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뇽뇽이의 부모 드래곤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처럼 촉감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공간에 있는 뜨거운 열기와 급박한 전투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였다.
이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위험했는지 말이다.
-이 아이의 이름은…
-그건 전투가 끝난 뒤에 정합시다.
두 마리의 드래곤이 둥지에 있는 알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주변에서 불폭풍이 일어나고 거대한 폭발이 벌어지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전투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시. 이대로 알만 둔다면 전투에 흘려 들어가 파괴될 터.
-우웅!
그래서 두 드래곤은 알 상태에 있는 뇽뇽이에게 온갖 보호 마법을 걸었다. 수백 명의 마법사가 한꺼번에 공격을 퍼부어도 절대 깨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보호 마법들이 알을 겹겹이 집어삼켰다.
-잘 있거라.
-우리가 없어도…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두 드래곤은 알 상태인 뇽뇽이를 향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자신들의 마지막 인사를 뇽뇽이에게 건네고는.
부웅!
거대한 날개를 움직여 하늘로 올라가려는 순간.
-끼에엑!
한 마물이 이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체 드래곤과 크기가 맞먹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녀석이었다.
-알이 있었군.
그리고 그런 성체 드래곤의 오른편 어깨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상당히 불길한 분위기를 품어내는 차가운 피부를 가진 남자.
-대공작!
마계에서 큰 권세를 가지고 있는 마족 중 한 명이었다. 두 드래곤이 그런 남자를 알아차리고는 눈을 부릅떴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나?
-감히 드래곤들의 영역을 침범하다니.
그리고 마계 대공작을 향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들은 지금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마계에서만 살겠다는 조약을 어겼다.
-그대들은 죽어야 한다.
마계 조약.
과거 대 전쟁보다 한참 더 과거에 존재했던 마족과 드래곤의 전쟁. 이들은 그 전쟁에서 패배하고 마계에서 나오지 않기로 드래곤들과 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족들은 다시 한번 강력한 힘을 되찾게 됐고, 끝내는 드래곤들과의 조약을 파기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대공작. 네놈을 죽이겠다!
-드래곤의 힘을 무시하지 말아라!
그렇기에 뇽뇽이의 부모 드래곤.
즉. 두 마리의 성체 드래곤은 마계 대공작과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자 의무였으니까.
콰아앙!
마계 대공작과 불을 다루는 레드 드래곤 두 마리.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들이 둥지에서 싸움을 이어 나갔다. 거대한 둥지가 파괴되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게 잿더미로 바뀔 정도로 강렬한 전투였다.
-끄아악!
그리고 그런 싸움 끝에 마계 대공작은 두 마리의 드래곤에게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우웅!
놈의 몸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기를 잔뜩 응축시킨 일종의 폭탄이었다.
-막아야 한다!
-알을 지켜야 해!
그걸 본 두 드래곤은 깨달았다.
저 폭탄을 막아내지 못하면 이곳에 있는 모든 게 날아갈 거라고.
거기에는 자신들이 소중하게 키워야 하는 뇽뇽이도 포함될 거라는 걸 말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폭탄이 터지는 순간 몸을 내던졌고.
파아앗…
그렇게 두 드래곤의 희생으로 폭탄은 분해됐다. 드래곤들과 함께 말이다.
* * *
“….”
모든 것을 알게 된 뇽뇽이가 어둠 속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드래곤 로드가 뇽뇽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다 확인했니?”
그리고 뇽뇽이에게 이들이 남긴 마지막 장면을 목격했냐고 말했다. 그러자 뇽뇽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픔.”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드래곤 로드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했다. 지금까지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이었다.
아니. 느껴보지 못한 종류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리라. 뇽뇽이는 에탄과 아린이를 통해서 늘 기쁨만 느꼈으니까. 누군가를 잃는다는 슬픔은 처음이었다.
뚝… 뚝.
그렇기에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걸 뇽뇽이는 하염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눈물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물방울을 만드는 슬픈 모습을 말이다.
“흑….”
뇽뇽이의 입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평소와 같은 콧방귀는 들리지 않았다.
성대를 통해서 슬픔을 뱉어내는 목소리. 그런 소리가 뇽뇽이의 입을 헤집고 바깥으로 터져 나왔다.
“….”
드래곤 로드가 그런 뇽뇽이를 아무 말 없이 꼬옥 안았다. 그런 그녀의 눈 또한 심해에 가라앉는 것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 * *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뇽뇽이는 드래곤 로드와 함께 다시 지하를 빠져나왔다. 그런 뇽뇽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한가득 맺혀 있었다.
“이제 다 울었음!”
하지만 더 이상 뇽뇽이의 눈에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드래곤 로드가 그런 뇽뇽이를 보면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장하다.”
