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화염의 지배자가 꾀죄죄한 모습으로 에탄과 아린이 뇽뇽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에탄이 그런 화염의 지배자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는 마법사다운 면모를 보일 정도로 관리를 잘하고 다녔던 그녀가, 이제는 얼굴에 검은색 가루를 잔뜩 묻힌 채 나타났기 때문이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에탄이 그런 화염의 지배자를 보고는 긴장했다. 사라졌던 마계의 마왕이 다시 나타난 건가? 아니면 새로운 존재가 북부를 위협하는 건가? 싶은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큰일은 없어.”
화염의 지배자가 그런 에탄의 물음에 픽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 얼굴이 이렇게 된 건 네가 부탁한 일을 처리하느라 그런 거야. 그러니까 얼굴로 놀리면 불태워버린다.”
그리고 에탄을 향해 진지하게 경고했다. 에탄이 화염의 지배자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군요.”
진심이 느껴지는 경고였다.
에탄은 그걸 깨닫고 화염의 지배자의 얼굴에 대해서 더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한마디라도 잘못 말했다가는 그대로 잿더미로 변해 버릴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에탄이 자연스럽게 얼굴에서 화염의 지배자가 온 이유로 주제를 돌렸다. 그러자 화염의 지배자가 얼굴에 묻은 검은 가루를 닦아냈다.
“후우….”
그리고 한숨을 내쉬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에탄과 아린이 뇽뇽이를 쳐다봤다.
“?”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화염의 지배자가 저런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이유가 납득이 안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그러는 거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드디어 방법을 찾아냈어.”
그녀의 입에서 영문 모를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발언이었다. 아직 그 마법을 연구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
“설마….”
“그래. 드래곤 로드님의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그게 진짜입니까?”
에탄이 화염의 지배자의 대답에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그럼 가짜겠어?”
화염의 지배자가 그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에탄을 향해 쏘아붙이듯 뒷말을 붙였다.
“내가 이 마법을 만들어 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마탑주가 된 이후로는 설렁설렁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너를 만난 이후부터는 그게 전혀 안 되고 있어. 하여간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자식 같으니. 나중에 내 노후 보장 제대로 안 해주면 북부고 나발이고 전부 메테오로 박살 내버릴 거야. 알겠어?”
그리고 이어지는 화염의 지배자의 말에 에탄이 침을 삼켰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저렇게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에탄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니 진정하시고 본론을 말해주세요. 아린이랑 뇽뇽이가 화염의 지배자님을 빤히 쳐다보고 있잖아요.”
“크흠.”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대답에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아린이와 뇽뇽이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드래곤 로드님을 찾아내는 방법은 간단해. 드래곤 로드님이 했던 마법을 우리가 똑같이 재현하면 해결될 문제야.”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해결 방안을 세 사람에게 말했다.
“드래곤 로드님의 마법을 재현 한다라… 그게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의문을 표했다. 드래곤 로드를 찾는 다는 것 자체는 찬성이었다. 게다가 거기에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고 해도 에탄은 어떻게 해서든 강행할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 로드의 마법을 똑같이 재현 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그건 인간이 해낼 수 없는, 그리고 드래곤도 어지간히 성숙한 존재가 아니면 불가능한 마법이기 때문이다.
“각자 하려고 한다면 그렇게 되겠지.”
화염의 지배자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탄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다 같이 한다면 할 수 있어.”
“다 같이요?”
“그래. 북부에 있는 모든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 차원을 넘어선 드래곤 로드님을 데려올 수 있어.”
화염의 지배자가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에탄과 두 사람에게 말했다. 에탄이 그녀가 떠올린 방법을 듣고는 침을 삼켰다.
정말로 그게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 말고는….’
그러나 이게 화염의 지배자가 가져온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 이상 더 좋은 수단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에탄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빠.”
그때. 아린이가 에탄의 손을 꼬옥 잡았다.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자신은 이 방법에 찬성하다고 말했다.
“마찬가지임!”
그러자 아린이의 반대편에 있는 뇽뇽이도 에탄을 향해 힘차게 찬성 의견을 말했다.
“….”
에탄이 두 아이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건 에탄의 결정뿐이었다.
