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화
화염의 지배자.
그녀가 에텐에게 지원한 이유는 간단했다.
‘굳이 마족을 기다릴 이유가 있냐라.’
바로 마족을 향한 선제공격이었다. 정말 마족이 북부를 넘어온다면.
그리고 그게 확정된 운명이라면 굳이 시간을 줄 필요가 있냐는 게 그녀의 물음이었다.
“이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지만 이번 제안은 에탄이 혼자서 결정할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수백만 명이 마계에서 죽을 정도로 위험한 발상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로드님.”
그래서 에탄은 화염의 지배자의 자존심을 완전히 박살 내고, 유유히 정원을 돌아다니는 드래곤 로드를 찾아갔다.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이 회귀를 했다고 해도 마족 전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먼저 공격한다라….”
드래곤 로드가 에탄의 말에 턱을 쓸어 만졌다. 밝게 빛나는 태양 빛에 반사되는 머리카락들이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꼭 불을 뿜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이길 자신이 있다면 그게 맞겠지.”
그런 로드의 입에서 의외로 나쁘지 않은 대답이 나왔다. 부정은 아니고 오히려 긍정에 좀 더 가깝다고 볼 정도의 대답이었다.
“이길 자신이 있다라….”
에탄이 드래곤 로드의 대답에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전력으로 마계에 쳐들어가면 과연 승리할수 있을지에 관한 거였다.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왜냐면 지금 에탄이 가지고 있는 전력은 객관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안하다.’
그러나 완벽한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마계에 얼마나 많은 마족들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즉 정보의 우위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전략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데.”
그런 에탄의 모습을 보고는 드래곤 로드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러자 에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로 향했다.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에탄이 그런 드래곤 로드의 대답에 두 눈을 끔뻑였다. 그녀라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함께 하고 있는 것도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게 에탄이었다.
“우리는 이미 같은 배를 타지 않았나?”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 내가 안 움직일 이유가 없지. 오히려 그건 같이 여정을 떠나는 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드래곤 로드라고 해도 말이지.”
드래곤 로드가 말을 마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탄이 대충 어떤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편견을 가졌네요.”
에탄이 드래곤 로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사과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드래곤 로드는 개의치 않아 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이 세계에 개입하는 이유는 뇽뇽이가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드래곤 로드인 그녀는 어째서 자신이 에탄을 도와 마족을 섬멸하려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마족들이 먼저 조약을 깨버렸거든.”
“조약이라 하면….”
“평화 조약. 서로가 서로의 세상을 간섭하지 않겠다는 그 조약이 깨졌지. 덕분에 많은 드래곤들이 모습을 감추었고.”
“….”
에탄이 드래곤 로드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뇽뇽이를 통해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말하는 조약과 그때의 상황을 유추하는 것 또한 가능했다.
“고생하셨군요.”
그래서 에탄은 길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짧게 그녀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흥.”
그러자 드래곤 로드인 그녀가 콧방귀를 꼈다. 동시에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말한 에탄을 빤히 쳐다보면서.
“그런데 너는 왜 마족을 섬멸하려고 하는 거지? 물론 북부에 살고 있으니까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너무 필사적이어서 말이야.”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다.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에탄이 그 물음에 의아함을 가지고는 되물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뇽뇽이의 기억 살피기를 통해 자신을 알아차린 것처럼, 이미 자신을 쳐다보면서 여러 비밀을 알아 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네 녀석이 시간을 거스른 존재라는 거만 알고 있을 뿐이지. 그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
드래곤 로드의 말에 에탄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를 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전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뜻이리라.
에탄이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에탄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침을 삼켰다. 과연 어디까지 얘기해도 좋을지에 관한 고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얘기하기 싫다면 안 해도 좋다.”
그러자 드래곤 로드가 에탄에게 말했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관심 없으십니까?”
“어차피 지금 벌어지는 일도 아니고 과거 아니냐. 그러니까 상관없다. 그걸 안다고 해서 현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기는 하네요.”
에탄이 드래곤 로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에탄이 여기서 과거를 아무리 얘기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
“…저는 원래 망나니였습니다.”
그래서일까.
에탄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회귀를 하기 전에 겪었던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드래곤 로드인 그녀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라는 태도를 취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망나니인걸 벗어난 건 20살 이후입니다. 뭐. 굳이 시기를 따지자면 지금보다 좀 더 뒤라고 할 수 있죠.”
“흐음. 그럼 지금은 본인 스스로 생각했을 때 망나니가 아닌 거 같다는 이야기인가?”
“예. 적어도 술 먹고 행패를 부리던 그런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때는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할 말이 없어지게 만드는 인간이었습니다.”
에탄이 스스로 대답을 하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생각해봐도 참으로 가관인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흐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예?”
“남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가령 예를 들자면 너를 아직 망나니라고 여길 수 있다는 뜻이지.”
“그게 무슨….”
“물론 한심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망나니에는 그런 분류만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드래곤 로드의 말에 에탄이 두 눈을 끔뻑였다. 그 또한 망나니가 무조건 그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에게 저런 답을 하는지는 감을 잡지 못했다.
“뭐.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에탄의 모습에 드래곤 로드가 픽 웃었다.
“단지 몇몇 사람이 너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묘한 뒷말을 남겼다.
하지만 에탄은 그것에 의문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망나니로 살다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드래곤 로드가 자연스럽게 뒤를 물었기 때문이다.
“마족이 북부를 침공할 거라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죠.”
“그럼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모두가 허무맹랑한 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게… 마족이 침공한다는 어떤 징조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흠.”
에탄이 그때 당시의 일을 말하면서 기억들을 되짚었다. 마족이 침공한다는 소식에 제국은 마기를 검사하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진행했었다.
하지만 대륙 그 어디에서도 마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누군가 악의적으로 퍼트리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그런데 소문이 사실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북부에 마족들이 침공했죠. 심지어 그 수는 저희가 지금까지 본 마족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습니다.”
그게 아니었다.
마족들은 실제로 게이트를 만들어서 북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만족들과 함께 말이다.
“거기에는 야만족들이 함께 했습니다. 대륙을 멸망시키는 마족들의 편에서 놈들은 북부를 쳐들어왔죠.”
“그 뒤에는?”
“저는 가문 사람들과 함께 마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역부족이었죠. 저희는 그때 북부에 마족이 들어올 거라는 생각을 아예 못 하고 있었으니까요.”
“계속해서 밀렸다는 이야기인가.”
“맞습니다.”
에탄이 드래곤 로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마족이 침공하면서 북부는 쭉쭉 밀려나갔다.
북부의 영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족들에게 전유 되어갔다.
그리고 결국에는.
“칼라사르 가문. 제가 속해 있는 가문 또한 멸망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에탄이 있는 가문까지 마족들이 손길을 뻗쳤다.
“그리고 그때 저를 포함한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 뒤로는… 어쩌다보니 아린이와 함께 회귀를 한 상태더군요.”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을 드래곤 로드에게 덤덤히 말했다.
“그렇구만.”
드래곤 로드가 에탄의 말에 그렇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는 에탄을 향해 오른손을 뻗고는.
“네 녀석도 제법 고생이 많았구나.”
에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를 거다.”
지금은 전생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