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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10화 (10/361)

10화 출항, 무안호

“어머니!”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묘하게 벅차오른 기분에 목이 잠긴다.

강태준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불초 소자 다녀왔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그랴, 내 새끼. 그래. 어디 아픈 곳은 없더냐?”

“예. 딱히 고생 없이 잘 먹고 잘 지냈어요.”

“그래…… 타지에서 고생 많았다. 일하느라 많이 힘들었겠구나.”

허락도 없이 가출한 자식을 상대로 화를 내기는커녕 곧바로 아들이 다친 곳이 없나 확인하는 어머니. 하지만 복만이의 경우는 반대. 얼굴을 본 즉시 등 짝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이 화상아.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이 죽일 놈. 망할 놈의 자슥. 밭에 뿌릴 종잣돈을 훔쳐. 이놈아. 그러고도 니가 사람이여.”

“아이구 엄니! 고만 좀 해요.!”

등짝을 휘갈기는 외숙모가 한쪽 귀를 붙잡고 끌고 가자 질질 끌려가던 복만이가 죽는다 비명을 질러 댔다.

“아아, 엄니 아들 귀 떨어져요!”

“이 문디 자슥. 일루 안 와! 오늘 한번 멍석말이 해 볼랑께. 그리고 내 비상금 어딨어? 이놈아가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쏙 빼돌려.”

“아이구. 아파유. 안 쓰는 비상금 좀 쓰면 어떤감? 게다가 내가 언제 그 돈 훔쳤나, 빌린 거지.”

“이 뻔뻔한 시키를 보게. 요놈 콩밥 좀 먹어야겠구먼. 동네 사람들 여기 보소. 이 도둑놈의 새끼 좀 잡아가시구라!”

“아, 엄니. 동네 창피하게. 그게 몇 푼이나 된다고 이 난리 바가지요. 아들이 돈 떼어먹는 후레자식으로 보이소?”

“임마 1,000환이다. 니가 그 돈 있어?”

“여기 있소. 자 보시오. 여기.”

성화에 못 이긴 복만이가 신문지에 싼 돈을 풀어 내밀었다.

그간 벌어 온 금액을 본 숙모의 입에서 입이 떡 벌어지자 복만이가 엣헴 하는 소리를 냈다.

“보셨소. 이 아드님이 어느 정돈지?”

그러나 떨어진 것은 등짝 스매싱이었다.

“에그머니나! 니가 이렇게 큰돈이 어디서 났어? 이제는 대도 노릇까지 하나 어디서 훔친 거여?”

“엄니도 참, 자기 아들을 뭘로 보고. 일해서 번 돈이여.”

“니 주제에 무슨? 퍽이나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입이 삐쭉 나온 김복만이 제 어머니와 아웅다웅하는 사이, 때마침 밭일을 하고 돌아온 외삼촌이 그 모습을 발견했다. 아버지를 본 복만이가 못 박힌 듯 굳었다.

“복만이 이놈 자슥이. 예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여기가 니 편할 때 마음대로 드나드는 곳이야?”

“아, 아부지. 그게.”

“태준이 너도 얼른 따라와!”

꼼짝 못 하고 끌려 온 복만이는 거실에서 얌전하게 무릎을 꿇은 채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안방으로 들어간 강태준 역시 죽은 듯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못마땅한 얼굴로 노려보는 외삼촌.

조용히 정좌한 강태준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꼼지락대는 복만이의 인내가 한계에 다할 무렵, 침묵하던 외삼촌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부산에서 목돈 벌어 왔다고.”

“예.”

“의기는 가상타. 다만 아무런 허락도 없이 가출한 건 칭찬해 줄 수 없겠구나.”

“죄송합니다.”

외삼촌이 덤덤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아들 복만에게 고개를 돌렸다.

“야, 복만아.”

“예. 아부지.”

“니 정말 농사가 그렇게 짓기 싫으냐?”

“백날 쌀농사 해서 뭣합니까. 쌀값은 똥값인데. 보람두 없고. 지는 형 따라다니면서 장사나 할랍니다.”

그 말이 화를 돋웠는지 옆에서 부지깽이를 든 복만 어머니가 버럭 성을 냈다.

“이노무 자식,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그럼 학교는 어쩌고?”

“하모. 중학교 나왔으면 배울 만큼 배운 거지. 남자가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공부는 때려치우겠다고?”

“내가 공부에 재주가 있나? 그렇다고 밭 몇 뙈기 갈면서 농사지어 봐야 백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 땅 파서 먹고 살아 봐야 농노밖에 더하겠소. 그럴 바에야 돈이나 벌렵니다.”

“아니, 이누마가, 오냐오냐했더니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내 니를 굶겨 키웠나?”

“아이구, 엄니, 그런 뜻이 아니고.”

아웅다웅하는 두 모자에 강태준은 잠자코 침묵했다.

감정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에 잘못 말했다간 싸움이 번질 것을 우려해서다.