지금 여기서 에탄이 어떻게 말을 하냐에 따라, 드래곤 로드를 만나는 시기가 달라질 게 분명했다.
“좋습니다.”
그리고 에탄은 드래곤 로드를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었기에, 화염의 지배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두 이곳으로 부르죠. 혹시 마왕이 살아 있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최대한 힘을 모으는 게 좋을 테니까요.”
“그 의견에는 나도 찬성이야.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도 전부 부를게. 제국에도 요청을 보냈으니까 곧 반응이 올 거야.”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이미 에탄이 저리 말할 걸 알고 모든 걸 준비한 상태였다.
* * *
그렇게 북부에 다시 한번 마계로 원정을 갔던 이들이 모두 모였다. 이들은 그때보다 더한 무장을 한 상태였다.
차원을 이동해서 드래곤 로드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 마왕이 있다면 전투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모두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마왕의 힘은 그만큼 무지막지하니까요.”
그래서 에탄은 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강요 하지는 않을게요. 빠지실 분은 여기서 나가도 됩니다.”
원정대에서 나갈 사람은 그래도 좋다고 말이다.
“….”
원정대에 있는 이들이 에탄의 말에 침을 삼켰다. 모두가 에탄의 말에 진지하게 반응을 보였다.
“난 참석하겠어.”
“나도.”
“북부를 구해준 드래곤 로드님을 무시할 수는 없지.”
하지만 원정대에 참석한 이들 중에서 그 누구도 에탄의 말을 듣고 돌아가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두 눈을 반짝이며 전의를 보였다.
“다들… 감사합니다.”
에탄이 그런 원정대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위해서 헌신 해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헌신이 아닌 믿고 따라오는 거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그럼 지금부터 드래곤 로드님을 찾기 위한 차원 이동 마법을 작전을 실시하겠습니다.”
에탄이 감정을 고요하게 만듦과 동시에 원정대에게 작전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원정대에 있는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음 한뜻으로 드래곤 로드를 구하기 위해 말이다.
* * *
차원 이동 마법진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드래곤 로드의 수준 정도로 막대한 마나를 마법진에 주입해야 한다는 거였다.
“뇽뇽아. 폴리모프를 풀고 마나를 주입해. 최대한으로.”
화염의 지배자는 그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뇽뇽이를 통해 마나를 충족시키기로 했다.
“알겠음!”
뇽뇽이가 화염의 지배자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폴리모프를 해제하는 주문을 외웠다.
쿠쿠쿵!
그 순간 뇽뇽이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뇽뇽이의 몸에 있던 마나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알네른베넨….”
화염의 지배자가 그것을 확인하고는 차원 이동 마법진을 발동하기 위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바닥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왕이 살아있을 수도 있으니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마.”
화염의 지배자가 그걸 확인하고는 원정대에게 경고했다. 저 차원 너머에 마왕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그러니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말이다.
“예!”
원정대에 있는 이들이 그런 화염의 지배자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웅!
그 순간 마법진에서 더 강렬한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마침내 모두를 집어 삼키는 순간.
웅!
화염의 지배자와 다른 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드래곤 로드가 있는 차원으로 말이다.
* * *
에탄은 드래곤 로드가 있는 차원으로 순간 이동됐다. 그 차원은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연 속이었다.
‘드래곤 로드는 어디에 있지?’
하지만 에탄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 차원에서도 자신의 힘을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움직인다.”
그때. 화염의 지배자가 거대한 불덩어리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어두었던 차원에 빛이 나타났고, 앞으로 향하는 길이 보였다.
탁!
화염의 지배자가 그걸 확인하고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도로처럼 길이 생기면서 이들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앞으로 계속해서 움직이라는 나침반의 등장. 그것을 본 원정대가 화염의 지배자를 따라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열심히 내달렸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그 끝에 도달하는 순간.
“저기 뭐가 있다!”
선두에서 달리던 원정대 중 한 명이 앞에 있는 공간을 가리키면서 힘차게 외쳤다.
그 순간 원정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무기를 들고 그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드님!”
그곳에는 피를 흘린 드래곤 로드가 누워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