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화 (3/361)

3화 난파선

“이것 봐라, 이거 진짜잖아?”

“그럼 거짓말하는 줄 알았음? 형님도 참.”

설마하니 일말의 기대는 있었지만 진짜로 이런 물건이 있었을 줄이야.

부서진 배 밑바닥, 이물로부터 내려진 쇠사슬 끝은 커다란 녹슨 닻이 매달려 있다.

진흙 끝에 고개를 반쯤 내밀고 있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쇠꼬챙이에 끼인 생선 같은 형상에 강태준이 배를 상세히 살폈다.

“생각보다 멀쩡한데, 이런 귀한 걸 어떻게 찾았어?”

“뭘 새삼스럽게 여기가 우리 아지트야. 어렸을 적부터 애들이랑 조개잡이 하러 종종 가는 곳이지.”

“그럼 이 배 주인은?”

“몰라. 옛적엔 어떤 실성한 할배가 하나가 자기 배라고 씨부렁거리긴 했는데, 정신이 나가서 맞는 이야긴지는 잘. 게다가 요새는 안 보이더라고. 아마 노망나서 죽었을지도.”

“그런가? 그거 유감이구만.”

강태준은 뱃전으로 올라가 상태를 살폈다. 배의 구조가 익숙한 것이 전남의 서해안에서 자주 보이던 배의 일종이다…….

‘젓새우잡이용이었나? 멍텅구리배를 개량한 물건이네.’

멍텅구리배란 조선 시대 후기부터 사용된 배의 일종으로 동력이 없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들었다.

“어때? 은근 쓸 만하지?”

“바닥이 좀 삭기는 했지만 고쳐 쓰면 멀쩡할 것 같아. 표면은 용제로 닦아 내고 썩은 목재만 교체하면 되겠는걸…….”

무게는 4~5톤가량, 12미터 길이. 너비 대략 3미터 정도.

나룻배 정도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강태준에게 있어서는 기대 이상.

용골은 멀쩡하니, 선미에 달라붙은 따개비는 뜯어내고 와이어 브러쉬로 표면을 갈아 내면 충분히 실전에 투입 가능하다.

허나 한 가지. 안타깝게도 45마력 엔진은 노후화로 완전히 삭아 버려 교체 외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본체는 괜찮은데 엔진이 문제로군. 이건 도저히 살릴 수 없겠어.”

“그럼 방앗간용 모터로 교체해 보는 건 어때? 창고에 모셔 둔 게 있는데.”

“아니, 그걸로는 부족해. 방앗간용 모터는 끽해야 5마력 이하가 대부분이라. 그걸로는 통통배도 못 되는 수준이니까. 해류의 역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없으면 말짱 황이야.”

“그럼 이 배, 아예 못 띄우는 거야?”

급실망한 복만이에 강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엔진만 교체하면 충분히 띄울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그 전에 이것저것 손을 써야 할 거 같은데?”

우선 더 손상이 심해지지 않게 배를 옮기는 것이 급선무다. 복만이가 부른 친구들과 용을 써서 배를 안전한 곳까지 끌어올리고 나니,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대충 고칠 부분이 어딘지 살펴보고 체크하는데 반나절 이상이 족히 걸렸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자 한참을 기다렸는지 마당 앞에는 어머니가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 흙투성이가 된 두 사람에 놀란 어머니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대체 어딜 갔다 온 거니? 이 뻘흙은 뭐고.”

“복만이랑 같이 가슴도 답답해서 바람 좀 쐬었어요.”

“예. 반찬거리가 없을 거 같아. 간만에 조개 좀 캐 왔습니다.”

“뭘 이런 걸, 담부터는 장화라도 챙겨 가거라.”

개펄에서 캔 조개를 내밀자 어머니는 눈에 띄게 안심한 기색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 강태준이었지만 하지만 흥분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아까 보았던 배를 어떻게 개조할지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고물 배 한 척만 제대로 복원하면 진짜 대박일 텐데.’

전시는 모든 물자가 부족할 시기. 요즘같이 운송수단이 부족한 시기엔 지프 차로 운송업만 해도 짭짤하게 이윤이 남는다.

지금이야말로 사업에 뛰어들 타이밍. 그런 생각이 들자 온몸에 좀이 쑤셔서 좀처럼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런 촌 동네에서는 마땅한 엔진 구하기는 불가능하니, 부산 쪽으로 다녀오는 수밖에 없겠군.’

아무리 생각해도 선박용 엔진으로 쓸 만한 건 미제 군용트럭에 쓰이는 디젤 엔진뿐.

그 외에도 기본적으로 배를 운항하려면 로프나 체인 경고 장비에 조업용 그물, 선박용 트랜스미션과 공압 기계가 필수적이다.

