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제국이 합류한다는 소식이 온 대륙에 퍼졌다. 그러자 다른 왕국들도 북부에 힘을 보태겠다는 서신을 황궁에 보내왔다.
“대단하군.”
황제가 그렇게 한가득 쌓인 서신들을 보면서 감탄을 내뱉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격렬한 반응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황제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전쟁을 오로지 제국만 감당하지는 않을 테니까.
북부와 중부 남부.
대륙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마계로 쳐들어갈 테니 제국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인 게 분명했다.
‘개인으로 봐도 그렇고.’
물론 황제의 입장에서도 이런 입장들은 호재였다. 제국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는 마계를 정벌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마계에 있는 녀석들이 대륙으로 넘어오고, 결국 대륙은 황폐화될게 물 보듯 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는 건… 조금 더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
황제가 앞에 있는 서신들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만약 에탄이 해야 하는 일을 자신이 했다면, 그리고 오직 제국 황제의 힘으로 마계 원정을 꾸몄다면.
이토록 많은 왕국들이 자발적으로 원정에 참여하겠다는 서신을 보냈을까?
‘아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아마 어떻게든 전력을 아끼기 위해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댔으리라. 심지어 그것도 제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뻗치고 있는 중부에 한해서일 게 뻔했다.
북부와 남부에서는 오히려 제국에게 압박을 가했을 것이다. 마계 원정을 가는 걸 자신들에게 강요했다고 말이다.
‘그랬다면 원정이 아니라 전쟁을 먼저 했을 수도 있겠어.’
제국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다른 왕국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북부와 남부에 있는 왕국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황제는 지금까지 마계 정벌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말하지 못했었다.
그걸 증명할 방법도 실체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에탄이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의 등장으로 북부가 하나로 통합됐고, 심지어는 남부에 있는 왕국들도 에탄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니.
“황제라는 자리가 그렇게까지 의미가 있지는 않은 거 같군.”
황제는 자신이 에탄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그것과 황제로서 제국을 운영하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정말로 힘을 실어주실 생각입니까?”
그때. 가만히 황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의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제국에 있는 마탑들을 모두 운영하고 있는 희대의 힘을 가진 강력한 마탑주였다.
“그래. 힘을 보탤 거다.”
황제가 그런 마탑주의 물음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탑주가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봤다. 비록 정치를 하는 귀족이 아니지만, 마탑주인 그 또한 제국과 왕국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드래곤 로드가 함께한다. 게다가 그녀 외에도 드래곤이 한 마리 더 있지.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순한 생각을 하는 왕국은 없을 거다.”
하지만 황제는 무턱대고 에탄에게 힘을 보태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 힘을 보태기를 거절한다면… 제국의 위상이 많이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제국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굳이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말이다.
대륙은 평화롭고 제국의 힘은 약해지고 있다. 그에 반해 북부와 남부는 빠르게 발전을 하고 있었다.
에탄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 덕분에 말이다.
황제는 그 사실을 깨달은 지 오래였다. 북부가 통합되고 대장간이 건설됐을 때부터 앞으로 굴러갈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다.
“오히려 우리는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에탄이라는 자의 목적이 제국을 무너트리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만약. 에탄이 정복에 욕심이 있는 인물이었다면? 그랬다면 하나로 뭉친 북부를 이용해서 중부와 남부를 침략하려고 할 수도 있다.
아니. 그 이전에 마족들과 결탁해서 대륙을 집어삼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에탄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있으니까.
“…….”
이런 황제의 말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탑주가 침을 삼켰다. 그 또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에탄의 힘이 막강하다는 걸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제국은 적극적으로 마족 토벌에 참여할 것이다. 왜 그런지 이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예.”
황제의 말에 마탑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그런 마탑주를 보면서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오른손을 휙휙 움직였다.
스윽.
그러자 마탑주가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그가 머물고 있는 방을 빠져 나갔다.
그렇게 혼자가 된 황제가 창문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제국의 전경을 보면서 생각했다.
‘에탄이라.’
