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북부는 얼어 붙은 지 오래였다.
아린이의 힘과 에탄의 기운이 합쳐져서 차가운 눈보라를 몰아치게 만들었고, 그게 오랫동안 지속된 결과 북부는 겨울 산맥과도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산에 한해서였다. 그때 당시에 마계 공작을 죽이기 위해서 힘을 방출한 여파로 겨울 산맥이 된것이니 말이다.
“이게….”
에탄은 그 이후로 산을 신경 쓰지 않았다. 산에 가봤자 차가운 눈보라만 몰아칠게 뻔하니까.
게다가 산에는 볼일도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갔던게 북부를 지키기 위한 장벽을 세울때였다.
하지만 그때도 드래곤 로드와 뇽뇽이가 미리 산을 녹이고 있었기에, 에탄과 이들이 올라갔던 길 만큼은 따뜻한 상태였다.
“산이 없어졌네.”
그랬다.
분명히 그런 식으로 산은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항상 가파르긴을 만들어줄 정도로 높은 산이었다.
“어디 간 거야?”
그런데 에탄이 오늘 올라와서 산을 보는 순간, 자신이 알고 있던 산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나무부터 시작해서 바위까지, 산에 있어야 하는 모든 존재가 깔끔하게 비워져있었다.
마치. 마법으로 공간을 삭제한 것마냥 말이다.
“산을 평지로 만들었어요.”
이런 에탄의 물음에 아린이가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평야가 된 산을 빤히 쳐다봤다.
“드래곤 로드님께서요.”
이 모든건 드래곤 로드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에탄은 분노하지 않았다. 드래곤 로드가 어떤 생각으로 이곳을 평야로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운데에는 큰 강도 생겼죠. 그것도 드래곤 로드님이 남부에 있는 바닷물을 가져와서 인위적으로 만든 거예요. 그 뒤에 길이 뚫려서 북부와 남부를 오갈 수 있는 바닷길이 되었고요.”
이 모든걸 드래곤 로드 혼자서 해냈다. 그 사실을 아린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흐음. 대단함!”
그리고 옆에 있는 뇽뇽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탄이 그런 뇽뇽이를 보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뇽뇽이도 알고 있었어!”
“흐음! 그랬음!”
“근데 왜 지금까지 말 안했어.”
“드래곤 로드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음!”
“아하….”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에 깨달았다.
드래곤 로드는 이 일을 아린이와 뇽뇽이를 제외한 모두에게 비밀로 해왔다는걸 말이다.
“그럼 지금 와서 말하는건….”
“이 모든 전쟁이 끝나면 말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빠를 오늘 여기로 데려온거에요.”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덤덤히 이유를 말했다. 그 순간 에탄은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 산을 평야로 만든 드래곤 로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그녀가 스스로 돌아오기 전까지 에탄은 드래곤 로드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안하기로 했다.
헛된 희망보다 더 잔인한건 없으니 말이다.
“그래…그렇구나.”
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드래곤 로드가 이런 식으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는것에 기쁨을 느꼈다.
항상 인간을 멸시한다는 드래곤들의 편견을 깨부순 존재니 말이다.
“후우.”
에탄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 뒤 완전히 평야가 되어버린 산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
초록색 풀들이 에탄의 발밑에 한가득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산을 깍고 강을 만들면서 숨겨져 있던 비옥한 땅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타탁… 탁.
에탄이 그런 풀들을 느끼면서 조심스럽게 평야 한 가운데로 향했다. 그 길이가 상당했지만 개의치 않아했다. 산이었던 이곳을 평야로 만든 드래곤 로드의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지금 자신이 하는건 아주 간단한 행위에 불과하니 말이다.
탁.
그래서 에탄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끝없는 평야로 이루어진 한 가운데 자리로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솨아아…
차가운 바람이 에탄과 아린이 뇽뇽이를 훑고 지나갔다.
“개발하기 좋겠네.”
에탄이 그 바람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주면을 살펴봤다. 그리고 비옥한 평야를 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내일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자.”
드래곤 로드가 남겨준 선물을 유용히 사용하기로 했다.
* * *
다음 날.
에탄은 지오반과 다른 이들을 데리고 어제 아린이와 뇽뇽이가 자신에게 알려준 평야로 향했다.
“이게…드래곤 로드님의 선물.”
“정말 엄청나군.”
“전쟁 이후까지 신경을 써주셨네요.”