그리고 슬픔을 이겨낸 뇽뇽이의 머리를 쓸어 만졌다.
“흐응!”
그러자 뇽뇽이가 기분 좋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두 사람을 다시 불러도 되겠느냐?”
“흐음!”
그리고 이어지는 드래곤 로드의 말에 그래도 된다는 표현을 했다. 그래서 드래곤 로드가 공간 마법진을 발동시키려는 순간.
“…그러고 보니.”
마나를 다시 허공에 흩뿌리면서 뇽뇽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뇽뇽이가 무슨 일이 있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린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느냐?”
“흐음? 아린이는 친구임!”
“그 외에 알고 있는 건?”
“으음….”
뇽뇽이가 드래곤 로드의 말에 눈썹을 찡그렸다.
“잘 모르겠음.”
사실 아린이에 대해서 깊게 이것저것 캐물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뇽뇽이에게 아린이는 언제든지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친구니까.
“으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드래곤 로드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뇽뇽이에게 별말을 이어 나가지 않았다. 그저 생각에 잠긴 눈으로 아린이에 대해서 빤히 생각했다.
“그럼 에탄은?”
“흐음?”
“같이 다니는 아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느냐.”
“으으음….”
드래곤 로드의 물음에 뇽뇽이가 이번에도 미간을 찌푸렸다. 에탄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에탄 또한 자신이 믿고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 빼고는 말이다.
“검을 잘 다룸!”
그래서 무슨 대답을 할까 고민하다가, 드래곤 로드에게 에탄이 검술에 능하다는 말을 건넸다.
“흐음. 그렇구나.”
드래곤 로드가 그 말을 듣고는 픽 웃었다. 동시에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뇽뇽이의 머리를 쓸어 만지고는.
“그럼 이제 두 사람을 불러보자.”
-웅!
용언을 통해 아린이와 에탄을 다시 드래곤 둥지로 불러들였다.
* * *
그렇게 에탄과 아린이는 드래곤 로드의 부름에 따라 다시 드래곤 둥지로 이동됐다.
“너희들에게 선물을 하나씩 주겠다.”
“네?”
그리고 갑작스러운 드래곤 로드의 말에 에탄은 당황하고 말았다. 갑자기 자신들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너무 부담가지지 말아라. 둥지에 남아있는 물건을 주는 거니까. 사실 선물이라고 하기에도 미안한 보구들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당황하는 에탄을 향해 드래곤 로드가 픽 웃었다. 사실 그녀는 지금 상당히 민망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드래곤이 선물을 주는데 고작 동지에 있는 것들만 주는 거라니.
그런 건 드래곤 로드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존심보다 현실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
용언을 통해 둥지에 숨겨져 있는 보구 창고를 드러냈다.
“아….”
하지만 그걸 보는 순간 에탄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드래곤 로드가 모습을 드러내게 한 창고의 모습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둥은 반파된 지 오래였고, 심지어 안에 있는 보구들도 성해보이는 게 없는 상태였다.
“전투를 치르면서 파괴됐다.”
드래곤 로드가 그런 보구 창고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이걸 보여주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마족들과 전투를 치르면서 일어난 일이니까.
게다가 아직 남아있는 보구들도 있었기에 드래곤 로드는 할 말이 있었다.
[…….]
드래곤 로드가 용언을 통해 주문을 외웠다.
파파팍!
그러자 잔해 안에 갇혀 있던 몇몇 보구들이 푸른 빛을 뿜어내면서 허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보석이 박힌 반지들이었다.
“저 반지들을 항상 손에 끼고 있어라. 개수도 마침 세 개군.”
드래곤 로드가 세 개의 붉은 반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이자 세 개의 반지가 에탄과 아린이 뇽뇽이를 향해 각자 날아갔다.
“이 반지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에탄이 드래곤 로드가 건네주는 반지를 손에 끼웠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아무 생각 없이 능력에 대해 물었다. 기껏해야 반지에서 불이 나온다거나 하는 수준이 끝일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화염 계열 마법을 다룰 수 있게 해 준다.”
“?”
“마나가 없어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반지에 있는 마법에 한해서지만 말이지.”
하지만 이어지는 드래곤 로드의 대답에 에탄은 자신도 모르게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손에 껴진 반지를 빤히 쳐다보면서.
“소중한 친구군요.”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눈빛으로 반지를 쳐다봤다. 아주 자랑스러운 친구를 보듯이 말이다.
“그래. 아주 소중한 녀석이지.”
드래곤 로드가 그런 에탄의 눈빛을 보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에탄이 저런 식으로 탐욕을 드러내는 건 그녀의 기준에서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탐욕의 화신이군.’
하지만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이미 뇽뇽이의 마나를 통해 기억을 살펴볼 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에탄의 마음속에는 엄청난 탐욕이 깃들어 있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