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화
마계 원정군의 첫 전투가 대성공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마계에 들어온 이들의 얼굴은 처음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밝아졌다.
“마물들을 죽여라!”
마계 곳곳에 있는 마물들이 원정군을 향해 달려 들었다. 놈들의 수가 대륙에 있는 것들과는 비교가 안 정도로 엄청났다.
하지만 마계 원정군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어떤 존재가 있는지 깨닫고는, 망설임 없이 마물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끼에엙!”
그렇게 원정대가 거세게 달려들자, 처음에는 침을 흘리면서 원정군을 잡아 먹으려던 마계놈들이 이제는 역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사냥꾼과 사냥감이 바뀌면서 기세가 완전히 원정대쪽으로 기울었다.
“놈이 있는 방향으로 안내하겠다.”
“놈이라면….”
“이 마계에서 제일 강한 녀석을 말하는 거겠지. 자신이 마왕이 될거라고 예언했던 녀석을 쓰러트려야 한다.”
하지만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마계 원정에 함께 온 드래곤 로드가 한 존재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에탄과 다른 이들이 그 말을 듣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아린이와 뇽뇽이는 살짝 두려움을 보였다.
자신들이 봤던 그 존재는 대륙에서도 막강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마계에 있는 이곳에서라면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할 게 뻔하니.
“조심해야 해요.”
“강함!”
아린이와 뇽뇽이가 원정군에게 주의를 주는 게 당연한 거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 중에서 죽는 사람이 나타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알겠어.”
다행히 에탄은 아린이와 뇽뇽이의 경고를 한쪽 귀로 흘려듣지 않았다.
파아앗!
그래서 자신이 입고 있는 아서왕의 갑옷에 힘을 흘려보냈다. 그 순간 낡아 빠졌던 갑옷이 다시 새하얗게 변하고.
[드디어 내가 활약할 때가 왔군.]
갑옷 안에 있던 아서왕의 목소리가 원정군들의 귀에 울려 퍼졌다. 그런 아서왕의 목소리에 원정군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침을 삼켰다.
“이 목소리는 도대체 뭐지?”
“처음 듣는 건데….”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있어.”
그리고 갑작스러운 아서왕의 등장에 혼란을 느꼈다. 이들은 아직 아서왕의 존재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아서왕이에요.”
에탄이 그런 이들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서왕은 자신들을 도와줄 거라는 존재라는 걸 이들에게 확실히 알려주고.
우웅!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아서왕의 기운이 에탄이 들고 있는 검을 통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서왕?”
“저것이 기사왕의 기운….”
“엄청나다.”
원정군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깨달았다.
이 원정에는 정말 어마무시한 존재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 * *
원정군을 다이크를 죽이고 계속해서 마계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마계 한가운데에 있는 곳에서는 한 남자가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우웅…
공중에 붕 뜬 채로 말이다.
그리고 바닥에는 그 남자가 죽인 마물과 마족들이 수백 수천이 쓰러져 있었다.
쓰윽.
“다이크가 죽었군.”
그런 남자가 원정군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눈을 떴다. 그 뒤 다이크가 죽은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때 그 아이들도 함께 오고 있나보구나. 흐음….”
그러면서 아린이와 뇽뇽이의 기운까지 피부로 느꼈다. 이전에 마주친 적이 있기에 남자는 아린이와 뇽뇽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이거 참 재밌군.”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순간 녀석의 몸에 있던 마기가 바깥으로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뿔과 날개가 남자의 머리와 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자… 어디 한번 붙어보자.”
그리고 원정군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면서 다가올 전투에 큰 기대를 가졌다.
* * *
첫 전투 이후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졌다. 그중에서 제일 큰 사건은 마계 공작 중 한 마족을 사로잡은 거였다.
-끄아앍!
천막이 쳐진 으쓱한 곳.
그곳에서 마계 공작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문을 하는 이는 드래곤 로드였다.
그는 자신의 종족이 마족에게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기에, 그 분노를 공작에게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문도 제일 잘한다고 했지.’
물론. 단순히 그런 이유때문에 드래곤 로드가 공작을 고문하는 건 아니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드래곤들에게는 고문을 할 때 아주 효과가 좋은 마법들이 전수되어 왔다고 한다.
-제발… 제바아알!
그리고 지금 저 들려오는 마족의 비명 소리를 통해, 에탄은 드래곤 로드가 고문 마법을 이용해서 놈을 심문하고 있다는 걸 알아 차렸다.
