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화
그렇게 에탄은 드래곤 로드와 함께 둥지를 빠져나왔다. 그 후 알현실에 있는 국왕에게 찾아갔다.
아린이와 뇽뇽이. 드래곤 로드까지 다 같이 말이다.
“내 살아서 드래곤을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국왕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드래곤 로드를 보고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표정이었다.
수십 년 왕국을 통치하면서 여럿 귀족들과 온갖 상황을 겪어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국왕이 붉은 머리를 가진 드래곤 로드를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한 나라의 국왕이 존댓말을 하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국왕의 모습을 보고는 체통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다.
드래곤 로드라는 자리는 국왕보다 더 높은 자리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광까지야.”
드래곤 로드가 국왕의 인사에 손을 휘저었다. 한 나라의 국왕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그것에 큰 의미를 담지는 않았다. 자신은 어딜 가든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존중받는 인물이었으니 국왕의 인사가 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남부에서의 용건은 이게 끝인가?”
드래곤 로드가 그렇게 국왕과의 인사를 끝내고는 에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남부에서의 용건은 이게 끝이냐고 물었다.
“일단은 그렇습니다.”
에탄이 그런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을 앞에 두고 자신들 끼리 대화를 하는 게 예의는 아니지만, 상대가 드래곤 로드이니 그런 건 걸고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흐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드래곤 로드가 에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국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 가지 말해줄 게 있다.”
그리고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지요.”
하지만 국왕은 그것을 개의치 않아 했다. 상대는 드래곤 로드니까.
“이 왕국 주변에 숨겨진 광석이 있다.”
“?”
“그리고 그 광석은 이곳에선 제법 비싸게 팔리는 자원이라고 하더군. 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전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광석 말입니까?”
드래곤 로드의 말에 국왕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한 발언이 너무 예상외였기 때문이다.
“그래. 광석.”
“아아!”
그리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광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래곤 로드가 그것이 귀한 광석이라고 말했으니 국왕의 눈이 돌아갈 만도 했다.
“그래. 뭐 그걸 전해주고 싶었다.”
드래곤 로드가 두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국왕을 향해 덤덤히 뒷말을 붙였다.
“그럼 우리는 이제 떠나도 되는 건가?”
그리고 에탄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제 남부를 벗어나도 되냐고.
“예… 그렇기는 합니다만.”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드래곤 로드를 빤히 쳐다보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한 가지 부탁 해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지?”
드래곤 로드가 그런 에탄을 보고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부탁할 거리를 말해보라는 몸짓이었다.
“북부로 가서 같이 마족을 막는 것에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드래곤 로드님이 함께 가신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에탄이 말하는 부탁은 간단했다.
북부에 같이 가서 마족들을 막아 달라. 딱 그것뿐이었다. 에탄은 드래곤 로드에게 그 이상의 것을 원하지 않았다.
“흐음….”
드래곤 로드가 에탄의 말에 턱을 쓸어 만졌다. 북부로 가서 마족들을 막아달라. 지극히 간단한 부탁이었다. 하나 드래곤들은 본래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면 전통을 어기는 것이다.”
그래서 북부로 향하면 지금까지 지킨 전통을 어기는 거라고 말했다. 그 순간 에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러나 마족들이 먼저 조약을 어겼다.”
“그 말씀은.”
“나는 북부로 가겠다. 그리고 드래곤 로드로서 마족들을 완절히 전멸시키겠다. 한 놈도 남김없이 말이지.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한번 드래곤의 힘을 온 세상에 알릴 것이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에탄은 안도했다.
* * *
그렇게 에탄은 드래곤 로드와 함께 북부로 돌아왔다. 거기에는 아린이와 뇽뇽이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드래곤 로드…?”
그리고 북부로 돌아오자마자 드래곤 로드의 존재를 모두에게 알렸다. 당연한 거였다.
만약. 그들이 드래곤 로드의 존재를 모르고 실수를 한다면, 북부 전체가 날아가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에탄은 제일 먼저 화염의 지배자에게 드래곤 로드를 데려갔다.
“진짜 드래곤 로드야?”
하지만 그녀는 에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드래곤 로드가 폴리모프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숨겼기 때문이다.
평범한 여자처럼 말이다.
다만. 거기에는 드래곤 로드의 생각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마탑주인 화염의 지배자가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기에 폴리모프를 한 거였다.