묵묵히 듣고 있던 외삼촌이 마음을 가라앉힌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태준이 니가 외지에서 돈 벌어 온 건 장하다만, 당장 사업을 한다는 건 다른 문제다. 그래도 대학은 마쳐야 하지 않겠노?”

“때가 되면요. 다만 아직은 시기가 이릅니다.”

“복만이 니도 같은 생각이냐?”

“네, 아부지. 저도 형 따라 사업하고 싶습니다. 아부지도 한번 믿어 보십쇼. 이 복만이가 호강시켜 드릴 테니까요.”

“이노마가, 어디서 헛바람만 들어서는. 확. 짜끄라버릴까 부다.”

경상도 출신 외숙모의 입에서 확 육두문자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한숨을 쉬던 외삼촌이 고개를 들었다.

“좋다. 복만이 니는 더 공부 안 해도 된다. 대신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그라. 그럼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아니 복만 아부지,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이 천둥벌거숭이를 어찌 믿고.”

“임자는 더 끼어들지 말게. 이건 사나이 대 사나이로 하는 소리야. 아들 할 수 있나?”

“할 수 있소…….”

그 말에 입이 댓 발로 나온 외숙모가 불만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외삼촌이 다시 복만이를 보며 엄하게 경고했다.

“다만 농사를 안 짓는다니, 니가 물려받을 땅은 없다. 앞으로 밥벌이는 네가 알아서 해라.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겠지?”

그 말에 복만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감사합니다요. 아부지. 열심히 하겠소.”

“고마울 게 뭐 있겠느냐. 책임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나중에 울고 불며 사정해도 난 책임 못 진다.”

“물론입니다. 아부지, 지가 꼭 성공해서 호강시켜 드릴랑께.”

가슴을 탕탕 치며 장담하는 복만이에 외숙모가 눈을 흘겼다.

“나중에 질질 짜지 말그라…….”

“엄니. 지가 언제 그랬다고요.”

“암튼 아부지가 허락했다고 내가 허락한 건 아니여. 난 사업 반대여. 특히 니 같은 빡돌이 사업이라니 어디 집안 말아먹을 일 있나?”

“아이구 엄니! 지가 뭐 그렇게 못 미덥습니까?”

“응. 너를 믿을 놈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나?”

억울한 듯 항의하는 복만이를 뒤로하고 강태준의 시선이 어머니를 향했다.

그녀는 아까부터 다소곳이 듣고만 있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따로 말씀하실 부분이 없으십니까?”

“난 네가 다치지 않고 건강한 걸로 족하다. 너도 이제 곧 성인인데 내가 거기 왈가왈부하는 것도 웃기지. 네 뜻대로 하거라.”

어른 두 명이 허락하자 외숙모로서도 더는 어깃장을 놓기가 어렵다.

외숙모는 못마땅한 눈으로 둘을 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에휴, 참말로들. 내는 이제 모르겠소.”

불편한 처벌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허락을 받은 둘은 밖으로 나왔다.

“행님, 고맙소. 내 편 들어 줘서.”

“복만이 니 진짜, 자신 있어? 사업 시작하면 지금보다 몇 배는 힘들 텐데.”

“시방, 여기까지 와서 무슨 소리. 이 김복만이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요. 형님만 곤조 있는 줄 아소?”

평소 같지 않게 진지한 복만이에 강태준이 못 말리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알았다. 니 멋대로 해라. 일단 배 수리해야 되니. 니 친구들 좀 델꼬 와. 배 고치려면 사람이 있어야지.”

“그렇게 나와야지. 형님. 당장 대령하리다.”

신바람이 난 복만이가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득달같이 바닷가로 달려갔다.

“녀석도 참.”

며칠 후,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 하는 친구들을 데려온 복만이.

낡은 배를 고치는데 필요한 잡부들이었다.

배를 뭍까지 끌어올린 뒤에 본격적인 수리 작업에 들어갈 참이었다.

“영차, 영차!”

하지만 난파선을 뭍으로 끌어올려 놓고 보니 생각 이상으로 부식된 부위가 많다.

엔진을 뜯어내고 상세히 살피자 저번에 미처 보지 못했던 부식과 크랙도 눈에 띄었다.

“젠장, 이거 트랜섬 쪽에도 미세한 흠이 있군. 곤란한데.”

강태준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배 뒤쪽 선외기를 걸도록 만든 턱을 트랜섬이라 부르는데 트랜섬과 모터의 체결 부분이 부식되어 있던 것이다. 평소 해맑은 복만이의 얼굴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그게 심각한 거요? 형님.”

“아니, 걱정 마라. 고치면 그만이니 일단 바닥청소부터 시작하자고.”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예상 범위 내다.

마음을 다잡은 강태준은 선체 아래 해초와 패각을 제거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패각류와 해충이 기생해 썩은 부위를 제거한 다음 선체 외부를 세척하는 작업이었다.

선저변에 연화 작업을 마치고 나니 크랙이 진 부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생각보다 용골은 멀쩡합니다. 추가로 뜯을 필요는 없겠어요.”

