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7화 (7/361)

7화 회사 생활

“아니. 이런 건방진 새끼가, 야 이 자식아, 네놈이 그렇게 잘 알아?”

울그락불그락 해진 얼굴로 열을 내는 박진환. 하지만 이왕 말 꺼낸 것, 강태준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주임기사라면 적어도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일을 주먹구구로 하면 안 되지요.”

“뭐,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그냥!”

화난 박진환이 주먹을 날렸지만 태준의 손바닥에 가볍게 막힌 박진환.

더 분노한 박진환이 씨근덕거리며 뿌리치려 했지만 마치 굳은 것처럼 옴짝달싹 못 했다.

신음과 함께 입에서 도발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자식이 이거 안 놔?”

“주먹질이라니. 깡패도 아니고, 어디 계급장 떼고 한번 붙어 볼까요?”

사태가 심각해지자 당황한 정비공들이 웅성거렸다.

상황이 커지자 달려 나온 정비공들이 양쪽을 싸잡아 말렸다.

“어이, 박 주임 참게. 나이 든 사람이 왜 이러나?”

“태준이. 이번엔 말이 심했어.”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거…… 놓으십시오. 지금 저 자식이, 먼저 시비 걸지 않았습니까?”

그 사이 소란을 감지한 사람들이 서둘러 사장을 불러오자, 득달같이 정비창으로 달려온 최창렬 사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니 지금 다들 뭐 하자는 건가!”

사장의 등장에 싸움은 흐지부지되었다. 사장실로 호출된 두 사람.

하지만 박진환은 아직 화가 풀리지 않는지 씩씩대며 성을 냈다.

“그래서…… 자네 말을 안 들어 먹어서 교육을 했다?”

“어린 놈의 시키가 건방지게 훈수를 두지 뭡니까?”

“훈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전 사실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본 최 사장이 점잖게 강태준을 타일렀다.

“자자. 대충 무슨 일인지 알 거 같군. 이유가 어쨌든 간에 오지랖을 부리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야. 자네 파트도 아닌데 일에 끼어드는 건, 너무 주제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적이 틀린 건 아니야. 이번 일은 아무래도 박 주임의 실수인 듯하군.”

“아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강 기사 말이 옳다는 걸세. 우리가 비록 재생 차를 만든다고 해서 품질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지 않나.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지금이라도 바꿔야지.”

대답이 충격적이었는지 껌뻑거리더니 눈꺼풀을 파르르 떠는 박진환. 그 말이 화를 돋웠는지 이내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아니, 지금 저 말고 저놈 편을 드는 겁니까?”

“원칙대로 하자는 걸세. 자네가 손님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지. 나 같아도 발로 도어 단차를 맞춘 차량은 별로 사고 싶지 않을 것 같군. 안 그런가?”

말이 끝나자마자 어색하고 긴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화가 난 박진환이 목에 건 수건을 내동댕이쳤다.

“허, 더러워서 못 해 먹겠구만. 알았슴다. 거 맘대로 하십쇼!”

“뭐. 이 사람이 정말!”

박진환이 버럭 화를 내며 밖을 나가 버리자 정비공들이 혀를 끌끌 찼다.

“저 인간 성질머리하고는. 싸가지 좀 보게.”

“선배, 선배 개소리하더니만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었나?”

단단히 삐쳤는지 박진환은 며칠간 두문불출했다.

일이 그렇게 되자 곤란해진 최 사장이 강태준을 따로 호출했다.

서류를 보던 그가 정중하게 자리를 권했다.

“자 앉게.”

“커피 좋아하나? 아니면 쌍화차로?”

“커피기 더 좋을 거 같습니다…….”

잠시 후, 여비서가 날계란을 동동 띄운 모닝커피를 조심스레 대령했다.

꽤 섬세하게 탄 커피를 가만히 주시하는 강태준. 최 사장이 선심 쓰듯 말했다.

“쭉 들이키게. 요새 일하느라 힘들 텐데.”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솔직히 강태준의 취향이 아니었다. 커피에 계란을 넣다니.

그렇지만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

한 모금 조심스레 찻잔을 들이키자 처음 느껴보는 농후한 맛에 놀라는 강태준.

덜 익은 계란 노른자가 커피 향과 섞여 고소한 맛을 냈다.

달짝지근한 커피 향이 비린내를 잡아 준다고 할까.

의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최 사장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맛있지?”

“네 맛있습니다. 특이하네요. 이거.”

