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드래곤 로드를 발견하는 순간, 에탄은 곧바로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봤다.
“녀석의 시체를 찾아야 합니다.”
드래곤 로드가 쓰러졌다.
그것을 확인한 지금, 에탄에게는 한 가지 더 살펴봐야 하는 게 있었다.
바로. 드래곤 로드와 함께 차원 이동을 했던 놈이었다. 그 놈이 죽었다는 걸 확인해야만 다음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우웅!
에탄의 말이 끝나는 순간, 뇽뇽이가 마나를 힘차게 방출했다. 동시에 사방으로 널리널리 마나를 퍼트렸다.
드래곤 로드와 함께 차원 이동을 한 녀석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발견함!”
그렇게 뇽뇽이가 탐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뇽뇽이의 마나에 놈의 흔적이 닿았다.
뇽뇽이가 그걸 확인하고는 녀석의 흔적이 있는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타탁!
그걸 확인한 에탄과 다른 원정대들이 뇽뇽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은… 죽었다!”
“드래곤 로드님이 녀석을 물리쳤어!”
완전히 숨이 끊어진 녀석을 발견하고 모두가 환호했다.
* * *
드래곤 로드와 마왕의 전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다. 차원이 무너지고 다른 차원으로 계속 이동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전투가 이어졌었다.
하지만 승리는 드래곤 로드의 몫이었다. 그녀는 최후의 순간까지 용언을 이용해 마왕의 몸에 계속해서 상처를 냈다.
그리고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에는 차원을 일그러트리고, 녀석의 몸을 짓이김으로써 놈의 숨통을 끊었다.
‘끝이구나.’
그 순간 드래고 로드는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자신의 인생이라고.
이 뒤에부터는 자신이 남긴 후대 드래곤과 북부에 있는 에탄이 운명을 개척할 거라고 말이다.
“흐응! 일어나셈!”
그런데…
“?”
뇽뇽이의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드래곤 로드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드래곤 로드가 눈을 번쩍 떴다.
“이게 무슨….”
지금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은 분명 마왕과 전투를 하면서 명을 다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지가 멀쩡하게 붙어있고 숨까지 쉬고 있다.
그러니 드래곤 로드인 그녀가 당황을 할 만도 했다.
터벅. 터벅.
“깨어나셨군요.”
그때. 에탄이 드래곤 로드의 앞에 나타났다. 정확히는 그녀가 누워있는 방에 모습을 드러낸 거였다.
“…너도 죽었나?”
드래곤 로드가 그런 에탄을 보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죽고 에탄도 죽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사후 세계라고 판단을 하려는 순간.
“여기는 현실입니다. 드래곤 로드님은 멀쩡히 살아 계시고요. 그리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에탄이 드래곤 로드를 향해 싱긋 웃으면서 답했다.
“…엉?”
드래곤 로드가 그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나온 반응이었다.
“호오. 드래곤 로드님이 그런 표정을 하실 수도 있군요… 이거 참 신기한 얼굴이네요.”
“뭐 임마?”
“이제서야 드래곤 로드님답습니다. 그렇게 벙 찌고 당황해하는 건 드래곤 로드님 답지않아요.”
에탄의 말에 드래곤 로드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인간 상태?”
그 순간 자신의 몸이 인간으로 변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드래곤 로드를 향해 에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차원에서 발견했을 때부터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뇽뇽이를 통해서 살펴본 결과, 드래곤 로드님의 몸에 있던 마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드래곤 로드님이 가지고 있는 드래곤의 향도 마찬가지고요.”
“…흐음.”
“혹시 더 이상 드래곤으로 돌아가실 수 없는 겁니까?”
에탄의 말에 드래곤 로드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살펴보려고 했다. 하지만 마나는 잡히지 않았다. 그저 둥실둥실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피만 느껴질 뿐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네.”
드래곤 로드가 그것을 깨닫고는 에탄에게 덤덤히 말했다. 자신은 더이상 드래곤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고 말이다.
“…이거 참. 뭐라고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드래곤 로드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잃어버리게 될 줄은 몰랐다.
“난 괜찮다. 내가 드래곤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해서, 내 존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드래곤 로드는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게 끝났다는 거겠지.”
