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드래곤 로드의 몸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드래곤이 된 마왕이 몸을 움찔했다.
척 봐도 모든 걸 녹여 버릴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드래곤 로드가 뿜어내고 있는 빛이 말이다.
펄럭!
그래서 날개를 펼치고 공중으로 더 높이 날아오르려고 했다. 저 빛이 자신에게 오는 순간. 상당히 귀찮아질 거라는 걸 깨달았기에.
그래서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부웅!
아직 허공에 떠 있는 뇽뇽이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화르륵!
뇽뇽이가 마왕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동시에 놈의 머리 위에서 위치를 잡고, 녀석의 몸을 향해 뜨거운 브레스를 뿜어냈다.
“놈!”
그 순간 마왕의 입에서 성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신을 방해하는 뇽뇽이의 행동에 분노가 난 거였다.
“감히!”
그래서 뇽뇽이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그 순간 마왕의 몸에 있는 흉흉한 마기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화르륵!
이어서 검은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디를!”
아린이가 그걸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동시에 다시 한번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훼에엥!
그 순간 차가운 눈보라가 아린이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고, 검은 불을 막기 위해 거대한 영역을 만들어냈다.
쿠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이 만든 검은 불이 아린이의 영역과 충돌했다. 그러자 검은 불들이 얼어붙으면서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막았….”
아린이가 그걸 보고는 자신의 방어를 확신했다. 이전에도 똑같이 방어를 했으니까.
하지만.
쩌적!
“!”
그건 아린이의 착각에 불과했다.
“뚫렸다!”
마왕이 뿜어낸 검은 불이 힘을 잃고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다.
녀석의 불이 완전히 소멸하기 직전, 주변에 있는 마기들이 불에 빨려 들어갔다.
화르륵!
그리고 죽어가던 불씨가 점점 커지더니, 이내 원래와 같은 형태를 갖추고 영역을 뚫어버렸다.
[…!]
뇽뇽이가 그걸 확인하고는 다급히 입을 벌렸다. 동시에 용언을 통해 수십 개의 방어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쿠쿠쿠쿵!
하지만 그 마법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버렸다. 마왕이 만들어낸 검은 불꽃이 순서대로 하나씩 파괴하면서 들어갔다.
“이익!”
그래서 아린이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
땅에 있는 드래곤 로드가 용언을 발동했다. 그 순간 아린이와 뇽뇽이를 감쌀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훙!
그리고 순식간에 두 사람의 위치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땅에 있던 드래곤 로드는.
“드래곤 로드님!”
반대로 아린이와 뇽뇽이가 있던 위치로 가버렸다. 서로의 위치를 바꿔 버렸다는 걸 깨달은 아린이가 크게 당황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드래곤 로드를 위해 움직이려는 순간.
[!]
드래곤 로드가 용언을 터트렸다.
그 순간 사방에 퍼져있던 붉은 빛이 더더욱 환하게 빛나고는.
웅!
드래곤 로드와 마왕을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크윽!”
그 빛에 땅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눈을 찌푸렸다. 도저히 맨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빛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눈을 감고, 이내 빛이 사라지면서 시야가 확보됐을 때.
“?”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몇 초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있었던 거대한 드래곤 두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그것을 확인한 지오반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 로드와 마왕이 동시에 사라졌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려는 찰나.
“의도한 겁니다.”
에탄이 다른 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드래곤 로드님은 저에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마왕을 이기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요.”
“무슨?”
“자신이 직접 마왕과 싸우는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파가 엄청날 게 분명해서 공간을 분리하겠다고 하셨죠.”
에탄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물들었다. 저게 무엇을 뜻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빠….”
아린이가 그 말을 듣고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설마 드래곤 로드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왜 말리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건, 에탄이 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드래곤 로드를 말리지 않은 거였다.
에탄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건 말릴 수 있는 종류가 아니야.”
에탄이 아린이의 말에 쓰게 웃었다. 그 또한 알고 있다.
드래곤 로드가 마왕을 이기든 못 이기든, 살아서 돌아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걸 말이다.
“운명같은거다.”
그래서 에탄도 드래곤 로드에게 말했었다. 그렇게 작전을 실행하면 무조건 죽을 거라고,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자기는 해야만 한다고 했었어.”