서로 마주 본 채, 잠시 찻잔을 홀짝이던 본 최 사장이 슬슬 본론을 꺼냈다.

“박 기사가 며칠간 무단으로 결근했다더군. 아무래도 자네와 있었던 일로 기분이 단단히 상한 듯해.”

“그렇습니까? 별로 그렇게까지 기분 상할 일은 아니겠는데 말이지요.”

“원칙대로라면 괘씸해서라도 자르는 게 맞겠지만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만한 기술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그래서 어려운 부탁이네만, 자네가 직접 집에 가 데려와 줄 수 있겠나?

“제가 말입니까?”

“그래, 작업장에 다시 출근하면 계속 마주 볼 텐데 매번 데면데면할 수는 없잖은가. 앙금이 깊어지기 전에 서로 푸는 게 좋을 것 같네. 사과하라고까지는 하지 않겠네. 애초에 자네가 잘못한 일은 아니니. 술 한 잔이라도 나누고 오게나.”

그가 지폐 몇 장과 함께 주소가 적힌 갱지를 건넸다.

“잘 달래서 와 주게. 뭐 몸만 컸지 하는 짓은 애나 다름없어. 그만큼 단순한 녀석이니, 자네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게.”

“예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사실 강태준 역시 한번 싸우고 난 후 별로 심기가 좋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굴러온 돌이 아닌가.

박힌 돌이었던 박진환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까울 만도 하다. 더욱이 자신은 대충 엔진을 구할 돈만 벌고 나면 떠날 사람인 만큼 이런 식으로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국제시장에서 소고기 한 근을 산 강태준은 대연동 쪽으로 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작고 허름한 판잣집. 주소지를 몇 번이나 확인한 끝에 도착한 곳에서 강태준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별론데.’

여기가 주임이라는 사람이 살 만한 지역이던가. 그래도 꽤 봉급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람 계십니까?”

문 앞에 선 강태준이 문을 두드리자 창백해 보이는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표정을 보건대 병색이 완연해 보이는 모양새가 딱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

처음 보는 사람의 등장에 여자는 겁을 먹었는지 반쯤 문을 닫은 채였다.

“누…… 누구세요?”

“아, 회사 동료입니다. 여기 먹을 것을 좀 사 왔습니다.”

강태준이 인사를 건네고 통성명을 하자, 경계를 푼 여자가 안심한 듯 문을 열었다.

“아, 감사합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선 강태준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방의 모습에 말을 잃었다.

안에 든 가구라고는 옷장과 작은 탁자 한 개가 전부. 8평도 되지 않을 만큼 비좁은 공간에 마음이 불편해진 강태준이 헛기침을 하자 파리한 얼굴의 여자가 머쓱하게 웃었다.

“초라하죠?”

“아 그게.”

“회사 동료가 여기 찾아오는 건 처음이네요. 없는 살림이라 마땅히 대접할 것이 없어 죄송해요.”

여자는 자기를 박 주임의 아내라고 소개했다.

파리한 얼굴로 차를 내오는 모습이 위태위태하다. 조심스럽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강태준. 이야기를 들은 후 여자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창백해졌다.

“그래서 며칠 동안이나 결근했다고요?”

“네. 그래서 지금 어디 계신지 여쭐 수 있겠습니까?”

“어찌 그런 일이. 전 그이가 야근하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요.”

“바깥양반이 며칠째 집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겁니까?”

“그럼 혹시 어디 갈 만한 곳은 없습니까? 아니면 짐작 가는 곳이라도.”

“전혀요. 남편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사실 저는 몸이 약해서 멀리 못 나가요.”

밭은기침을 하던 여자의 시선에 불안감이 어린다.

파리해진 얼굴이 더 창백해져 보였다.

“설마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요?”

“저 침착하시고. 별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면 저희가 찾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강태준이 돌아와 자초지종을 보고하자 최 사장이 표정이 굳었다.

“집에 없다고?”

“예. 며칠째 집에 안 들어왔답니다.”

“저런, 또 개같은 버릇이 도졌구먼.”

“그게 무슨 말씀을?”

“그 인간 지금 바둑에 미쳐 있을 거야.”

“바둑이요?”

“그래, 내기 바둑 말일세. 한동안 잠잠하더니만 또 그 지랄이구먼. 아마 넙치 놈 아지트에서 호구 역할이나 하고 있겠구먼.”

“넙치요?”

“정성택이라고 내기 바둑으로 유명한 놈이 있네. 도박장 비스무리한 곳을 운영하지. 원래 그 녀석 빼 온 곳이 거기일세.”