조개를 캐거나 품을 팔아 보아야 푼돈 이상 모으기 어려운 만큼 결국은 대도시로 나가는 것이 답.

그렇다면?

생각을 했으면 실천에 옮겨야 마땅한 법. 며칠간 노가다에 가까운 조개 팔이로 여객선 탈 여비를 마련한 강태준은 부산으로 가기로 결심을 굳히고 서둘러 펜을 들었다.

-어머님 전상서

불초 소자는 잠시 떠납니다. 도회지에서 일자리를 잡고자 하오니 걱정하지 말아 주십쇼. 적어도 방학 끝날 즈음에는 귀가할 테니. 그동안 평안하세요.

행선지를 추적당할까 싶어, 짤막하게만 쓴 내용이지만 내심 양심에 찔린다.

하지만 구구절절 변명해 봐야 발목만 붙잡을 뿐.

결단을 내린 당일 밤 강태준은 짐을 챙긴 채 집을 나섰다. 외삼촌 일가는 농사일하는 사람답게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든지라 불빛 하나 없는 밭 주변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봇짐을 둘러맨 강태준이 살금살금 떠나려는 순간, 밭두렁 근처 갑작스런 인기척이 들렸다.

“형, 어딜 가? 치사하게 혼자서만 야반도주하려고?”

“너, 그 차림은 뭐냐?”

“당연히 나도 가야지. 형 혼자는 못 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가출 준비를 한 걸까. 큰 봇짐을 바리바리 싸매고 나온 복만이는 완전 군장이나 다름없는 차림이었다.

“뭘 그렇게 싸 들고 왔어?”

“척하면 척이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못 속여. 형님이 며칠 동안 궁리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구.”

“너까지 가출하면 나보고 어쩌라고? 집안 꼴 완전 개판난다.”

“뭐 어차피 내는 내놓은 자식이니 괜찮수. 우리 아부지야 큰형이 알아서 달랠 테고.”

“임마. 그걸 말이라고…….”

“잔말 말고 갑시다 성님. 솔직히 형님 돈 필요하지 않소? 일자리 구하면서 며칠 외박하려면 내가 꽤 필요할 텐데? 비상식량으로 육포도 사 왔소다. 형.”

짤랑이는 두둑한 주머니를 보여주는 것이 능글맞기 짝이 없다.

“이놈아. 나중에 걸려서 다리몽둥이 부러져도 난 몰라.”

“에이, 그런 의리 따위는 바라지도 않으니 걱정 마소. 일단 서두릅시다…… 우리 아재가 잠이 옅어서 깰지도 모르니까. 어차피 형님도 가방모찌 하나 정돈 필요하잖아.”

“그래…… 알았다 가자 가!”

당연하다는 듯 성큼성큼 앞서가는 모습에 강태준이 백기를 들었다.

조용히 소리 없이 사라지는 둘을 주시하는 한 사람…….

뒷짐을 진 외삼촌이 토벽에 숨은 채 숨을 죽인 인영에게 가만히 말을 건넸다.

“태준이는 결국 갔느나?”

“예. 매정하게 뒤 한 번 안 돌아보더군요.”

“그래…… 결국 예상대로구만.”

“모르는 척 보내 주긴 했지만 정말로 이대로 그냥 보내도 될까요?”

들려오는 목소리엔 어머니로서의 걱정이 담뿍 묻어 있다.

“지금은 그냥 봐주는 게 답 아니겠나. 남자가 뜻을 정했으면 무라도 뽑아야지. 막아 봐야 역효과일세.”

“하지만 아직 어린 애들인데…….”

“어리기는, 옛날 같으면 벌써 애가 두엇 있을 나이지.”

“하지만…… 혹여 다치거나 잘못되면. 아직 사회경험도 없는 애들 아닌가요?”

“생각이 없는 녀석들은 아니니 제 앞가림은 하겠지. 일단 내버려 둠세…… 외지 나가서 죽쌀나게 고생하다 보면 자연히 철이 들지 않겠나. 돌아올 장소를 마련해 두는 것도 부모가 할 도리겠지.”

그렇게 위로하는 말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지 어머니는 아들이 사라진 장소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깨에 머리를 기댄 둘은 하염없이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강태준 일행은 여수 대합실에 도착했다…….

당시 여수와 부산을 오가는 배편은 하루 2번 아침, 저녁만 운행되곤 했는데 부산까지 가는데 빠르면 10시간, 12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촌티가 나는 복만이가 꾸깃꾸깃한 돈을 내밀자 액수를 확인한 역무원.

잠시 후 강태준을 보더니 짐짓 사근사근해진 어조로 말했다.

“거기 뒷 손님까지 포함이죠?”

“예. 혹 금액이 부족한가요?”

“아닙니다. 자, 여기 3등 칸으로 가세요.”

거스름돈을 받은 강태준 일행은 객실로 향했다.