드래곤 로드의 뜻은 완강했다.
에탄이 몇 번이나 만류 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을 정도였다.
“…….”
아린이가 그런 에탄의 설명에 입술을 깨물었다. 아린이 또한 드래곤 로드가 어떤 성격인지 알고 있기에, 저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걸 파악한 지 오래였다.
“흐음…”
그때. 폴리모프를 해제한 뇽뇽이가 아린이를 향해 다가왔다. 그 후 복잡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
드래곤 로드.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앞서나가는 존재가 방금전 마왕과 함께 사라졌다.
특히 같은 드래곤인 뇽뇽이에게는 그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뇽뇽아.”
그래서 아린이는 뇽뇽이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
하지만 그 뒤에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뇽뇽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아린이는 감을 잡지 못하는 거였다.
“괜찮음.”
그때. 뇽뇽이가 곤란해하는 아린이를 보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돌아올 거임.”
그리고 마왕과 함께 사라진 드래곤 로드가 있던 자리를 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그녀는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말이다.
쿠쿵… 쿠쿠쿠쿵!
그때. 이들이 서 있는 마계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주변에 있는 땅들이 갈라지고, 검붉은 하늘이 붕괴 되기 시작했다.
“마계가 붕괴 됀다!”
“빨리 벗어나야 해!”
“마법진을 설치해라 어서!”
그것을 본 원정군들이 허겁지겁 마법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마계에서 귀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미리 준비해둔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것밖에 없었다.
-우우웅!
마법진을 설치하기 위한 작업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모두가 각자 가져온 순간 이동 마법진 스크롤을 찢었다. 그 순간 원정군 전체를 집어삼킬 정도로 강력한 마나가 사방에서 뿜어져 나왔다.
“우리도 돌아가자.”
귀환을 하기 위한 작업에 나서는 건 에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향해 마법 스크롤을 찢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드래곤 로드님은요?”
“뇽뇽이 말대로,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오실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쿠쿵!
그때. 마계 하늘에서 돌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세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찌익!
아린이가 그걸 보고는 품속에 있는 스크롤을 꺼냈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스크롤을 찢어 순간 이동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우우웅!
그렇게 마계에 있는 모든 원정군이 순간 이동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그것을 본 파엘이 마나를 힘껏 모으고는.
“이동하라!”
마법을 영창 하는 순간.
파아앗!
마계에 잇는 원정군들이 모두 대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이 사라진 마계는.
콰아앙!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면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 * *
마계가 무너졌다. 그 소식이 원정군들을 통해 순식간에 대륙 전체에 퍼져 나갔다.
“황제가 조만간 보자고 하는군.”
그리고 제국의 황제는 에탄에게 조만간 만남을 가지자고 데이른 공작에게 말했다.
“굳이 만나야 할 필요가 있나요?”
하지만 에탄은 그것에 회의감을 가졌다. 자신은 해야 하는 일을 한 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부와의 화합을 위해서라고 전해주더라군.”
하지만 데이른 공작의 이어지는 말에 에탄은 자신도 모르게 벙찐 표정을 지었다. 제국의 황제가 저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북부와의 화합?’
대륙이 아무리 평화로운 시대라고 해도, 북부는 언제나 중부와 다른 길을 걸어왔었다.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진 만큼, 북부와 중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만들어진 상태였다.
“화합….”
하지만 제국의 황제가 이번 일을 계기로 그 벽을 부수겠다고 하니.
“알겠어요.”
에탄이 제국의 황제를 봐야 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언제인가요?”
에탄이 황제를 보기로 마음 먹고는 데이른 공작에게 날짜를 물었다.
“흐음….”
데이른 공작이 그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후 창문 너머를 빤히 쳐다보니 이내 실실 웃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금방인 거 같군.”
“?”
그리고 영문 모를 말을 내뱉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자 데이른 공작이 뒤를 보라는 의미로 고개를 움직였다.
쓰윽.
에탄이 그 몸짓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
그리고 창문 너머에 있는 풍경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황제…?’
제국의 황제가 데이른 공작의 건물 앞에 마중을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