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화
뇽뇽이의 선조.
불을 다루는 일족의 드래곤 로드.
그 정보가 왕국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대부분 이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말만 떠올랐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진 거 같은데.’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불러들인 게 아닌가? 라는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그도 그럴 게 평범한 성체 드래곤도 이들의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성체 드래곤을 뛰어넘는 드래곤 로드가 나타났으니 모두가 벙찌는 게 당연했다.
“놀라지 말아라. 나는 그대들을 해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니까.”
하지만 정작 이 사건의 당사자가 된 드래곤 로드는 이들을 향해 낄낄 웃어보였다. 한없이 가벼운 분위기와 인자한 미소.
맨 처음 등장했을때보다 그녀가 내뿜는 위압감이 상당히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런데 뇽뇽이의 이름은 어떻게 알아내셨어요?”
그때. 가만히 드래곤 로드를 바라보던 아린이가 조심스럽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건 어떻게 뇽뇽이의 이름을 알고 있냐는 물음이었다.
그도 그럴 게 에탄과 이들은 아직 드래곤 로드에게 뇽뇽이의 이름이 뇽뇽이라고 말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마나속에 있는 기억을 통해서 알아냈다. 그 외에 너희가 해온 일들이나 행동. 역사들 또한 마나를 통해 살펴봤다.”
드래곤 로드가 그런 아린이의 물음에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답했다. 하지만 그걸 듣는 마법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작 마나만을 이용해서 사용자의 기억을 살펴보다니. 인간 마법사들인 그들 기준에서는 절대 해낼수 없는 경지였다.
“역시… 드래곤 로드.”
“이것이 상위 종족.”
“너무 무섭구나….”
마법사들의 입에서 경외심 가득한 말들이 터져 나왔다. 드래곤 로드가 그런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흠….”
그리고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에탄과 아린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일단 자리를 옪기면 좋겠군.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에탄에게 장소를 옪기자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려는 순간.
“장소는 미리 준비한 곳이 있다.”
-우웅!
그녀가 용언을 통해 공간 이동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순식간에 에탄과 아린이 뇽뇽이를 데리고 왕국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 * *
갑작스러운 순간 이동 마법 발동에 에탄은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겁을 먹거나 전투 자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여기는….”
“드래곤의 둥지다.”
그녀가 자신을 죽이려고 마음 먹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거라는걸 처음 보는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소가 바뀌는 순간, 에탄은 주변을 살펴봤다.
“드래곤의 둥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에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둥지라고 하기에는….”
지금 에탄이 이동한 장소는 모든 게 불타버린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게 있다면 주변에 있는 불에 그을린 나무들이 전부였다.
“정확히는 둥지였다. 한 1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지.”
그런 에탄의 마음을 깨닫고는 드래곤 로드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타버린 나무들을 쳐다보면서 짧게 혀를 찼다.
“마족들이 쳐들어왔다. 그리고 놈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둥지를 잃어버렸지. 생각보다 저항이 심각하더군. 힘도 상당하고 말이야.”
“마족….”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챙기지 못한 알이 있었다. 그게 바로 네가 데리고 있는 뇽뇽이다. 레드 드래곤의 후손을 이어야 하는 녀석이지.”
“그렇군요.”
에탄이 드래곤 로드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럼 뇽뇽이의 부모는….”
“전투 중에 죽었다. 썩 좋은 결말은 아니지. 하지만 그들은 뇽뇽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부끄러움은 없어.”
하지만 결과가 완전히 좋은 건 아니었다.
레드 드래곤들이 머무는 둥지는 파괴 되었고.
“그러나 모두가 흩어졌다. 나머지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다른 차원에서 몸을 숨기고 있겠지… 그도 아니라면 어딘가에서 숨을 거뒀거나 말이야.”
남은 드래곤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 에탄의 눈앞에 있는 로드 드래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렇게라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에탄은 그것에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만이라도 뇽뇽이의 기운을 찾아내고는 모습을 드러낸 것에 감사했다. 만약 그녀마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뇽뇽이는 이 사건을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 뇽뇽아. 내가 로드로서 너에게 해줄수 있는 정보는 이게 끝이다. 네 부모 드래곤은… 마족들과 전투를 한 끝에 사망했다.”
드래곤 로드인 그녀가 뇽뇽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뒷말을 붙였다. 드래곤으로서의 위엄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어린아이가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성체 드래곤의 모습만 그녀에게 남아있었다.
“….”
뇽뇽이가 그런 드래곤 로드의 말을 듣고는 가만히 둥지를 쳐다봤다. 그리고 두 눈을 끔뻑이면서 입을 금붕어처럼 뻐끔뻐끔 거리더니.