“잔인하구만.”
누가 들어도 끔찍한 소리였다.
그래서 아린이와 뇽뇽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정 반대쪽에 천막을 치고 잠을 청하게 했다.
이런 전쟁에 익숙하다고 해도 두 녀석은 아직 어린아이니까 말이다.
“도련님은 아무렇지 않습니까?”
그때. 빌헬름이 에탄을 향해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마족들과 전투를 치른 탓일까. 그의 갑옷과 검에서는 마족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아. 이런 건 익숙하니까.”
에탄이 그런 빌헬름을 향해 픽 웃으면서 답했다. 그 후 자신의 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얼굴 닦아.”
“아. 감사합니다. 방금 막 마물들을 죽이고 온 참이라 몰골이 말이 아니군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빌헬름의 대답에 에탄이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백색 갑옷은 피로 물든 지 오래고, 에탄이 들고 있는 검또한 성한 곳이 없었다.
“여기에는 대장간도 없으니까 검이 부러지면 곤란하단 말이지.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럴일이 없을거 같지만 말이야.”
장비를 재정비할 수 없다.
그건 싸움을 제약하는 큰 조건이었다. 이곳은 마계고 여기에 대장간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보급품은 충분히 들고 왔다는 거고.”
하지만 북부에 세워진 북부 대장간은 이 사태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물량을 압도적으로 뽑아냈다. 원정군 개개인들의 장비가 아무리 부러져도 박살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내 장비는 이야기가 다르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대다수의 인원에 한해서였다. 소수의 사람. 즉 북부 대장간에서도 각별히 신경쓴 장비들을 차고 있는 에탄과 같은 이들은 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교체를 하면, 그 순간 원래 내던 힘을 전부 끌어올리지 못할 게 분명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쟁은 그 전에 끝날 테니까요.”
하지만 빌헬름은 그런 상황까지 안갈 거라고 확신했다. 지금 원정군의 기세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승리만 계속 유지한다면 마계 섬멸은 금방이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탁!
그때. 마족을 심문하던 천막에서 드래곤 로드가 빠져나왔다. 그리고 온몸에 묻어 있는 마족의 피를 마법으로 지워버리고는.
“심문을 끝냈다.”
에탄에게 심문을 끝냈다고 말했다.
“참고로 녀석은 죽었다. 필요한 정보를 얻어냈으니 굳이 살릴 이유도 없었지.”
그리고 녀석이 사망했다는 뒷말을 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드래곤 로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마족이 죽었다는 사실에 슬퍼하지는 않았다.
녀석 또한 자신이 인질로 잡혔다면 고문을 하다가 생을 마감 시켰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어떤 정보를 알아냈습니까?”
에탄이 궁금한 건 마족의 사망보다는 정보였다. 그렇기에 죽었다는 주제는 바로 넘어갔다.
“딱 한 가지 정보를 알아냈다.”
“한 가지요?”
“그래. 그리고 그건 꽤 중요한 이야이가 될 거 같다.”
드래곤 로드가 에탄의 물음에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 후 주변을 살펴봤다.
혹시 이 이야기를 다른 이들이 들을까 싶은 우려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에탄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마왕이 탄생한 거 같다.”
마계의 지배자 마왕이 탄생한 거 같다고 뒷말을 붙였다.
“마왕….”
마왕. 그 단어가 드래곤 로드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빌헬름이 입술을 깨물었다.
“상당히 큰 전투가 되겠군요.”
에탄이 그 말을 듣고 침을 삼켰다. 마왕이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에탄도 본 적이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에탄과 빌헬름 두 사람 모두 긴장을 하는 게 당연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마왕을 상대할 테니까.”
하지만 드래고 로드는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안심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힘이라면 마왕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단언했다.
“….”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드래곤 로드를 빤히 쳐다봤다. 분명 믿음이 가는데 묘한 불안감이 마음속에 계속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끝내 알아내지는 못했다.
“피곤하구나. 오늘은 일찍 잠을 청해야겠다. 네녀석들도 내일 있을 전투에 대비 해야 하니 체력을 아끼도록 해라.”
드래곤 로드가 말을 마치는 순간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마. 마왕이다!”
이들 앞에 마족의 새로운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왕의 등장에 모두가 공포를 느끼는 순간.
쿠쿠쿵!
드래곤 로드가 폴리모프를 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