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그렇게 에탄은 드래곤 로드와의 대화를 끝내고 데이른 공작을 찾아갔다. 그는 북부 산맥에 성벽을 건설하는 일에 필요한 서류들을 처리하느라 의자에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먼저 마계를 칠수도 있다고?”
“예. 아직 확정된 계획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방법 또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굳이 기다리느라 시간을 더 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놈들에게 말이죠.”
“흐음… 맞는 말이기는 하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힘이 압도적일 때 가능한 방법 아닌가?”
“맞습니다. 확실히 저희가 힘이 있어야만 실행할수 있는 전략이죠.”
데이른 공작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먼저 마계를 치는 건 압도적인 전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였다.
“드래곤 로드가 함께 합니다.”
그리고 에탄은 방금 그 조건을 달성하고 온 상태였다. 정확히는 이 판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인 드래곤 로드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드래곤 로드?”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대답에 두 눈을 끔뻑였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들은 건지 의심하는 상황이었다. 드래곤 로드라니. 그런 게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생각해보니 우리는 이미 드래곤을 데리고 있었군.”
에탄과 함께 다니는 뇽뇽이를 떠올렸다. 그렇기에 드래곤에 대한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햇다.
다만. 드래곤 로드에 대해서는 그는 아직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
“정말 확실한 건가. 드래곤 로드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게.”
“존재 자체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니. 네가 하는 말은 전부 믿을수 있다.”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이미 에탄이 보여준 행보들이 있기에 그는 에탄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하는 일이라면 목숨을 받쳐서라도 실현 시켜주고 싶었다. 그만큼 에탄의 어깨에는 무거운 일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드래곤 로드를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드래곤 로드는 데이른 공작게에게 있어 미지의 존재였다. 아직 만나서 말 한마디조차 나눠보지 못했기에, 데이른 공작은 드래곤 로드를 신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예로부터 드래곤들은 아주 간악하고 사악하고 오만하고 약속을 일도 안 지키는 존재들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니까 드래곤 로드를 믿는건 좋은 선택이 아니야.”
“흐음….”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말에 턱을 쓸어 만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다시 한번 데이른 공작에게 물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냐고 말이다.
“그래. 그러니까 드래곤 로드를 너무 신뢰하지 말아라. 어찌보면 너 보다 더 지독한 분류다.”
그러자 데이른 공작이 확신에 가득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군요.”
에탄이 그런 데이른 공작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데이른 공작이 무슨 문제 있냐는 듯 두 눈을 끔뻑였다.
“호오.”
그 순간 데이른 공작의 뒤쪽에서 덤덤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이른 공작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잔뜩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붉은 눈에 붉은 머리를 한 드래곤 로드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아주 재밌다는 표정을 지은채로 말이다.
“누구….”
데이른 공작이 그런 여자를 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본래 같으면 누구냐는 말이 나왔겠지만, 데이른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
그리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데이른 공작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함부로 말했다가는 아주 큰일이 날거라고 말이다.
“누구십니까?”
그래서 데이른 공작은 드래곤 로드를 보면서 누구냐고 말하는 대신, 아주 공손한 말투로 정체를 물었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 있는 드래곤 로드가 데이른 공작과 눈을 빤히 마주쳤다.
“글쎄. 내가 누구일 거 같나.”
그리고 데이른 공작에게 역으로 물었다.
“드래곤 로드 같으십니다.”
그런 여자의 물음에 데이른 공작이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몸 안에서 마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데이른 공작의 오랜 감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저 여자의 힘은 무지막지하다고 말이다.
전투를 수도없이 해온 데이른 공작의 야생적인 감각이 그것을 간파하고 있는 거였다.
“드래곤 로드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지금 몸에 마나가 하나도 없는데 말이야.”
하지만 드래곤 로드는 쉽사리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짓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데이른 공작을 압박했다.
“으음. 누구 말처럼 교활하고 사악하고 오만하고 그런 존재라면 이런 장난을 칠수도 있겠군. 안 그런가?”
그리고 데이른 공작이 드래곤에 대해서 했던 말들을 그대로 내뱉었다.그걸 들은 데이른 공작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설마.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을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에탄 이 자식. 알고 있었구나!’