“흐음. 이해했음.”
이내 덤덤하게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거기에는 슬픔이나 분노 실망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상황을 이해했다는 말뿐이었다.
“뇽뇽아….”
그런 뇽뇽이의 모습에 에탄과 함께 공간 이동을 한 아린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동시에 천천히 뇽뇽이를 향해 다가가고는 뇽뇽이의 오른손을 꼬옥 잡았다.
“괜찮음!”
그러자 뇽뇽이가 아린이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자신은 괜찮다고 말했다.
정말로 그런 뇽뇽이의 얼굴에는 슬픔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뇽뇽이. 행복함.”
이렇게 슬픈 상황에서도 뇽뇽이가 미소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알이었던 시절부터 함께 해온 아린이와 에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뇽뇽이는 부모 드래곤이 전투를 하다가 사망을 했다는 소식에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잠시 뇽뇽이랑 둘이서 대화좀 하게 자리를 비켜줄 수 있나?”
그런 뇽뇽이의 모습을 보고는 드래곤 로드가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명령조에 가까운 말투였지만, 이제는 아린이와 에탄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녀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뇽뇽이의 손을 꼬옥 잡고있는 아린이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다 끝나면 불러줘.”
아린이 또한 드래곤 로드가 무엇을 하려는지 대강 눈치채고는 뇽뇽이에게 일이 끝나면 알려달라 말했다.
“흐음! 알겠음!”
뇽뇽이가 아린이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웅!
그 순간 드래곤 로드가 에탄과 아린이에게 공간 이동 마법을 걸었다.
팟!
그러자 순식간에 두 사람이 드래곤 둥지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 순간 드래곤 로드가 뇽뇽이를 빤히 쳐다봤다.
“너에게 보여줄 게 남아있다.”
그리고 뇽뇽이에게 아직 남은 게 있다고 말하고는.
[…….]
용언을 중얼거리는 순간.
쿠쿵!
드래곤 둥지 지하로 향하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뇽뇽이는 드래곤 로드와 함께 지하를 계속해서 내려갔다. 얼마나 어둡고 컴컴한 곳인지 마법으로 불을 만들어내지 않았으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뇽뇽이는 드래곤 로드가 만들어 낸 불덩어리에 의존해서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여기는 어디임?”
그리고 약 15분이 지났을 때. 참다못한 뇽뇽이가 드래곤 로드에게 이곳이 뭐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드래곤 로드는 뇽뇽이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오면 안다.”
그저 따라오면 깨닫게 될 거라고 말하면서 뇽뇽이를 지나쳐 지하로 계속해서 내려갈 뿐이었다.
“흐음….”
뇽뇽이가 그런 드래곤 로드의 모습을 보고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같으면 뒤통수에 꿀밤을 먹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뇽뇽이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갔으니까.
“어두움….”
그래서 이곳에 대한 불만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드래곤 로드의 뒤를 따랐다.
“흠. 이곳이 좀 어둡기는 하지.”
드래곤 로드가 그런 뇽뇽이의 불만 토로에 픽 웃었다. 뇽뇽이의 행동에 짜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드래곤을 기준으로 했을 때 뇽뇽이는 아직 갓 태어난 아기와 마찬가지니까. 그렇기에 드래곤 로드는 뇽뇽이에게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더 참아주렴.”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불을 더 크게 만들어내고는 지하 계단을 끊임없이 내려갔다.
뇽뇽이가 그런 드래곤 로드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타탁!
이내 드래곤 로드가 만들어낸 불을 따라 지하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흐음?”
그렇게 한참을 더 내려가자 드래곤 로드와 뇽뇽이 앞에 거대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큰 크기인지 뇽뇽이가 고개를 꺾어서 위로 봐야 할 정도였다.
[…….]
드래곤 로드가 그런 문을 향해 오른손을 살포시 가져가 댔다. 그리고 정체 모를 용언을 외웠다.
쿠쿵!
그러자 검으로 베어도 꿈쩍도 안 할 정도로 거대한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면서 안쪽으로 열렸다.
“이 안에 들어가 보거라. 여기부터는 혼자 가야 한다.”
드래곤 로드가 그것을 확인하고는 뇽뇽이에게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말했다.
“알겠음.”
뇽뇽이가 그 말을 듣고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드래곤 로드를 지나쳐 문 너머로 들어가는 순간.
파아앗!
어둠밖에 없던 공간에 한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로 합시다.
뇽뇽이의 부모 드래곤이 거기에 있었다.