연안 여객선의 3등 칸은 배 밑바닥에 있다.

선실은 넓었지만, 사람들 대부분 3등 칸을 선택했기에 자리는 그리 쾌적하지 않았다.

200~300명이 다닥다닥 붙어 겨우 몸을 웅크릴 수 있는 공간.

어디선가 스멀스멀 풍겨오는 악취에 복만이가 코를 움켜쥐었다.

“우 냄새.”

“좀만 참아. 익숙해질 테니.”

강태준은 태연했다. 사람의 체취인지, 아니면 배에 짙게 밴 비린내인지 당최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지만 이 정도야 예상범위 내.

자리를 잡고 웅크리고 있으니 코끝이 마비가 왔는지 참을 만하다.

다소 여유가 생긴 강태준은 3등 칸 한쪽에서 웅크리고 앉은 채 오고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배가 항구를 떠나 대해로 나가자 강한 바람과 풍랑에 마스트가 흔들렸다.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에 삶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으로 교차되는 순간이다.

강태준이 앞으로 할 일을 조용히 되새김질하던 찰나, 옆에서 산통 깨는 소리가 들렸다.

“아 배고파…….”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오기 전에 누룽지 한 말 족히 먹었잖아. 육포도 반은 해치웠고.”

“에휴, 그건 간식이지. 밥이 아니잖수.”

그런 말을 하며 옆에 쭈그려 앉은 사내를 주시하는 복만이.

옆을 보니 륙색에서 도시락을 꺼낸 남자가 시장했는지 싸 온 주먹밥을 우걱우걱 먹고 있다.

배를 문지르며 입맛을 다시는 것이 강태준도 괜스레 출출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지. 찐 감자라도 사 올 테니 짐 보고 있어.”

“그러지 말고. 같이 가쇼. 형님. 여기 혼자 있기 그래.”

“알았다, 알았어.”

강태준은 복만이와 함께 투덜거리며 선미로 올라갔다.

1층 매점 한구석으로 가니 쭈그리고 앉은 채 간식거리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부채로 김을 부치는 아주머니.

막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쑥떡과 노리끼리한 옥수수빵이 침샘을 자극했다.

“아이구 총각이 잘생겼네. 얼마 줄까?”

“2인분이요. 넉넉하게 주세요.”

“자…… 많이 가져가.”

강태준은 쑥떡과 옥수수빵을 2인분씩 샀다.

김복만이 한입에 두 개씩 빵을 삼키는 사이, 강태준도 쑥떡을 한 개 베어 물었다.

고소하지만 익숙한 맛. 딱히 맛이 있다 하기엔 부족한 맛이었지만 허기를 달래기는 그만이다.

밖으로 나와 잠시 바닷바람을 쐬는 동안, 배의 출렁임은 심해졌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가죽을 뚫고 옷 속을 파고들자 절로 몸이 떨린다.

같은 시간 바람을 받아 비스듬히 누운 배는 물살을 가르고 내닫고, 물결에 선체가 움찔거렸다. 선체가 움찔할 때마다 튀어 오른 물방울이 배 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심해지는 파도에 일부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멀미가 심했는지 속을 게워 내고 있었다.

“우웨에에엑!!”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며 거하게 쏟아 내는 사람들.

표정부터 창백하게 썩은 것이 배에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순식간에 입맛을 버린 강태준이 인상을 쓰며 손을 내려놓았다.

“고만 먹을려고?”

“니 다 먹어라.”

속을 게워 내는 모습을 보고도 복만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식사에 열중했다.

그 모습이 차마 보기 그랬던 강태준이 고개를 돌렸다.

생명 있는 물체처럼 꿈틀대는 바다.

뱃전을 때릴 때마다 배가 조금씩 흔들린다.

그때 여객선의 상갑판에 웬 젊은 여자가 홀로 서서 물방울이 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기다란 머리채가 바람결에 출렁이는 외모가 눈에 띄여서일까.

강태준의 눈이 그녀를 향한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바닷가를 주시하는 모습이 눈길이 간다.

투피스 정장을 입은 모습이 세련된 여인에 강태준은 목상처럼 굳은 채 눈을 떼지 못했다.

머리칼을 한쪽으로 넘긴 그녀가 갑판에서 내려오자 은근히 아쉬움을 느끼는 강태준.

그때 갑작스레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벙거지 모자를 쓴 불량배 하나가 달려오다 여자와 부딪힌 것.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힘에 밀려 나간 그녀가 순간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니, 앞 좀 보고 다니소. 뭐 하는 겁니까?

“죄, 죄송해요.”

“거, 담부터 조심하소.”

녀석이 성질을 부리자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여자. 그때 강태준의 팔이 막 자리를 벗어나려는 손을 덥석 붙잡았다.

“동작 그만.”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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