그래서 데이른 공작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에탄에게 향했다. 물론 그런 데이른 공작의 눈동자에는 원망이 한가득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에탄이었으니까. 만약 에탄이 조금만 언질을 줬어도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지는 않았으리라.
“왜 대답이 없나. 데이른 공작. 내가 말하는데.”
그때. 드래곤 로드가 다시 한번 데이른 공작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시선을 에탄에서 다시 그녀에게로 향했다.
“크흠. 그것은… 예로부터 전해지던 선조님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뒤에 실제로는 다를 수 있다는 뒷말을 붙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최대한 회전시켜 만들어낸 변명거리를 그녀에게 말했다.
“흐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런 데이른 공작의 모습을 본 드래곤 로드가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탁!
그리고 데이른 공작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괜찮다. 드래곤들이 오만하고 재수 없는 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니까.”
데이른 공작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예상했겠지만 네가 그 말한 믿음직스럽지 못한 드래곤 로드다.”
그리고 자신이 드래곤 로드라는 사실을 밝혔다. 데이른 공작이 그런 그녀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하….”
동시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웃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상황을 넘길 수 없을 거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말인데. 인간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도 있더군.”
“예?”
“친해지기 위해서는 서로 한번 싸워봐야 한다고 말이야. 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친해진다고 하던데.”
“누가 그런….”
“내 생각에는 그게 맞는 말인 거 같다. 안 그래도 오기 전에 화염의 지배자라는 이름을 가진 마탑주랑 한판 붙었거든. 그다음부터는 나를 보면 아주 깍듯이 예의를 차리더구나. 존경을 가득 담아서 말이야.”
“!”
드래곤 로드의 말에 데이른 공작의 두 눈이 커졌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크흠. 그 제가 몸이 안 좋아서.”
하지만 그걸 받아줄 자신이 없었다. 상대가 인간도 아니고 드래곤도 아닌 드래곤 로드니까.
심지어 뇽뇽이와 전투를 할 때도 이제는 벅차다는 느낌이 들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뇽뇽이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 드래곤 로드와 대련을 한다면? 데이른 공작은 자신의 인생이 거기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몸이 안 좋아?”
이런 데이른 공작의 대답에 드래곤 로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와 대련을 하기 싫다는 뜻인가?”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면서 데이른 공작을 압박했다. 자신과 대련을 하기 싫은 거냐고 말이다.
“아니….”
데이른 공작이 그 말을 듣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내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눈앞에 있는 드래곤 로드와 대련을 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아까 전에 말하지 않았나. 마족을 먼저 치기 위해서는 확실한 힘이 필요하다고.”
“에… 그랬습니다.”
“네가 대련을 통해서 그 힘에 대한 걸 알려주고 싶은데 말이야. 걱정하지 말아라. 네 녀석을 죽일 생각은 없다. 같이 마계에 쳐들어가서 마족들의 머리를 터트려야 하니까.”
“…….”
데이른 공작이 드래곤 로드의 대답에 침을 삼켰다. 그리고 깊은 고뇌에 가득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에는.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대련을 하기로 했다.
그게 자신이 드래곤 로드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 * *
그렇게 데이른 공작은 드래곤 로드와 대련을 치루로 떠났다. 하지만 에탄은 그 현장에 같이 가지 않았다.
그래봤자 좋은 꼴을 못볼거라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래곤 로드가 싸우는 모습을 이미 본 적도 있다.
“작업은 잘 돼가십니까?”
그래서 에탄은 사라진 데이른 공작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화염의 지배자를 다시 찾아갔다.
정확히는 그녀가 머물고있는 간이 작업실이었다.
“그래. 열심히 진행 중이야.”
화염의 지배자가 불쑥 나타난 에탄의 물음에 덤덤히 답했다. 딱히 화를 내지는 않았다.
에탄이 올 거라고 예상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계와 연결하는 작업… 이거 정말로 해도 되는 거지?”
“물론입니다. 화염의 지배자님도 동의하셨잖습니까. 드래곤 로드가 함께라면 충분하다고요.”
“그건 그렇지만.”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눈앞에 있는 마법진을 보면서 침을 삼켰다.
마계와 중간계를 연결하는 마법진.
그걸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긴장을 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