제국을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에탄의 힘과 지식에 대해서 말이다.
* * *
제국의 합류 소식이 온 대륙에 퍼진 이후로 북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에탄의 곁에 모이게 됐다. 거기에는 원정을 가는 데 필요한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
“돈을 긁어 모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에요.”
베네시슨이 함박웃음을 지은 채 에탄에게 북부의 경제 상황.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북부 상인 길드의 상황을 말했다.
그녀의 입꼬리가 얼마나 올라가 있는지, 그걸 보는 에탄이 입에 쥐가 나지는 않을까? 라는 걱정을 할 정도였다.
“이대로만 간다면 북부가 아니라 중부의 경제력까지 휘어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제국이 있는데?”
“그건 문제될 게 없어요. 제국의 돈도 지금 북부로 전부 흘러들어오고 있으니까요. 제국에서 전쟁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돈은 저희에게 계속 들어올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제국과 중부에 대한 영향력도 커지겠죠.”
“흐음.”
에탄이 베네시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에탄 또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도 그럴게.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황제의 적극적인 지지가 아주 큰 역할을 해내고 있어.’
가장 큰 영향은 제국이었다.
중부의 지배자이자 최고의 권력자인 황제가 자신을 돕겠다고 해주니, 에탄은 더 이상 걸리적거릴 게 없었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에탄이 혼자서 북부를 집어삼켜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럴 생각은 없지만.’
하나. 에탄은 그런 것에 목표가 있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오직 마계를 섬멸하는 것.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으로 나아가 대륙을 지배하는 정복 전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대륙에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를 깨는 행위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대로 남부의 경제권까지 가져오면… 저희는 돈으로 대륙을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그때. 베네시슨이 야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에탄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에 에탄이 픽 웃었다.
“그건 허락할 수 없어.”
그리고 베네시슨에게 그런 건 허락해줄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랬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특히 드래곤 로드가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개입해서 균형을 다시 잡으려고 할걸.”
경제권을 모두 독식하는걸 못 봐줄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래곤 로드가 없더라고 해도 난 반대야. 우리의 목적은 마족을 섬멸하는 거지 대륙을 집어삼키는 게 아니니까. 그게 전쟁이 아니라 돈으로 하는 거여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에탄 또한 그 행동에 반대였다.
“끄응.”
베네시슨이 에탄의 말에 침을 삼켰다. 마음 같으면 지금 당장 경제 집어삼키기 전략을 발동시키고 싶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대륙 전체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 말이다.
“알겠어요. 에탄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깔끔하게 포기하겠습니다.”
하지만 에탄의 말에 그녀는 금방 야욕을 접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탄이 반대를 하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없을 거라는 걸 말이다.
“좋은 생각이야.”
에탄이 그녀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그 후 뒤쪽에 있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뒤에서 감시하는 건 그만하시죠. 대화 전부 들으셨죠?”
그리고 누군가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베네시슨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분명 자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탄이 헛것을 본 건가 싶은 순간.
스르륵.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 드래곤 로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눈동자로 에탄과 베네시슨을 쳐다보면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폴리모프를 한 상태라는 거였다.
“히익!”
물론. 그것도 베네시슨에게는 큰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드래곤을커녕 마법사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사. 사람!”
그래서 갑자기 나타난 드래곤 로드의 등장에 크게 당황했다.
“사람이 아니라 드래곤 로드님이야.”
“네?”“드래곤 로드님이라고. 우리가 아까전에 얘기했던 무지막지한 존재.”
“…….”
하지만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그녀는 당황을 넘어 머리가 정지되고 말았다. 지금 에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스르륵.
“이렇게 하면 조금 납득이 가나?”
그때. 드래곤 로드가 베네시슨을 쳐다보면서 폴리모프를 일부 해제했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에서 두 개의 뿔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어억!”
베네시슨이 그걸 보고는 입을 쩌억 벌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 있는 뿔을 손으로 가리키고는.
“드… 드래곤.”
드래곤이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꼬르륵!
쿵!
그대로 기절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