‘흠, 다행히 상처가 그렇게 깊진 않군.’

패각이 보호막이 되어 주었는지 아래쪽 부식 상태는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강태준은 우현 난간 위에 임시 발판을 설치한 다음 나무를 곡면으로 휘게 하기 위한 ‘이다’(나무를 켜서 송판 형태로 만드는 것)를 드럼통에 넣어 삶았다.

이런 과정을 처음 보는 김복만으로서는 도면도 없이 뚝딱뚝딱 만들어 가는 태준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신통하구마. 형 이런 기술은 어디서 다 배웠소?”

“우리 아버지가 멸치잡이 선주였잖냐. 다 어깨너머로 배웠지.”

“아. 그렇구만.”

복만이는 생각 없이 수긍했다. 사실 강태준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 기술은 전생에 구룡포에 살던 어린 시절, 그를 이뻐하던 목수에게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다.

어린 시절 고향이던 구룡포 일대는 철마다 큰 태풍이 지나가던 곳이었고 태풍 직후면 해안가 부근에 목선들이 수리되는 모습이 종종 보이기도 했다.

발판을 딛고, 45도 각도의 뱃전을 평지처럼 오고 가던 것이 어찌나 멋있었는지.

철모르던 시절, 어린 강태준이 목수가 되겠다 칭얼거릴 때마다 늙은 장인은 주름진 미소를 띠며 까까머리 소년을 쓰다듬어 주었다.

“목수질을 왜 하나? 임마. 공부를 해라 공부를.”

“에이 공부는 무슨, 지 적성이 아닙니다.”

“적성이 아니라도 열심히 해. 니는 절대 목수 하지 마라. 나처럼 된다.”

기술을 배워 겨우 쓸 만한 수리공으로 발돋움할 될 즈음 국내의 배가 전부 FRP(강화플라스틱)로 바뀌는 바람에 그간 배웠던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던 늙은 목수의 넋두리였다.

청춘을 다 쏟고 배운 기술이 별 쓸모없어진 목수의 인생사도 얄궂지만, 세상사 흐름을 누가 예측할 수 있으랴. 늙은 얼굴이 어슴푸레하게 떠올리던 것도 잠시, 강태준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강 사장님?”

수리를 맡은 직공 하나가 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어 불렀나?”

“보아하니 선수 부분을 완전히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썩은 부분이 너무 많네요.”

“썩었다고 전부 바꿀 수는 없네. 그러려면 예산이 나무 많이 들어.”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완전히 썩은 부분만 뜯어내고 나머지는 삼나무 껍질로 수리해야지.”

일단 부재는 맞닿은 면의 선형을 본떠 본을 제작하고, 기준점마다 치수대로 선형을 옮겨 재단하도록 한다.

제작이 끝난 목재는 체인 블록을 이용하여 단숨에 들어 올렸다.

조임쇠와 괴목을 이용해 고정시킨 다음 부재를 불에 그슬리거나 물을 뿌려 가면서 하나하나 썩은 자리를 메꾸는 강태준이었다.

“이봐, 들뜨지 않도록 조심해!”

눈을 부릅뜨고 감독한 덕분인가. 다행히 새로 만든 부재는 톱니가 맞물리듯 자리에 꼭 맞았다.

“제작비가 더 들지 않아 다행이군요.”

“하부에는 처짐에 대비하여 보강재를 추가로 덧대는 게 좋겠어. 혹여 스기목 껍질 있나?”

“예. 읍에서 받아온 물량이 있습니다.”

“그걸 새끼 꼬듯 꼬아서 목재의 틈 사이를 메꾸면 돼.”

이후 강태준은 보조 일꾼들과 함께 목재 사이의 틈을 막는 수밀 작업을 진행했다. 물고기 기름에 석회 등을 섞은 퍼티를 바른 뒤, 선체 하부에 방부용 도료로 AF페인트를 칠하는 방식.

누수 점검 후, 저판, 선수에서 선미 연결부까지 차례로 오일 칠을 마치는 데까지 거의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마침내 엔진을 설치하고 스크루를 연결하는 작업을 마치자, 역사적인 시범 항해가 코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출항 직전까지 강태준은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갑판 위를 깐깐하게 점검하고 선창까지 이상 없음이 확인한 강태준이 신호를 보냈다.

“배 띄운다! 다들 밖으로 나와.”

레일과 선박 사이에 괴어 놨던 나무를 빼자 배는 바다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순간 왠지 바람의 흐름마저 달라지는 듯했다.

두둥실, 배가 힘찬 엔진소리를 내며 나아가자 그 모습을 본 복만이와 작업자들이 흥분한 듯 소리를 질렀다.

“떴다!”

“떴어!! 진짜로 나간다!”

작업자들은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름은 뭐라고 할겁니까?”

“무안호로 하는 게 어떤가? 무안에서 발견된 선박이니 그게 좋을 거 같은데 말이야.”

드디어, 강태준의 마음에도 순풍이 불었다.

제대로 된 사업의 시작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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