자신의 힘이 사라짐과 동시에 마왕도 죽었다. 그걸 통해 드래곤 로드는 이게 드래곤들을 이끄는 자신의 운명의 마지막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난 이상, 새로운 운명을 만드는 것도 내 몫이다.”
그러나 드래곤 로드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제는 인간으로서 악착같이 살아갈 생각이었다.
드래곤의 힘을 잃었다고 하지만, 최강자라는 존재의 자부심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금방 정상에 오르실 겁니다.”
에탄이 그런 드래곤 로드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녀라면 충분히 빠르게 올라갈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내가 사라진 동안 북부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 혹시 내가 준비한 선물은 잘 받았나?”
그때. 드래곤 로드가 에탄을 향해 잊고 있었던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는 질문을 날렸다.
“예.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에탄이 드래곤 로드의 질문에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전해준 선물은 진작에 받았기에 웃으면서 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래곤 로드님을 위해 한 가지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에탄은 받은 선물에 대한 보답을 드래곤 로드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북부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동상을 세우기로 했었고 말이다.
“보답?”
드래곤 로드가 에탄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새로운 땅을 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이 잡히지 않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것에 의문을 가지려는 순간.
“저를 따라오시죠.”
에탄이 드래곤 로드를 향해 바깥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끼익.
그리고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드래곤 로드가 그런 에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그를 따라 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앞에 있는 동상을 보고는.
“이게 무슨….”
드래곤 로드는 그만 할말을 잃고 말았다.
* * *
거대한 드래곤 로드의 동상이 제2의 북부 한가운데에 건설됐다.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드래곤 로드의 동상은, 그가 얼마나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여왕 요정의 축복이 내려진 동상입니다.”
에탄이 그런 동상을 손으로 가리키고는 여왕 요정의 축복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말했다.
“…뭐?”
그 순간 드래곤 로드가 두 눈을 끔뻑였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기 때문이다.
여왕 요정의 축복이라니?
그런 게 왜 동상에 내려져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드래곤 로드님이 주신 선물을 기념하기 위해서 특별한 동상을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모두가 동의했던 거니까 저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세요.”
에탄이 그런 드래곤 로드를 향해 동상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말했다. 드래곤 로드가 그 말을 듣고는 당황했다. 여기서 도대체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타탁!
그때. 드래곤 로드를 향해 두 아이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린이와 뇽뇽이었다.
“드래곤 로드님!”
“흐응!”
아린이와 뇽뇽이가 드래곤 로드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두 팔로 드래곤 로드의 몸을 꼬옥 앉았다.
“잘 지내고 있었느냐.”
드래곤 로드가 그런 아린이와 뇽뇽이를 보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위해서 버선발로 뛰쳐나온 두 아이의 모습에 흐뭇함을 느꼈다.
“저희는 잘 지내고 있었어요.”
“열심히! 지냈음!”
아린이와 뇽뇽이가 드래곤 로드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그러면서 앞에 있는 동상을 손으로 가리켰다.
“드래곤 로드님을 위해서 만들었어요.”
“완전 똑같음!”
아린이와 뇽뇽이의 말에 드래곤 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말대로 눈앞에 있는 동상은 자신을 완전히 본 따서 만든 상태였다.
“그런데 어떡하냐. 나는 살아있는데.”
하지만 드래곤 로드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으니, 드래곤 로드는 저 동상을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괜찮아요.”
“추억임!”
하지만 아린이와 뇽뇽이는 저 동상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드래곤 로드가 살아 돌아왔다고 해서 동상을 부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은 드래곤 로드의 동상을 이대로 냅두고 싶어했다.
“그리고 아직 보여드릴 게 남아있어요.”
그때. 아린이가 드래곤 로드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이끌고 동상 뒤쪽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
그리고 동상 뒤편이 드래곤 로드의 눈에 들어오는 순간, 드래곤 로드는 자신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자신이 남겼던 평평한 땅이.
깡! 깡! 깡!
이제는 거대한 도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그리고 그것에 한번 더 놀라는 순간.
“드래곤 로드님!”
“깨어나셨군요!”
제2의 북부에 있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드래곤 로드를 발견하고는, 그녀를 향해 우르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