셨어요? 오늘은 물량이 많네요.”
“한 회차 더 돌았거든.”
손을 보태는 직원들의 행동에 서둘러 짐을 내렸다.
점주를 맡은 이중혁 사장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어이, 강 사장 이제 오는가?”
“그렇게 말씀하지 말라니까요. 사장은 무슨. 구멍가게 수준이죠.”
“허허, 사장은 사장이지, 오늘은 뱃삯으로 받은 물건들은 좀 많구먼. 어디 한번 볼까.”
팔을 걷어붙인 이중혁 사장이 직원들이 가져온 쌀 포대를 함께 옮긴다.
잠시 후 적재를 끝내고 물건을 살피는 이중혁.
섬에서 딴 산 약초와 산나물들이 한가득 꼼꼼하게 살폈다.
“산야초가 실하게 익었군. 꽤 싱싱한걸. 오 이건 뭔가? 벌꿀이야?”
“이건 올해 딴 목청꿀이고. 옆에 술은 노봉방주입니다. 3년 담근 술인데 정력에 좋답니다.”
“오 이런 귀한 걸 가져오다니?”
물건을 내려놓았으니 값을 매길 차례였다. 가격을 두고 흥정이 벌어졌다.
“다 합쳐서 3,000환 어떤가?”
“그건 너무 싸지 않습니까. 인간적으로 이건 값을 쳐 주셔야죠.”
“알았어. 알았어. 100환 정도 추가하지. 그 정도면 어때.”
“그냥 딴 데 갑니다?”
강태준이 진짜로 고개를 돌리고 나가려고 하자 서둘러 붙잡는 이중혁이었다.
“알았어. 500환 추가. 눈뜨고 코 벨 놈 같으니라고.”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보다 제가 의뢰했던 소식은 어떻습니까?”
“아, 그 채무자들? 아직 답이 없네. 흥신소를 통해 연락해 봤지만 달리 답이 없어. 어딘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지.”
“절이나 교회에 피신했을지도 모르니 그쪽도 알아봐 주십시오.”
“노력은 해 보겠네만, 그냥 이만 포기하는 게 어떤가. 농담이 아니라 이건 백사장에서 바늘 찾길세.”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죠. 그런 것도 해결 못 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제대로 눈 못 감으실 겁니다.”
강태준의 도서 운행 사업이 순항하자 태준의 어머니는 보관하고 있던 채권 서류들을 보여 주었다.
도망간 동업자들에게 받아야 할 대금만 무려 2,000만엔. 당시 한화로 약 200만 환이었다.
당시 국내 최정상 기업이던 오성그룹이 제당 공장을 짓는데 빌린 차관이 18만 달러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강태준은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일부라도 회수해야죠. 정부에 징발된 배도 되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마. 그러다가 병 된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보다 여기 장사가 잘되나 보네요. 이건 낚시용품들인 것 같은데, 설마 수입품입니까?”
강태준이 흥미로운 눈으로 물건을 훑었다. 대나무부터 릴, 이음식 낚싯대부터, 유리섬유로 만든 것까지. 한자로 운수대통이라고 적힌 낚싯대를 본 강태준은 내심 관심이 갔다.
‘글라스 화이버(유리섬유)로 만든 물건이군.’
호기심이 생긴 강태준이 시험 삼아 대를 휘두르자 회초리 소리가 났다. 가늘고 탄성이 좋은 것이 손맛이 그만이다. 휨새를 확인한 그는 만듦새에 내심 감탄했다. 제품은 시마노 산이었다.
“이거 손맛이 좋겠는데요. 일제면 꽤 비쌀 텐데 잘 팔리나 봅니다.”
“외지에서 찾는 사람들이 좀 늘었지. 낚시에 미치면 돈 나가는 건 순식간이지. 근래 부산일보 자매지 월간 낚시 기자가 수기를 썼는데 덕분에 외지에서 온 낚시꾼들이 많아졌어. 덕분에 배를 빌려주고 쏠쏠하게 챙기는 경우가 많지. 근데 몇몇 몰지각한 놈들이 어장에서 출조해서, 출항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민원이 많아지고 있네.”
“그건 좀, 큰일이군요.”
“안전문제가 심각하지. 배를 타고 바다를 나설 때는 승선원 신고서를 작성하지만 신고서도 없이 출항했다가 좌초되기라도 하면 무연고자나 다름없게 되는 거니.”
관계기관에 전혀 신고 없이 조업에 나선 배들의 경우 안전을 담보하기 힘들다. 만약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누가 사고를 당했는지, 몇 명이나 당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
하지만 낚시꾼들의 유입으로 지역경제에 많은 보탬이 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던 만큼 관할 지역에서 함부로 금지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남은 물량을 처리한 강태준이 돌아오자, 야간 조업으로 돌아가는 어선들이 엇갈려 바쁘게 항구로 귀환하고 있다.
꽁무니를 따라오던 여객선이 물결을 길게 끌고 오는 중. 가만히 바닷가에 선 채 그 모습을 감상하던 강태준. 헌데 어디서 큰일이 터졌는지 항구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큰일 났군. 큰일 났어.”
“이거 불쌍해서 어떡하나?”
심각한 표정으로 웅성대는 사람들의 태도에 의아함도 잠시 저 말리 심각한 표정의 어민들이 수군거리고 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