그리고 모두가 평야를 보고 놀랬다. 심지어 누구는 눈물을 훌쩍이기 까지 할 정도로 큰 감정을 받았다.
드래곤 로드가 마계에서 해왔던 일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를 개발할 생각입니다.”
에탄이 그런 이들을 향해 드래곤 로드가 남겨준 선물을 유용하게 이용할거라고 말했다.
“개발이라… 어떤 식으로?”
이런 에탄의 말에 화염의 지배자이자 마탑주인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글쎄요. 그걸 논의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온거라서요. 혹시 좋은 의견이 있다면 모두 말씀해주세요.”
에탄이 그런 그녀를 향해 역으로 의견을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화염의 지배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내 마탑을 세우고 싶어.”
그리고 이 평야에 자신의 마탑을 건설하고 싶다고 말했다.
“흠….”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턱을 쓸어 만졌다. 화염의 지배자의 마탑을 세운다라. 생각해보면 꽤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그런데 이미 마탑을 갖고 있잖아요.”
하지만 에탄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을 가졌다. 화염의 지배자는 이미 마탑을 하나 소유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기는 마음에 안들어. 위치도 북부랑은 조금 떨어져 있잖아.”
“그게 중요해요?”
“아주 중요하지! 북부랑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린이랑 뇽뇽이를 보기 힘드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에탄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그러니까 아린이랑 뇽뇽이 때문에 이 평야에타가 마탑을 건설하고 싶다는 거죠?”
“뭐. 그게 큰 목적이기는 하지. 그리고 내 마탑이 이곳에 온다면 더 좋은 효과도 있어.”
“그게 뭔데요?”
“대륙에 있는 마법사들이 북부로 많이 유입되겠지. 내가 이곳에서 생활한다는 소식이 널리널리 퍼질태니까.”
“흐음….”
에탄이 화염의 지배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마법사다.
“좋아요. 그러면 마탑을 세우죠.”
그래서 에탄은 화염의 지배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 다른 의견은 없나요? 이 넓은 평야에 화염의 지배자님의 마탑만 덩그러니 놓아버리기에는 너무 공간 낭비인거 같은데요.”
하지만 거기서 끝날 회의가 아니었다. 드래곤 로드가 만들어준 평야는 무지막지하게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에탄은 이 장소에 다른 것들을 좀더 채우고 싶었다.
“북부 대통합 건설을 여기에다 진행해도 나쁘지 않을거 같구나.”
이번에는 데이른 공작이 에탄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데이른 공작에게 집중됐다.
“공작님이 저런 말씀을….”
“내일은 해가 두 개로 뜨겠군.”
“이건 정말 놀라운데?”
그리고 데이른 공작을 향해 모두가 감탄을 표했다. 모두가 데이른 공작이 저런 정상적인 의견을 제시할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와….”
심지어 의견을 받는 에탄도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냐?”
데이른 공작이 다른 이들의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신이 말하는 게 그렇게 신기한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모두 데이른 공작의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고 말이다.
“…….”
데이른 공작이 합이라도 짠 듯, 모두가 동시에 네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여전히 멍청한 공작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먹은 거였다.
“후우.”
데이른 공작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들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지는 않았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봤자 달라지는게 없을 거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암튼. 이곳에 북부 대통합을 추진하면 좋을거 같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차차 생각하고 집어 넣으면 되고 말이다.”
데이른 공작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비록 상대가 멍청한 데이른 공작이라고 하지만, 저 말만 듣는다면 틀린 건 없었다.
“북부 대통합이라….”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이 좋은 땅을 단순히 대통합을 위한 건물만 만들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에탄은 그 이상을 만들기로 다짐햇다.
“또 다른 북부를 만들죠.”
북부의 뒤를 이어줄 제2의 북부를 건설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에탄의 말에 이번에는 모두가 경악했다. 이곳에 또 다른 북부를 만들겠다는 어마무시한 에탄의 포부에 말이다.
“어떻게?”
그때.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을 향해 또 다른 질문을 뱉었다. 제2의 북부를 만드는 건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탄에게 그걸 어찌 할거냐고 물어보자.
“그건 다 방법이 있죠.”
에탄이 씨익 웃으면서 화염의 지배자의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
“안 되면 맡기면 그만이에요.”
북부의 경제력을 책임지고 있는 상인 길드의 대장. 베네시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