“예. 드래곤 로드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마나가 아예 안 느껴지는데? 아무리 폴리모프를 했다고 해도 말이지.”
“이분이 드래곤 로드인 게 믿기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에탄의 말에 화염의 지배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서 무어라 대답해야 하나 고민됐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에탄이 데려왔기에 그게 걸렸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말하고 있었다. 저 앞에 있는 여자는 드래곤 로드가 아닌 거 같다고 말이다.
“그래. 아닌 거 같아.”
그래서 화염의 지배자는 에탄에게 눈앞에 있는 여자가 드래곤 로드가 아닐 거라 답했다. 그 순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드래곤 로드가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화염의 지배자는 그걸 확인하지 못했다. 에탄이 그녀의 대답을 듣는 순간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번 확인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거기에는 여자와 대련을 해 본다는 내용이 써져 있었다. 하지만 화염의 지배자의 이목을 끈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종이 맨 밑에 적혀있는 한 글귀가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이 대련으로 인해 다쳐도 에탄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음.]
“이건 뭐야.”
화염의 지배자가 그 글귀를 보고는 에탄을 빤히 쳐다봤다. 마지막 문구가 왜 들어가 있냐는 물음이었다.
“화염의 지배자님을 위한 글귀입니다.”
“?”
“너무 많이 다쳐도 저한테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죠.”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저 여자한테 다칠 거라는 말이네. 대련을 하다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드래곤 로드니까요. 유감이지만 화염의 지배자님이 이길 일은 없습니다.”
“하. 그래. 그렇단 말이지.”
에탄의 대답에 화염의 지배자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에탄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 이 순간에 저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거였다.
‘저 여자가 드래곤 로드라고?’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는 정보였다. 그렇기에 화염의 지배자는 오랜만에 도박을 해 보기로 했다.
“무언가 수상하기는 하지만. 좋아. 거기에 서명할게.”
그건 바로 에탄이 내민 서약서에 서명을 하는 거였다. 저번에 계약 사건을 통해 에탄이 종이를 내밀 때는 항상 주의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참을 수 없었다.
마탑주로서의 자존심이 말이다.
쓰윽.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화염의 지배자가 서명란에 곧바로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에탄이 그걸 보고는 오른쪽 입꼬리를 올렸다.
“바로 대련을 하실 겁니까?”
그리고 화염의 지배자에게 대련을 할 거냐고 물었다.
“굳이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지. 나는 얼마든지 준비되어있어.”
그러자 화염의 지배자가 기다렸다는 듯 에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 당장 저 여자를 이길 자신이 말이다. 그녀가 드래곤 로드라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그러했다.
“그렇다는군요.”
에탄이 그런 화염의 지배자의 대답을 듣고는 옆에 있는 드래곤 로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드래곤 로드가 미소를 지었다.
[…….]
그리고 에탄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용언을 발동시키는 순간.
파아앗!
주변 공간이 순식간에 넓은 초원으로 바뀌었다.
“공간 이동 마법?”
화염의 지배자가 그 사실을 깨닫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순식간에 공간 이동 마법이 발동됐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언이 들렸는데.”
화염의 지배자는 용언이 귀에 들렸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래서 주변을 살펴봤다.
혹시 뇽뇽이가 이곳에 있나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뇽뇽이는 없다.”
그때.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드래곤 로드가 육성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뒷말을 붙였다.
“내 폴리모프 마법이 제법 환상적이기는 하지. 하지만 실망이군. 마탑주라는 자가 이런 변장에 속아 넘어가다니 말이야.”
으득!
그 말을 들은 화염의 지배자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마탑주라는 이름을 저렇게 깎아 내리는 행위를 그녀는 용납할 수 없었다. 실제로 저런 식으로 말을 했던 마법사들을 묵사발 내기도 했고 말이다.
“정말 드래곤 로드라면.”
그래서 화염의 지배자는 드래곤 로드의 도발을 넘기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을 이글거리면서 그녀를 노려보고는.
“내 마법도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겠지.”
-우웅!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있는 힘껏 바깥으로 방출했다. 동시에 허공에 수십 개의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힘을 가진 고위급 마법들이었다.
“호오.”
드래곤 로드가 그걸 보고는 재밌다는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오른손을 까딱거리면서.
“어디 한번 덤벼봐라.”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도발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