채비를 서두르는 최 사장을 강태준이 제지했다.

“사장님은 그냥 계십시오. 제가 가서 데려오지요.”

“자네가?”

“예. 이왕 맡은 일은 매듭을 지어야지요. 남자 간의 문제는 제가 직접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소만 알려 주십시오.”

최 사장이 알려 준 대로 자리를 수소문한 강태준은 김복만과 함께, 박진환이 있을 장소를 향했다. 둘이 찾아간 곳은 광복동 골목 안 어느 한 허름한 건물 앞이었다.

“여기가 맞나?”

“네. 근데 저희 둘이서 괜찮겠습니까? 형님.”

“일단 부딪혀 봐야지.”

물론 강태준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큼직한 소파에 탁자를 옆에 둔 채로 대국에 열중한 사람들이 보였다. 희뿌연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이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 누렇게 변색한 벽지가 세월의 흐름을 말해 주는 듯 부스러져 있었다.

꽤 진지한 분위기에 김복만이 조용하게 속삭였다.

“여긴 그냥 대국 두는 곳 아닙니까?”

“원래 놀이나 도박은 한 끗 차이 아닌가. 놀이에 내기가 끼면 그게 노름판이지.”

주위를 살피니 박진환은 보이지 않는다.

“근데 박씨는 여기 안 보이는데요?”

“적당한 곳에 개구멍이 있겠지.”

가만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 척하는 강태준.

잠시 후, 심부름을 하던 사환 하나가 쪼르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가볍게 즐기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한번 제댈 놀아 보시려 오셨습니까?”

“둘 다 아니고. 사람 찾으러 왔수다. 박진환이 어딨는가?”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다 알고 온 거니 둘러대지 마. 여기서 소란 터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낮게 읊조리는 말이 자못 위협적으로 들렸는지 사환이 움찔했다.

덩치깨나 있는 김복만이 눈을 부라리니 눈동자를 굴리는 것이 무척이나 난처하다.

겁을 먹은 사환 녀석이 사정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런 건 제가 판단하기엔 어려운 문제라.”

“그럼 물어보고 와.”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누군가와 속삭인 사환이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더니 강태준에게 다시 말했다.

“거, 따라오시랍니다.”

긴 복도를 지나 숨어 있는 장소로 들어가자 깊숙한 곳이 나왔다.

걸으면서 뒤를 힐끔거리는 그.

꽃무늬 남방을 입은 떡대들 서넛이 문 앞을 돌아가며 지키고 있었다.

“소란은 삼가 주십시오. 시합이 끝날 때까지는 못 데려가십니다.”

도박장 한켠에서 눈을 벌겋게 한 채 게임에 열중한 박진환.

반면 그와 맞수를 두는 남자는 몹시도 여유가 넘친다.

저 사람이 이 도박장의 주인인 정성택인가. 넙치라는 별명답게 넙데데한 얼굴이 인상적이다.

판을 관전하던 강태준은 금세 누가 우세한지 파악했다.

‘악수(惡手)로군.’

상대의 실력을 보니 딱 보기에도 몇 수 위.

초조한 듯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 이미 말려들어 간 형세를 뒤집을 방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를 십여 분.

바둑판 위를 한참을 노려보던 박진환이 결국 돌을 던졌다.

“졌습니다.”

팔로 머리를 감싸 쥔 박진환이 고개를 아래로 처박는다.

좌절감에 몸을 떠는 박진환이었지만 패배는 명약관화한 법.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손이 아까움에 부들부들 떨렸다.

힘없이 5,000환을 바친 박진환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대국을 마친 정성택이 고개를 저었다.

“이봐, 장난하나? 5만 환. 5만 환 내게.”

“아니, 5만 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손가락 하나에 1만 환이라는 말이지. 그럼 고작 천 환으로 퉁칠 줄로 알았는가?”

“그런 무슨 억지가?”

“억지라니. 여기서는 이 몸이 법이야. 그리고 자넨 엄연한 패배자고.”

기가 막힌 박진환이 버럭 성을 내려 했다. 하지만 산만 한 덩치의 떡대가 등장해 인상을 쓰자 바로 기가 죽은 모습. 기죽은 박진환이 어버버거리기 무섭게 상대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못 내겠으면 몸으로 때우는 건 어때. 자네 정도면 내 차 정비사로 딱 일 거 같아서 말이야.”

박진환이 난감해하는 그때 강태준이 나섰다.

“그건 많이 곤란한데요?”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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